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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 가는 비밀의 문 가야고분군

2026년 08월 01일

  • Editor 이미선
  • pHOTOGRAPHER 안홍범
  • ILLUSTRATOR 에이치h(김정희)
  • 제작 지원 (재)가야고분군 세계유산관리재단

짙은 어둠이 물러가고 안개가 걷히자 부드러운 능선 아래 잠들어 있던 시간이 깨어난다. 1500년 전 최고 권력을 누렸던 이들이 비밀의 문을 열고 건너와 사라진 역사의 틈을 촘촘하게 메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가야고분군은 가야를 대표하는 7개 고분군으로 이뤄졌다. 1~6세기에 걸쳐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가야는 주변의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와 병존하면서 연맹 형태로, 때로는 독립성을 유지하며 공생했다. 초기에는 김해를 중심으로 한 금관가야가 우세했지만, 후기에는 고령의 대가야가 핵심 세력으로 떠올랐다. 가야는 뛰어난 철 생산 기술을 바탕으로 주변국과 교류하며 5세기 후반 전성기를 누렸으나, 562년 대가야의 멸망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가야고분군은 기록이 거의 남지 않아 ‘잊힌 왕국’으로 불리는 가야 문명의 소중한 유적이다. 동아시아의 여러 고대 문명 가운데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왕국들이 경쟁하면서 공존한 것을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합천 옥전고분군

경남 합천군 쌍책 지역 일대의 가야 정치체*를 대표하는 고분군. 용과 봉황이 새겨진 큰 칼과 다량의 철제 무기류, 금은 장신구 등이 출토돼 가야 금속공예의 우수성을 증명했다. 또한 고대의 구슬이 많이 출토돼 ‘옥전(玉田)’으로 불렸다고 한다. 황강 주변 구릉지에 위치하며 1980년대까지 숲으로 덮여 있었다.
조성 시기 4~6세기 위치 경남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 산23-18
문의 055-930-4882(합천박물관)
*정치체 정치적 권력이 작동하는 공동체나 사회조직. 국가나 부족 연맹, 초기 국가 단계 등 통치 권력이 성립된 조직을 가리킨다.

김해 대성동고분군

금관가야 지배층이 묻힌 고분군이다. 초기 가야 정치체의 공통적인 고분의 속성이 잘 드러난다. 중국과 일본에서 들여온 교역품은 금관가야가 동북아시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려 준다. 고분군이 형성될 당시에는 남쪽이 바다였으나, 퇴적물이 쌓이고 여러 차례 매립 공사를 거치면서 1970년대에 이르러 바다와 완전히 멀어졌다.
조성 시기 1~5세기 위치 경남 김해시 가야의길 126
문의 055-350-0401(대성동고분박물관)

창녕 교동과 송현동고분군

비화가야를 대표하는 고분군. 발굴 초기 신라와 가야 중 어느 곳의 유적인지 알 수 없어 논란이 있었지만, 무덤 형태와 부장품을 통해 가야 고분임을 밝혀냈다. 5세기의 고분은 구릉지 능선에, 6세기의 고분은 구릉지 동쪽 사면에 위치한다. 가야 멸망 후 7세기 후반까지 신라 고분이 추가됐다. 일제강점기에 대대적인 발굴이 이뤄져 엄청난 양의 유물이 출토됐지만 대부분 일본으로 반출되고 고분은 파괴됐다.
조성 시기 5~6세기 위치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리 124(교동고분군), 송현리 102(송현동고분군)
문의 055-530-1500(창녕박물관)

고령 지산동고분군

가야 후기 북부 지역을 통합하며 성장한 대가야를 대표하는 고분군. 고분 수백 기가 산 정상부부터 낮은 구릉까지 밀집돼 있어 대가야 최전성기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대형 고분은 주 능선을 따라 연속적으로 조성하고, 중소형 고분은 가지 능선 사면부에 배치했다. 부근에 대가야박물관과 왕릉전시관이 있다.
조성 시기 5~6세기 위치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산23-1
문의 054-950-7103(대가야박물관)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

세계유산에 등재된 가야고분군 중 유일하게 전북에 위치해 가야의 지리적 범위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유곡리와 두락리에 40여 기의 고분이 분포한다. 중국계 청동거울과 백제계 금동 신발, 목걸이, 유리구슬은 백제 왕릉의 부장품과 흡사하지만, 토기의 세부 양식에서 대가야의 흔적이 보여 대가야와의 관계성을 드러낸다.
조성 시기 5~6세기 위치 전북 남원시 성내길 35-4 문의 063-620-6158(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가야고분군 홍보관)

© 가야고분군 세계유산관리 재단

고성 송학동고분군

소가야를 대표하는 고분군으로, 무기산 일대에 고분 7기가 모여 있다. 낮은 구릉지에 봉토를 높게 쌓고 상부를 굴착해 매장부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무덤을 만들었다. 금동 귀걸이, 금동 장식 큰 칼, 높은 청동 잔, 유리구슬 등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소가야는 주변 가야 연맹은 물론 백제, 일본과도 교역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성 시기 5~6세기 위치 경남 고성군 고성읍 송학리 470
문의 055-670-5822(고성박물관)

함안 말이산고분군

아라가야를 대표하는 고분군. 가야고분군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조성됐다. 목관묘부터 목곽묘, 석곽묘, 석실묘 등 묘제에 따라 봉토의 크기가 거대해지는 단계를 가시적으로 보여 준다. 아라가야의 중심지인 함안분지 중앙, 남북으로 길게 뻗은 독립된 구릉지에 조성되어 경관이 뛰어나다. 유적으로 지정되기 전 주민들이 봉분의 경사지를 일궈 농사지은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성 시기 1~6세기 위치 경남 함안군 가야읍 고분길 153-31
문의 055-580-3901(함안박물관)

잃어버린 문명을 찾아서

사학자 에드워드 할렛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 규정했다. 고대에 죽은 이의 무덤인 고분은 지금을 사는 우리와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궁금증을 품고 가야고분군을 찾았다.

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른 차원으로 가는 입구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한반도 남부에서 500년 이상 존속한 고대국가지만, 가야사에 대한 지식은 단편적이고 부정확하다. 6개 나라로 구성됐으며, 시조는 김수로왕이고 부인은 허황옥이라는 정도가 전부다. 교육기관에서 가야사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존재했으나 낯설기만 한 가야의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세계적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가야고분군을 세심히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종종 땅속에 잠든 이들이 다른 차원의 문을 열고 긴 시간을 건너와 말을 거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고분을 보고 나면 점선처럼 끊긴 시간의 빈칸을 채울 수 있을까. 잊힌 역사의 단서를 찾아 비밀의 문을 열었다.

창녕박물관 옆에 위치한 계성고분이전복원관. 비화가야의 무덤으로 열두 방향 방사형으로 조성한 것과 봉분을 크고 높게 만들기 위해 점도가 서로 다른 흙을 번갈아 쌓은 것이 확인된다.

금관가야부터 대가야까지, 500년을 거슬러 올라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가야고분군은 가야의 대표 고분군 7개를 묶은 연속유산이다. 김해 대성동고분군, 함안 말이산고분군, 합천 옥전고분군, 고령 지산동고분군, 고성 송학동고분군,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고분군까지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김해의 가야고분군 세계유산관리재단을 찾아 백승옥 사무처장에게 가야고분군 감상법을 물었다. 그는 무엇보다 여유를 갖고 천천히 둘러보라고 말했다. “고분군은 24시간 개방해요.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고분을 감상할 수 있는 새벽이나 해 질 무렵, 별과 달이 뜨는 시간에 방문해 보세요. 문화 해설을 예약하면 유물의 의미와 상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7개 고분군을 모두 둘러본 다음에는 가야사 특화 박물관인 국립김해박물관을 들르면 좋다고 덧붙였다. “테마를 정하고 여행하는 것도 의미 있어요. 묘제와 토기를 보면, 왜 가야를 각각 고유의 정체성을 가진 독립된 정치체라 하는지 알게 될 거예요.”
백승옥 사무처장이 권한 대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금관가야 권역인 김해 대성동고분군에 들렀다가 내륙으로 올라가면서 아라가야 권역인 함안 말이산고분군과 함께 대가야 권역인 고령 지산동고분군 등을 둘러보기로 했다.

내 최초로 확인된 대규모 순장 무덤인 지산동 44호분 내부를 재현한 고령 대가야박물관의 왕릉전시관. 관람객이 실물 크기로 만든 고분 안에 들어가 무덤 구조와 축조 방식을 볼 수 있도록 했다.

가야사의 비밀을 푸는 열쇠, 고분
두꺼운 잿빛 구름이 지표 가까이 내려오더니 밤사이 비가 지나가고 하늘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둠이 걷히기 전 서둘러 대성동고분군으로 향했다. 운동 나온 주민들이 여명을 헤치고 고분군이 있는 구릉 위를 오른다. 드론을 띄워 주변을 살피니 철로 아래로 강이 흐르고, 고분군 주변에 키 작은 집들이 밀집해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나 가야 유적이라는 거창한 수식어 이전에 주민들의 일상과 함께하는 공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야트막한 구릉지에 터를 잡은 대성동고분군은 고분 하면 연상되는 봉분이 없다. 나무로 널방을 만들고 뚜껑을 덮은 나무 덧널무덤의 구조적 특성상 시간이 흐르면서 내부가 함몰된 탓이다. 무덤인 줄 모르고 그 위에 집을 짓거나 밭을 일궈 농사를 지었다는 얘기가 그제야 이해된다. 대성동고분군은 발굴 조사 후에도 발견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봉분을 만들지 않고, 고분이 있던 자리에 회양목을 심어 무덤 형태를 그대로 드러냈다.
가야의 고분 양식은 널무덤, 덧널무덤, 구덩식 돌덧널무덤, 굴식 돌방무덤 순으로 변화했다. 널무덤은 땅에 구덩이를 파고 관(널)을 묻는 형태이고, 덧널무덤은 나무로 방을 만들어 관을 넣는 방식으로 부장품 껴묻을 공간이 넉넉했다. 3세기 후반부터는 대형 덧널무덤이 등장했고, 장례에 더 많은 재물을 소비했다. 순장이 시작된 것도 이즈음이다. 구덩식 돌덧널무덤은 4세기 후반 금관가야 지역에서 가장 먼저 나타났다. 돌을 쌓아 벽을 만들고 위에서 관을 넣는 방식으로, 이때부터 거대한 봉분을 갖춘 고총으로 발전했다. 6세기에 들어서자 깬돌로 널방을 만들고 외부로 통하는 널길을 만든 뒤 흙으로 씌운 돌방무덤이 등장한다. 널길은 추가로 매장할 것을 고려한 형태다.
가야고분군을 더욱 흥미롭게 여행하려면 야외 전시장에서 시기별 무덤 형태를 비교해 보는 것도 좋다. 김해 대성동고분군에서는 명당을 찾아 각기 다른 시대에 이중으로 묘를 쓴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창녕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에서는 굴식 돌방무덤의 널길은 물론 대형 봉분을 조성하기 위해 점성이 다른 흙을 겹겹이 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령 대가야박물관 왕릉전시관에는 장소 선정부터 무덤구덩이 파기, 돌방과 돌덧널 만들기를 비롯해 봉분을 만들고 제사 지내는 전 과정을 설명한 디오라마를 전시했다.

대성동고분군 88호분 덧널무덤 발굴 당시를 재현한 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가 들려주는 이야기
사람이 죽어도 영혼은 사라지지 않고 시간의 틈에 잠들어 있다가 밤이면 어둠을 가르고 나와 축제를 연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무덤 안에 이토록 많은 부장품을 넣은 걸 보면 가야인도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가야고분군에서 출토된 부장품 중 가장 귀여운 유물은 사슴모양뿔잔이다. 사슴이 뒤를 돌아보는 순간을 포착한 상형 토기로, 타원형 몸체와 과장된 엉덩이, 아래로 처진 꼬리가 절로 미소 짓게 한다. 그 위에 U자형 뿔잔을 올려 완성했다. 굽다리에 새긴 불꽃무늬 구멍은 아라가야 유물임을 드러낸다.
가야고분군을 흥미롭게 여행하는 두 번째 방법은 각 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살펴보는 것이다. 능수능란하게 불을 다룬 가야인은 기원전 1세기 무렵 와질 토기를 만들었다. 질감이 기와와 비슷하고 회흑색을 띠는 와질 토기는 주로 무덤에서 출토되어 제사 그릇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3세기 후반에는 기술의 발달로 섭씨 1000도 이상의 굴가마에서 단단한 토기를 굽게 됐다. 이렇게 만든 도질 토기는 회청색을 띠는데, 주로 의례나 장식용으로 사용했다. 지배 계층의 무덤에 토기 수십 개를 껴묻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이다. 이러한 변화는 부와 권력이 지배 계층으로 집중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
하나의 나라로 합쳐지지 않았던 가야는 자율과 공존을 중시했다. 이를 가장 잘 확인해 주는 것이 토기다. 가야 사람들은 지역별로 개성이 뚜렷한 토기를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어 썼다. 굽다리접시, 긴 목 항아리, 그릇받침, 뚜껑접시 등은 여러 가야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특히 긴 굽다리 위에 얕은 접시를 붙인 굽다리접시는 굽 구멍의 무늬와 형태에 따라 어느 가야의 토기인지 알 수 있다. 금관가야의 것은 입이 바깥으로 벌어진 형태이고, 아라가야의 굽다리접시에는 불꽃무늬 구멍이 있으며, 소가야는 동그라미나 세모 구멍으로 개성을 드러냈다. 비화가야는 긴 사다리꼴 구멍을 2단으로 교차해 굽다리를 만들었는데, 이 형태를 축소해 만든 손잡이를 그릇 뚜껑에 달았다.
대가야 권역에 들어서자 중앙집권 국가로 나아가려던 흔적이 보였다. 대가야는 고령을 중심으로 영토 확장에 힘을 쏟았는데, 최근 대가야 왕궁지에서 발견된 토기에 공통적으로 ‘대왕(大王)’이라는 한자가 적혀 있었다. ‘왕 중의 왕’이라는 뜻이다. 백승옥 사무처장은 가야 멸망의 이유 중 하나로 고유한 정치체제의 붕괴를 들었다. 공존과 상생을 유지했다면 세력이 커지지는 못했더라도 더 오래 존속했을지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창녕박물관 상설 전시실에는 창녕 교동과 송현동고분군, 계성고분군 등 가야 고분군에서 출토된 대형 토기를 전시했다.
함안 말이산고분군 45호분에서 출토된 봉황장식 금동관.

첨단 기술을 가진 철의 나라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는 7개의 고분군이 등재됐지만, 실제로 가야 영역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발견된 고분군은 30개가 넘는다. 이로 보아 일부 정치체가 몇 개의 고분군을 거느렸던 것으로 보인다. 가야는 하나의 국가도, 연맹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서로를 침략하지 않았을까. 독립된 정치체를 유지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이 있다.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추고, 이를 운영할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고대국가에서 부를 축적하고 군사를 무장시킬 수 있는 자원은 철이다. 가야의 성장 기반 역시 철이었다.
옛 가야 지역인 변한은 삼한 중에서도 철이 가장 많이 생산된 곳이었다. 가야는 철을 이용해 농업 생산력을 높이고, 무기를 만들어 군사력을 강화했으며, 무역으로 부를 창출했다. 특히 가야 고분에서 나오는 덩이쇠는 불순물이 제거된 철 덩이로, 크기나 모양을 일정하게 만들어 화폐처럼 사용했다. 언제든 녹여 필요한 철제 도구를 만들 수 있었다.
가야고분군에서 출토된 철제 유물 중에는 말갖춤과 무기가 특히 많다. 말갖춤은 안장, 발걸이, 재갈 등 말을 제어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를 말한다. 화려한 장식을 더한 말띠드리개, 말띠꾸미개, 말방울, 기꽂이 등은 의장용이고, 말 갑옷과 말 투구는 전투용이다. 고대사회에서는 신분이 높은 사람만 말을 탈 수 있었으니, 출토된 말갖춤만 봐도 무덤 주인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무기류로는 고리자루큰칼, 쇠창, 화살촉, 갑옷, 투구 등이 출토됐다. 가야의 고리자루큰칼은 손잡이와 칼집에 화려한 장식이 있다. 특히 옥전고분군에서는 한 고분에서 고리자루큰칼 네 자루가 발견됐다. 그중 용봉무늬고리자루큰칼은 고리 안쪽에 용과 봉황이 조각돼 있다. 손잡이 부분은 나무를 덧대고 그 위에 두꺼운 은사를 감았으며, 손잡이 윗부분과 칼집에 용 문양 금판을 돌려 장식했다. 현대의 기술으로도 재현하기 어려운 정교함에서 가야인의 우수한 제철 기술과 탁월한 예술성을 짐작할 수 있다.
가야는 철을 중심으로 주변국과 교류했으며 바닷길을 이용한 무역도 활발했다. 대성동고분군에서는 중국계 청동 솥과 호랑이 모양 띠고리가 출토됐고, 지산동고분군에서는 일본 오키나와산 야광 조개로 만든 국자가 확인됐으며, 옥전고분군에서는 서역과 관련된 로만 글라스가 나왔다. 일본 고대 유적에서도 가야계 유물로 여겨지는 토기나 덩이쇠 등이 출토됐다.
가야가 중앙집권 국가로 나아가지 않고 연맹국 또는 개별국으로 남았던 이유가 각각의 정치체가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렸기 때문이거나, 분지에 자리 잡은 정치체들을 통일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낭만적 상상을 더하자면, 아마도 가야 사람들은 이웃을 침략해 세력을 키우고 영토를 넓히는 것보다 상생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지 않았을까 싶다. 가야고분군을 여행하며 오래된 지혜는 낡은 유물이 아니라 우리가 도달해야 할 미래라고 생각했다.

2026 세계유산축전-가야고분군

‘함께 가는 길, 동행’을 주제로 7개 가야고분군에서 2026 세계유산축전-가야고분군이 열린다.

일일 고고학자가 된 기분으로 가야 유물을 발굴하고, 어스름한 저녁 고분군을 배경으로 명상을 한 후 어둠이 내린 고분군을 산책하며 1500년 전 가야인이 봤을 별자리를 찾는다. 2026 세계유산축전–가야고분군에 참여하면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 세계유산축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국내 세계유산의 가치를 알리고 함께 즐기는 행사다. 가야고분군은 올해 ‘함께 가는 길, 동행’을 주제로 가야고분군의 역사와 문화를 공연, 체험, 전시, 교육 등 다양한 콘텐츠로 선보인다. 경남·경북·전북에 위치한 7개 가야고분군은 각기 다른 개성을 간직하면서도 하나의 문명을 이룬 연속유산이다. 이번 행사에서는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린 프로그램과 함께 가야고분군의 연결성을 경험할 수 있다.

세계유산축전 개막식
2026 세계유산축전–가야고분군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식은 ‘7개의 이야기, 하나의 문명’을 주제로 한다. 3개 광역자치단체와 7개 기초자치단체에 흩어져 있는 가야고분군이 하나의 무대로 연결되며 연속유산으로서의 의미와 가야 문명의 가치를 공연으로 풀어낸다. 하늘, 땅, 불, 물, 바람 등 자연의 요소를 모티브로 영상, 음악, 무용, 퍼포먼스를 결합한 대형 멀티미디어 공연으로 구성된다. 철기 문화와 교류, 공존의 역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무대는 가야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감동적인 장면을 선사할 것이다.
일시 8월 28일 오후 7시
장소 경남 함안박물관 일원

2026 세계유산축전-가야고분군

기간 8월 28일~9월 10일
장소 세계유산 가야고분군 7개 및 박물관 일원
문의 055-338-6784

INTERVIEW

세계유산축전 총감독 류재현
가야로 가는 시간의 문이 열리고 특별한 손님맞이가 시작된다. 류재현 총감독이 고대와 현대를 감각적으로 연결한다.

가야고분군을 축전으로 풀어내기 위해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가야고분군을 단순한 유적이 아닌 당대 최고의 건축물로 재조명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관람객이 고분 속에 잠들어 있던 유물을 통해 가야가 얼마나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었는지 체감할 수 있도록 축전을 기획했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기면서 고분의 묘제와 축조 과정, 토기의 변화 등을 살펴보면 가야와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것입니다. 특히 각 고분군 곁에 자리한 박물관에서는 가야 문화의 독창성과 예술성을 깊이 있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 축전의 부제는 ‘함께 가는 길, 동행’입니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가야의 역사적 특성이 담겨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7개 고분군을 살펴보면, 각 정치체가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연맹을 이루어 공존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축전에서는 고분 축조와 발굴을 체험하는 교육 프로그램은 물론, 축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주제 공연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만날 수 있습니다. 교육·문화·예술 프로그램이 각 고분군에서 동시에 펼쳐지며, 서로 다른 지역이 하나로 연결된 가야를 입체적으로 보여 줄 것입니다.

축전을 즐기는 팁을 알려 주세요. 가야 문화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K-컬처의 중요한 뿌리 중 하나로, 이번 축전에서는 고분군을 배경으로 고대와 현대를 잇는 특별한 예술적 경험을 선사합니다. 명상과 요가를 하며 1500년 전 가야를 상상하고, 등불을 들고 고분군을 걷는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발레리나 강미선, 첼리스트 김민지, 마임이스트 유진규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펼치는 공연도 꼭 관람하길 바랍니다. 가야 문화의 우수함과 매력을 온전히 느끼는 동시에 치유와 사유의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달빛 아래 반짝이는 고분에서 공연 감상하기

해 질 무렵 고분군에서 시작하는 명상과 요가, 달빛 아래서 지역 예술인과 함께하는 공연, 국내 정상급 클래식·전통 예술·무용 아티스트가 선보이는 특별 무대까지! ‘야금夜금’은 세계유산을 배경으로 단 하루만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관객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커뮤니티 프로그램도 열린다. 7개 가야고분군의 서로 다른 풍경을 무대로 펼쳐지는 ‘야금夜금’은 공연과 휴식,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특별한 시간을 선사한다.

유물 발굴과 고분 축조에 도전하기

사라진 줄 알았던 가야가 긴 시간을 넘어 되살아난 건, 정성스럽게 고분을 만들고 토기와 철기 등을 제작한 가야의 장인과 고분에서 발견된 유물의 수수께끼를 푼 고고학자의 노력 덕분이다. 세계유산축전에서는 가야의 장인 또는 현대의 고고학자가 되어 세계유산을 직접 체험하는 참여형 프로그램 ‘나도 해보자! 유물 발굴’을 준비했다. ‘고분 축조 장인 체험’과 ‘고분 발굴 체험’ 두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참가자는 원하는 프로그램을 선택해 가야의 장인이 되어 석곽묘를 축조하거나 고고학자가 되어 발굴 조사나 유물 수습을 체험한다. 고고학 조사 과정을 교육 콘텐츠로 재구성해 가야고분군의 역사와 세계유산의 가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플로깅 후 고분 피크닉 즐기기

‘맛있는 가야, 즐거운 가야’는 역사와 자연, 미식과 공연이 어우러진 프로그램이다. 플로깅을 하며 고분군 주변 환경을 정화하고 세계유산 보존과 탄소 중립 실천의 중요성을 체험하는 ‘지키Go 가야’, 주요 고분을 거닐며 가야의 역사와 문화유산의 가치를 배우는 스탬프 투어형 미션 프로그램 ‘배우Go 가야’, 고분에서 피크닉을 즐기며 공연을 관람하는 ‘즐기Go 가야’를 진행한다. ‘지키Go 가야’는 행운권 추첨 기회를, ‘배우Go 가야’에는 7개 지역의 로컬 다과 꾸러미를 제공한다.

세계유산 사진작가로 데뷔하기

‘초대, 가야로 온 세계유산’은 세계유산을 기록하고 함께 나누는 참여형 사진 프로젝트다. 가야고분군의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 온라인 공모전에 도전해 보자. 우수작으로 선정되면 축전 기간 중 온·오프라인 전시를 통해 관람객과 만나고, 현장 투표로 특별한 수상의 영광까지 주어진다. 누구나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가야고분군의 풍경을 기록하며 세계유산의 가치를 함께 만들어 가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어린이 해설사에게 세계유산 배우기

아이들의 시선으로 만나는 세계유산 이야기. ‘우리는 세계유산 해설사’는 사전 교육을 받은 어린이 해설사들이 방문객과 함께 고분군을 걸으며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린이 눈높이에서 들려주는 생생한 해설이 세계유산을 더욱 쉽고 친근하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미래 세대가 세계유산의 가치를 함께 이어 간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다.

가야의 여름철 별자리 찾기

1500년 전 가야인이 바라보던 밤하늘과 만나는 특별한 밤이 기다리고 있다. ‘별 보러 가야로!’는 고분군을 배경으로 천문 전문가와 함께 천체망원경으로 여름철 별자리를 관측하고, 가야의 하늘과 별에 담긴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이다. ‘가야의 여름철 별자리’를 테마로 하며 말이산고분군 13호분 덮개돌에 새겨진 별자리, 운석충돌구와 옥전고분군,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지산동고분군,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교동과 송현동고분군 등 각 고분군의 특성을 반영한 스토리텔링이 더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