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yle

누구나 하루 세 번 지구를 구할 수 있다

2026년 08월 01일

  • EDITOR 이미선
  • PHOTOGRAPHER 황필주

매일 마주하는 밥상으로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아워플래닛은 기후 위기, 황폐해지는 바다, 플라스틱 쓰레기, 버려지는 식재료, 빈곤과 불균형, 동물 복지 등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문제를 음식으로 풀어 간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장흥 사람들은 여름마다 열무김치를 우물에 보관했다. 된장과 함께 챙겨 바다로 나가 배 위에서 물고기를 썰어 넣고 열무김치된장물회를 만들어 먹었다. 거창에서는 모자반을 ‘마재기’라 부른다. 봄마다 겨우내 보관한 무에서 올라온 어린순을 따다 채친 무와 함께 넣고 마재기무생채나물을 무쳐 먹었다. 지리산 자락에 사는 사람들은 장마가 오기 전 감자를 수확해 인절미를 만들었고, 일제강점기 울릉도에서는 오징어 내장을 삭혀 쌈장이나 찌개에 사용했다.

맛있게 먹어 지구를 지키자
지역마다 전해지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식재료를 오늘의 식탁으로 불러내는 이들이 있다. 지속 가능 미식 연구소 아워플래닛(our planEAT)이다. 지구를 ‘우리(our)’ 삶의 터전으로 인식하고, 생태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식사를 계획(plan + eat)’하자는 의미다. 남부 이탈리아풍 가자미찜과 방글라데시풍 무-생선 커리, 태국풍 갯것(조개, 따개비, 거북손, 고둥 등 갯가에서 나는 조개류) 청경채볶음 등 한국 식재료를 활용한 다국적 요리도 개발한다. 그저 맛있게 먹고 즐겁게 살자는 제안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묵직하다. 잊힌 식재료를 되살리는 건 종의 다양성을 지키고, 제철 음식을 먹는 건 식재료의 장거리 이동을 막아 탄소 발생량을 줄인다. 한국 식재료를 활용한 다국적 요리는 기후변화로 식생이 변하는 것을 고려한, 미래의 지구를 위한 레시피인 셈이다.

식탁으로 옮겨 온 환경 운동
아워플래닛은 장민영 대표와 김태윤 셰프가 이끈다. 좋은 요리는 잘 키운 작물에서 나온다는 믿음으로 주방을 벗어나 생산자를 찾던 김태윤 셰프는 잘 키운 작물은 지속 가능성과 닿아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직접 찾아낸 농부들의 식재료를 사용하는 일이 늘었고, 지속 가능성을 테마로 레스토랑 이타카를 운영했다. 그리고 팝업을 준비하던 중 장민영 대표를 만났다. 그는 대학원에서 전통 식생활 문화를 전공하고 <한국인의 밥상> 취재 작가로 일하며 전국 방방곡곡의 토종 식재료와 향토 음식에 대한 방대한 기록을 축적한 기획자다. 일을 하면 할수록 모든 것은 환경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고,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고민하던 시기에 김태윤 셰프를 만났다.
두 사람은 같은 질문을 했다. ‘매일 마주하는 밥상으로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식재료와 요리 방식이 개인의 건강은 물론 지구 건강까지 바꿀 수 있는 일상적인 수단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들이 지속 가능성을 이야기할 땐 환경만 고려하지 않는다. 생산자와 소비자, 우리 음식의 과거와 현재, 동식물과의 관계 등 다양성에 기반을 둔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환경, 기후에 따라 달라지는 식문화를 콘텐츠로 소개하고, 지역과 도시, 생산자와 소비자, 자연과 사람을 잇는 접점을 만든다. 그렇게 아워플래닛의 활동을 따라가다 보면 비로소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된다. 누구나 하루 세 번, 세상을 바꿀 기회가 있다고.

다이닝 팝업, 식재료 워크숍, 캠페인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장민영 대표 프로그램은 ‘로컬 오딧세이’와 ‘계절의 기억’이에요. 로컬 오딧세이는 한국 고유의 식재료와 지역 식문화를 취재해 코스 요리로 재해석하는 팝업 다이닝이에요. 국경을 넘나드는 김태윤 셰프의 요리를 경험할 수 있지요. 계절의 기억은 계절이 깃든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함께 먹고, 제철 식재료에 대해 이야기하는 워크숍이에요. 참석자들이 집으로 돌아가서도 요리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식재료 꾸러미를 안겨 주고, 레시피를 공유하죠. 로컬 오딧세이에서는 종종 필드 트립을 나가기도 해요. 지역 농부와 함께 식재료의 탄생을 살펴보는 프로그램으로, 우리가 먹는 것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몸으로 이해하는 시간이죠. 다양한 미식 경험을 통해 지구를 위한 식사를 마련하는 게 어렵지 않다는 걸 전하고 싶어요.

매일 마주하는 밥상으로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얘기가 인상적이에요.
김태윤
무엇을 먹고 소비하느냐에 따라 지구는 달라져요. 생산, 가공, 유통, 폐기 등 식품 시스템이 지구 탄소 배출의 26퍼센트 이상을 담당합니다. 인위적인 재배와 육식, 비료 사용, 각종 포장재, 버려지는 음식, 장거리 운송이 많을수록 탄소 발생량이 늘어요. ‘나부터 바꾼다’는 인식이 중요합니다. 장민영 바꾸기 위해서는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지구를 지켜라’ 같은 메시지를 앞세우기보다 ‘맛있게 먹는 것이 지구에 이로운 일’이라고 말해요. 진짜 미식은 제때 먹는 거예요. 제철 식재료는 그 자체로 완성된 맛을 지니고 있어요. 계절의 리듬도 읽을 수 있고요. 거창 출신인 저는 봄이 오면 돌나물김치를, 초여름까지는 죽순김치를 먹고 자랐어요. 꾀꼬리버섯무침과 국수버섯찌개, 송이버섯무침 등 다양한 버섯 요리를 먹다가 흰굴뚝버섯무침이 식탁에 올라오면 겨울이 온다는 걸 알아채곤 했죠. 저는 시금치를 잘 먹지 않는데, 겨울 바닷가에서 자라 통통하게 살이 오른 시금치는 좋아해요.

계절을 좇다 보면 기후변화를 누구보다 민감하게 느낄 것 같아요.
장민영 바다가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어종이 이동하거나 사라지는데, 우리의 식생활은 여전히 예전 기준에 머물러 있죠. 그래서 지금은 많은 수산물을 해외에서 수입해요. 골뱅이는 영국에서, 갈치는 세네갈에서, 박대는 기니에서, 문어는 모리셔스에서, 홍어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져와요. 김태윤 세계적으로 수산자원 자체가 줄고 있고요. 어종별 연간 어획 한도를 정하는 바다 쿼터제가 생겼고, 해양관리협의회에서 지속가능어업 표준을 충족하는 수산물에 에코 라벨을 붙여 주는 MSC 인증 제도도 생겼어요. 유럽의 경우 대형 마트에서는 입점을 원하는 수산물 공급업체에 MSC 인증 라벨을 요구하고 있어요. 한국도 시장의 이런 요구들로 인해 바다를 지금보다 더 잘 관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개인은 지구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장민영 두려운 건 무관심이 아닌 포기예요. 그래서 ‘무엇을 하지 말자’가 아닌 ‘무엇이든 재미있게 해보자’고 제안해요. 긍정의 언어로 우리가 변화한다면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얘기하는 거죠. 그 시작이 ‘맛있는 걸 먹자’는 것이고요. 다행히 자연에서 자란 제철 식재료로 만든 음식이 맛있어서 우리 주장에 설득력이 있어요. 김태윤 기후가 변하면서 우리 땅과 바다에서 나는 것들도 달라지고 있어요. 식재료가 바뀌면 요리도 바뀌어야 하죠. 낯선 식재료로 맛있는 요리 레시피를 만드는 게 매우 중요해요. 바뀐 작물 중에는 한국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그 작물을 오랫동안 소비해 온 지역의 조리법을 참고해 레시피를 만드는 일도 하고 있어요.

지역을 탐험하며 잊힌 식재료를 발굴한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장민영 아이러니하게도 먹고살 만해지면서 밥상이 단조로워졌어요. 아워플래닛은 예전 사람들이 어떻게 먹었는지 끄집어내는 일을 하죠. 경험으로 아는 음식이나 식재료도 있고, 취재하며 발견하는 것도 있어요. 지역 밥집을 다니며 새로운 걸 발견하거나 오일장에서 할머니들이 채취해 온 것을 추적하기도 해요. 김태윤 이미 소멸된 것이 아니라 1세대나 1.5세대 위 세대의 식문화를 발굴하는 거예요. 들어 본 것, 먹어 본 기억이 있는 것, 위 세대가 주야장천 먹던 것들을 찾아내는 거죠. 이대로 한 세대가 더 지나면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다음 세대에 먹거리를 전해 주는 일이 왜 중요한가요?
장민영 잊히면 끝이에요. 특정 식재료만 사용하면 다양성이 무너져요. 울릉도 나리분지는 섬말나리꽃이 많이 피어 붙은 이름인데,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소비자가 명이나물만 찾으니 다양한 식물을 모조리 베어 내고 명이만 심은 거죠. 아워플래닛은 섬말나리나 왕호장 같은 울릉도 자생식물을 찾아내고, 이를 활용한 레시피를 개발해요. 김태윤 예를 들어 섬말나리 농사가 지속 가능하려면 가정에서 해 먹을 수 있는 요리 레시피가 필요해요. 울릉도 사람들은 홍감자에 섬말나리 뿌리를 넣어 버무리를 만들어 먹었는데, 이걸 멕시코풍으로 풀어내면 완전히 새로운 요리가 돼요. 소비는 생산을 바꿔요. 성공한다면 울릉도의 종 다양성이 회복될 거예요. 그래야 다음 세대가 소비할 수 있고요.

결국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장민영 음식이 사라지는 건 단절됐기 때문이에요.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관계들이 많이 끊겼어요. 1인 가구가 늘면서 부모나 이전 세대의 음식을 먹거나 배울 기회가 사라졌고, 밭보다 마트가 가까우니 자연과 유리됐고, 마트에서 상품화된 것을 사 먹으니 생산자와의 연결 고리가 느슨해졌어요. 세대, 자연, 생산자와의 연결이 단절된 거죠. 김태윤 지속 가능성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핵심은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는 데에서 시작된다는 거예요. 세대 간의 단절, 자연과 사람 간의 단절, 사람과 동물 간의 단절, 도시와 지역 간의 단절,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단절 등등. 궁극적으로 우리는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는 일을 하는 거죠.

생산자와의 관계를 강조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김태윤
레스토랑을 운영할 때부터 지켜 온 원칙인데, 메뉴 아래에 재료와 생산자를 꼭 적어요. 메뉴가 대여섯 개면 생산자가 30명 가까이 되는데, 메뉴 뒤에 있는 사람들까지 한 팀이 되어 만든 식사라는 걸 강조하고 싶거든요. 생산자의 이름이나 얼굴을 알면 소비 방식이 달라져요. 식재료가 만족스럽지 못해도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하기보다 생산자를 먼저 걱정하게 되죠. 생산자의 정성을 안다면 음식을 남기는 일도 줄고요. 서로 더 이해하고 배려하도록 로컬 생산자와 도시 소비자의 관계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게 중요해요. 장민영 로컬 오딧세이 하동 편을 진행하면서 예울농원 배태민 대표의 달걀을 사용했어요. 닭을 가두지 않고 산에서 방목하는 분이에요. 동물 복지 원칙을 지키며 닭을 돌보고, 늙어서 생산력이 떨어진 닭도 잡아먹거나 죽이지 않아요. 재미있는 건 한 판에 든 달걀 맛이 다 다르다는 거예요. 벌레를 좋아하는 닭과 풀을 좋아하는 닭이 낳은 달걀 맛은 다를 수밖에 없죠. 이런 다양성이 자연스럽게 녹아있어요.

행복한 닭이 낳은 달걀을 먹으면 더 행복해질까요?
김태윤
아워플래닛에서 사용하는 동물 복지 달걀은 꽤 비쌉니다. 시판되는 가장 저렴한 달걀의 다섯 배가 넘죠. ‘행복한 닭이 더 맛있는 달걀을 낳는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조리를 했을 때 냄새부터 달라요. 그 차이를 알면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렵죠. 결국 좋은 음식을 먹는 건 삶의 질과 맞닿아 있어요. 고무적인 건 몇 해 전부터 마트에 동물 복지 달걀이 등장했다는 점이에요. 소비자들의 요구로 새로운 선택지가 생긴 거죠.

소비가 곧 사회적 행동이 되는 거네요.
김태윤
무언가를 소비한다는 것은 동물이나 사람, 생태에 영향을 끼쳐요. 커피 가격이 천차만별인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종종 보이지 않는 착취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에요. 원하지 않더라도 착취한 중간 유통자의 배를 불리는 일에 동참하는 소비도 있어요.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선택이 달라져요. 아는 순간, 소비는 사회적 행동이 되죠.

스스로를 지치지 않게 돌보는 방법이 있나요?
김태윤 자연을 찾아 여행을 떠나요. 자연 속에 머물면서 생명 감수성이나 환경 문제 등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고, 그 경험을 다시 사람들에게 전하는 거죠. 얼마 전에는 말레이시아 시파단에 다녀왔어요. 여러 바다에서 다이빙을 해 봤지만, 물고기가 그토록 빽빽하게 있는 곳을 본 적이 없어요. 그처럼 황홀한 세상을 경험하고 돌아오면 바다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장민영 스리랑카에서 대왕고래를 봤을 때도 그랬어요. 그 아름다운 생명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바다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어요. 그리고 ‘우리가 사랑한 바다’ 캠페인을 만들어 다이닝과 연결했죠. 국내 여행도 마찬가지예요. 지역을 다니면서 정직한 생산자를 만나면, 그 노력이 헛되지 않다는 걸 알릴 방법을 생각하게 돼요. 여행이 휴식이자 곧 영감이 되는 거죠.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김태윤 아워플래닛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즐기려고 해요. 즐겁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으니까요. 우리가 하는 일이 재미있고 즐겁게 보여야 사람들도 관심을 가질 거고요. 장민영 사람들이 맛있는 걸 많이 먹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거기서 오는 만족감이 삶을 행복하게 해 주거든요. 하루를 살아 내는 힘이 생기고, 그 하루하루가 쌓여 1년이 달라지고 인생이 바뀌어요. 보다 많은 사람이 음식이 주는 행복을 알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