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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포의 왈츠 울산 남구

2026년 05월 01일

  • Editor 이미선
  • pHOTOGRAPHER 안홍범

고래가 생을 다하고 심해로 천천히 가라앉으면 바닷속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꽃을 피운다. 고래 낙하, 고래 한 마리가 온 바다를 먹여 살린다. 포경이 금지되고 오랫동안 잠들었던 장생포를 깨운 것도 고래다. 파도처럼 밀려와 포구에 쌓인 고래의 전설이 온 마을을 먹여 살리고 있다.

고래의 전설이 낙하한 자리

옆구리에 집채만 한 고래를 묶고 뱃머리에 오색 풍어기를 단 포경선이 의기양양하게 항구로 들어오면 꽹과리를 치며 축제를 벌였다. 지금도 장생포 고래문화마을과 장생옛길에는 옛 영화가 꽃처럼 피어 있다.

울산역을 벗어나자 거대한 고래 조형물이 반긴다. 잔잔한 수면 아래 몸을 반쯤 담그고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것 같은 작품은 ‘회귀 그리고 비상’. 2012년 울산공업센터 50주년을 기념해 세운 조형물이다. 산업도시 울산에는 고래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가장 오래된 건 태화강 상류 대곡천 절벽에 새겨진 암각화에 대한 것이다. 다양한 고래 그림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 사냥 장면이 있는데, 이로 미루어 선조들이 선사시대부터 배를 타고 태화강을 따라 바다로 나가 고래를 잡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고래 이야기는 울산 남구 장생포로 이어진다.

웨일즈 판타지움 2층 테라스에 신설한 익스트림 체험 시설 ‘웨일즈 스윙’.
오색수국정원을 비롯한 장생포 고래문화마을 일원에서 6월 19일부터 28일까지 수국 페스티벌이 열린다. 만개한 오색 수국을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포토존, 음악회, 먹거리 쉼터, 체험존 등 다양한 시설을 즐길 수 있다. © 김은주

국내 유일의 고래 문화 특구
태화강과 동해가 만나는 장생포는 바다가 깊고 바람이 적어 선박이 드나들기 좋은 데다 먹이가 풍부해 오래전부터 포경업이 발달했다. 고래잡이로 풍요로웠던 1960~1970년대에는 뱃고동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고래문화마을에 그 시절의 마을 풍경을 재현한 ‘장생포옛마을’이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1만 원짜리 지폐를 입에 문 강아지 조형물이 꼬리를 치며 반긴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풍요로웠던 장생포의 과거 속으로 진입했음을 알 수 있다. 강아지 조형물 뒤편으로 사진관과 문방구, 서점, 다방, 중국집 등이 들어서 있고, 골목을 따라가면 도장 가게, 교복점, 체육사, 고고장 등이 보인다. 각 공간마다 즐길 거리가 많은데, 옛날 교복을 대여해 입고 마을을 거닐면 레트로 영화 속 주인공으로 변신한다. 골목 안쪽에는 선장의 집과 포수의 집이 있다. 이곳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장생포 마지막 포수, 추소식 어르신이다. 열아홉 살에 말단 선원으로 포경선에 올라 포경 금지 직전까지 포수로 포경선을 이끌고, 이후 원양어선 선장이 되어 세계의 바다를 누볐다는 그는 은퇴 후 고래문화마을의 문화해설사가 됐다. 덕분에 주말마다 포수의 집에서는 장생포의 과거와 포경 문화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장생포옛마을에는 15미터짜리 밍크고래를 해체하던 해체장과 고래기름을 추출하던 착유장이 있어 간접적으로 포경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또 고래 고기를 삶던 고래막집에서는 분식을 팔고, 우체국에서 미래의 나에게 엽서를 보낼 수 있으며, 고래빵연구소에서는 다양한 모양의 고래빵을 판매하니 꼼꼼하게 둘러보며 추억을 쌓기 좋다.
장생포옛마을 위쪽에는 미디어 아트 전시관, 웨일즈 판타지움이 있다. 이곳에서 다섯 가지 미디어 아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데, 반구대 암각화를 모티브로 한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 ‘염원의 길’과 고래의 시선으로 울산을 여행하는 몰입형 미디어 아트 ‘고래의 도시’가 특히 인상적이다. 반구대 암각화부터 울산 명소까지, 고래와 함께 가상의 울산 여행을 마치고 출구에 있는 디지털 아쿠아리움에서 나만의 반려 고래를 만든 다음 공중그네 ‘웨일즈 스윙’을 타러 2층으로 올라갔다. 눈앞에 울산만과 울산대교가 펼쳐진다. 테라스 끝에 매달린 그네가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방금 전에 본 ‘고래의 도시’ 속 고래가 된 기분이다. 그네에서 내린 뒤에도 뱃속에서 고래가 춤추는 것처럼 오랫동안 울렁임이 멈추지 않는다. 바람의 온도가 높아지면 고래문화마을 풍경이 더욱 다채로워진다. 5월에 최고 시속 40킬로미터의 롤러코스터형 체험 시설 ‘웨일즈 카트’가 운행을 시작하고, 수국 페스티벌이 열리는 6월에는 오색 수국이 만개해 일대를 알록달록하게 물들일 것이다.

장생옛길은 장생포와 울산 읍내를 연결하던 최초의 길로, 1970~1980년대 장생포 풍경을 재현했다.

고래 고기를 이고 읍내로 가던 장생옛길
추소식 어르신은 울산세관 통선장 맞은편 골목이 진짜 장생포의 번화가였다고 했다. 지금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2차선 도로는 과거에 바다였고, 장생옛길이 장생포와 울산 읍내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다고 한다. 장생옛길에는 1970~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조형물과 벽화가 있는데, 윤수일 생가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벽화 속 포수가 자신이니 잘 찾아보라는 말을 덧붙인다. 어르신의 이야기를 따라 장생옛길을 걸었다. 장생옛길 표지판을 지나자 오른쪽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건물에 시선이 간다. 1900년대 초 주민들이 세운 신위당으로, 지금도 당산제와 풍어제를 지내는 곳이다. 과거에는 고래를 잡을 때마다 신위당 뒤쪽 당산나무에 고래 꼬리를 매달아 풍어를 기원했다고 한다. 두 명이 나란히 걸으면 꽉 찰 정도로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오래되고 낡은 집의 벽과 담장을 도화지 삼아 장생포의 근대사가 펼쳐진다. 장생포 고래잡이 문화를 기록한 벽화가 이어지고, 장난스러운 표정의 아이들을 그린 벽화 너머로 군데군데 고래 고기를 팔러 읍내로 나가는 남자의 동상과 샘물을 길어 나르는 소녀의 동상이 보인다. 벽화 속 소년들과 달리 웃음기 없는 동상의 얼굴에는 고된 삶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장생옛길은 두 갈래로 나뉘는데,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포장도로는 일제강점기에 만든 것이다. 장생포가 고향인 야구 선수 윤학길과 가수 윤수일이 이 길에 이야기를 더한다. 롯데 자이언츠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윤학길은 마을 사람들의 자랑이다. 선수 시절 세운 100경기 완투 기록이 아직 깨지지 않았다.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은 가수 윤수일은 장생포에서 태어나 열아홉 살까지 울산에서 살았다.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윤수일 고향집 터가 나오고, 근처에 윤수일의 얼굴과 앨범 그림으로 꾸민 아파트가 있다.
장생옛길은 장생포둘레길을 통해 고래문화마을과 연결된다. 봄비가 지나가고 꽃비가 내리는 장생포둘레길을 걷다 꽃나무 아래서 쑥을 캐는 주민을 만났다. 이즈음에는 비가 한 번 내릴 때마다 잎이 쑥쑥 올라온다며 부지런히 손을 움직인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풍경이 군데군데 들꽃처럼 피어 있어 다행이다.

소생의 파도, 고래의 노래

고래 경(鯨), 바다 해(海). 동해의 다른 이름이 경해였다. 고래가 들끓던 바다라는 뜻이다. 그 많던 고래는 어디로 갔을까. 장생포고래박물관에서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이경리 박사와 함께 고래의 흔적을 좇았다.

인간보다 먼저 지구에 태어나 네 발로 걷던 고래는 육지에 살다 바다로 갔다. 바다 환경에 적응하는 동안 앞다리는 지느러미가 되고 뒷다리는 퇴화했으며, 콧구멍은 숨 쉬기 쉽게 머리 꼭대기로 이동했다. 작은 포유류였던 고래는 바다로 나아가 공룡보다 큰, 지구에서 가장 큰 동물로 진화하며 바다의 주인이 됐다. 바다에 살면서 여전히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이고, 체온을 유지하며 폐로 숨을 쉬는 고래의 이야기를 찾아 장생포고래박물관으로 향했다.

머리 위로 돌고래가 자유롭게 노니는 고래생태체험관 해저터널. 정기적으로 열리는 고래 생태 설명회가 바다 동물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장생포고래문화특구에서는 토요일 밤마다 ‘장생포 토요불꽃’을 진행한다. 고래바다여행선 야간 연안 투어에 탑승하면 배 위에서 환상적인 불꽃놀이를 즐길 수 있다.

실물 고래 골격과 포경 유물 전시
장생포고래박물관은 포경 금지 이후 사라져 가는 포경 유물을 보존하고, 고래와 해양 생태계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2005년에 개관한 고래 전문 박물관이다. 1890년대 이후 근대 포경의 전진기지였던 장생포의 과거와 당시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1층에는 반구대 암각화 특별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이 있다. 두 갈래로 물을 뿜어내는 긴수염고래, 새끼를 등에 업고 다니는 귀신고래, 머리 모양이 뭉툭한 향유고래 등 고래의 특징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반구대 암각화 그림을 보고 있자니 신석기시대 피카소들을 향한 존경심이 솟는다. 동선은 실제 크기의 다양한 고래 골격이 전시된 3층으로 이어진다.
“전 세계에 90여 종의 고래가 살아요. 크게 이빨고래와 수염고래로 나뉘는데, 먹이를 먹는 방식이 달라요. 이빨고래는 이빨로 먹이를 물어 죽이거나 지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삼켜요. 이빨 대신 수염판을 가진 수염고래는 입을 크게 벌려 바닷물을 한 입에 삼킨 다음 입안의 털을 부풀려 새우나 크릴 같은 먹이를 걸러 내죠.”
이경리 박사는 박물관에 전시된 브라이드고래와 범고래의 골격을 예로 들며 설명을 이어 갔다. 범고래는 이빨고래이고 브라이드고래는 수염고래인데, 귀여운 외모와 달리 범고래는 해양 생태계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는 사나운 고래라고 한다. 전시관 한쪽에는 귀신고래 두골과 보리고래 턱뼈, 브라이드고래 수염 등을, 다른 쪽에는 포경에 쓰던 작살, 고래 길이를 재던 막대, 고래기름을 뜨던 바가지, 고래기름을 정제하던 솥 등 포경 유물을 전시했다. 2층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브라이드고래의 골격 아래에는 실제 운항했던 포경선 일부가 놓여 있다.
“길이가 무려 3미터에 이르는 이것은 참고래 턱뼈예요. 참고래는 대왕고래 다음으로 큰 고래인데, 예전에 장생포초등학교는 참고래 턱뼈 두 개를 괴어 교문으로 사용하기도 했어요. 그만큼 이 지역에 고래가 흔했다는 얘기죠.”
그 많던 고래가 어디로 갔느냐고 묻자 이경리 박사가 한국 포경의 역사를 들려준다.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고래를 잡았다. 때마다 먹이를 챙겨야 하는 가축과 달리 고래는 바다에서 스스로 자랐고, 잡은 고래는 버릴 게 없었다. 기름은 램프 연료로, 수염은 귀족의 장식품으로 쓰였다. 상업 포경이 전 세계를 휩쓸던 19세기, 한국에 도착한 러시아인은 동해를 ‘고래 바다’라 불렀다. 멀고 거친 태평양까지 나가지 않아도 근해에서 고래를 잡을 수 있다며 반겼다. 그들이 주로 잡아들인 고래는 전 세계에 650마리 남짓 남았다는 북방긴수염고래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포경업을 독점했고, 한반도 해역에서 참고래를 모조리 잡아들였다. 한국 포경의 역사는 광복 이후 시작됐다. 고래잡이가 전성기를 이루던 1970년대 말 장생포는 50여 척의 포경선을 두고 1만여 명의 인구가 상주하는 마을로 번성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무분별한 포경으로 포획량이 급격히 줄었고, 일부 종이 멸종하면서 포경 산업은 침체기를 맞았다. 그리고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가 상업 포경을 전면 금지하면서 장생포 바다의 시간이 멈췄다. 이경리 박사는 “당시 한국은 명태 조업과 고래 포경 중 전자를 택했다”고 했다. 이후 장생포에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포경에 종사하던 주민들이 대부분 이주했고, 마을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내 유일의 고래 관광선인 고래바다여행선. 고래 탐사 코스와 연안 투어 코스, 야간 연안 투어 코스를 운영한다.

고래 찾아 바다 탐사
고래바다여행선을 타고 울기등대·화암추 주변 해상을 항해하며 야생 고래를 찾는 고래 탐사 코스 체험에 나섰다. 계절이 교차하는 시기이니 운이 좋으면 먹이를 따라 이동하는 고래 떼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지구온난화는 고래에게 큰 스트레스로 작용해요. 고래가 살던 바다를 떠나는 이유 중 하나도 지구온난화 때문이죠. 먹이가 수온의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이동하면 단골 식당을 따라 고래도 움직이는 겁니다.”
기대가 컸지만 끝내 고래는 만나지 못했다. 이경리 박사의 얘기대로 고래들이 식당을 옮긴 모양이다. 아쉬움을 안고 고래생태체험관으로 향했다. 한국 최초의 돌고래 수족관으로, 1층에는 어류 수족관과 해저터널이, 2층에는 돌고래가 노니는 돌고래 수족관과 4D 영상관이 있다. 돌고래 수족관에는 큰돌고래 네 마리가 산다. 이들은 장생포고래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한지붕 돌고래 가족>의 모델이기도 하다. 고래생태체험관에서 태어난 돌고래 ‘고장수’가 해양동물복지사와
함께 성장한 과정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낸 전시다.
해가 지자 장생포고래박물관 앞 광장에서 음악 소리와 함께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토요일마다 열리는 불꽃 쇼에 앞서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데, 장생포옛마을의 경찰서를 지키던 경찰서장이 사회자로 나선 것이다. 마술과 버블 쇼가 주를 이루며, 종종 울산 지역 예술인들도 공연을 선보인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다 같이 카운트다운을 외치자 전시된 포경선 위로 불꽃이 터진다. 오랫동안 수면 아래서 잠수하던 고래가 숨을 뿜어내듯 불꽃이 찬란하게 허공으로 흩어진다.

예술이 된 고래의 전설

장생포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포경 금지로 주민들의 발길이 끊긴 동사무소, 뱃사람들의 쉼터였던 여인숙, 해체한 고래 고기를 보관하던 냉동 창고가 흥미로운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바뀌었다.

몇 해 전 울산을 여행한 친구는 가장 인상적인 경험으로 장생포 아트스테이 옥상에서 영화를 본 일을 꼽았다. 노을이 드리운 어느 여름날, 낯선 사람 여럿이 같은 방향으로 앉아 영화를 관람했고, 레지던시 작가들과 영화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장생포 아트스테이에서 진행한 ‘옥상극장’ 프로그램이다. 이후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장생포 아트스테이의 활동을 지켜봤다. 프로그램은 매번 달랐고, 모두 흥미로웠다. 기회가 된다면 지난 연말에 열린 <장생포 비밀수사단: 사라진 호작도의 비밀>에 꼭 참여하고 싶었다. 공연·전시·체험이 결합된 콘텐츠로, 관객이 비밀 수사단이 되어 공연을 관람하고 단서를 찾아 범인을 쫓는 참여형 미션 추리극이다. 장생포에 볼거리가 많아졌다는 얘기가 들렸다. 공간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포경 금지 후 쓰임을 잃은 건물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이 여럿이었다. 고래가 낙하한 자리에 꽃처럼 피어난 고래의 전설을 찾아다녔다.

오래된 여인숙을 재단장한 장생포 아트스테이. 문학 레지던시로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 예술 이벤트를 진행한다.
장생포 아트스테이에서 열린 참여형 미션 추리극 <장생포 비밀수사단: 사라진 호작도의 비밀>의 한 장면. © 장생포예술창작촌

영감의 샘이 된 폐건물
장생포 아트스테이는 포경 산업이 활발하던 시절, 뱃사람들이 묵던 여인숙을 재단장한 것이다. 1972년에 지은 여인숙을 원형 그대로 보존해 2018년 문학 레지던시로 개관했다. 편안하게 머물기 좋은 북카페를 마련했고, 탁 트인 앞마당에서는 북 콘서트나 문화 강좌 등이 열린다. 전시실에는 예비 창작자와 마을 주민들이 예술가와 협업해 만든 아트 상품을 전시·판매한다. 옛 여인숙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2층은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이다. 여인숙 뒤에는 목공 체험 공간으로 쓰이는 컨테이너가 있다. 리모델링을 했지만 여인숙 대문은 50여 년 전 모습 그대로다. 우연히 레지던시에 입주한 작가를 만났다. ‘장생포 아트스테이에 글 귀신이 산다’는 말이 있는데, 비가 내리고 바람까지 불어 을씨년스러운 와중에 1층에서 인기척이 들려 내려왔단다. 작가가 글 귀신을 만나면 (귀)신들린 글을 쓸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는 저녁에 장생포 인근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의 모임이 있으니 시간이 되면 들러도 좋다고 했다.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을 오롯이 견뎌야 하는 창작자들이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것이 레지던시 입주 작가들에게는 최고의 혜택이 아닐까 싶었다. 장생포 아트스테이에서 나와 큰길 쪽으로 걸으면 창작스튜디오131이 나온다. 장생포 동사무소였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시각예술 레지던시로, 전시 공간인 ‘작은 미술관’이 시민들에게 열려 있다. 평소에는 대관하거나 기획전을 열고, 연말에는 입주 작가들이 릴레이 전시를 한다. 안타깝게도 전시 교체 시기에 방문해 텅 빈 화이트 큐브만 보고 돌아섰다. 장생포 아트스테이와 창작스튜디오131의 시민 참여 프로그램은 장생포 문화예술창작촌 인스타그램(@ng_artvillage)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장생포문화창고 개관 5주년 특별전 <퀸즈 컬렉션: 브리티시 로열>이 6월 28일까지 열린다. 영국 왕실의 역사적 순간과 상징적 가치를 조명하는 전시로, 80여 점의 왕실 진품 소장품과 아카이브를 선보인다. 관람은 무료, 예약은 필수.

문화를 담는 보물 창고, 장생포문화창고
벽면에 힘차게 헤엄치는 푸른 고래가 그려진 장생포문화창고는 1973년에 지은 냉동 창고였다. 2000년대부터 폐건물로 방치된 것을 수리해 2021년 복합 문화 공간으로 개관했다. 1층에는 울산 바다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청춘마당과 푸드 코트가 있고, 2층에는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이, 3~4층에는 갤러리가, 6층에는 소극장과 북카페 장생포 지관서가가 들어섰다. 현재는 6월 28일까지 열리는 장생포문화창고 개관 5주년 특별전 <퀸즈 컬렉션: 브리티시 로열>을 관람하려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 왕실 유산을 선보이는 전시로, 에드워드 7세의 왕홀(scepter)을 비롯해 영국 왕실 헌정 100캐럿 다이아몬드 티아라와 다이애나 왕세자비 헌정 75캐럿 다이아몬드 목걸이,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세기의 결혼식’ 웨딩 베일과 1992년 방한 당시 착용한 버건디 로즈 드레스 등 영국 왕실의 문화 컬렉션 유산 8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빅토리아 여왕부터 에드워드 7세, 조지 6세, 엘리자베스 2세, 윈저공 부부, 다이애나 왕세자비까지 영국 왕실의 주요 인물들을 살펴보면 200년 왕실 역사가 한눈에 읽힌다.
6층의 장생포 지관서가는 인문학 재단법인 플라톤아카데미가 기획한 북카페형 도서관이다. 지관서가(止觀書架)란 ‘멈추어 바라보는 책장’이라는 뜻인데, 바쁜 일상을 멈추고 잠시 인문학적 사유를 즐길 것을 권한다. 창밖으로 울산 산단과 어우러진 동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장생포 지관서가의 테마는 ‘일’이다. 산업화를 이끈 울산의 정체성을 살려 노동 관련 책을 엄선했다. ‘울산 도서’라는 스티커가 붙은 책을 한 권 들고 상큼한 음료와 달콤한 케이크를 주문해 창가 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의 거대한 저유탱크들이 보인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밤이면 거대한 스크린으로 변하는 곳이다.
해 질 무렵 장생포문화창고 옥상에 올랐다. 바닷길을 따라 석유화학 공단과 정유 시설이 끝없이 이어진다. 낮에는 다소 위압적으로 느껴지던 시설이 어둠 속에서 수만 개의 빛으로 반짝이자 예술 작품처럼 다가온다. 여기에 ‘장생포 라이트’가 더해지면 울산만의 특별한 야경이 완성된다. 장생포 라이트는 SK 저유탱크를 활용한 미디어 파사드다. 오후 8시가 되자 가로 150미터, 세로 19미터의 저유탱크
4기의 외벽이 스크린으로 변하고, 그 위로 ‘고래의 도시’가 상영된다. 울산공업센터의 기억을 간직한 장생포문화창고에서 한국 에너지 산업의 출발점인 SK 저유탱크에 펼쳐진 고래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스크린에서 고래가 춤을 춘다. 쿵작작 쿵작작, 아침부터 밤까지 울산 명소를 날아다니며 자유롭게 춤을 춘다. 쿵작작 쿵작작, 심장 소리도 왈츠에 맞춰 춤을 춘다.

보여 줄게, 완전히 달라지는 장생포

포경 역사와 고래의 추억을 간직한 장생포가 2026년 상반기, 익스트림 체험 시설과 야간 미디어, 체류형 관광이 어우러진 미래형 관광지로 새롭게 태어난다.

고래문화마을 일대를 최고 시속 4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롤러코스터형 체험 시설 ‘웨일즈 카트’.
웨일즈 판타지움과 고래광장을 잇는 조망 명소 ‘고래등길’.

고래문화마을에 장생포고래박물관을 연결하는 모노레일 외에 새로운 트랙이 설치됐다. 5월부터 운영 예정인 ‘웨일즈 카트’다. 웨일즈 카트는 독일에서 제작해 국내 최초로 도입한 전용 레일 활용 순환 동력식 체험 시설이다. 총길이 1.1킬로미터의 전용 트랙을 따라 장생이 캐릭터 등 다양한 디자인의 카트를 타고 최고 시속 40킬로미터로 수국정원 일대를 주행한다. 고래문화마을의 지형과 경사도를 면밀히 분석해 최적의 스릴을 구현했다. 하늘에서 장생포의 사계를 감상하는 새로운 랜드마크 ‘고래등길’도 공개를 앞두고 있다. 지상 20미터 높이에 설치하는 길이 150미터의 공중 보행교로, 웨일즈 판타지움의 공중그네 ‘웨일즈 스윙’과 웨일즈 카트 승강장이 있는 고래광장을 잇는다. 입구에는 장생포의 새로운 상징인 수국을 형상화한 대형 조형물을 설치할 예정이다. 고래등길 위에 서면 장생포 앞바다와 고래문화마을 전경이 한눈에 담길 것이다. 고래문화마을 서쪽 진입로에 있는 옛 해군 숙소는 12개 객실을 갖춘 숙박 시설 ‘고래잠’으로 재탄생한다. 수목이 울창한 공원 한가운데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감성 숙소로, 장생포를 ‘잠시 들렀다 가는 곳’에서 ‘머무르며 추억을 쌓는 곳’으로 바꿔 놓을 것이다.
장생포고래박물관 옆에는 국내 최초로 이동형 해양 미디어 파사드를 포함한 복합 공간 ‘더 웨이브(The Wave)’ 공사가 한창이다. 일본 삼나무를 활용한 2층 목조건물로, 장생포 모노레일 탑승객은 높이 6미터, 길이 31미터의 대형 미디어 터널을 지나며 다채로운 시각적 콘텐츠를 감상하게 된다.
1층에는 고래바다여행선 매표소가 들어서고, 2층 전망대 상부에는 유영하는 고래를 상징하는 목조 조형물이 설치될 예정이다. 옥상에서는 마치 배 위에 올라 장생포 바다를 바라보는 듯한 특별한 경험이 기다리고 있다.
‘환상의 섬’ 죽도도 관광지로 탈바꿈한다. 울산해양경찰서 울산항파출소 뒤편에 위치한 죽도는 1995년에 매립되면서 섬에서 육지로 바뀌었다. 섬에 남아 있는 3층 건물은 1981년에 지은 옛 해상교통관제센터로, 2013년까지 사용되다가 신청사로 이전했다. 이후 방치됐던 이곳이 전시 공간과 카페, 전망대 등을 갖춘 복합 문화 공간 ‘환상의 섬 죽도 갤러리’로 재탄생한다. 인근에 고층 건물이 없어 울산 앞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일 것이다.

걸어서 장생포 속으로, 장생포 스탬프 투어

울산 남구는 장생포 관광 명소를 돌아보는 장생포 스탬프 투어를 운영한다. 스탬프 투어 북에는 인증 장소별 특징을 반영한 미션형·퀴즈형 콘텐츠가 포함돼 단순히 ‘찍고 지나가는 관광’이 아닌, 각 공간의 의미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스탬프 투어에 참여하려면 먼저 장생포 관광 안내소 등 여섯 곳에서 스탬프 투어 북을 수령(책자형과 지도형 중 선택)해야 한다. 스탬프 인증 장소는 세 권역으로 나뉜다. A권역은 장생포웰리키즈랜드·더 웨이브·장생포고래박물관·고래생태체험관·울산함, B권역은 장생포옛마을·웨일즈 판타지움·웨일즈 스윙·웨일즈 카트, C권역은 환상의 섬 죽도 갤러리·창작스튜디오131·장생포문화창고가 포함된다. 권역별로 최소 두 곳 이상 총 여덟 곳 이상을 방문해 스탬프를 찍으면 투어 완주로 인정한다. 스탬프 투어 완주자는 장생포 관광 안내소에서 기념품을 수령한다. 장생이 인형 키링, 메탈 마그넷, 종이 방향제 등 관광 기념품 3종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며, 선착순으로 월 100명에게 제공한다.

장생포 관광 안내소(기념품 수령 장소)

  • 위치 장생포고래박물관 맞은편
  • 운영 시간 09:00~18:00(월요일 휴무)
  • 문의 052-226-1958

장생포 스탬프 투어

  • 운영 기간 2026년 4~12월
  • 참여 대상 희망자 누구나
  • 문의 052-226-5372(남구청 관광과)

울산 토박이가 추천하는 장생포 여행

고래잡이 마을에서 고래 문화 마을로 바뀐 장생포. 울산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서동욱 울산 남구청장이 장생포의 숨은 매력을 소개한다.

울산 남구 축제의 중심으로 장생포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장생포의 사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축제를 소개해 주세요. 2008년 국내 유일의 고래문화특구로 지정된 장생포에서는 사계절 내내 다채로운 축제를 선보입니다. 3월에는 고래바다여행선이 출항식을 갖고 장생포에 봄이 왔음을 알립니다. 장생포고래박물관 앞 광장에서는 토요일 밤마다 ‘장생포 토요불꽃’이 열려 여행의 설렘과 기대감을 고조시키죠. 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는 ‘장생포 수국 페스티벌’이 여행객을 맞이합니다. 장생포 고래문화마을 일원에서 열리는 이 축제는 지난해 40만 명이 다녀가며 전국 최고의 수국 축제로 도약했습니다. 8월에는 한여름 무더위를 날려 줄 ‘장생포 호러페스티벌’이, 가을이 시작되는 10월에는 ‘울산고래축제’가 기다립니다. 한편 올해 30회를 맞는 울산고래축제에는 관광객 참여형 콘텐츠를 대폭 강화할 예정입니다. 겨울에는 고래문화특구 곳곳에 포근한 인공 눈을 뿌려 낭만적인 겨울 풍경을 연출합니다. 울산 남구는 앞으로도 구민과 함께 지속 가능한 축제와 행사로 제2의 관광 전성기를 열어 갈 것입니다.

‘주말엔 장생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장생포 토요불꽃의 인기가 높습니다. 축제 기간이 아닌데도 매주 불꽃을 쏘아 올리는 곳은 국내에서 장생포가 유일하죠. 관람하기 좋은 장소를 추천해 주세요. 장생포 토요불꽃은 산업의 빛과 불꽃, 바다가 어우러져 여행자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관람하기 가장 좋은 장소는 장생포고래박물관 앞 광장입니다. 음악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터지는 불꽃을 온전히 즐길 수 있습니다.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면 고래바다여행선 야간 연안 투어 크루즈에 탑승해 보세요. 장생포 연안의 야경을 여유롭게 감상한 뒤 바다 위에서 바라보는 불꽃 쇼는 색다른 감동을 전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장생포 워터프런트의 ‘킹웰리 분수대’를 추천합니다.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형형색색 조명과 물줄기, 불꽃과 장생포 야경이 어우러져 특별한 추억을 선사할 것입니다.

지속 가능한 관광지로 장생포를 설계하기 위해 고민하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장생포는 포경의 역사라는 ‘과거’와 문화 예술이라는 ‘현재’가 공존하는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울산 남구는 장생포가 가진 ‘낡음’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시간의 층위를 문화와 예술로 덧입혀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장생포의 고유함을 어떻게 동시대적 매력으로 유지할 것인가’를 늘 고민합니다. 단순히 과거에 머물지 않고 예술가들의 창의성을 빌려 장생포의 풍경을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이를 통해 방문객들이 장생포와 정서적 유대감을 쌓게 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관광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 예술은 물리적 쇠퇴를 겪는 장생포를 계속해서 살아 숨 쉬게 만드는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포경 산업이 활발하던 시기, 뱃사람들이 출항하기 전에 묵던 신진여인숙을 재단장한 ‘장생포 아트스테이’, 옛 장생포 동사무소를 리모델링한 시각예술 레지던시 ‘창작스튜디오131’, 장생포 주민과 울산 시민을 위한 장생포 문화 지원 센터로 개관한 ‘새미골 문화마당’, 냉동 창고를 리모델링한 ‘장생포문화창고’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들 공간에서 시민과 방문객이 문화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다채로운 공연과 전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울산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낸 ‘울산 토박이’인 구청장님이 특히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울산 남구에는 구석구석 아름다운 풍경이 가득합니다. 그중 해 질 녘 황금빛으로 물드는 장생포의 저녁노을을 가장 좋아합니다. 장생포문화창고 6층의 북카페 지관서가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항구와 울산 공단, 바다가 어우러져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울산의 역사와 정체성이 담긴 곳이 장생포이기에 의미가 더욱 특별합니다.

장생포에 새로운 시설이 속속 들어서고 있습니다. 울산 남구가 그리는 장생포의 미래가 궁금합니다. 울산 남구가 추진하는 ‘남부권 광역관광 개발 1단계’와 연계한 사업이 완료되는 2026년 상반기, 장생포는 더욱 매력적인 관광지가 될 겁니다. 고래문화마을 일대를 최고 시속 4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롤러코스터형 체험 시설 ‘웨일즈 카트’가 울산 최초 공중그네 ‘웨일즈 스윙’과 더불어 장생포를 ‘익스트림 여행지’로 각인시키고, 웨일즈 판타지움과 고래광장을 잇는 조망 명소 ‘고래등길’과 옛 해군 관사를 활용한 감성 숙소 ‘고래잠’이 장생포를 머무르고 싶은 여행지로 바꿔 놓을 것입니다. 장생포고래박물관 앞에는 국내 최초로 이동형 해양 미디어 파사드를 포함한 복합 공간 ‘더 웨이브’가 문을 열고, 환상의 섬 죽도를 활용한 복합 문화 공간도 운영을 시작할 것입니다. 2027년에는 더 많은 변화가 찾아옵니다. 장생포옛마을은 보다 다양한 K-콘텐츠로 채워지고, 고래문화마을 고래광장에는 ‘장생 조이플렉스’가 세워져 소통과 만남의 공간이 될 것이며, 옛 해경 초소는 어린이 숙박 시설 및 장생이 캐릭터관으로 바뀔 예정입니다. 장생포 고래문화특구는 제조업 중심의 울산 경제구조에 ‘문화 관광’이라는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새로운 매력이 더해질 울산 남구의 내일에 관심을 갖고 함께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