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경기장 밖에서도 홈런 치는 야구

2026년 08월 01일

  • writer 정수진(대중문화 칼럼니스트)

한국 프로야구 관중 1000만 시대. 올해도 KBO 리그는 상반기 388경기 만에 700만 관중을 넘으며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흥미로운 건 야구의 존재감이 경기장 밖까지 확장됐다는 점이다. 야구는 어떻게 강력한 콘텐츠가 됐을까.

한국 프로야구는 출범 때부터 연고지 중심으로 팬층이 탄탄하고 팀 충성도가 높았다. 이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온 세상이 야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분위기다. 요즘은 어디서든 야구 얘기다. 암흑 같던 코로나19 시대의 영향이 컸다. 엔데믹 이후 모임을 금지당한 것에 대한 보복 심리로 사람들은 야구장으로 몰려들어 경기를 보고, 응원을 하며, 음식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전에 비해 젊은 층도 많아졌다. 특히 2030세대와 여성 관중의 유입이 도드라지는데, 2025년 프로야구 팬 가운데 약 57.5퍼센트가 여성이다. 신규 팬덤의 유입은 프로야구 신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치열한 티켓 예매 전쟁을 뚫고 경기장에 입장하면 오픈런으로 유니폼을 사고, 한정판 ‘야푸(야구장 푸드)’를 야무지게 먹으며 소셜 미디어에 인증 사진을 올린다. 경기가 끝나도 열기는 식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한정판 협업 상품을 수집하고, 백화점 팝업 스토어에 줄을 서 굿즈를 산다. 집에서는 야구 예능으로 도파민을 충족시키고, 2차 저작물도 부지런히 게시한다. 심지어 경기가 없는 날도 야구장을 찾는다. 경기장을 지역 주민들에게 친숙한 공간으로 만들려는 구단들이 야구장에서의 러닝, 요가, 반려견 산책 같은 이색 프로그램을 잇따라 마련한 것이다. 야구가 그라운드 밖 일상 전체를 뒤흔드는 세계관으로 확장된 모습이다.

인기 IP로 자리 잡은 프로야구
야구 산업의 인기는 숫자로도 증명된다. 프로야구 연간 생산 유발액은 약 1조 1121억 원, 부가가치 유발액은 4653억 원에 달한다. 이 매력적인 숫자를 브랜드와 기업이 놓칠 리 없다. 롯데웰푸드가 10개 구단 엠블럼을 입힌 한정판 빼빼로와 꼬깔콘, 자일리톨을 내놓아 사전 예약 물량을 조기 완판시켰고, 팔도는 한정판 팔도비빔면 패키지를 기반으로 선수 프로필 카드 수집부터 경기 예측과 랭킹 경쟁이 가능한 참여형 이벤트로 야구팬을 공략했다. 인기 캐릭터 춘식이를 앞세워 수년째 프로야구단 굿즈를 출시하고 있는 카카오프렌즈, 롯데 자이언츠와 협업해 부산 매장 오픈 기념 티셔츠를 출시한 유니클로 등 야구 마케팅은 유통 산업 전반으로 확산 중이다. 브랜드 입장에서 야구는 무척 매력적인 파트너다. 경기가 시즌 내내 반복 노출되는 데다, 한번 마음을 준 팬은 좀처럼 이탈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 또한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세계관을 구매한다는 점에서 일반 소비와는 다른 즐거움을 얻는다. 이제 야구는 그라운드를 넘어 거대한 소비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다만 잦은 협업이 희소성을 떨어뜨릴 수 있기에 구단과 브랜드 모두 적정선을 고민하는 분위기다.

예능 콘텐츠 강자로 떠오른 야구
방송 콘텐츠 시장에서도 야구는 검증된 흥행 카드다. 레전드 프로야구 은퇴 선수들이 한 팀을 이룬 <최강야구>는 ‘야알못(야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당긴 신호탄이었다.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 <불꽃야구>도 인기를 끌었고, 여성 운동선수들이 야구에 도전하는 <야구여왕>과 은퇴한 스타들이 유소년 선수들을 선발해 리그전을 치르는 <우리동네 야구대장>이 야구 콘셉트 예능의 저변을 넓혔다. 패널들이 모여 구단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설전을 벌이기도 하는 ‘입야구’ 프로그램도 눈에 띈다. 한화 이글스 찐팬 연예인들의 처절한 응원기를 담은 <찐팬구역>과 10개 구단을 대표하는 패널들이 구단·선수·팬 문화에 대해 토론하며 시즌 3까지 제작한 <야구대표자>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입야구 프로그램은 커뮤니티의 화법과 유머를 그대로 옮겨 오며 기존 팬들에겐 친숙하게 다가가고, 신규 시청자에겐 친절한 입문 가이드 역할을 한다.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김성근의 겨울방학> <야구기인 임찬규> 같은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야구와 사랑에 빠진 드라마
드라마는 향후 야구의 확장성을 뚜렷하게 증명할 장르로 보인다. 2019년에 방영한 <스토브리그> 이후 오랫동안 야구 드라마가 뜸했는데, 올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야구 소재 드라마가 줄줄이 예고되어 있다. 먼저 커리어가 끊긴 야구 선수가 변호사 출신 에이전트를 만나 그라운드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린 <너의 그라운드>가 하반기에 편성됐다. 공명과 한효주의 프로야구 직관이 기사화되면서 화제가 됐다. 2027년에는 남다른 능력이 생긴 프로팀 야구 코치가 고교 꼴찌팀 감독으로 부임하는 김우빈 주연의 <기프트>를 선보이고, 김래원·박훈 주연의 <풀카운트>도 방영할 예정이다. 여기에 유부남들의 사회인 야구단 고군분투기를 그린 <써닝야구단>에 오정세와 전혜진이 합류 소식을 알렸고, 학창 시절 실제 야구 선수였던 최현욱도 <그린라이트> 출연을 결정했다. 이처럼 저마다 다른 색깔을 앞세운 드라마들이 불펜에서 몸을 푸는 중이다.
사실 스포츠 드라마는 룰을 알아야 몰입할 수 있어 흥행과 거리가 먼 장르로 여겨졌다. 특히 야구는 유독 룰이 복잡해 진입 장벽이 높은 종목이었다. 그럼에도 야구 소재 드라마가 급증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스토브리그>가 증명했듯 좋은 드라마는 경기 장면보다 인물들의 관계와 성장, 좌절과 재기라는 보편적 서사에 집중한다. 승패가 명확하고 역전과 반전이 자연스러운 스포츠 세계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야구를 모르는 이도 공감하는 감동을 만들어 낸다.

야구 콘텐츠의 미래
야구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확장된 이유는 무엇일까. 성적이 좋아서? 스타 선수가 많아서? 핵심은 이야기다. 야구는 이야기가 풍성한 스포츠다. 경기는 기록으로 남고, 숫자는 서사가 된다. 신인의 성장, 베테랑의 부활, 끝내기 안타, 연패와 연승, 라이벌전과 우승 경쟁까지 한 시즌 동안 수백 편의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결국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하기에 야구도 좋아하게 된다고 봐야 한다. 승패는 하루 만에 잊혀도 끝내기 안타를 치기까지의 시간, 방출 선수가 다시 그라운드에 서기까지의 과정, 연패를 견디는 팬들의 마음은 오래 남는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함께 세계관을 확장해 가는 공동 창작자로 변화한 팬들의 역할도 야구 콘텐츠의 미래를 밝게 만든다. 팬이 스스로 이야기를 이어 가는 콘텐츠야말로 가장 강력한 IP인데, 그런 의미에서 야구는 지금 가장 이상적인 팬덤 구조를 갖춘 장르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