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 거기에 귀한 것, 심지어 세상에 단 하나인 것. 그런 물품이 내 손에 들어오면 어찌할까. 아껴 간직하고, 수시로 쳐다보고, 내밀한 기쁨으로 삼다가 반가운 이가 찾아왔을 때 꺼내어 자랑하겠다. 조선의 역관 이상적도 마찬가지였다. 스승 김정희가 한양에서 멀고 먼 제주로 유배 가 사람들이 등 돌렸을 때 그는 사제간 의리를 잊지 않고 꾸준히 책을 보냈다. 스승은 ‘세한도’를 그려 고마움을 표했다. 혹독한 계절에 지킨 신의를 겨울에도 푸른 소나무에 빗댄 그림이었다. 서체의 한 세계를 확립한 조선의 명필 추사에게 선물을 받고 떨렸을 가슴을 생각한다. ‘세한도’는 이상적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중국 방문길에 품고 가서 이름난 학자들에게 보이자 감탄하는 글을 남겨 주었다. 이상적의 삶은 ‘세한도’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을지 모르겠다. 그런 유물, 세상에 오로지 하나뿐인 보물이 가득한 곳이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이다. 지난 1월 기증관이 새 단장을 마치고 다시 문을 열었다.
기증자의 이야기와 유물을 함께 만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유물 43만여 점을 소장한 한국 대표 박물관이다. ‘국립’ ‘중앙’이라는 무거운 이름값에 걸맞은 오늘날의 박물관을 이루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야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이 가운데 꼭 기억해야 할 이가 기증자다. 5만여 점 유물이 기증자 덕에 박물관으로 와 모두의 보물이 되었다. 박물관은 개편 작업을 하면서 기증자와 유물을 예우하는 동시에 관람객이 유물과 기증 사연을 함께 음미하도록 하는 데 힘썼다. “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조선의 문장가 유한준 선생의 글처럼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된다”. 유물만으로도 소중하고 아름다우나, 그 뒤의 사연 또한 알수록 감탄이 커진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증관에 발을 딛는다.
4개 전시실로 구성한 기증관 첫 번째 방은 ‘나눔의 서재’가 맞이한다. 거대한 장식장에 가지각색 유물을 배치하고, 앞엔 소파를 놓아 수집가의 집에 초대받은 기분이다. 한쪽에 마련한 태블릿으로는 기증자 이야기를 영상으로 본다. 5분여 분량의 영상에 수집한 계기와 분야,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담았다.
성모병원 초대 원장인 박병래 선생은 일제강점기, 한 교수가 백자 접시를 보여 주었는데 이를 자국 것인지 몰랐다는 사실에 스스로 충격을 받아 박물관과 고미술상을 방문한다. 일본인이 전국을 휩쓸며 한국의 자기를 가져가는 현실을 깨닫고 봉급을 뚝 떼어 구입하기 시작했다. 사명감에 뛰어든 수집은 그의 삶을 바꾼다. 처음에는 차갑다고 생각한 사기에서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 고요한 정신으로 바라보다 “존경하는 마음까지” 생겼다. 선생은 “의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50년 동안 골동 수집에 취미를 붙이지 못했더라면 내 인생은 한결 삭막했으리라”라고 고백했다. 그가 유물을 어떻게 사랑했을지 눈에 선하다. 세상을 떠나기 전 선생은 아무 조건 없이 375점을 기증한다. 아직 한국에 기증 문화가 전무하다시피 한 1974년, 그때 화폐단위로 10억 원에 이르는 대규모 기증이었다. 참고로 수년 뒤인 1981년 박물관 유물 구입 1년 예산이 2000만 원이었으니, 선생의 순수하고도 커다란 결단에 말을 잃는다. 이를 알고 나서 백자를 감상한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병, 접시, 사발, 연적. 고아한 유물이 더욱 애틋하게 다가온다.
방 하나를 혼자 차지한 그리스 청동 투구 이야기도 재미있다. 한국에서 보물로 지정된 유일한 서양 유물이다. 기원전 6세기에 만들었다 추정하는 투구는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 선수 몫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국적으로 출전한 한국인이 우승하고 시상대에서 고개를 수그렸기 때문일까. ‘선수가 비싸고 귀한 기념품을 받지 말아야 한다’라는 올림픽 규정을 들어 투구는 엉뚱하게도 독일의 한 박물관에 보내졌고, 정작 선생은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오랜 노력 끝에 50년이 지난 1986년 투구를 돌려받은 선생은 1936년의 금메달이 민족의 것이었듯 투구 또한 모두의 것이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다. 전시실에서는 올림픽 마라톤 우승부터 투구를 돌려받기 위한 노력까지 상세하게 보여 준다. 기증품 하나하나마다 이처럼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기증자가 나눈 덕분에 개인의 영광이 모두의 감격으로 확장된다.
따뜻한 전시장, 모두의 보물
기증관 유물은 하나같이 기증자가 인생을 걸고 얻었고, 평생을 깊이 사랑해 돌보다 여기로 보낸 보물이다. 2실에서는 박물관 사상 최대 기증자인 이홍근 선생이 기증한 1만 건 이상의 유물 가운데 극히 일부인 서화 목록을 모니터로 보다 울컥했다. ‘14세기’ ‘16세기’ ‘강세황’ ‘고희동’ ‘김정희’ ‘김홍도’… 키워드가 끝이 없다. 한 사람의 컬렉션이 이럴 수 있는가. 인권 변호사 최영도 선생은 청자·백자와 달리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토기에 홀로 집중해 삼국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유물을 모아 기증했다. 선생의 수집과 연구는 그대로 한반도 토기 역사 교과서 수준이었다 한다. 서로 닮은 토기와 자기를 나란히 배치한 3실의 전시 기획도 흥미롭다. 백사 이항복이 1607년에 손주를 위해 직접 쓴 <천자문>,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이 선명한 유묵 등 수많은 유물이 말을 건넨다.
현대 작가의 기증품을 감상하는 4실 마지막, 김정희의 ‘세한도’가 발을 붙잡는다. 정말이지 이걸 어떻게 기증했을까. 오늘 여기서 만난 모든 유물 앞에서 든 생각이기도 하다. 세상은 움켜쥐라고, 쌓아 두라고, 그것이 성공이라고 하건만 누군가는 그 차가운 법칙을 뒤집어 다시금 지구를 따뜻한 곳으로 만든다. 전시장을 나오는 걸음이 뿌듯하다. 언제든 모두에게 열린 공간,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을 이유가 또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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