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술의 문턱은 높다. 접하기도 어렵거니와 작품의 가치를 이해하려면 공부도 필요하다. 그러나 최고인 것은 보는 순간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충격을 주기도 한다. 겸재 정선의 세계가 바로 그렇다.

미술 애호가들에게 ‘간송’은 존경과 동경의 이름이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일제강점기부터 8·15광복과 한국전쟁에 이르는 격동기에 우리 얼의 정수를 지키기 위해 사재를 털어 서화, 도자기, 고서 등 국보급 문화유산을 모았다. 단순히 아름답고 귀한 데 그치지 않고, 중국이나 일본과 뚜렷이 구별되는 한국 고유의 미감을 지닌 문화유산을 수집했기에 그 가치가 더욱 높았다. 고미술 관리의 특성상 1년에 단 몇 주만 열리던 서울간송미술관의 전시를 보기 위해 국내외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성북동 골목에 끝없이 줄을 서곤 했다.
2024년 대구간송미술관이 문을 연 뒤 대구가 단숨에 아트 투어의 목적지로 떠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롯이 이 미술관에 가기 위해 처음 대구를 방문했다는 사람도 있고, 남쪽으로 여행 가던 중 대구에 들렀다는 외국인도 있었다. 최고의 국보 <훈민정음해례본>과 고려청자의 정수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직접 보기 위해 기꺼이 KTX에 몸을 실은 것이다. 개관전 <여세동보(與世同寶)-세상 함께 보배 삼아>가 열린 석 달 동안 무려 22만 4000여 명이 대구간송미술관을 다녀갔으니 대단한 관심이었다.
그리고 올가을, 다시 기차에 오를 이유가 생겼다. 지금 대구간송미술관에서 <겸재 정선–조선의 눈으로 조선을 그리다>전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정선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정선 연구의 중심인 간송미술문화재단이 겸재 정선 탄신 35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특별전이다. 서울간송미술관이 1971년 개최한 첫 전시의 주인공 역시 겸재 정선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저희뿐 아니라 삼성문화재단, 국립중앙박물관, 개인 소장가들이 힘을 모아 총 216점을 소개했습니다.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로, 단언컨대 겸재 정선의 예술 세계를 집대성하고 완결하는 전시라 할 수 있습니다.” 전시를 기획한 허용 학예총괄의 말 그대로, 어쩌면 평생 단 한 번 보게 될지도 모를 ‘국보와 보물의 향연’이다.


거장 겸재를 넘어, 인간 정선으로
정선은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열세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렵게 생활했지만 당대의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 가문과의 인연으로 양반 교육을 받으며 체면을 이어 갈 수 있었다. 그림을 잡기로 여기던 시절이었지만 소년 가장 정선은 과거 대신 그림을 택했고,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옳았다. 좋은 그림을 꺼내 놓고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감상하던 조선 선비들의 풍류, 그 중심에 정선의 그림이 있었다. “그림 주문이 삼대밭처럼 많았고, 겸재가 쓴 붓이 무덤을 이룰 정도”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니,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고 해야 할까. 사정은 국경 너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청나라로 가던 사신들도 정선의 그림 한 점을 얻기 위해 줄을 섰다 하니, 18세기에 이미 ‘원조 한류’를 일으킨 셈이다.
전시장으로 들어선 관람객을 맞이하는 건 보물 <경교명승첩>이다. 18세기 한양 일대의 모습과 자주 그리지 않았던 자화상, 평생의 벗 사천 이병연과의 우정 등이 담긴 화첩으로 전체를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장 먼저 만나는 ‘독서여가-글 읽다 남은 겨를’에는 툇마루에 앉아 유유자적하는 정선의 모습이 담겨 있다. 뒤편에는 온갖 서책이 가득하지만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신발 한 켤레에서 정선 특유의 자유로움과 유머가 묻어난다.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란 세 살 위의 벗, 사천 이병연과의 끈끈한 인연이 담긴 그림들도 정겹다. 정선이 양천 현령으로 부임하며 멀리 떨어지게 되자, 두 사람은 시와 그림을 서로 바꾸어 보기로 한다. 정선이 그림을 그려 보내면 이병연이 시를 지어 화답하는 식이었다. ‘촉재제시 – 촉재에서 시를 짓다’에는 제철 생선인 웅어를 시종 편에 들려 보내며 ‘얼른 시를 지어 보내라’고 재촉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녹음이 짙게 우거진 여름날의 풍경도 아름답지만, 사뭇 현대적인 구도 속에 여느 소설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녹여 낸 솜씨에 웃음이 터진다.
다음은 서울 구경이다. 카메라로 찍었다 해도 이렇게 생생할 수 있을까. 아차산과 송파, 압구정과 수성동계곡 등 비단 위에 그린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18세기 한양의 일상이 되살아난다. 얼어붙은 강가와 비 내린 산, 빽빽한 소나무 숲 사이에 내려앉은 백로, 안개 낀 강 위로 번지는 달빛까지. 정선의 원숙한 필선은 선의 굵기와 속도, 강약, 리듬만으로 깊이와 거리를 만들며 흑백 화면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어지는 작은 방에 들어서면 진경산수화의 진수를 보여 주는 ‘청풍계’를 만난다. 청풍계는 인왕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경승지이자 안동 김씨 가문의 거처가 있던 곳이다. 깊은 계곡을 따라 오르고 올라야 닿는 그 길을 어찌나 세밀하게 묘사했는지, 정선의 손을 잡고 청풍계로 걸어 들어가는 듯 생생한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도전과 탐구, 끝나지 않을
정선이 하양(지금의 경산)과 청하(지금의 포항) 지방관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그린 지역 명승도와 중국의 고사와 시를 소재로 한 고사 인물화를 지나면, 70대부터 그리기 시작한 화조영모도의 세계가 펼쳐진다. 정선은 84세까지 장수를 누리며 많은 그림을 남겼다. 노년의 그는 청나라에서 들어온 돋보기안경을 쓰고 밤마다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엄청난 수련과 범접할 수 없는 기량에서 뿜어져 나오는 ‘격’은 동물과 식물 묘사에도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먹의 농담만으로 섬세하게 표현한 매미 날개의 맥, 오이를 등에 짊어지고 가는 고슴도치의 가시 하나하나, 국화 아래 웅크린 고양이의 능청스러운 움직임까지! 단순히 세밀해서가 아니라 저마다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이 깃든 영모화를 보는 재미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사생에서 비롯한 정밀한 묘사와 상서로운 상징을 한 폭에 담아내는 솜씨에 그저 감탄할 뿐.
마지막 전시실에 이르면 드디어 금강산을 만난다. 정선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대표작이 바로 이 금강산이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금강산의 이미지는 정선으로부터 온 것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금강산은 가고 싶다고 해서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고려에 태어나 금강산을 한 번 보기를 원한다(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인들마저 죽기 전에 꼭 한번 가 보고 싶어 한 명산이었다. 흙산과 바위산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사계절 모습을 달리하는 1만 2000봉의 절경을 마주한 정선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그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어떻게 그려 내고 싶었을까. 실경을 옮기는 것보다 감상과 철학을 독창적으로 담아낸 정선이 30대부터 80대까지 그린 금강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장 많은 관람객이 모인 방에 들어가면 나란히 걸린 두 개의 금강산 그림, 국보 ‘금강전도’와 보물 ‘풍악내산총람’을 만난다. ‘금강전도’는 웅장하고 변화무쌍한 금강산을 한 화면에 담았다. 부드러운 흙산과 날카로운 바위산을 태극 형상으로 배치해 음양이 어우러진 풍경을 만들고, 세밀하면서도 웅장한 필치로 완성한 화업의 절정이다. ‘풍악내산총람’은 금강산의 가을 풍경을 담았다. 드물게 녹색과 황색을 써서 가을의 계절감을 드러낸 이 작품은 탄탄한 구성과 세밀한 묘사에 40개의 봉우리와 명소 이름을 일일이 적어 넣은 집요함까지 더해져 혀를 내두르게 한다. 생의 마지막까지 새로움과 완전함을 향해 나아간 거장의 집념에 감탄하다가도, 닿을 수 없는 땅이라는 애잔함에 이르러 이내 숙연해진다.
몇 시간을 둘러봤지만 모든 작품을 섭렵하기는 역부족이다. 아쉬움을 토로하자 허용 학예총괄은 웃으며 말했다. “그저 마음에 들어오는 작품을 오래 들여다보면 됩니다. 유명하거나 미술사적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문득 내 마음을 가져가는 작품이 있을 거예요. 그렇게 그림에 깃든 이야기를 찾아보다 보면 멀게 느꼈던 고미술이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질 겁니다.” 미술관 곳곳에 멈춰 선 관람객들이 이를 증명한다. 누군가는 달빛이 내려앉은 서울의 밤 풍경에, 누군가는 툇마루에 걸터앉은 정선의 자유로운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 문득 가 본 적 없는 금강산이 그리워질 수도 있고, 검은 고양이 그림이 떠오를 수도 있다. 내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 한 점을 만났다면, 바로 그게 겸재 정선의 세계다.

한 사람을 위한 방
대구간송미술관 1층에는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만을 위한 상설 공간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 방, 미인도실’이 자리한다. ‘미인도’는 조선 시대 인물화를 대표하는 걸작이자 여성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공개될 때마다 긴 줄을 서야 겨우 볼 수 있었던 이 그림을 이제는 언제든 만날 수 있다. 배경 없는 화면에 홀로 선 여인의 단아한 자태와 자연스러운 몸짓, 은은한 채색과 정교한 붓질이 어우러져 겉모습 너머 인물의 내면까지 섬세하게 전달한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과 은은한 낯빛까지 얼마나 정성을 다해 그렸는지 감탄을 자아낸다. 한옥에서 영감을 받아 조성한 빛의 통로를 지나면, 한지로만 마감한 작은 방에서 그림 속 여인과 눈을 맞추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