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행궁동 곳곳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맛집을 방문하기 위한 줄인가 했더니 사진 촬영을 하려는 행렬이었다. 행궁동은 다양한 맛집과 카페 외에도 볼거리가 풍성해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진 지 오래인데, 최근에는 드라마 촬영지로도 주목받고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부터 <그해 우리는> <선재 업고 튀어>까지 화제의 드라마 곳곳에 행궁동의 아름다운 풍경이 담겼다. 종영하고 3개월이 흐른 지금도 많은 시청자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주요 장면을 따라 걸어 보기로 했다.
선재와 솔의 발자취를 따라서
먼저 선재와 솔이 살던 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두 집은 두 사람처럼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파란 대문이 선재가 사는 집, 아치형 문이 솔의 집이다. 주인공의 집이라는 점도 흥미롭지만, 이곳은 선재와 솔이 처음 만난 장소라 더욱 특별하다. 비가 내리던 날, 노란 우산을 씌워 주며 해맑게 미소 짓는 솔에게 선재는 한눈에 반했다. 두 사람의 서사가 시작된 그 장면이 바로 여기서 탄생했다.
다음은 선재가 솔에게 처음으로 좋아한다 말한 장소로 향한다. 6화에서 고백을 앞두고 잔뜩 긴장한 선재는 수원천 다리 위에 서 있었다. 선재의 떨리는 목소리, 당황하는 솔의 모습 너머 화홍문이 자리한다. 수원화성의 북수문인 화홍문에 설치한 수문 일곱 개는 실용적 기능을 위한 구조물이지만 무지개 모양으로 예쁘기도 하다. 그 앞에 서면 시원한 물줄기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흐른다. 잠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인다. 수많은 감정이 오고 갔을 그 순간의 배경음을 듣는다.
낮
: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의 동안
화홍문 동쪽 언덕에는 방화수류정이 있다. 이 근처에서 선재가 솔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었다. 비틀거리기를 반복하다가 균형을 잡았을 때 솔은 웃었고, 선재는 따라 웃으며 속도를 맞춰 달렸다. 그 뒤로 방화수류정의 모습이 화면에 비친다. 연못에 어른거리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은 색다른 재미다. 연못을 둘러싼 길에서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도 좋다.
일대를 걷다 보면 여기가 왜 촬영지와 출사지로 사랑받는지 충분히 이해된다. 무성한 나무와 풀이 계절에 맞게 옷을 갈아입고, 곳곳에 위치한 한옥이 고즈넉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름다운 풍경이 더해져 둘에게 벌어지는 일이 환상 같기도, 이들이 맞닥뜨린 현실과 대조돼 감정을 고조시키기도 한다. 시간을 넘나들어 서로를 찾아 낸 선재와 솔처럼, 누군가를 향한 애달픈 마음을 가진 이는 언제나 존재했다. 평생 그리움과 꿈을 간직하며 살아간 조선 임금이자 수원화성을 축성한 역사 속 인물, 정조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119년 만에 돌아온 화성행궁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은 정조에게 큰 상처로 남았으나 임금으로서 나랏일을 계획하고 추동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아버지의 무덤을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이라는 수원 남쪽 화성으로 옮기고, 계획 도시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수원화성 축조를 추진한다. 정조는 실학자 정약용이 개발한 거중기를 활용해 약 3년 만에 수원화성을 완공했다. 그 안에 지은 화성행궁은 행행 때 숙소로 삼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연을 연 의미 있는 곳이다.
화성행궁은 일제강점기에 훼손되었다가 1989년 복원 사업을 시작했고 대장정 끝에 지난 4월 매듭을 지었다. 화성유수부의 객사인 우화관과 음식을 준비하던 장소인 별주 복원까지 마쳐 119년 만에 온전한 모습을 되찾았다. 그래선지 야간 개장 소식이 유달리 반갑게 느껴진다. 10월 27일까지 매주 금․토․일요일 오후 6시부터 9시 30분까지 색다른 풍경을 즐긴다. 화성행궁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특별 야간 문화 관광 해설 ‘빛 따라 고궁 산책’을 신청하면 된다.
밤
: 해가 져서 어두워진 때부터 다음 날 해가 떠서 밝아지기 전까지의 동안
화성행궁 정문, 신풍루 가운데 문도 밤에는 활짝 열려 방문객을 반갑게 맞는다. 좀 더 걸어 도착한 우화관과 낙남헌의 경계를 이루는 행각에서는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대형 연꽃 구조물을 마주한다. 궁에 울려 퍼지는 국악 소리에 맞춰 연꽃도 춤추고 방문자의 마음도 일렁인다. 낙남헌에서는 미디어아트가 펼쳐진다. 이곳은 화성행궁에서 공식 행사나 연회를 열 때 사용한 건물로, 화려한 미디어아트와 함께 희망찬 소리가 울려 퍼진다. 마당에 설치한 달과 토끼 조형물로 모여든 사람들의 북적거림이 더해지니 잔치에 초대받은 기분이 든다. 넉넉한 마음으로 온 백성을 품었던 정조가 생각나 괜스레 가슴이 벅차오른다.
하늘 높이 떠 있는 열기구 플라잉수원을 고개 들어 바라본다. 두둥실. 물 위나 공중으로 가볍게 떠오르거나 떠 있는 모양을 뜻하는 말. 그리고 다시 한번 두둥실, 마음에도 슬며시 떠오르는 것이 있다. 크디큰 사랑과 그리움, 애틋함 같은 감정이다. 과거와 현재 사람들의 마음을 좇아 수원 곳곳을 온종일 누볐다. 낮에는 해가, 밤에는 달이 곁을 지켜 주었다.
제61회 수원화성문화제
수원화성 곳곳이 축제 열기로 물든다. 을묘원행 중 수원에서 보낸 5일간의 기록을 재해석한 문화 콘텐츠를 즐기는 건 물론 수원화성 축성과 도시 개혁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다. 행궁광장 및 수원화성 일원에서 10월 4일부터 6일까지 진행할 예정이며, 1796년 정조가 열었던 낙성연을 소재로 한 공연도 마련한다.
문의 031-228-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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