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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덜어 냄, 제로 웨이스트 여행

2025년 05월 27일

  • EDITOR 김수아
  • PHOTOGRAPHER 김은주

전북 전주에서 제로 웨이스트를 이끄는 ‘모악산의 아침’ 숙소 운영자 모아를 만났다. 모험과 순환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라 믿는 그를 따라 지속 가능한 여행을 떠난다.

제로 웨이스트 숙소 ‘모악산의 아침’, 재능을 교환하는 커뮤니티 공간 ‘지향집’,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장터 ‘불모지장’. 환경에 관심 있는 이라면 전주에서 수차례 들어 봤을 이름이다. 공통점이라면 모두 모악산의 아침 운영자 모아의 손을 거쳤다는 것. 그중 모악산의 아침은 비건 레시피를 소개하는 유튜버 초식마녀, 쓰레기 없는 일상을 영상에 담는 <쓰레기왕국> 채널 운영자, 국내 최초 리필 스테이션인 알맹상점 직원들, 그리고 환경보호를 꾸준히 실천하는 배우 임세미 등이 방문한 인기 숙소다. 편한 방식을 택하기보다는 선한 영향력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아의 행보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테다. 주인장 모아와 함께라면 지속 가능한 여행을 꿈꿀 수 있을까? 부푼 기대감을 안고 그가 꾸려 가는 숙소를 첫 번째 목적지로 정했다.

쓰레기 없는 숙소를 향하여
모아의 삶에 ‘환경’이라는 키워드가 깊숙이 안착한 건 2018년 11월 모악산의 아침 운영을 맡기 시작하면서였다. 일곱 살 때부터 살았던 집을 개조해 독채 숙소를 열었는데, 손님이 다녀간 뒤 청소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훨씬 많은 쓰레기가 나와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하면 쓰레기를 줄일지 고민하다 우선 정수기를 들이기로 했다. 그 결과 쓰레기가 줄어든 것은 물론 빈 페트병을 일일이 밟아 처리하는 수고도 덜었다.
그다음 투숙객이 사용하는 물품을 자연에 덜 해로운 제품으로 바꿨다. 세제 없이도 기름기가 잘 닦이는 삼베 수세미, 일반 화장지보다 자연 분해 속도가 빠른 대나무 휴지 등을 숙소에 비치했다. 무엇보다 플라스틱을 소비하지 않는 데 중점을 두었다. 용기에 든 세정 제품 대신 고체 형태의 샴푸, 컨디셔너, 보디 워시를 조각 내어 욕실에 놓았다. 불가피하게 플라스틱을 구매하는 경우에는 용기를 재순환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선택했다. 수질을 오염시키는 합성계면활성제가 포함되지 않은 식물성 오일로 세제를 만드는 브랜드 ‘꽃마리’가 모아의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했다. 손님들은 숙소에 머무르는 동안 이렇게 꼼꼼하게 선택한 친환경 제품을 자연스레 체험하게 된다. 한 번의 경험이 일상 속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주인장의 마음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비건 장터 ‘불모지장’은 매년 봄과 가을에 열린다.

불편한 모험을 통해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자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모아의 첫 번째 활동이 숙소 운영이라면, 두 번째는 쓰레기 없는 비건 장터 만들기였다. 모아는 행사를 기획할 당시, 포장된 식재료를 구입할 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비닐이나 스티로폼 쓰레기에 불편함을 느꼈다. 게다가 제로 웨이스트 숍이나 리필 스테이션이 지역마다 생기는 추세였지만 전주에는 없었기에 환경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는 무포장 제품을 다회 용기에 필요한 만큼 담아 구매하는 경험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로 했다.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아야 했기에 판매자에게는 일회용 팸플릿과 현수막 사용을 금지했고, 참여자에게는 텀블러 또는 다회 용기를 필수로 지참하라고 안내했다. ‘불편한 모험을 통해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자’는 뜻을 담아 이름 붙인 불모지장은 2020년 9월 모악산의 아침 앞마당에서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매년 봄과 가을에 장소를 바꿔 가며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지난 5월 10일에 열린 열 번째 불모지장에는 채식 김밥과 떡볶이 등을 파는 분식집 ‘콩알네’, 비건 너깃을 안주 메뉴로 내는 수제 맥줏집 ‘노매딕 브루잉 컴퍼니’, 전주 최초의 제로 웨이스트 숍 ‘늘미곡’ 등 전주 거점 상점을 포함해 서른 개 부스가 참여했다. 비가 내려 실내로 장소를 옮겼는데도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고쳐 쓰는 일을 지향하는 우산 수리 팀 ‘호우호우’는 뜻밖의 비 소식에 오히려 화창한 날보다 많은 손님을 맞았다. 불모지장으로 가는 동안 우산이 고장 나도, 도착하면 바로 맡길 수선공이 있다는 점이 이번 행사의 꽤 흥미로운 포인트였다.

더 이상 비건 불모지가 아닌 전주
채식 위주의 식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육식을 끊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모아의 경우 불모지장에 참여한 판매자의 챌린지에 동참한 일이 계기가 되었다. 한 달 동안 우유와 육류를 먹지 않았는데, 이때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채식 위주의 식습관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친구들과 함께 전주에서 비건 옵션이 있는 식당을 찾아 스티커를 붙이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이들이 다녀간 후 주변에 비건을 위한 선택지를 마련하는 가게가 더러 생겨났다. 특히 우유 대신 두유나 아몬드·귀리로 만든 대체유로 변경할 수 있는 카페가 늘었다. 모아는 이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며 모은 정보를 정리해 전주 비건 지도를 제작했다.
지도가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는지는 모아가 운영하는 두 번째 공간 지향집에서 직접 확인했다. 지향집 내부를 촬영하기 위해 입구에 들어섰을 때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모녀를 만났다. 비건을 지향하는 딸은 모아가 만든 전주 비건 지도가 큰 도움이 되었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모아 님 아니었으면 굶을 뻔했어요.” 동행한 엄마는 채식이 자연스럽다는 듯 음식이 입에 잘 맞았다고 덧붙였다. 방문한 식당 이름을 제대로 알려 주고 싶은 마음에 카드 결제 내역까지 살피는 모녀의 모습에 잠시 미소가 스쳤고, 모아의 노고에 작은 보답이라도 하고 싶다는 진심이 느껴져 마음이 벅차기까지 했다.
짧지만 강렬한 만남이 이루어진 이곳은 재능 교환과 자율 기부를 기본으로, 다소 독특하게 운영되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요가, 커피 내리기, 청소하기 등 어떤 것이라도 교환할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지향집밥’ 시스템이 가장 흥미로울 테다. 지향집 냉장고에는 모아가 채워 넣은 식재료와 누군가가 기부한 반찬이 들었다. 3000원을 내고 식권을 구매하면 냉장고 속 재료를 활용해 비건 집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모아의 제안으로 모인 지향집밥 지킴이들은 지향집 카페에 레시피를 공유하고, 남은 식재료를 기재할 뿐 아니라 “냉장고 속 재료가 상하지 않도록 날짜를 적어 두자”는 등 댓글로 활발히 의견을 나눈다. ‘지향하는 것들을 모은 곳’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비슷한 가치를 중시하는 친구를 만나기 쉬운 장소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친구와 함께라면 유별난 사람이라는 취급을 받지 않고 제로 웨이스트나 비건을 지속할 용기를 얻기 쉬울 테다.
모아가 기획한 일련의 활동을 나열하고 보니 시간적 효율성이나 경제적 이득을 고려했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미래를 완벽하게 그리기보다 현실과 부딪히며 한계치를 파악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그 과정에서 배운 내용이나 얻은 정보를 아낌없이 주변에 나눴고, 함께 움직일 동료를 모았다. 두려움 없이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그의 뒤를 점점 더 많은 동료들이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주와 환경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는 점차 몸집을 늘려 갔다. 모아는 지나온 과정을 돌아보는 시간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부족하거나 아쉬웠던 점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비건에 수렴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해요. 완벽하지 않더라도 계속 나아가면 되니까요.”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자 동료들을 위한 응원이며, 모르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는 외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