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두 도시 이야기상하이·쑤저우 하루 여행

2025년 02월 07일

  • WRITER 농호 상하이(조민영)

중국 양쯔강 이남의 강남 지역을 대표하는 두 도시, 상하이와 쑤저우를 고속철로 여행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강남에서 온 제비’처럼 우리가 흔히 쓰는 ‘강남’은 서울 강남이 아닌 중국 양쯔강 이남 지역을 뜻한다. 강남은 예부터 굽이굽이 이어지는 물길을 따라 사람이 모이고 문화가 융성했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두 도시, 상하이와 쑤저우는 선명한 개성과 고유한 매력으로 여행자를 불러 모은다. 도시 간 거리는 100킬로미터가량이지만 고속철로 25분이면 주파할 수 있어 당일치기로 둘러보기에 더할 나위 없다. 상하이의 웅장한 기차역에서 북적거리는 인파의 일부가 되어 열차에 오른 뒤, 상하이에서 쑤저우로 변해 가는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는 여행. 대륙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단숨에 통과하는 시간이다.

유럽풍 건축물이 늘어선 와이탄의 이국적인 거리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상하이의 아름다움은 혼재에 있다. 이 도시를 대표하는 거리인와이탄(外滩), 신톈디(新天地), 루자쭈이(陆家嘴), 판롱톈디(蟠龙天地)에 가면 동서양이 뒤섞인 기묘한 경관을 맞닥뜨린다. 뿌리가 다른 문물이 얽혀 독특한 미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혼재의 미, 와이탄위안·록번드
아름다움의 시작은 아픔이었다. 1842년 난징조약 이후 상업 거래를 위한 다섯 개 개항장에 속한 상하이에는 사람, 자본, 문화가 순식간에 흘러들었다. 식민지 확장에 혈안이 된 열강은 땅을 조각조각 나눠 조계지를 설정하고 각자의 양식으로 건물을 세워 올렸다. 새로운 드림랜드에 다다른 서양인, 먹고살기 위해 일거리를 찾는 청나라 사람들, 더 나은 조국의 미래를 꿈꾼 신중국 지식인들이 와이탄과 난징둥루에 모였으니 아편과 성경, 금과 달러, 인력거와 자동차, 바이올린과 비파, 바오쯔와 빵, 커피와 차, 포커와 마작 등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하기 시작했다. 이 만남은 격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새로운 문화를 일구어 냈고, 오늘날 국제도시 상하이의 특색과 전통으로 자리매김했다.
상하이는 이러한 상흔을 지우지 않았다. 오히려 더 확실하고 공고한 자산으로 만들었다. 역사의 현장을 유지·보수하고, 인문학적 요소로 활용하며, 이곳에 인기 브랜드를 입점시켜 시대정신을 반영한 ‘핫 플레이스’로 꾸몄다. 대표적인 곳이 와이탄위안(外滩源)·록번드(洛克)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인파가 넘쳐나는 난징둥루에서 잠시 옆길로 새면 우아한 기품이 흐르는 이 거리에 다다른다. 상하이에서 가장 인기 좋은 브랜드와 카페가 빼곡히 들어섰기에 어딜 들어가도 만족스러운 지역이다.
영국 대사관저를 중심으로 출판사와 극장, 예배당 등이 자리하던 곳을 록번드라 명명하고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한 끝에 건축 박람회, 크리스마스 마켓, 전시와 공연 등이 열리는 문화·상업 공간이 탄생했다. 중국 문호 루쉰이 흑백의 미키마우스 영화를 관람하던 극장은 오늘날 전 세계 예술가들의 전시장이 됐다. 각양각색 공연이 펼쳐지고, 겨울이 되면 마당에선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100년 넘는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켜 온 건물들은 이제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적 브랜드의 공간으로 현대인의 삶에 취향과 가치를 선사한다. 천천히 구석구석 돌아보며 혼재의 미를 만끽한 뒤엔, 예배당에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강변으로 걸어가 아치형 다리에 오를 차례. 뒤편엔 웅장한 우체국 박물관이, 전면엔 황푸강 너머로 화려한 고층 건물이 펼쳐진다. 동서양이 뒤섞인 문화에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 개념까지 포개지는 순간이다.

와이탄위안·록번드를 여행한다면

루너스(Luneurs)
중국 대륙 곳곳에 지점을 확장하고 있는 카페로, 맛있는 프랑스식 브런치를 낸다.
프랑스 화교 주인장이 남다른 솜씨를 자랑한다.

탕쒀(塘所)
베이징에서 출발해 상하이로 진출한 디저트 상점이다. 중국 전통과 문학을 콘셉트로 디저트를 하나의 예술품으로 만든다.

나이브 커피 바(Naive Coffee Bar)
커피와 술과 책으로 이루어진 작은 은신처. 동굴 같은 책장이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곳곳에 인생 철학이 담긴 글귀가 새겨져 있으니 번역 앱을 활용해 볼 것.

바사오 티(Basao Tea)
감도 높은 차기와 엄선한 차를 경험하는 공간. 따로 마련된 티 테이블에서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며
차를 음미하는 느긋한 시간을 보낸다.

오토 에 메초 봄바나(Otto e Mezzo Bombana)
12년간 미쉐린 스타를 유지한 이탈리아 레스토랑. 음식은 물론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경치마저 아름답다. 상호는 ‘8과 2분의 1’이라는 뜻.

오늘과 맞닿은 도시 재생의 풍경
동양과 서양, 어제와 오늘이 교차하는 상하이의 도심 풍경은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마침 도심 곳곳에는 지난 10년간 진행한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다. 미래적인 스카이라인과 19세기 유럽 건축물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베이와이탄(北外滩)도 그중 하나. 제2차 세계대전 때 학살을 피해 이곳으로 온 유대인 난민이 첫발을 디딘 곳이며, 대륙 정복의 야망을 품고 상하이를 침공한 일본군의 진입 경로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베이와이탄 일대에서는 두 거사의 흔적 위에 쌓아올린 지금의 상하이를 만날 수 있다.
황푸강 서남쪽에는 퐁피두 센터부터 탱크 상하이까지 거느린 예술적 밀도가 높은 동네, 웨스트 번드 시안(西岸)이 있다. 기차역과 부두로 쓰던 이곳은 공원으로 거듭나면서 시민들이 사랑하는 휴식처가 됐다. 번화가 난징시루(南京西路)의 초대형 스타벅스 리저브드 근처에 가면 상하이 전통 가옥인 스쿠먼 단지를 개조한 장위안(张园)이 나온다. 과거 거주지였던 장위안은 도시 재생 사업을 통해 번듯한 상업 공간이자 새로운 랜드마크로 거듭나 세계적 브랜드의 매장이 들어서고 있다. 자동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수향마을에 자리한 신개념 쇼핑몰이자 문화 공간인 판롱톈디(蟠龙天地)도 주목할 만하다. 오랜 역사를 지닌 이곳은 노을과 야경의 운치가 남다르니 오후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상하이의 길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가로수가 이어지는 시내의 모든 길이 카페 골목이자 먹자 골목, 걷고 싶은 거리다. 가로수길 곳곳마다 동서양의 장점만을 취해 자신의 것으로 영리하게 소화한 상하이 청년들의 충천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상하이 여행의 최신 키워드가 ‘시티 워크(city walk)’, 도시 산책인 이유다.
세련되고 개성 있는 상점가와 아무렇지 않게 빨래를 널어 놓은 주택가의 기막힌 조화가 궁금하다면 다음 목록을 기억해야겠다. 조용하고 운치 있는 난창루(南昌路), 허름함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용캉루(永康路)와 자산루(嘉善路), 상하이 현지 젊은이들의 취향과 생활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옌칭루(延庆路)·푸민루(富民路)·샨시난루(陕西南路)···. 저마다 자신만의 보물을 발견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길이 여럿이다. 커피 애호가라면 골목골목에 숨어든 작은 카페를, 유행에 민감한 힙스터라면 굿바이(Goodbai)와 룩온(Look On)으로 대표되는 멋스러운 편집숍을 탐방하는 것이다. 두 다리가 허락하는 한, 거미줄처럼 교차하는 가로수길을 종횡무진 누벼 보기를.
장쑤성의 고도 쑤저우의 별칭은 ‘물의 도시’다. 제주도가 통째로 들어갈 만큼 거대한 타이후를 비롯, 크고 작은 호수와 강이 흐르기 때문이다. 넉넉한 수자원은 풍요와 부, 융성한 문화를 일궜다. 송대에 발전하기 시작해 명·청 시대에 꽃을 피운 정원 문화의 정수가 줘정위안(拙政园)에 남아 있고, 간드러진 목소리로 부르는 쑤저우 오페라와 비파 연주가 핑장루(平江路)와 산탕제(山塘街) 같은 옛 동네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상하이 건축의 전통을 보여 주는 스쿠먼 단지에 최근 글로벌 브랜드가 속속 입점하고 있다.

도시 재생 구역과 가로수길을 여행한다면

매너 커피 Manner Coffee
웨스트 번드 시안에 있는 카페.
전망 좋은 자리에 독채로 들어서 여유롭게 즐기기 좋다.

메탈 핸즈 Metal Hands
달걀프라이처럼 생긴, 고소한 시그너처 라테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난창루에 간다면 놓쳐선 안 될 곳으로, 규모는 작지만
루이 비통 같은 유명 브랜드와 협업하는 인기 로컬 카페다.

테킬라 에스프레소 Tequila Espresso
용캉루와 자산루의 교차점, 철물점과 과일 가게 사이에 아담한 카페가 남다른 존재감을 내뿜는다.
찬 우유에 에스프레소를 더한 ‘더티’가 베스트셀러다.

유장한 역사의 물길 따라, 쑤저우 한나절 산책
근현대사 위에 새로운 풍경이 중첩된 상하이와 달리, 쑤저우는 옛것과 새것의 경계가 엄연하다. 전통과 역사의 장인 구시가지 구쑤(姑苏), 도회적인 마천루로 이루어진 신시가지 진지후(金鸡湖) 일대에서 그 대조적인 모습이 발견된다.
강남의 고아한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구쑤로 간다. 700년 역사를 간직한 번화가 관취안제(观前街)에는 도교 사원 쉬안먀오관(玄妙观), 명나라 때부터 450년 업력을 이어 온 쏘가리튀김 전문점 더웨러우(得月楼) 등 100년으로는 명함도 못 내밀 유서 깊은 명소가 가득하다. 남송 시대 문화를 간직한 핑장루(平江路)는 초록빛이 선연한 작은 강을 따라 이어진다. 하얀 벽과 검은 기와가 특징인 쑤저우의 전통 가옥 거리에 닿자 탐스러운 먹거리와 볼거리가 끊임없이 발길을 유혹하는데, 빛바랜 벽 너머로 들려오는 비파 연주 소리가 잠시나마 마음을 가라앉힌다.
핑장루 근처엔 쑤저우 박물관(苏州博物馆)이 있다.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를 설계한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이오밍 페이가 디자인했다. 쑤저우를 대표하는 색인 흰색과 검은색으로 모던한 외관을 구현하고, 곳곳에 쑤저우의 정원과 전통적 요소를 담았다. 전통시장을 쾌적하게 정비한 솽타시장(双塔市集)에서 팥죽과 털게 등 쑤저우의 다양한 향토 음식을 맛보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커피나 디저트가 궁금한 이에겐 스취안제(十全街)의 옛 건물에 입점한 감각적인 레스토랑과 카페를 추천한다.
진지후(金鸡湖) 주변은 쑤저우의 수많은 호수 중 개발 구역으로 선정되어 신도시로 거듭났다. 바지를 닮아 ‘바지 건물’이라 부르는 쑤저우의 랜드마크 둥팡즈먼(东方之门)을 주축으로 호숫가를 따라 늘어선 최고급 호텔, 대형 쇼핑몰과 서점, 공연장 등 문화 시설을 찬찬히 둘러본다. 작은 호사를 누리고 싶다면 진지후 주변 호텔에서 하룻밤 묵어도 좋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호수를 따라 공유 자전거를 타고, 타는 듯한 노을과 반짝이는 빌딩 불빛을 발아래로 굽어보는 것이다. 삶의 기쁨이 멀리 있지 않음에 감사하면서.

구쑤와 진지후를 여행한다면

이츠화위안(一尺花园)
쑤저우 전통 가옥의 골조를 그대로 간직해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카페로 핑장루에 자리한다.

홍러우(红楼)
스취안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간식은 시원하고 달콤한 젤라토.
남다른 감각으로 상하이까지 진출한 젤라테리아를 만나 본다.

대형 체인 호텔
진지후 주변 포시즌스, 더블유, 샹그릴라 등 유명 브랜드 호텔은 상하이보다 숙박비가 20퍼센트가량 저렴하다.

알아 두세요

가는 방법
한국에서 중국 상하이까지 직항 노선이 운항한다. 인천국제공항과 푸둥 국제공항,
김포국제공항과 훙차오 국제공항이 연결되며 비행시간은 약 2시간이다.

교통편
상하이와 쑤저우 간 거리는 약 100킬로미터다. 고속철로 약 25분, 자동차로 약 1시간 반에서 2시간 소요된다.

철도 이용법
① 상하이 출발 기준으로 시내에서 가까운 것은 상하이역이다.
훙차오역은훙차오 국제공항과 연결되어 있다.
② 기차명 앞에 ‘G’라고 표시한 것이 고속철이며, 좌석 등급마다 가격이 다르다.
③ 한국에서 서비스하는 여행 앱을 이용하면 한국어로도 예약 가능하다.

즐길 거리
① 일몰 무렵 상하이 타워 전망대에 올라 도시 전체가 노을빛에 물든 모습을 감상한다.
② 상하이 시티 투어 버스를 이용해 명소를 편안하게 둘러본다.
조명이 화려한 저녁 시간에 버스를 탑승해 2층 높이에서 한층 가까이 야경을 즐긴다.
③ 쑤저우 옛 거리 산탕제나 핑장루에서 송나라 복식을 체험해 본다.

떠나기 전에
현지 문화와 트렌드, 역사와 전통을 아우르는 여행 에세이 <상하이, 너를 위해 준비했어>를 일독하고,
저자 농호 상하이의 인스타그램(@nongho_shanghai)에서 여행의 영감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