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파의 카메라 앞에서는 키치한 액세서리도, 싸구려 도넛도 당당한 주인공이 된다. 특유의 통찰력과 심미안으로 웃음 뒤에 숨은 불편한 진실을 포착해 내는 마틴 파의 웃기고 이상한 세계.

케첩을 찍은 감자튀김, 유명 관광지에서 셀카봉을 들고 환하게 웃는 얼굴, 선글라스를 씌운 반려견, 검게 그을린 피부와 잘 가꾼 손톱. 오래된 사진첩이나 소셜 미디어 피드에서 봤을 법하고, 어쩌면 내 휴대폰에도 수백 장쯤 있는 이미지라서일까. 액자 속 사진들은 하나같이 낯설지 않다. 관람객들은 저마다 흥미롭게 한참 동안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이내 휴대폰을 꺼내 작품을 배경으로 셀피를 남긴다. 지금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전 풍경이다.
현대사진의 거장 마틴 파가 세상을 떠난 후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이 대규모 회고전에서는 대표 연작 14개 시리즈를 비롯한 사진 500여 점과 사진책 90여 권 등 50여 년에 걸쳐 완성한 작가의 작품 세계가 총망라된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국내 최초의 공립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개관한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선보이는 첫 개인전이기도 하다.
왜 마틴 파였을까. “가장 ‘사진적’인 작가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플래시를 터트려 찍어 보여 주는, 사진의 근본적인 힘을 드러내는 작가여야 했어요. 2년 전부터 전시를 준비했는데 개막 6개월을 앞두고 작가가 작고하면서 회고전 성격을 띠게 됐습니다.” 전시를 기획한 학예연구사의 설명 그대로 마틴 파는 오직 카메라 한 대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찍었다.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포착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정면 플래시와 강렬한 색감, 근접 촬영 기법을 활용해 숨은 유머와 아이러니를 담아낸 현대 다큐멘터리 사진의 거장이다.


© Martin Parr/Magnum Photos
누구에게나 이야기가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좁고 긴 복도가 나오고, 그 끝에서 벽면을 통째로 차지한 거울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멋쩍은 마음을 감추고 습관처럼 셀피를 한 장 찍은 뒤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으면, 마틴 파의 웃기고 이상한 세계가 펼쳐진다. 1980년대부터 작고 직전까지 이어 온 대표작 ‘작은 세계(Small World)’는 세계 곳곳에서 관광을 소비하는 사람들을 담은 연작이다. 마틴 파는 ‘내가 거기 있었다’고 인증하려는 사람들의 욕망을 카메라에 담는다. 베니스 광장에서 비둘기 떼에 둘러싸인 채 간신히 셔터를 누르는 여성, 아테네 신전 앞에서 획일적인 자세로 단체 사진을 찍는 한국인 패키지 상품 관광단(한국인의 눈에는 보인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조금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우리는 정말 원해서 관광을 떠나는 것일까?
영국 상류층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이스태블리시먼트(Establishment)’ 연작은 명문 대학과 왕실의 행사 등 오랜 시간 이어져 온 관습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아슬아슬할 만큼 가까이 다가가 플래시를 터뜨리는 그의 카메라 앞에서 격식과 권위로 포장된 세계의 민낯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리고 마틴 파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대표작 ‘마지막 휴양지(The Last Resort)’가 이어진다. 1983년부터 3년간 영국 리버풀의 뉴브라이턴 휴양지를 기록한 이 연작은 쇠락한 리조트 타운에서 보내는 영국 노동계급의 휴가를 담았다. 산업폐기물 옆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쓰레기 더미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휴가를 보내는 서민이 주인공이다. 다시금 마음이 불편해지면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이들은 과연 휴가를 즐기고 있는 것일까?
마틴 파는 50여 년간 현대인의 일상과 소비문화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물질만능주의를 꿰뚫는 매서운 눈과 생의 아이러니를 포착하는 예민한 감각으로 순간을 담아낸 뒤, 세상의 위계와 미묘한 갈등, 씁쓸한 진실을 웃음 너머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큐멘터리 사진의 오랜 관습을 뒤흔들었다. 거대 담론이나 전쟁의 비극을 담은 흑백사진만을 다큐멘터리의 정수라 믿던 시대에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 것이다. ‘평범한 얼굴과 소소한 일상은 사진의 재료가 될 수 없는가?’ 1994년 매그넘 포토스 정회원 심사 당시, ‘결정적 순간’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끝까지 그의 가입을 반대한 일화는 유명하다. 단 한 표 차이로 매그넘 포토스 멤버가 된 마틴 파는 과도한 지성주의 편에 섰던 다큐멘터리의 전통에 균열을 내며 현대사진의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진실, 웃기고 불편한
3층 전시장에 오르면 넓고 푹신한 소파가 놓인 방이 나타난다. 당장이라도 몸을 던지고 싶은 소파 앞에는 마틴 파의 사진책 90여 권이 놓여 있다. 책을 뒤적이는 관람객들 뒤로 ‘무료한 커플(Bored Couples)’ 연작이 오버랩되며 묘한 풍경이 펼쳐진다. 함께 있지만 서로에게 무관심한 30년 전 커플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각자 휴대폰을 든 채 식사하는 오늘날 연인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소통의 부재와 관계의 지리멸렬함, 그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시공간을 넘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마틴 파의 세계!
초창기 흑백사진 작업의 방을 지나면 마침내 한 공간에 놓인 ‘북한(North Korea)’과 ‘남한(South Korea)’ 연작을 만난다. 1997년 패키지여행으로 평양을 방문한 마틴 파의 카메라에는 김일성 동상 앞에서 참배하는 시민들과 시장에서 만난 노인, 아빠 품에 안긴 어린아이가 담겼다. 몸을 돌리면 1998년부터 10년에 걸쳐 기록한 남한의 모습이 펼쳐진다. 남대문시장과 대형 마트, 경복궁의 문화해설사와 제주도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는 중년 여성까지, 마틴 파의 시선은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그 사회가 무엇을 소비하고, 무엇을 믿으며,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예리하게 들여다본다.

모두의 마틴 파
갑자기 궁금해졌다. 직접 대면한 작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전시 준비가 시작되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서너 차례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조금 친해지자 저에 대해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요즘 가장 관심이 가는 건 뭔지, 배우자는 어떤 일을 하는지, 한국에서 여성들이 사회활동을 하는 데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물어보셨어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어마어마했죠. 따뜻함과 유머를 겸비한, 그야말로 ‘마틴 파의 사진’
그 자체였다고 할까요.” 문득 아쉬운 마음이 솟구쳤다.
만약 예정대로 한국에 머물며 작업할 수 있었다면 어떤 이미지를 포착했을까. 광화문과 성수동, 잠실야구장과 황학동 벼룩시장을 누비며 2026년의 대한민국이 감추고 있는 가장 내밀한 민낯을, 어쩌면 우리가 영영 발견하지 못할 아름다운 순간을 사진으로 보여 주지 않았을까.
마틴 파의 흥미로운 사진전에서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될 한 가지는 영상이다. <마지막 휴양지> 속 비치 의자가 놓인 방에 그의 모습이 담긴 다큐멘터리 필름이 상영된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어슬렁어슬렁 걷다가 마음에 드는 피사체를 포착하면 “오, 당신의 옷이 너무 맘에 들어요. 정말 멋진걸요!”라며 경계심을 무너뜨리고 셔터를 누른 뒤 사라지는 귀여운 할아버지를 보고 관람객들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마틴 파 사진의 재료는, 정말 길 가다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다.
이제 다시 전시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왜 마틴 파의 사진을 좋아하는가? 그 안에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고 싶진 않지만 소비의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온갖 부조리와 권위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우스꽝스러운 허례허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보통의 인간이 바로 우리다. 그렇다고 일상이 냉소로만 채워지지는 않는다. 작가가 그랬듯 별난 것에서 반짝임을 느끼고 타인에게서 좋은 것을 발견하며, 마침내 웃음 뒤의 진실을 알아볼 수 있기에 기꺼이 그의 사진에 공감한다. 우리는 모두 마틴 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