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수단이자 계급이 된 시대. 이주와 유랑은 ‘홈’의 의미마저 다시 쓰게 만들었다. 지난 30여 년간 끝없는 탐구와 사유로 세워진 서도호의 세계는 묻는다. 당신의 집은 어디인가, 완벽한 집은 존재하는가.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현대미술의 거장 서도호의 세계가 펼쳐지는 <서도호>전을 보기 위해 모여든 다국적 관람객들이 온종일 길게 줄을 잇는다. 이번 전시는 지난 30여 년간 구축한 서도호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대규모 개인전이다. 그동안 공개된 적 없는 어린 날의 스케치부터 대학 시절의 초기작, ‘천으로 만든 집’으로 대표되는 주요작,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까지 드로잉, 조각, 설치, 영상을 아우르는 500여 점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움직이는 집
지금 현대미술계에서 서도호가 차지한 위치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이번 전시의 타이틀이 다름 아닌 ‘서도호(Do Ho Suh)’인 것이 증명하듯 그는 이름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작가다. 동시대 미술의 주요 작가로 가장 빈번하게 호명되는 예술가이자 전 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앞다퉈 소개하는 거장으로, 오늘날 현대미술의 한복판을 점령하고 있다. 해외에서 진행 중인 전시 소식을 듣고 런던으로, 워싱턴DC로, 베네치아로 날아갔던 미술 애호가들에게 이번 전시는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다. 티켓 예매에 실패한 관람객들이 현장 발권 표를 구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기꺼이 줄을 서는 이유다.
전시는 외부 복도에 마련한 ‘시드 뱅크(Seed Bank)’에서 시작된다. 유치원 시절 그린 로봇과 캠핑 준비 그림부터 마당에서 주운 나뭇조각으로 만든 ‘죠스’(우리가 아는 그 죠스 맞다), 오랜 벗인 고 유재하를 위해 그려 준 앨범 커버 등 내밀한 흔적들이 영화처럼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전시를 처음 공개하던 날 미디어 앞에 선 작가가 “어린 시절 작업을 공개하는 건 마치 옷을 홀딱 벗은 것 같은 기분”이라고 고백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주의 거장의 낡은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작가는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서울대 동양화과 학부와 대학원을 거쳐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RISD) 회화과와 예일대 대학원 조소과에서 수학했다. 잘 알려진 대로 한국 현대 수묵 추상의 선구자인 고 서세옥 화백이 그의 아버지다. 미술은 물론 문학과 철학, 건축, 조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정통했던 아버지의 학자적 면모는 그에게 일종의 예술적 세례와도 같았을 것이다. 아버지처럼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20대 후반, 뉴욕행을 택했다. 누군가의 아들로 살아가는 무게와 보이지 않는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홀로 서기 위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집을 나선 서도호는 30여 년간 빈틈없는 궤적을 그리며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서도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스스로 떠난 ‘집’을 이야기해야 한다. 접어서 가방에 넣고 어디든 가지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유동적이고, 장소에 따라 변형 가능하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 주는 집. 서도호의 집 기저에는 그가 열 살 때부터 살았던 성북동 한옥이 자리한다. 전국 곳곳에 서양식 아파트가 들어서던 1970년대, 서세옥 화백은 헐려 나가는 한옥의 자재를 사 모아 창덕궁 연경당 사랑채를 모델로 집을 지었다. 어린 서도호는 궁궐을 짓던 대목장 배희한이 도포를 입고 집 짓는 과정을 생생히 지켜보았고,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그곳에 살았다. 지금도 한국에 오면 그 집에 머문다. 이 집이 서도호 세계의 근간이 된 것은 필연이다. 작가는 집을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시간과 관계, 개인의 기억이 켜켜이 쌓이는 공간으로 바라보며 개인과 공동체, 집과 이동, 관계와 기억에 대한 탐구와 사유를 현재까지 이어 오고 있다.

서도호라는 미학
많은 관람객이 그 유명한 ‘천으로 지은 집’을 기대했겠지만, 첫 번째 전시실은 200여 점에 달하는 드로잉의 방이다. 서도호 특유의 유연하고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선 드로잉부터 다양한 실 드로잉, 탁본 드로잉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오랫동안 구축해 온 상상과 조형의 세계를 온전히 들여다볼 기회다. 그중에서도 압도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실 드로잉’ 연작 앞에서 관람객들은 눈을 떼지 못한다. 젤라틴 티슈와 수제 종이를 이용해 부조와 같은 깊이감을 만들어 내 평면 드로잉에 살아 숨 쉬는 듯한 물성과 입체감을 불어넣었다. 수만 겹 색색의 실이 회오리처럼 인물의 뒤를 쫓는 ‘쫓아오는 집’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실 끝에 매달린 것은 집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이자 기억, 어쩌면 벗어날 수 없는 카르마(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
두 번째 전시실에 들어서면 2012년부터 이어 온 대표 연작 ‘러빙/러빙: 서울 집(Rubbing/Loving: Seoul Home)’과 마주한다. 서도호가 ‘아버지와 나의 자화상’이라 말하는 이 작품은 성북동 한옥의 벽과 바닥, 문틀, 창에 닥종이를 밀착시킨 뒤 흑연과 색연필로 오랜 시간 문질러 완성한 탁본 작품이다. “문지르는 행위(rubbing) 자체가 깊이 사랑하는(loving) 행위처럼 느껴져 두 단어를 연결했다”는 작가의 말은 작업 과정을 담은 비디오를 들여다보는 순간 납득된다. 그야말로 집념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열정과 끈기로, 마치 수행하듯 기억과 시간의 결을 더듬어 가는 작업을 지켜보는 동안 관객은 작가의 예술적 행위와 온전히 밀착되는 뭉클한 전율을 경험한다.
이어서 세 번째 공간으로 들어서면 가장 최근의 천 작업인 ‘완벽한 집: 런던, 호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이 오감을 압도한다. 그동안 작가가 살아온 여섯 도시, 30여 개 방에서 본뜬 전등 스위치와 콘센트, 문손잡이, 자물쇠, 보일러 조절기, 조명, 수도꼭지, 벽걸이 전화기가 한 공간에 다채롭게 펼쳐진다. 작가가 통과해 온 시공간이 응축된 그 투명한 공간을 다양한 세대와 국적의 관람객들이 거닐며 만들어 내는 이 풍경을 작가는 처음부터 의도했을까. 눈부시도록 흰 공간에서 세상의 모든 색을 끌어모은 듯한 사물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 집이 이토록 황홀한 공간이었던가.
서도호의 작업은 아름답다. 새로울 뿐 아니라 매혹적인 방식으로 메시지를 시각화하는 그의 솜씨에 전 세계 관람객은 속절없이 매료되고 만다. 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험 정신, 탁월한 미감과 위트가 깃든 작품은 현대미술을 어렵고 멀리 있는 것이라고 여겼던 이들의 의심과 경계를 단숨에 허물어뜨린다. 작가가 거주했던 여러 도시의 집 복도와 문, 방 같은 전이 공간을 연결한 ‘둥지/들’ 속을 직접 거닐고, 옥색 은조사로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부유하듯 흔들리는 한옥(‘서울 집/서울 집/가나자와 집/베이징 집/포항 집/광주 집/필라델피아 집’)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당혹스러울 정도로 강렬한 시각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오래 기다려 준 고국의 관객을 위한 선물일까. 전시 말미에 작가의 초기 작업들을 다시금 만나는 건 행운이다. 성별과 인종이 다른 수많은 인형이 받치고 있는 투명 유리판 위(‘바닥’)를 걸으며 매 순간 고군분투하면서도 서로를 지탱하는 인간의 연대에 숙연해지다가도, 손톱보다 작게 인쇄된 졸업 앨범 속 얼굴들을 가만히 응시하노라면(‘Who Am We?’) 억겁의 시간이 만들어 낸 인연으로 연결되어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타인의 존재를 곱씹게 된다. 개인과 사회, 인간의 관계와 삶이라는 어마어마한 화두를 거대한 스케일로 풀어내되 명료하고 감각적인 언어로 전달하는 거장의 솜씨는 이미 20여 년 전에 무르익었던 것이다.



여기, 따뜻한 세계
전시 마지막에는 ‘작가 서도호’ 너머 ‘사람 서도호’의 면모가 엿보이는 특별한 공간이 자리한다.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두 딸을 향한 사랑, 진한 가족애가 느껴지는 공간이다. ‘사랑의 기억(래코드 협업)’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하는 작품이다. 어머니가 사 주신 재킷 안쪽에 가족의 옷에서 떼어 낸 주머니를 달고, 그 안에 소중한 기억이 담긴 사물을 넣어 완성한 작업이다.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 온 관계와 이동, 기억의 화두가 가족의 온기가 깃든 옷 한 벌에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다. 아이들이 자라며 더 이상 입지 않는 옷들을 겹쳐 둔 ‘부성(Fatherhood)’ 연작에는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한 애틋함과 소중함이 차곡차곡 담겨 있다. 서세옥 화백의 수묵 추상 속에 사람들이 우뚝 서 있는 것처럼, 서도호의 후기 예술 세계에 가족이 들어와 자리 잡은 것에서 어떤 안도감이 느껴졌다. 예술가의 아들로 태어나 단독자로 존재하기 위해 세상의 수많은 공간을 통과해 온 작가의 여정, 치열하고 때로는 쓸쓸했을 그 길에 마침내 가족이 함께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기쁨이랄까. BTS와 블랙핑크를 좋아하는 딸을 유아차에 태우고 이동하며 다정한 대화를 이어 가는 영상을 보며 많은 관람객이 웃음 짓는 이유다.
작가는 “부제가 없는 이번 전시에 부제를 붙인다면 ‘회향(回向)’이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회향은 자신이 닦은 선한 마음과 공덕을 모든 생명에게 나눈다는 불교 용어다. “관객들이 제 작품을 보고 자신의 인생을 생각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서도호의 집을 보는데 왜 내 집이 생각나지? 왜 내 인생이 생각나지?’ 하고요. 작품의 긍정적 부분을 많은 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친구와 연인, 가족들은 작품을 보는 내내 이야기를 나눈다. 옛집의 냄새를 떠올리고, 유년의 기억을 끄집어내며, 성장과 이별 그리고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이들을 추억한다. 사적인 공간에서 공통의 기억을 떠올리고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미래의 풍경을 만들어 내며, 마침내 ‘나’인 동시에 ‘우리’인 존재를 자각하게 만드는, 서도호의 따뜻한 세계다.



관계라는 자아, 자화상
서도호는 작품 앞에서 홀로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작품 앞에 선 관람객은 작가 한 사람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하나의 아이디어가 온전히 실현되기까지 전 과정에는 수많은 이들의 참여와 헌신이 깃들기 때문이다. 그는 2009년 작 ‘인과(Cause & Effect)’ 제작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담은 책 <인연>을 펴내기도 했다. 이번 전시 도록에도 ‘감사한 인연/들’이라는 페이지를 마련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오랜 시간 소중한 인연을 맺어 온 개인, 기업, 기관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라는 인사로 시작되는 이 지면에는 엔지니어, 제작자, 큐레이터, 기술자, 건축가, 연구자, 설치 작업자의 이름이 빼곡히 담겨 있다. 그가 스스로 ‘자화상’이라 이름 붙인 작품들을 홀로 선 개인이 아니라 무수한 타인과 맺어 온 관계의 풍경으로 다시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