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만드는 사람과 공간, 일곱 가지 이야기
대전의 프로젝트

윙윙
낙후된 동네를 변화시킨 주인공
몇 해 전부터 대전 어궁동에선 동네 축제, 취향 모임, 해커톤(‘해킹’과 ‘마라톤’의 합성어로, 기획자나 개발자 등이 제한 시간 내에 주제에 맞는 서비스를 개발하는 공모전) 등 재미있는 이벤트가 활발히 열리고 있다. 그 중심에는 2017년 이태호 대표가 창업한 윙윙이 있다. 윙윙은 창업자와 지역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직주락(업무·주거·여가) 공간과 다양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회사다. 2017년 대전도시공사가 진행한 100억 원 규모의 도시 재생 사업에 참여해 주민과 행정기관, 전문가를 연결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동네 거점 시설을 직접 운영하기 위한 마을 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지역의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이후 윙윙은 청년 창업자들이 지역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코워킹 스페이스, 카페, 공유 공간 등을 조성했다. 어궁동의 대표 축제 ‘안녕, 축제’도 윙윙이 기획한 프로젝트다.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축제를 기획하고, 마을 상인들이 플리마켓과 장터를 여는 식이다. 동네가 활기를 띠자 재건축과 임대료 상승으로 기존 상인들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나기도 했다. 고민 끝에 윙윙은 ‘비스트리트(B.Street) 동네 자산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부동산을 매입하거나 장기 임대해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고, 창업자들의 안정적 활동을 지원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단순한 창업 지원을 넘어 함께 잘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 주민이 도전할 수 있는 공간을 늘리는 것이 윙윙의 궁극적 지향점이다.
주소 대전시 유성구 농대로 2번길 15
interview

이태호 윙윙 대표
‘어궁동’은 대전의 정식 행정구역 명칭이 아니어서 지역 주민은 물론 여행자에게도 다소 낯설게 느껴집니다. 어궁동은 충남대학교와 카이스트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어은동’과 ‘궁동’을 합쳐 부르는 명칭입니다. 부흥과 쇠퇴의 역사가 함께하는 동네죠. 1973년 대전시 유성구 일대가 대덕연구개발특구로 지정되면서 부근에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어요. 인구가 급증하면서 고급 한정식집과 술집도 많이 생겼죠. 덕분에 이 지역은 한때 자동차 운행이 어려울 정도로 번화했습니다. 하지만 전국 곳곳의 특구 개발로 점차 활기를 잃어갔습니다. 급기야 카이스트 학생들이 어은동에서 궁동으로 이동할 때 거쳐 가는 동네로 쇠락했죠. 지금은 카페와 공동체 공간, 창업 공간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눈여겨볼 만한 공간은 어디인가요? ‘세러데이커피’는 코워킹 스페이스 벌집 1층에 있는 커뮤니티 카페로, 커피에 진심인 곳입니다. 2017년부터 자체 로스팅을 시작했는데 원두 맛이 뛰어나죠. 로컬 창작자, 동네 서점, 지역 브랜드와 협업해 커뮤니티 공간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대전의 굿즈와 로컬 블렌딩 원두를 판매하고, 바리스타와 함께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마시는 세미나와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합니다. 제로 웨이스트 숍 ‘은영상점’은 다양한 친환경 제품을 비롯해 직접 만든 꿈돌이 굿즈를 판매합니다. 천연 비누, 면 생리대, 천연 고체 치약 등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고, ‘자가 수리 주간’이나 ‘의류 잡화 교환소’ 같은 특별한 이벤트도 엽니다.
대전의 창작



대전창작센터, 헤레디움, 정영복 미술공간
대전 예술의 재정립
대전은 흔히 과학·행정의 중심지로 알려졌지만 20여 개의 굵직한 미술관이 자리한 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다. 현대미술과 공연 예술,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경험하기에 대전만큼 편리한 도시도 드물다. 1930년 일제강점기부터 1990년대까지 대전세무서로 사용하던 건물을 개조한 대전창작센터도 그중 하나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공간에서 지역 예술가들의 전시가 열린다. 신진 예술가들에게 창작 공간을 제공하는 레지던시 역할도 한다. 대전창작센터에서는 오는 5월 6일까지 ‘역사의 틈새에 끼인 미시사의 공간’을 주제로 5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공백을 채우십시오>전이 열린다. 일제강점기 대표적 수탈 기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 지점을 개조한 헤레디움은 2022년에 문을 연 복합 문화 공간이다. ‘유산으로 물려받은 토지’라는 의미의 헤레디움에선 주로 클래식 음악 공연과 현대미술 전시가 열린다. 대전 예술인들이 즐겨 찾던 옛 산호다방 건물을 개조한 정영복 미술공간도 주목할 만한 전시관이다. 대전 출신 원로 작가 정영복의 이름을 딴 공간으로, 구현주의 그라피티 작업 ‘빈티지룩’이 남아 있다.
대전창작센터 대전시 중구 대종로 470
헤레디움 대전시 동구 대전로 735
정영복 미술공간 대전시 중구 중앙로112번길 29
대전의 브랜드


정동문화사
성심당을 잇는 베이커리
대전에서 성심당을 이을 만한 베이커리 브랜드가 있을까? 대전역 바로 뒤편에서 시즌 1을 끝내고 최근 철공소 거리에 새롭게 오픈한 구움 과자점 정동문화사라면 가능하다. 피낭시에 맛집으로 입소문이 자자한 정동문화사는 오픈 직후부터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인기몰이 중이다. 오후 12시에 문을 여는데, 1시간 전부터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설 정도다. 밖에서 줄을 선 후 실내로 들어와도 최소 30분은 기다려야 구움 과자를 살 수 있고, 3시쯤 되면 메뉴 대부분이 동난다. 정동문화사는 철공소 거리의 오래된 공장, 배우 손석구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남선기공을 개조한 곳에 들어섰다. 오랜 시간 방치됐던 이곳은 한때 카페 겸 공연장으로 사용했는데, 높은 층고 덕분에 악기 소리와 목소리가 잘 어우러져 장기하, 윤마치 등 여러 뮤지션이 공연을 했다. 정동문화사로 바뀐 지금도 공간 한가운데를 차지한 피아노가 과거의 분위기를 말해 준다. 테이크아웃 손님이 90퍼센트를 넘어 테이블 공간은 비교적 여유로운 편이다. 커피와 함께 갓 구운 과자를 즐기고 싶다면 자리를 잡고 앉는 것도 좋다. 인근 철공소 거리에는 뮤직 펍 ‘원동락공소’를 비롯해 젊은 창작자들의 작업실이 많다.
주소 대전시 동구 창조2길 11
대전의 커뮤니티

눕시
내향인을 위한 외향적 공간
“대전에서 신나게 놀고 싶다면 눕시로 가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독서, 영화, 러닝, 축구를 하는 나날을 보내다 어느 날 갑자기 열광적인 댄스 파티를 여는 곳. 눕시는 20대를 군대에서 보낸 정호석 대표가 전역 후 차린 공간이다. 경기도 김포 출신인 그가 3년 전, 연고도 없는 대전에 내려와 눕시를 연 건 오래 고민하기보다 일단 실행하고 보는 그의 행동파 기질 덕분이었다. “군대에서 행사 기획을 주로 했는데,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군대에서 하기에는 제약이 많았어요. 마침 은사님이 ‘대전에서 하면 도와주겠다’고 하셔서 바로 결심했죠. 당시 결혼 준비 중이어서 지금의 아내도 대전에서 같이 살게 됐어요. 고민의 시간은 짧을수록 좋잖아요.” 정 대표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즉시 작당 모의를 하고 행동에 나선다. 덕분에 눕시에선 매주 즐거운 이벤트가 끊이지 않는다. 여자 축구팀 ‘눕시 FC’, 토요일 아침 일찍 모여 한 주를 돌아보는 ‘이끼클럽’, 책으로 자기소개를 하는 ‘소설 디깅클럽’, 솔로 탈출을 위한 ‘눕시 데이’ 등 비범한 아이템이 넘쳐난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열리는 소셜 파티 ‘눕시 데이’는 대전 시민은 물론 여행자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다. 눕시의 새로운 도전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을 눈여겨보자.
주소 대전시 서구 대덕대로 129
interview

정호석 눕시 대표
경기도 김포에서 나고 자랐잖아요. 외지인으로서 바라본 대전은 어떤 느낌인가요? 지난 3년간 대전에 살아 보니 사람들이 대체로 수줍음이 많고 나서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처음엔 저처럼 모임을 이끌고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을 낯설어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마음을 열었죠. 지금은 다음 아이템을 기다리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눕시를 대전을 대표하는 커뮤니티로 만드는 데 시간이 꽤 걸렸겠어요. 그동안 힘들진 않았나요?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대전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내향인의 도시예요.(웃음) 하지만 누구에게나 일상을 벗어던지고 놀고 싶은 욕구가 있잖아요. 3년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다 보니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고 커뮤니티가 커졌어요. 저는 다만 대전 사람들의 흥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뿐이죠. ‘노잼 도시’에서 ‘유잼 도시’로 변모하며 대전이 새로운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어요. 이 도시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도시에서도 자연을 풍부하게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에요. 온천, 국가 습지보호지역, 하천 등 자연을 느끼며 숨 쉴 수 있는 곳이 도처에 자리하고 있어요. 언제부턴가 다른 도시에 가면 답답함을 느낄 정도예요. 도시 곳곳에서 근대건축물을 새롭게 활용한 공간을 만날 수 있는 것도 대전의 매력입니다.
대전의 문화


바이닐042, 캡프로젝트
바 문화를 주도하는 음악 감상소
대전에는 카페 겸 갤러리, 여기에 음악 감상소까지 겸하는 독특한 바 문화가 있다. 바이닐042와 캡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복합 문화 공간 바이닐042는 고진성 디렉터가 도전하듯 문을 연 공간이다. “이곳은 레코드 숍이자 카페, 바, 힙합 공연장입니다. 일본 유학을 다녀와 서울에서 회사 생활을 하던 중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퇴사하게 됐어요. 창업이 꿈이었지만 서울에서는 자본이 부족해 지방을 찾다가 ‘노잼 도시’라는 타이틀이 재미있어 대전으로 내려왔지요.” 대전의 지역 번호를 따서 상호명을 지은 바이닐042는 라이브 공연, 전시, 플리마켓, 월간지 제작 등 지역 내 문화 예술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이 앨범을 발표하거나, 축구팀 대전하나시티즌과 협약해 시축을 하기도 한다. 대전을 찾는 여행자를 위해 인근 성심당에서 빵을 사 오는 손님에겐 포크와 접시를 제공하기도 했다. 또 다른 복합 문화 공간 캡프로젝트(C.A.P PROJECT)는 커피와 문화,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서울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한 박성수 대표와 피아노 전공자인 박 대표의 사촌 동생이 의기투합해 만든 공간으로, 커피나 술을 마시며 편안하게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다. “재즈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 공연이 정기적으로 열립니다. 처음엔 생소했는지 커피를 마시던 손님이 재즈 공연이 시작되면 나가 버리기도 했죠. 하지만 2년여 동안 계속 유지해 오다 보니 많은 사람이 찾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어요.” 캡프로젝트에선 지역 예술가의 전시나 그림으로 마음을 치료하는 심리 상담 클래스 같은 특별한 이벤트도 연다.
바이닐042 대전시 중구 중앙로156번길 41-7
캡프로젝트 대전시 대덕구 중리로53번길 42
대전의 거리



소제동 관사촌 거리
오래된 동네를 바꾸는 가게들
대전역을 등지고 걸으면 마주하게 되는 작은 동네, 소제동. 이곳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 대전역에서 근무하는 일본인 철도 관료들을 위해 조성한 철도 관사촌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철도 관사촌으로 이름을 날리던 곳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쓰임을 잃고 버려진 마을처럼 황폐한 분위기였다. 오랜 시간 방치되었던 소제동에 새로운 바람이 분 건 익선동을 서울의 핫플로 바꾼 익선다다트렌드랩 덕분이다. 익선다다트렌드랩은 관사촌의 집들을 사들여 감각적인 공간으로 개조했으며, 여기에 젊은 창작자와 상인이 모여들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소제동을 찾는 여행자라곤 1년에 고작 300명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최근에는 연간 60만 명이 넘을 정도다. 소제동은 이제 대전에서 가장 핫한 동네가 된 것이다. 개성 있는 맛집과 카페가 줄줄이 들어섰다. 소제동에서 평생을 살아온 이가 운영하는 ‘대전버거’, 눈과 입을 즐겁게 하는 카레집 ‘미도리카레’, 날씨가 좋은 날엔 야장이 열려 골목에 활기를 더하는 ‘소제점방’, 다양한 티 컬렉션을 선보이는 ‘소제예찬1927’ 등 감각적인 밥집과 카페가 즐비하다. 그중 대나무가 우거진 ‘풍류소제’는 관사촌 거리의 터줏대감 같은 곳이다. 입구에서부터 하늘을 가득 덮은 대나무가 비밀의 숲에 들어선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과거 집주인 할아버지가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에게 볼거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마당에 손수 대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사랑이 일군 대나무 숲이 지금은 소제동에서 가장 유명한 감성 사진 명소가 되었다.
대전버거 대전시 동구 동광장로 86
미도리카레 대전시 동구 수향길 75
소제점방 대전시 동구 대동천좌안5길 45
소제예찬1927 대전시 동구 수향길 19
풍류소제 대전시 동구 수향길 31
대전의 서점

더 비블리오그라피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는 독립 서점
최근에 문을 연 더 비블리오그라피는 어궁동에서 가장 주목받는 공간 중 하나다. 비블리오그라피(bibliography)는 참고 문헌이라는 뜻. 보통 참고 문헌 하면 레퍼런스(reference)를 떠올리지만, 엄밀히 말해 두 단어의 의미는 살짝 다르다. 레퍼런스가 누군가의 작업, 일, 연구에 직접 인용한 구체적인 참고 문헌을 뜻한다면, 비블리오그라피는 직접 인용한 자료뿐 아니라 직접 인용하지 않았더라도 창작물의 바탕이 된 유·무형의 모든 텍스트를 아우르는 포괄적 의미의 참고 문헌을 가리킨다. 무심코 넘긴 일상의 작은 영감, 공중을 부유하는 먼지처럼 희미하지만 분명 켜켜이 쌓였을 그 영감들을 모두 포함하는 단어가 바로 비블리오그라피다. 그 의미처럼 이곳은 누군가의 일상, 작업, 연구, 창업 등에 영감을 주는 독립 서점이다. 감각적으로 꾸민 내부에는 철학, 문학, 사회정치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이 가득하다. 책 외에 대전에서 활동하는 지역 창작자들의 수공예 작품도 전시, 판매한다. 더 비블리오그라피의 가장 큰 특징은 손님이 서점주가 되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서점을 운영해 보고 싶은 꿈이 있다면, 혹은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이야기하고 싶다면 누구나 한 칸짜리 서점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책 외에 관련 엽서나 책갈피, 노트 등도 판매 가능하다.
주소 대전시 유성구 대학로203번길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