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MADE IN SUWON

2025년 04월 28일

  • WRITER 우지경(여행 칼럼니스트)
  • photographer 장은주

수원을 만드는 사람과 공간, 일곱 가지 이야기

수원의 서점

그런 의미에서 서점에는 군데군데 책 읽기 좋은 테이블이 놓여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읽는 사람이 곧 쓰는 사람이 되는
행궁동 벽화 골목, 금보여인숙 맞은편에 자리한 ‘그런 의미에서’는 책에 오롯이 집중하기 좋은 곳이다. 계단 끝 3층에 다다르면 오래된 가정집을 개조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빈티지한 인테리어의 책방에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와 저절로 걸음이 멈춘다. 시, 소설, 에세이에 더해 독립 출판물이 꽂혀 있는 서가에는 읽고 싶은 책이 가득하다. 자몽 허니 블랙 티, 페퍼민트 루이보스, 피리 블로섬 등 4~5종의 차와 함께 위스키, 맥주도 판매해 책을 보면서 가볍게 음주를 즐기기에도 좋다. ‘책방은 읽고 싶은 책을 만나는 공간이자, 읽는 사람이 책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라고 말하는 리누 대표는 그런 의미에서 작가들의 북 토크를 자주 연다. 읽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4주에 단편소설 하나를 완성하는 ‘나의 첫 소설 쓰기’와 술을 마시며 글을 쓰는 ‘주절주절’ 모임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책방을 운영하기 전부터 독립 출판으로 책을 만들었던 리누 대표는 지난 4년간 서점과 출판사를 병행하며 11권의 에세이와 소설을 출간했고, 서울국제도서전에도 참여했다. 최근에는 5년째 서점을 운영해 온 고군분투기를 에세이집 <도대체 책방이 뭐라고>에 담았다.
주소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72번길 12

interview

리누 그런 의미에서 대표

책방을 운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책방을 인수했어요. 코로나19 팬데믹 시국이라 전공을 살려 취직하기 힘들었고, 독립 출판으로 책을 낸 터라 책방을 운영해 보기로 마음먹었죠. 2년 전에 매탄동에 있던 책방을 행궁동으로 이전했다고요. 행궁동으로 온 이유가 무엇인가요? 기존 책방은 북 토크나 모임을 하기에 공간이 좁았어요. 마침 행궁동에서 적당한 공간을 발견해 이전을 결심했죠. 행궁동은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다는 장점도 크게 작용했어요. 수원 시민은 물론 여행자들도 많이 찾아와요. 주변에 책방이 늘면서 책방 투어를 하는 분도 많아졌고요. 현재 북 토크나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나요? 네. 최근에는 오은 시인의 북 토크를 열었는데, 대전에서 온 분도 있었어요. 글쓰기 모임도 하고 있고요. 얼마 전에는 책방 창업 클래스도 시작했어요. 향후 계획이 궁금해요. 작가와 독자, 출판사가 머리를 맞대고 다채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가려고 해요. 현재 3주에 한 번 출판사 기획전을 열고 있고, 5월부터는 읽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작가 기획전’도 열 생각이에요. 독립 출판 작가 중 한 분을 선정해서 작가가 쓴 책과 그 작가를 쓰게 만든 책을 함께 전시하는 거죠. 책방에 온 독자들이 출판사 기획전을 보고, 작가 기획전도 감상하며 영감을 받을 수 있도록 꾸준히 운영할 계획입니다.

수원의 자연

나무 덱을 따라 산책하기 좋은 습지원.

일월수목원

도심 속 오아시스
일월수목원은 2023년 ‘더 살아 있는 자연을, 시민의 일상 속으로’를 모토로 일월저수지 옆에 조성한 공립 수목원이다. 방문자 센터에 들어서면 유리창 너머로 수목원 정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수목원을 찾은 관람객들이 사계절 좋아하는 공간은 온실. 지중해·호주·남아공이 고향인 식물 302종이 빼곡한 온실에 들어서면 따뜻한 지중해로 순간 이동을 한 듯한 기분이 든다. 온실에선 ‘정원을 사랑한 지중해 화가 모네’를 주제로 한 <모네×일월 특별 기획전>이 한창이다. 일월수목원의 야외 정원도 여유롭다. 희귀종 해오라기 난초가 피는 습지원 주변을 거닐거나 벤치가 놓인 숲 정원에서 쉬어 가기 좋다. 다산정원은 수원화성을 축조한 다산 정약용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조성한 공간으로 사각형 연못과 정자도 자리해 한국 전통 정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방문자 센터만 들른다면 입장료(4000원)를 내지 않고 유리창 앞 소파에 앉아 ‘식물멍’을 즐겨도 좋다. 5월 한 달간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은 오후 9시까지 개장한다.
주소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일월로 61

수원의 커피

오래된 벽돌 건물 앞마당이 노천카페가 되었다.
포트리스 원두로 만든 아인슈페너와 바닐라빈 라테.

노 스모크 위드아웃 파이어

수원의 색을 담은 스페셜티 커피
“수원의 문화를 스페셜티 커피에 담아 높이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널리 확산하고 싶어요.” 박채령 노 스모크 위드아웃 파이어(No Smoke without Fire) 대표는 커피를 매개로 수원을 알리는 로컬 브랜드를 꿈꾼다. 대학생 때부터 수원에서 살아온 박 대표는 수원 토박이 남편과 함께 로스터리 카페를 6년째 운영 중이다. 2019년 수원 구도심 교동의 양옥을 리모델링한 교동점을 시작으로, 2022년 팔달산 자락에 유림점을 오픈했다. 창 너머로 수원향교가 내려다보이는 유림점은 향교에서 전통 혼례를 올린 신랑 신부가 피로연을 여는 유림회관 내에 자리한다. 수원 시민에겐 익숙하지만 여행자에겐 낯선 이 지역에 카페를 연 건 발길이 뜸해진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림점에서 로스팅한 원두에도 수원의 색을 담았다. 포트리스(Fortress) 블렌드는 수원화성에서 착안해 콜롬비아, 브라질 생두로 농밀하고 묵직한 맛을 표현했다. 박 대표는 누구나 부담 없이 원두를 탐색하며 취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매주 수요일 저녁 무료로 퍼블릭 커핑을 진행한다.
주소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향교로 115-17(유림점)

수원의 차 문화

마당에서 바라본 경안당.
‘정조의 시간’을 예약하면 정성껏 차린 다과를 맛볼 수 있다.

경안당

정조의 어록을 아로새기며
너른 마당을 품은 카페 경안당은 한옥 특유의 따스한 감성이 흐르는 곳이다. 수원의 역사가 깃든 행궁동의 은은한 매력에 반해 경안당을 연 김경아 대표는 ‘처음 행궁동에 왔을 때 인사동과 북촌이 공존하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한다. 어떻게 하면 행궁동에 살며 이 동네와 잘 어울리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 마당이 넓은 집을 사서 전통 한옥을 지었다. 김 대표는 경안당을 찾는 손님들에게 수원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고자 ‘정조의 시간’을 마련했다. 한국 차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브랜드 ‘루하루’ 차와 함께 떡, 곶감, 딸기 모찌, 견과류 등의 다과를 맛보며 정조의 어록을 필사하는 프로그램이다. 정조의 하루 일과를 일러스트로 그린 병풍 카드에 “생각의 어긋남을 경계하라” “내가 싫은 것은 남에게 베풀지 않는다” 등 정조의 어록을 펜으로 쓰거나 스탬프로 찍으며 왕의 지혜를 배우는 시간도 흥미롭다. 정조가 남긴 말처럼 알아 간다는 것은 진정 기쁨이다.
주소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31번길 8-15

수원의 거리

<그 해 우리는 > 속 최웅의 작업실 겸 집 풍경.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촬영지로 유명해진 화홍문.

K 드라마 길

화성 옆 행궁동의 재발견
<선재 업고 튀어> <그 해 우리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공통점은? 모두 수원 행궁동에서 촬영한 K-드라마다. 과거 행궁동은 국가유산 보호구역으로 개발이 제한되어 단독주택과 한옥이 많은 동네였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던 행궁동이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건 K-드라마의 인기 덕분. 특히 <선재 업고 튀어>의 주인공 선재(변우석)와 솔(김혜윤)이 살던 파란 대문 집 앞 골목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로 아침부터 북적인다. 선재네 집은 실제 가정집이라 들어갈 수 없지만, 솔네 집은 카페라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선재와 솔이 오가던 벽화 골목과 선재의 고백 장소로 알려진 화홍문도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수원화성 북쪽 수문인 화홍문은 누각 아래 아치형 터널을 뚫어 수문을 통해 쏟아지는 물과 수원천에 놓인 징검다리가 고아한 자태를 뽐낸다. <그 해 우리는>의 주인공 최웅(최우식)의 작업실 겸 집이었던 장소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박은빈)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우영우 김밥’도 여행자들의 인기 촬영지다. 우영우 김밥은 실제로 김밥집으로 운영하며 간판을 그대로 사용해 드라마의 여운이 느껴진다.
주소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촬영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48번길 14
드라마 <그 해 우리는> 촬영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31번길 22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촬영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신풍로23번길 61

수원의 커뮤니티

공존공간

로컬 크리에이터 양성소
공존공간은 로컬 콘텐츠로 행궁동에 활력을 불어넣은 지역 경영 회사다. 시작은 행궁동 토박이 박승현 대표가 2012년부터 6년간 운영한 게스트 하우스 ‘공존공간’이었다. 박 대표는 이때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행궁동 골목 야시장 축제 ‘행페부림’과 ‘행궁동 로컬페스타’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수원의 로컬 문화를 이끌었다. 2021년에는 공존공간 사옥을 지으며 로컬 브랜드를 만들기로 뜻을 모아 양조를 시작했다. ‘정조가 만든 신도시에서 양조장을 하는 친구들’이란 의미에서 이름도 ‘신도시양조회’라고 지었다. “수원 토박이들은 팔달산을 팔딱산이라고 불러요. 지역민이 사용하는 애칭을 브랜드화해 팔딱산 막걸리를 출시했죠. 그다음으로는 추억의 원천유원지를 선보였어요.” 수원을 전면에 내세운 막걸리 브랜드는 꽤 높은 호응을 얻었다. 박 대표는 이에 힘입어 팔딱산의 온라인 판매도 추진할 생각이다. ‘재생전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술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는데 국내외 여행자들 사이에서 반응이 뜨겁다. 2021년부터는 행궁동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나 청년 사업가들이 모여들 수 있도록 코워킹 스페이스 ‘행;그라운드’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뉴스레터 서비스도 시작했다. 행궁동의 로컬 문화를 보다 깊고 널리 알리기 위한 그의 행보는 쉴 틈이 없다.
주소 경기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45번길 32

interview

박승현 공존공간 대표

왜 행궁동을 선택했나요? 공존공간의 슬로건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드는 일상’이에요. 저에게 가장 가까운 공간은 제가 나고 자란 행궁동이고요. 우리 동네에서 행복하게 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로컬 브랜드를 만든 건가요? 맞아요. 공존공간이 하는 일은 곧 ‘재생’이라고 생각해요. 신도시양조회를 통해 팔딱산과 원천유원지를 소개하며 수원의 낡은 이미지를 없애고 활력을 불어넣었어요. 그 연장선으로 술 빚는 문화를 전하고 싶어 ‘재생’에 술을 전한다는 뜻의 ‘전술’을 합쳐 재생전술이란 이름으로 우리 술 교육을 하고 있어요. 수원 내 기업부터 외국인까지 꽤 높은 호응을 얻었어요. 로컬페스타는 계속 진행할 계획인가요? 지역 상인들의 상품과 서비스가 콘텐츠화되어야 상권이 살아나잖아요. 로컬페스타는 지역 활성화를 위해 로컬 크리에이터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올해는 행궁동에 집중해서 수원화성문화제 기간 즈음에 열 예정이에요.

수원의 미술

김홍석 작가가 트럭 운전사, 대학생, 청소부 등을 극사실적 인체 조각으로 표현한 ‘침묵의 고독’.
수원컨벤션센터 지하 1층에 자리한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 광교.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 광교

호수 옆 열린 미술관
빌딩 숲과 호수가 드넓게 펼쳐진 곳에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 광교가 있다. 원천유원지가 신도시 건설과 더불어 2013년 광교호수공원으로 태어났다면, 2019년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 광교는 수원컨벤션센터 개장과 함께 광교호수공원과 이어지는 열린 미술관으로 조성됐다. 호숫가에 산책하러 왔다가 가볍게 발걸음하기에도 부담 없는 위치다. 가족 체험 전시부터 예술의 창의성을 일상에 전파하는 현대미술전까지 전시 내용도 다채롭다. 모든 전시가 무료인 것도 매력적이다.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 광교에서는 2022년부터 서로 다른 매체를 다루는 창작자 간 협업 프로젝트 <아워 세트(Our Set)>전을 열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김홍석, 박길종 두 작가의 2인전은 10월 12일까지 이어진다.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 광교에 들어서면 김홍석 작가의 작품 ‘오발 토크(Oval Talk)’와 박길종 작가의 작품 ‘서울 허수아비’ 너머로 광교호수공원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퍼포머처럼 보이는 김홍석 작가의 극사실적 인체 조각 ‘침묵의 고독’을 관람하다 보면 작가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사회의 이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유아차를 개조해 폐지를 담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박길종 작가의 작품 ‘전시 보행기’는 관람객이 직접 밀어 보며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전시 보행기’를 미는 순간 관람객은 퍼포머가 된다. 일상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일상이 되는 순간이다.
주소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광교중앙로 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