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문화를 오감으로 체험하는 선비세상부터 고택 사이를 거닐며 사색에 잠기는 무섬마을, 황금빛 은행나무 길이 장관을 이루는 부석사까지. 경북 영주는 가을 여행지로 더없이 좋은 곳이다. 인삼과 사과를 수확하는 10월에는 풍성한 축제도 열려 여행자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한다.
1. 땅의 기운을 머금은
풍기 인삼


영주시 풍기읍은 세계 최초로 인삼을 재배한 고장이다. 산에서만 자라던 삼이 밭에서도 자라게 된 이유는 뭘까. 풍기역에서 차로 5분이면 닿는 인삼박물관에 그 답이 있다. 이곳에서는 풍기 인삼의 역사와 특징은 물론 생애 주기와 재배 방법까지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풍기 인삼 재배의 시초는 154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풍기 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이 산삼 종자를 채취해 밭에 심으면서 인삼 재배가 시작됐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지나는 풍기읍은 인삼 재배에 적절한 환경을 갖췄다. 고원지대라 일교차가 크고 통풍이 잘되며, 토양이 비옥하고 배수가 원활해 인삼이 잘 자란다. 풍기 인삼은 향이 진하고 사포닌 함량이 높은 것이 특징. 피로 해소, 면역력 증진, 혈액순환 촉진 등의 효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가 깊고 효능도 탁월한 풍기 인삼의 맛은 과연 어떨까. 영주시 향토음식점으로 지정된 영주칠향계는 인삼을 비롯해 잔대, 하수오, 백봉영, 천초, 도라지, 생강 등 일곱 가지 약초를 넣은 칠향계를 선보인다. 손질한 닭을 찬물에 담갔다가 끓는 물에 데치는 과정을 반복하며 불순물을 걷어 낸 뒤 일곱 가지 약재를 넣고 12시간 동안 달인다. 덕분에 닭고기는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고 국물에서는 약초의 깊은 향이 배어난다. 인삼튀김도 이곳의 별미다. 깨끗이 손질한 6년근 수삼에 튀김옷을 얇게 입혀 바삭하게 튀겨 낸다. 한 입 베어 물면 바삭한 식감 뒤로 고소하고 은은한 단맛이 번진다.
주소 경북 영주시 풍기읍 죽령로 1378(인삼박물관), 풍기로 57-21(영주칠향계)
문의 054-639-7681(인삼박물관), 054-638-7797(영주칠향계)

2026영주 풍기인삼축제
풍기 인삼의 우수성을 알리는 풍기인삼축제는 1998년부터 매년 10월 남원천 둔치 일원에서 열린다. 축제는 개삼터 고유제를 시작으로 막이 오른다. 개삼터 고유제는 주세붕이 처음 산삼 종자를 심어 가삼을 재배한 개삼터에서 그의 업적을 기리고 축제의 성공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인삼주 만들기와 인삼 깎기 경연 대회 등 인삼을 주제로 한 체험을 비롯해 주세붕 군수 행차 재연 행사도 이어진다. 올해부터는 공모를 통해 선정된 일반 시민이 ‘신(新) 주세붕 군수’ 역할을 맡아 행렬을 이끈다. 풍기읍 곳곳에서는 풍기 인삼 갈비, 인삼 삼계탕, 인삼 돌솥밥 등 인삼을 활용한 음식도 맛볼 수 있다.
기간 10월 3일~11일
장소 경북 영주 풍기인삼공원 및 남원천 일원
문의 054-630-8706
2. 달콤한 향기에 취해
영주 사과



풍부한 일조량과 깨끗한 물을 머금고 자란 영주 사과는 과육이 단단하고 단맛이 또렷하다. 영주는 전국 최대 사과 주산지답게 오랜 재배 경험을 바탕으로 품질관리에도 공을 들인다. 비파괴 당도 선별기로 당도를 꼼꼼히 체크하고, 수확한 사과는 저온 저장해 신선한 상태를 오래 유지한다. 갓 수확한 사과를 맛보고 싶다면 영주 사과 축제로 달려 가자. 올해 축제는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부석사 주차장 일원에서 열리며, 다양한 품종의 영주 사과를 무료로 시식할 수 있다. 11월 13일부터 15일까지는 서울 청계천 광장에서도 양재하나로마트 행사와 연계한 사과 판매와 타임 세일 및 룰렛 이벤트를 진행한다. 영주 사과를 다양하게 즐기고 싶다면 시내에 있는 로컬 카페 밀라플라로 향하자. 밀라플라는 상품성이 떨어져 농가에서 버려지는 못난이 사과를 음료와 디저트, 가공식품으로 새롭게 선보인다. 대표 메뉴는 애플리카노. 쌉싸래한 아메리카노에 상큼한 사과즙을 더한 음료로, 첫 모금에는 익숙한 커피 맛이 스치고 뒤이어 사과의 산뜻한 향이 번진다. 이 외에도 사과 파이, 사과 크럼블 쿠키, 사과빵 등 수제 디저트와 사과 애사비, 사과 떡뻥, 애플라놀라(사과칩 넣은 그래놀라) 같은 자체 개발 가공식품까지 다양하다. 사과를 오감으로 만나는 공간도 있다. 사과를 매개로 한 다양한 체험과 함께 브런치를 즐기는 에이뮤즈먼트(A’musement)다. 이곳의 대표 프로그램은 애플 갈레트 만들기. 사과가 탐스럽게 익는 10월에는 베이킹 공간 바로 옆 농장에서 직접 사과를 따서 체험한다. 페이스트리 생지에 사과 잼을 얇게 펴 바른 뒤 가늘게 썬 사과를 빙 두르고, 가장자리를 접어 모양을 잡은 후 달걀물을 발라 오븐에 구우면 노릇한 애플 갈레트가 완성된다. 한 입 베어 물면 바삭하게 부서지는 페이스트리 사이로 달콤새큼한 사과 향이 퍼진다.
주소 경북 영주시 원당로19번길 30(밀라플라), 봉현면 소백로1623번길 243-34(에이뮤즈먼트)
문의 054-633-1930(밀라플라)
인스타그램 @a.musement_(에이뮤즈먼트)
3. 내성천 물 위에 핀 연꽃 마을
무섬마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는 삼면이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 물길에 둘러싸인 마을이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의 우리말 이름, 무섬이다. 예부터 무섬은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모습을 닮아 ‘연화부수’로 불렸다.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는 1666년(현종 7년). 반남 박씨 입향시조 박수가 무섬 서편의 건넛마을 머렴에 살다 무섬에 들어와 만죽재를 짓고 터전을 일구면서였다. 1757년(영조 33년)에는 그의 증손녀 사위인 선성 김씨 김대가 처가에 들어오면서 무섬은 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의 집성촌을 이루었다. 무섬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두 갈래다. 현대식 콘크리트 다리인 수도교를 이용하거나 물 위에 놓인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1980년대 초반 수도교가 놓이기 전까지 외나무다리는 마을과 바깥세상을 잇는 유일한 통로였다. 책보를 메고 학교에 가는 아이부터 장가가는 새신랑과 시집오는 새색시, 마지막 길을 떠나는 상여까지 모두 이 다리를 건넜다. 360여 년이 흐른 지금 외나무다리는 무섬마을을 찾은 여행자라면 사진을 찍기 위해 꼭 들르는 명소가 됐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큼 폭이 좁아 조심스럽게 다리를 건너게 되는데,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중간에 놓인 ‘비껴다리’로 물러선다. 상대방은 가벼운 목례로 고마움을 전하고, 그 짧은 인사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매년 10월이면 외나무다리를 중심으로 옛 무섬 사람들의 삶을 재현하는 무섬 외나무다리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10월 3일부터 4일까지 진행되며, 무섬마을의 전통 고기잡이 방식인 겨메기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외나무다리를 건너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반남 박씨 입향시조가 지은 만죽재와 선성 김씨 입향시조가 지은 해우당, 항일운동의 거점이었던 아도서숙 등 저마다 고유의 역사를 간직한 40여 채의 고택이 자리한다. 고요한 적막이 이어져 민속촌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걷다 보면 문밖으로 TV 소리가 흘러나오고 정성껏 가꾼 텃밭도 눈에 띄며 사람 사는 집의 온기가 느껴진다.
주소 경북 영주시 문수면 무섬로 238-3(무섬마을 관광 안내소)
문의 054-636-4700(무섬마을 관광 안내소)
4. 선비처럼 입고, 먹고, 즐기는
선비세상



K-컬처 열풍 속에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공간이 주목받고 있다. 약 96만 제곱미터 부지에 조성된 선비세상도 그중 하나다. 선비세상은 선비처럼 입고, 먹고, 즐기며 선비 정신과 선비 문화를 경험하는 곳이다. 공간은 한옥촌, 한복촌, 한식촌, 한지촌, 한글촌, 한음악촌 등 여섯 개 테마촌으로 나뉜다. 선비의 마음가짐을 지니고 싶다면 한옥촌에서 다도 체험부터 시작해 보자. 전통차와 다기, 차 예절과 질서를 배우고 직접 차를 우려 마시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다. 다음은 한복촌에서 선비의 복식을 체험해 볼 차례다. 갓과 의복을 단정히 갖추고 마음과 행동을 바르게 다스리던 선비의 의관정제를 가슴속에 새겨 본다. 선비의 삶을 이해하는 데 먹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한식촌에서는 삼신상부터 제사상까지 전통 밥상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고, 소반 모니터를 활용해 나만의 선비 소반을 차린다. 한지촌에서는 선비들이 시를 짓는 데 사용한 한지를 전통 방식으로 떠 보며 조상의 우수한 제지 기술을 엿본다. 한글촌에서는 놀이를 통해 한글의 원리를 익힌다. 자음과 모음 큐브를 조합해 단어를 완성하는 ‘스마트 한글 큐브’, 외래어를 든 두더지를 잡으며 올바른 한글 표현을 배우는 ‘한글 꽃밭 가꾸기’ 등 어린이도 쉽고 재미있게 한글을 습득할 수 있다. 마지막은 한음악촌이다. 빈백에 앉아 사계절의 정취를 담은 국악을 들으며 느긋하게 풍류를 즐긴다. 11월까지 매주 주말 오후 2시 한음악촌 한음악당에서는 타악 퍼포먼스, 어쿠스틱 국악, 전통 무용, 전통 액션 연희극 등 다채로운 공연이 열린다.
주소 경북 영주시 순흥면 선비세상로 1
문의 054-630-9700
5. 극락에 이르는 길
부석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부석사는 676년(문무왕 16년) 의상대사가 화엄 사상을 펼치기 위해 왕명으로 창건한 절이다. 봉황산 중턱에 자리한 부석사는 계단식으로 지은 것이 특징. 최하단 일주문에서 최상단 무량수전까지 아홉 개의 석축단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극락세계에 이르는 아홉 단계를 상징한다. 일주문, 천왕문, 범종루를 차례로 지나면 안양루(안양문)가 모습을 드러낸다. 극락을 뜻하는 안양(安養)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극락세계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이 안양루다. 누각 아래로 몸을 낮춰 계단을 오르면 마침내 극락정토인 무량수전에 다다른다. 마당에 서서 바라본 무량수전은 몸체에 비해 지붕이 유난히 크지만 묘한 안정감이 느껴진다. 여기에는 과학적 건축 기법이 숨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배흘림기둥이다. 일직선 기둥은 멀리서 볼 때 가운데가 음푹 파인 것처럼 보이는 착시를 일으킨다. 기둥 중간이 가장 굵고 위아래로 가면서 점차 가늘어지는 형태의 배흘림기둥은 이러한 착시를 바로잡아 기둥이 곧아 보인다. 모서리 기둥을 중앙보다 살짝 높게 세운 귀솟음 기법도 건물 양끝이 처지거나 벌어져 보이지 않게 해 반듯한 인상을 준다. 법당 안에는 동쪽을 향해 봉안된 소조여래좌상이 자리한다. 국내 소조 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불상 앞에 서면 저절로 마음이 경건해진다. 무량수전을 뒤로하고 정면을 바라보자 소백산 능선이 겹겹이 이어진다. 해가 지면 풍경은 한층 더 황홀해진다. 하늘에 주홍빛과 분홍빛이 번지고 경내에도 따스한 기운이 스며든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을 놓칠세라 마지막 빛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주소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문의 054-633-34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