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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향기 따라청도 유람

2026년 08월 01일

  • EDITOR 김수아
  • PHOTOGRAPHER 김은주
  • 제작 지원 청도군청

낮에는 천연기념물 소나무가 반기는 운문사에서, 밤에는 연꽃이 춤추는 유등연지에서 숨을 고른다. 경북 청도에 정착한 사람들에게 현지인만 아는 숨겨진 명소도 추천받았다.

이배 작가는 인터뷰에서 고향 청도에 대해 수차례 언급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숯의 화가가 태어난 곳. 청도에 포개진 ‘예술가의 고향’이라는 수식어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뮤지엄 SAN에서 열린 이배의 개인전 에서 청도의 흙을 마주한 뒤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여행 정보를 빠르게 얻으려고 청도군청 문화 관광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계절별 추천 코스를 살펴보다가 청도 관광 9경의 하나로 꼽히는 유등연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연꽃이 만개하는 계절, 상상 속에만 머물렀던 청도를 만나러 기차에 올랐다.

Day 1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학인 스님들의 실습 공간으로 쓰는 만세루에서 만난 배명희 문화관광해설사.

보물 안의 보물, 운문사
여행의 첫 목적지는 천년 고찰 운문사. 560년(신라 진흥왕 21년) 한 신승이 창건한 이 절은 고려 시대 승려 일연이 주지를 지내며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으로 알려졌다. 전국 최대 비구니 도량인 운문사는 1958년 불교 정화 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 강원을 개설했고, 1987년 승가대학으로 개칭해 수많은 수도승을 배출했다. 학인 스님들의 실습 공간으로 쓰는 만세루에서 배명희 문화관광해설사를 만났다.
먼저 보여 줄 것이 있다는 그를 따라가니 희귀한 수형의 나무가 나타난다. 거대한 새가 날개를 편 듯한 모양의 ‘처진소나무’다. 이름처럼 가지가 밑으로 축 처진 이 소나무의 나이는 5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전국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처진소나무는 총 세 그루예요. 두 그루가 청도에 있고 나머지 하나는 울진에 있어요.” 운문사의 처진소나무는 막걸리를 마시는 소나무로도 유명하다. 매년 음력 3월 3일이 되면 스님들이 물 섞은 막걸리를 나무 가장자리에 부으며 염불을 외운다. 절의 오랜 역사를 함께해 온 나무를 아끼는 마음에서 이어져 온 연례행사다.

비로자나불상 뒤에 모신 ‘비로자나삼신불회도’는 운문사의 보물 중 하나다.
직접 농사지은 제철 재료로 반찬을 만드는 불로장수식당의 연잎밥 정식.

운문사에는 1994년에 신축한 대웅보전과 그 전까지 대웅보전 역할을 했던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이 공존한다.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과 법당 안 그림 두 점은 보물로 지정됐다. 그중 하나가 비로자나불상 뒤에 모신 ‘비로자나삼신불회도’다. 18세기에는 삼신불(비로자나불, 석가불, 노사나불)을 세 폭으로 나누어 그리는 형식이 유행했는데, 이 불화는 삼신불을 한 폭에 배치한 점이 특이하다. 괘불도에서만 나타나는 ‘보관을 쓰고 연꽃을 든 노사나불’을 묘사한 유일한 후불탱화이기도 하다. 안정된 화면 구성, 균형 잡힌 인물 표현, 적색과 녹색이 대비를 이루는 차분한 색감 등이 18세기 불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 준다. 후불벽 뒷면의 벽화도 보물이다. “한 화면에 관음보살과 달마대사를 나란히 표현한 벽화로는 유일해요. 불화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꼭 보고 가죠.” 천장에 매달린 ‘청의동자상’도 그냥 지나치긴 아쉽다. 극락으로 가는 반야용선을 놓쳐 뱃사공이 던진 밧줄을 잡고 악착같이 매달려 결국 극락정토에 도달했다. 그래서 악착보살이라고 부른다. 큰 시험을 앞둔 동생에게 선물하려고 기념품점에서 악착보살 캐릭터 볼펜을 챙겨 나왔다.
점심시간이 되어 불로장수식당으로 이동했다. 2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 온 이 식당은 직접 농사지은 제철 재료로 반찬을 만든다. 메뉴는 돌솥밥 정식과 연잎밥 정식 두 가지. 한여름 승려들이 즐겨 먹던 도시락에서 비롯됐다는 연잎밥의 유래가 떠올라 연잎밥 정식을 주문했다. 고등어·열기·가자미구이를 비롯해 정성스럽게 만든 반찬이 상을 가득 채운다. 집 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도 진하고 구수해 속이 풀린다. 새콤달콤한 가지 탕수, 쫄깃한 식감이 매력적인 표고밑동조림, 향긋하고 부드러운 삼잎국화나물무침 등 입맛을 돋우는 반찬의 향연에 어느새 밥이 싹 사라지고 연잎만 남았다. 이곳의 시그너처 반찬인 감말랭이튀김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하면서 달짝지근해 디저트를 먹는 것 같다. 진짜 후식은 대표가 직접 농사지었다며 손에 쥐여 준 복숭아다. 바로 한 입 베어 무니 싱그러운 과즙이 뿜어져 나온다. 청도의 여름이 입안 가득 퍼진다.

갤러리청담에서 유등연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오후 8시가 되면 유등연지에 새로 설치한 덱에 조명이 켜진다.

유등연지의 밤을 밝히는 꽃
유등연지에 도착할 무렵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근처에서 쉴 만한 장소를 찾다 갤러리청담을 발견했다. 입장료 5000원을 내면 현대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커피 한잔의 여유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건물 2층에는 바깥 풍경을 시원하게 감상하도록 한쪽 면을 통창으로 설계해 유등연지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유등연지의 기원은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헌 이육이 무오사화가 일어난 뒤 안동에서 청도로 내려와 ‘신라지’라 불리던 못을 넓히고 연을 심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비록 숨어 지내야 했지만, 진흙에 젖지 않는 연꽃처럼 고고한 군자의 삶을 살고 싶은 마음에 연을 심었다. 호수 위에 군자정을 지어 유학을 신봉하는 선비들과 도학을 주제로 토론하고, 문우들과 시를 읊거나 후학에게 글을 가르치기도 했다.
지금은 청도 군민과 관광객의 산책로로 사랑받는 유등연지는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연꽃이 만개해 장관을 이룬다. 아침 일찍 꽃을 피우니 이른 시간에 가는 게 좋다. 7월 초에 방문한 터라 활짝 피어난 연꽃과 샛노란 연밥을 숨긴 꽃봉오리가 동시에 보인다. 커다란 연잎이 바람에 너풀너풀 춤을 추다 표면에 고인 물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군자정에서 출발해 유등연지 둘레길을 한 바퀴 돌면 25분 정도 걸리는데, 여기에 또 하나의 산책로가 생겼다. 지난 7월에 유등연지를 가로지르는 덱을 설치한 것이다. 오후 8시가 되면 연꽃을 형상화한 덱 전체에 조명이 켜져 낭만적인 산책로로 변모한다. 바닥에 장착한 별자리 조명을 따라 걸었다.

톡톡(Talk, Talk)한 관광 택시
청도군은 주요 관광지를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예약형 교통 서비스를 운영한다. 관광객이 사전 예약하고 택시를 이용하면 요금의 50퍼센트를 군에서 지원한다. 지정 코스와 자율 코스로 나뉘는데, 자율 코스 선택 시 관광지를 최소 1개소 이상 방문하고 2시간 이상 이용해야 한다. 택시 한 대당 최대 네 명까지 탑승 가능하며, 출발지 및 도착지가 청도역이 아닐 경우 추가 요금이 발생한다. 단, 관광지 입장료와 체험료, 숙박비, 중식비는 별도다. 청도군 통합예약시스템 홈페이지에서 신청받고 전화로도 예약 및 상담이 가능하다.
예약 및 문의 054-370-2379

Day 2

객실마다 콘셉트가 다른 스테이 온 페이지의 ‘페이지 26’은 문학동네 시인선으로 채웠다.
스테이 온 페이지 숙박객에게 제공하는 조식.

책과 함께 머무는 하룻밤, 스테이 온 페이지
둘째 날 아침,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일행이 묵은 곳은 청도읍성 인근의 복합 문화 공간, 스테이 온 페이지다. 게스트 하우스인 오마이게스트, 객실마다 다른 콘셉트로 꾸민 스테이 온 페이지, 서점 겸 카페인 오마이북, 조식과 석식을 제공하는 오마이쿡, 별관인 오마이아지트 등으로 구성됐다. 오마이아지트는 낮에는 중고 서점으로, 밤에는 숙박객을 대상으로 한 심야 책방으로 운영한다. 전날 밤 책방지기의 추천 도서와 칵테일을 함께 즐기는 심야 책방 서비스를 이용했더니 피로감이 몰려온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 멈추지 못하는 소설책처럼, 김인식 오마이북 대표와 주고받은 이야기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따뜻한 커피 한잔이 절실해 오마이쿡으로 향했다. 갓 구운 빵에 샐러드와 수프를 곁들이는 브런치는 언제나 반가운 조식 메뉴다. ‘멋진 하루’라는 메뉴명에서 숙박객을 향한 애정이 느껴진다. 여기에 제철 과일인 복숭아와 수제 사워크림을 올린 달콤한 프렌치토스트까지 맛보니 피로가 사르르 녹는다. 외출 전 오마이북에도 들렀다. 책방지기의 애착 도서인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가 저자의 다른 소설과 나란히 꽂혔고, 허수경 시인의 유고 시집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도 신간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손님들의 추천사가 적힌 블라인드 북을 찬찬히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멘토그린 예약 시간이 다가왔다.

멘토그린의 대표 체험 프로그램은 성격 유형 검사와 관계 멘토링이다.
멘토그린의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인 압화 액자 만들기.

스스로를 돌아보는 치유 농장, 멘토그린
스테이 온 페이지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멘토그린은 원예·심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치유 농장이다. 치유농업사인 백미진 대표와 그의 남편 김병국 심리상담가가 농장을 꾸린다. 5년 전 대구에서 청도로 내려온 부부는 농협청년농부사관학교를 함께 수강한 뒤 멘토그린 오픈을 준비했다. 이곳의 대표 체험 프로그램은 성격 유형 검사와 관계 멘토링이다. 멘토형 성격 분석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성격과 성향을 알아 가는 건 물론, 상대방과의 공통점과 차이점도 파악할 수 있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좋은 관계로 나아갈 방안을 제안해 ‘관계 멘토링’이라고 부른다.
같이 방문한 동료와 성격은 반대, 성향은 같다는 결과가 나왔다. 신중하고 조심성이 많은 게 공통점이라면, 불안을 해소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말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작물을 추천해 준다는 점도 흥미롭다.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사람에게는 청도 특산물인 미나리를 추천해요. 빠르게 성과를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면 수확까지 3년 이상 걸리는 과수 재배는 피하라고 권하죠.”
멘토그린에서는 하바리움, 토피어리, 압화 액자 등 다양한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중 압화 액자를 고르니 투명 아크릴 판과 핀셋, 목공 풀, 말린 꽃이 담긴 통을 내준다. 히비스커스 차를 홀짝이며 화면 구성을 고심해 본다. 꽃잎 배치에 여념이 없는 와중에 농장을 돌아다니는 작은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한 생명의 자유로운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위로를 받기도 한다. 원하는 꽃잎을 붙인 투명 아크릴 판을 액자에 끼운 뒤, 고양이와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다누’ 두 글자를 압화 액자 한쪽에 적었다. 멘토그린은 디지털 관광주민증 사용처 중 한 곳이다. 디지털 관광주민증을 발급받으면 청도의 명예 주민 자격으로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곳에서는 체험비를 할인해 준다.

꽃자리의 인기 메뉴인 감말랭이팥빙수와 아이스홍시셔벗.
김경진 브레이크타임 대표와 전기 자전거를 타고 도착한 청도읍성.

브레이크 타임에 수집한 골목 풍경
이젠 전기 자전거로 청도 곳곳을 누빌 차례다. 자전거 여행에 동행할 김경진 브레이크타임 대표를 청도천 강변에서 만났다. 8년 전 청도로 귀촌한 그는 일식당 ‘올밥’을 운영하며 브레이크 타임마다 스쿠터를 타고 지역 일대를 돌아다녔다. 마을의 소박하고 정겨운 풍경을 담은 영상을 인스타그램(@cheongdo.daddy)에 올렸고, 주민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차곡차곡 수집해 골목을 여행하는 자전거 체험 코스를 구상했다. 송수신이 가능한 헬멧을 착용하자 목적지를 안내하는 김 대표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페달을 힘차게 밟아 오래된 빨래터에 도착했다. “100년 이상 된 빨래터인데 여전히 빨래하러 오는 분들이 계세요. 여기서 걸레를 빨거나 농기구를 세척하기도 하죠. 모여서 수다도 떨고요. 빨래터 영상을 올렸더니, 어릴 적에 여기서 수영했다는 댓글도 달렸어요.”
전기 자전거는 속도 조절이 가능하니 오르막길도 거뜬히 넘어간다. 소라보체육공원, 과수원과 우물길, 청도읍성, 석빙고 등을 차례로 거치며 상쾌한 공기를 한가득 마셨다. 다시 출발지로 돌아오는 길, 청도 탐험가에게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물었다. “가을이요. 시골의 황금 들판은 말할 것도 없고요. 무엇보다 감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이 좋더라고요. 마을 전체가 감으로 채워진 풍경이 이국적으로 느껴져요.” 타지인의 눈으로, 때로는 현지인의 눈으로 청도를 바라보는 김 대표와 함께라면 이곳의 진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브레이크타임은 자연의 소리를 듣는 사운드 워킹, 지역 주민과의 만남, 농가 일일 체험 등을 결합해 다양한 코스를 계획 중이다.
자전거를 반납한 뒤 청도읍성 근처 한옥 카페를 찾았다. ‘꽃자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무려 6600제곱미터 규모의 정원을 갖춘 곳이다. 한국적 전통미가 느껴지는 좌식 방에 자리를 잡고, 감말랭이팥빙수와 아이스홍시셔벗을 주문했다. 놋그릇에 담긴 팥빙수에는 감말랭이와 찹쌀떡을 올리고 생화로 장식했다. 달콤한 팥소와 부드러운 우유 얼음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아이스홍시셔벗은 견과류를 가득 얹어 맛이 담백하고 고소하다. 감으로 만든 디저트를 먹다 보니 청도 전역이 주홍빛 감으로 물든 풍경이 연상된다. 10월에는 청도반시축제와 청도세계코미디아트페스티벌이 열린다. 거리마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계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여름을 건너 가을로 향하고 있다.

청도에서 에디터가 다녀온 곳
운문사
주소 경북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길 264
문의 054-372-8800

불로장수식당
주소 경북 청도군 각북면 헐티로 1242
문의 054-371-6461

유등연지
주소 경북 청도군 화양읍 연지로 207
문의 054-370-6057

갤러리청담
주소 경북 청도군 화양읍 연지안길 36
문의 054-371-2111

스테이 온 페이지
주소
경북 청도군 화양읍 동천3길 67-5
문의 054-371-3030(오마이북)

멘토그린
주소 경북 청도군 화양읍 학산토평길 90-117
문의 0507-1403-9120

꽃자리
주소 경북 청도군 화양읍 도주관로 177
문의 054-372-1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