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2025년 04월 30일

  • EDITOR 이미혜(미술 칼럼니스트, 독립 기획자)
  • PHOTOGRAPHER 서송이

엄청나게 크거나 작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생생한 인형들의 집. 국립현대미술관과 프랑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아시아 최초로 론 뮤익 개인전을 선보인다. 이 고요한 테마파크에선 누구도 말이 없다.

6미터가 넘는 크기의 조각 작품 ‘침대에서’(2005).

마치 모든 게 멈춘 듯하다. 침대에 누워 어딘가를 응시하는 여자, 데이트 중인 젊은 커플, 갓난아이를 외투로 감싼 채 식료품 봉투를 들고 가는 엄마, 식탁 위의 흰 닭과 이를 노려보는 팬티 차림의 노인…. 머리카락 한 올, 피부의 주름과 미세한 혈관까지 생생한 이 조각들은 누군가 세상을 향해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생의 한순간에 멈춰 있다. 이 리모컨의 주인은 론 뮤익이다. 호주 태생의 극사실주의 작가인 그는 1990년대 후반부터 점토로 생명체의 뼈대를 빚고 실리콘이나 유리섬유, 레진 등으로 살을 붙이는 작업을 해 왔다. 작가의 손끝에서 정교하게 재현된 조각은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만 같다. 실제 모습과의 차이라면 크기가 훨씬 크거나 작다는 것.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7월 13일까지 론 뮤익 개인전이 열린다. 아시아 전시로는 최대 규모로, 조각 작품과 함께 작가의 작업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사진 연작, 다큐멘터리 필름 등 30여 점을 전시한다. 뮤익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반드시 실제로 봐야 한다. 누구나 느끼겠지만 그저 ‘놀랍다’ ‘잘 만들었다’라는 감탄만으로는 부족하다.

10대 연인의 수줍은 뒷모습 뒤엔 반전이 숨어 있다.
‘젊은 연인’(2013).

걸리버 나라의 이상한 사람들
아일랜드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를 떠올려 보라. 외과 의사이자 모험심 많은 선장 걸리버는 항해 중에 거인국과 소인국을 지나며 기묘한 사람들을 만난다. 이들은 걸리버보다 키가 12배 크거나 12분의 1만큼 작다. 천공에 떠 움직이는 섬 라퓨타의 주민들은 또 어떤가? 선장의 여행 일지에 따르면 라퓨타인은 늘 ‘깊은 생각에 빠져들어 말하고 듣는 기관(입과 귀)에 외부적 접촉을 가해 깨어나게 하지 않으면 말을 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을 수도 없는 상태’로 살아간다. 뮤익의 작업은 그 자체로 환상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은 먼 옛날 걸리버가 그랬듯이 낯설고도 익숙한 세계를 관찰하면서 강한 호기심과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작은 솜털 하나까지 완벽히 모사했지만 비현실적인 그의 작업이 지닌 양면성은 두에인 핸슨이나 존 드 안드레아 같은 다른 극사실주의 조각가들과 그를 구분 짓게 한다. 뮤익은 단순히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인간의 외피를 구성하는 요소를 통해 사실적인 조각 안에 영혼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예를 들어 ‘치킨/맨’(2019)을 보자. 노인과 닭의 한 판 대결이 펼쳐지고 있는 이 광경을 현실감 있게 만드는 건 아주 작은 디테일이다. 의자에 앉은 노인의 엉거주춤한 자세와 볼품없는 몸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살짝 뒤틀린 눈썹과 입술, 발끝의 불편한 긴장감, 뒤꿈치의 옅은 굳은살 같은 것이 포착된다. 이런 사소한 요소는 인물의 신체적 상태는 물론 불같은 성미와 평소 버릇까지 짐작케 한다. 또 ‘젊은 연인’(2013)을 보면, 몸을 밀착한 남녀의 등 뒤에서 힘이 들어간 소년의 팔과 소녀의 손동작을 통해 곧 일어날 비밀스럽고 위험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관찰 대상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형편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옷차림과 매무새, 청결 상태 또한 시선을 끈다. 작가는 일상에서는 포착하기 어려운 순간적인 장면이나 시야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상황, 하찮아서 놓치기 쉬운 삶의 작은 흔적을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표현했다. 흥미로운 건 어떤 작품은 너무 커서, 또 어떤 작품은 너무 작아서 자꾸 더 자세히 보게 된다는 점이다.

‘치킨/맨’은 노인의 발뒤꿈치까지 잘 봐야 한다.
두개골 100개로 방 안을 가득 채운 ‘매스’(2016~2017).

100개의 해골과 실존적 질문
“저는 실물 크기의 모형은 만들지 않습니다. 전혀 흥미롭지 않기 때문이죠. 현실에서 우리는 매일 그런 사람들을 만나니까요.” 2003년 1월 영국의 예술 잡지 <조각(Sculpture)>에 실린 한 인터뷰에서 뮤익은 이렇게 말했다. 참고로 그는 공개적인 장소는 물론 자신의 작품 기자 간담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대신 그에게는 20년 이상 호흡을 맞춰 온 조력자들이 있다. 이들은 작가의 대변인이자 눈과 손이 되어 전시 현장에서 작품 설치와 세부 계획을 관리한다. 하지만 작품 자체는 어디까지나 절대적 창조자 뮤익에게서 비롯된다. 작업은 대부분 수작업으로 진행되며, 놀랍게도 그는 혼자 일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출품작의 작업 과정과 작가의 수행자적 면모를 보여 주는 영상, 그리고 스튜디오 사진을 공개한다. 이 기록물은 작가의 오랜 친구이기도 한 프랑스 사진가 고티에 드블롱드가 25년간 촬영한 것이다.
몇 해 전 뮤익은 영국 남쪽 해협 와이트섬의 조용한 바닷가 마을 벤트너로 스튜디오를 옮겼다. 스튜디오의 살림살이는 단출하고, 그의 일과는 늘 변함없이 느리게 흘러간다. 거대한 두개골이 놓인 스튜디오 안뜰에서 까마귀에게 밥을 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묵묵히 일만 한다. 온종일 조각을 주무르고 매만지다 가만히 바라보고, 다시 이를 반복한다. 실제 모델이 존재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책 속 사진이나 이미지, 자신의 모습을 참고해 밑그림을 만든다. 그리고 해가 지면 해변을 따라 걸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장인이 혼신의 힘을 다해 완성하는 수공예품이 그렇듯 그가 1년 동안 만드는 작품은 고작해야 한두 점. 작가의 국제적 명성을 고려하면 상당히 적은 수다. 영상 속에서 스튜디오 안뜰에 있던 두개골은 이번 <론 뮤익>전의 하이라이트다. 사람 키만 한 크기의 하얀 두개골 원본을 만드는 데 1년이 걸렸고, 남은 99개를 만드는 데 다시 또 1년이 걸렸다고 한다.

곤히 잠든 이 얼굴은 작가 자신의 모습이다. ‘마스크 II’(2002).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2017년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의 의뢰로 제작한 ‘매스’는 전시 장소에 따라 설치 방식이 달라진다. 중세 시대 흑사병 사망자들의 시신을 수습해 둔 파리의 지하 무덤 카타콩브에서 무수한 해골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는 작가는 서울 전시에서 작은 창이 난 14미터 높이의 전시실에 100개의 해골을 쌓았다. 국군기무사령부 옛터이자 조선 왕조 종친부의 경근당과 옥첩당이 자리한 미술관에서 관람객은 초현실적인 바니타스(vanitas)를 경험한다. 해골, 시계, 꽃 같은 죽음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구성된 17세기 바니타스 정물화가 생명의 유한함과 세속적 가치의 덧없음을 상기시킨다면, 이 현대적 바니타스는 산 자의 형상(조각)과 죽은 자의 형체(두개골),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사람(관람객)과 만나 무엇보다 강렬한 생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뮤익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실감 나는 무대를 통해 인간의 조건,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오늘날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가 만든 조각 공원은 테마파크처럼 환상적이지만 인간과 똑같은 형상에 잠재된 진실성은 관객에게 실존적 질문을 던지며 기시감과 함께 묘한 거리감을 자아낸다.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 잠시 멈춰 있던 세상은 전시장 밖으로 나서는 순간 다시 움직인다. 시간은 바삐 흐르고 주변은 시끄럽다. 사람들은 오늘도 분주하다.
어쨌거나 삶은 계속된다. 수천 년 전에도 그러했던 것처럼. 비록 공명의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잔상은 꽤 오래 남는다. 우리의 마음을 깨우던 반짝이는 울림. 어쩌면 그로 인해 세상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지도 모른다.

전시실 한쪽에서는 그가 작업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영상이 상영된다.

론 뮤익 Ron Mueck
장난감 제작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론 뮤익은 영화·TV용 마네킹 을 제작하며 상업 미술 세계에서 활동해 왔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그가 예술 활동을 시작한 건 1996년 영국 화가 파울라 레고의 전시를 위한 피노키오를 제작하면서부터다. 유명 컬렉터 찰스 사치가 이 조각품을 보고 그의 예술적 재능에 관심을 보였으며, 이후 영국 런던 왕립 미술원에서 열린 전시 <센세이션: 사치 컬렉션에서 온 젊은 영국 작가들>에서 눈감은 아버지의 모습을 3분의 2 크기로 재현한 작품 ‘죽은 아버지’(1996~1997)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2001년에는 제49회 베니스비엔날레에 ‘소년’(1999)을 출품했다. 현재 그의 작품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미국의 휴스턴 미술관, 영국 테이트 모던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