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움츠러들게 하는 추위에 지지 않고 단단한 마음으로 이 계절을 나기 위해서 꼭 한 번은 먼 곳에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름다운 것을 실컷 보고 오면 모든 생명이 숨죽인 겨울을 생기 있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푸르고 둥근 청자가 생각나 남쪽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고려청자의 신비를 간직한 강진
청자의 고향은 강진. 고려청자 가마터는 한국 곳곳에 분포하는데, 지역에 따라 조성된 시기가 다르다. 그중 9세기부터 14세기까지 청자를 생산한 역사가 살아 있는 전남 강진은 국가 사적으로 지정·보존하는 고려청자 요지다. 대구면 사당리는 청자 기술이 절정에 이르렀을 시기에 특히 빛난 곳으로, 대한민국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청자의 80퍼센트 이상을 여기서 제작했다. 청자를 빚기에 최적인 기후와 흙의 성질이 이곳을 청자 요지로 이끌었다. 청자를 만드는 흙인 청자토는 철분이 많고 쫀득거리는 성질을 지녀야 한다. 흙 속 철분이 유약과 섞여 뜨거운 온도를 견디면 청자 특유의 비취색이 오롯해진다. 높은 점도와 철분 함량, 적절한 백색을 고루 지닌 강진의 청자토는 청자 재료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고요한 박물관 안을 시계를 보지 않고 걷노라면, 사람의 마음조차 그 고요를 닮아 간다. 박물관의 속성이 시간의 보존이라서일까. 그곳에서는 이미 일어나서 끝맺어진 사건들만 존재한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세상의 시간이 박물관 안으로는 침투하지 못한다. 강진에 도착하자마자 고려청자박물관으로 향한다. 고려청자의 발생과 발전의 파란만장한 시간을 고스란히 경험하는 공간이다.
우선 청자의 탄생부터 살펴보았다. 푸른색 도자기인 청자는 3세기에 중국 송나라에서 만들기 시작했다. 서양에서 값싼 금속을 금으로 바꾸고파 연금술을 제련했다면 동양에서는 흙을 보물로 구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품었으리라. 한국의 경우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로 나아가던 때인 9~10세기에 청자가 태어났다. 문양 없이 단순한 사발로 출발한 청자는 11세기 들어 다양한 문양을 입었다. 12~13세기에는 ‘고려 비색’이라 부르는 비취색 고려청자가 자리 잡았다. 음각한 도자기에 황토와 백토를 채워 넣는 상감기법이 특징으로, 완성된 청자에서 황토는 검은색, 백토는 흰색으로 빛난다.
상설전시실에서는 시대별로 색상과 문양이 변모해 가는 청자를 두루 만난다. 9세기의 청자완, 12세기의 청자상감여지문대접, 13세기의 청자퇴화연국문과형주자, 상감청자가 쇠퇴해 분청사기로 바뀌는 14세기까지 청자의 500년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청자범종과 청자인장 등 강진 고려청자 요지에서 출토된 유물 800여 점은 특히 압도적이다. 박물관 뒤편에 자리한 청자 재현 연구동에서는 물레를 돌려 도자기 모양을 잡는 성형, 거북이나 연꽃처럼 물레로는 만들기가 불가능해 사람 손으로 직접 모양을 잡아 가는 상형, 잘 마른 도자기 표면에 문양을 새기는 조각 작업을 살펴볼 수 있다.
충남 태안 앞바다 속 보물선에서 발굴한 청자를 모은 특별전도 흥미진진하다. 강진에서 만든 청자를 무려 2만 3000점이나 싣고 수도 개경으로 향하던 배가 난파했다. 오랜 세월 푸른 바닷속 깊이 잠들어 있었을 청자의 시간을 상상해 본다. 청자의 역사를 알았으니 색과 형태에 몰두할 차례. 외국인 친구에게 고려청자를 설명하다 말문이 막힌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청자가 푸른색이라고? 그럼 블루? 그린?” 식물처럼 초록이라 해야 할지, 한국의 청명한 가을 하늘 같은 파랑이라 해야 할지 머뭇거리는 사이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너 청자를 자세히 본 적이 없나 보다!” 색을 어떻게 묘사할지 책이나 온라인 포털 사이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온몸의 감각으로 알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만 개의 청자, 만 가지 다른 빛
긴장을 풀고 청자 한 점 한 점을 오래 바라보았다. 오묘한 빛의 향연 앞에서, 심해 같은 깊이 앞에서 이미 아는 활자와 표현법을 내려놓게 되었다. 경계를 자로 재듯 나눌 수 없는 빛과 색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인간의 편의를 위함이다. 검은 머리카락, 하얀 피부, 붉은 뺨 같은 표현으로. 그러나 실제로는 그 어떤 것도 하나의 색으로 이뤄져 있지 않다. 그러니 이 청자들 앞에서는 이미 내가 아는 표현을 버리고 겸허해진다. 이 청자와 저 청자의 색을 묶어 ‘푸른색’이라고 부를 수는 없겠다. 가장 잘 구현된 청자 색은 비취와 닮아 비취색이라 한다는데, 실제로 본 청자는 색이 각양각색이다. 어떤 것은 가을 하늘의 푸름에 은행잎의 노랑을 한 방울 탄 듯하고, 어떤 것은 남해 바다의 푸름이 저녁놀에 물든 듯하다. 다른 것은 고인 빗물에 햇살이 비쳐 불현듯 생겨난 무지갯빛 같다. 1만 개의 청자가 저마다 다른 빛을 띤다. 그러니 명명하기가 막막하다기보다 도리어 자유로워진다. 그때그때 본 대로, 느낀 대로 표현하면 된다.
실제로 청자의 색은 불 온도, 흙 성분, 가마 속 산화와 환원 상태, 제작 기술 등에 따라 달라진다. 수많은 요소를 어떻게 결합하느냐로 담황색, 녹갈색, 녹황색, 녹회색, 청회색, 회녹색, 담청색 등 색깔이 결정된다.
빛과 색만큼이나 문양도 다채롭다. 고려청자의 대표 문양은 학과 구름, 꽃이다. 청자에 새긴 꽃이 다양하기도 하다. 작약, 모란, 국화, 매화, 연꽃 등 꽃문양은 각각의 멋과 의미를 품고 있다. 작약은 봄소식을 전한다. 국화는 절개를, 모란은 풍요로움을, 연꽃은 부처의 진리를 상징한다. 연꽃과 버드나무, 학, 갈대 등을 청자 한 점에 모두 새긴 청자상감유로수금문병의 아름다움도 독보적이었다.
고려청자박물관과 이웃한 고려청자디지털박물관으로 향했다. 청자의 전통과 현대의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공간이다. 고려청자 특유의 꽃·과일·동물 문양에서 모티프를 얻어 디자인한 점부터 매력적이다. 이 박물관은 가상현실, 증강현실, 프로젝션 매핑 기술을 활용해 고려청자를 보다 실감 나는 콘텐츠로 재해석했다. 무한 반사 거울과 16개의 디스플레이를 설치한 공간에서는 국보급 유물의 발굴 과정을 영상으로 본다. 우주 속을 유영하는 분위기 덕에 여기저기서 관람객의 환호가 터져 나온다. 청자 제작 과정을 XR 게임으로 체험하는 공간은 특히 인기가 많다. 현대의 기술로 재구성한 청자의 역사와 가치를 배울 수 있다. 또 하나 인상 깊은 곳은 시각화 공간. 900년 전, 강진에서 개경으로 떠나던 청자 운반선 이야기를 삼면 몰입형 영상으로 시청하는데, 어드벤처 영화를 보듯 몰입감이 뛰어났다.
고려 도공의 얼을 이어받은 열정으로
옛 영광은 현재의 열정으로 이어진다. 청자 도시 강진에서 고려청자의 맥을 잇는 동시에 오늘의 청자를 알리는 데 앞장서는 공방과 작가들이 있다. 그중 공방 ‘토우’는 방문객이 다양한 청자 관련 체험을 하는 곳이다. 카페 브랜드 스타벅스와 컬래버레이션해 굿즈를 제작, 청자의 현대화에 앞장서기도 한다. 스승과 제자로 만난 두 공예가 강광묵, 김유성이 토우를 운영한다. 토우에서는 물레를 돌려 청자를 빚는 체험, 청자 풍경에 다는 동판 물고기에 그림이나 글씨를 새겨 넣는 체험, 다식판에 흙을 찍어 내는 체험, 국보나 보물 청자 탁본 체험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청자 편종 연주 체험도 흥미롭다. 청자 편종은 커다란 나무틀 안에 아름다운 청자 그릇 수십 개가 거꾸로 달린 악기다. 균열 없이 매끈한 청자를 나무 막대로 두드리면 은은하고 청명한 소리가 난다.
수십 년 청자를 빚은 장인도 마음에 불순함이 끼어든다면 불량이 나온다 말한다. 이 ‘징한’ 예술이 매 순간 온 마음을 다해 살아가도록 했겠다.
2004년 대한민국청자공모전 대상을 시작으로 전국 차도구 공모전 대상, 전국관광기념품공모전 국무총리상 등 수많은 수상 경력은 김유성 작가의 가마처럼 뜨겁게 불타는 에너지를 증명한다. “실패율이 높다는 것도 청자의 매혹적인 점 아닐까요? 청자는 초벌, 재벌을 거치는 제작 과정 중에 불량이 나올 확률이 매우 높아요. 흙 혹은 가마에 따라, 이 면과 저 면이 만나고 나뉘는 지점에 따라 청자의 색과 모양이 미세하게 달라집니다. 그 미세함을 다루려면 품이 지독히도 많이 듭니다.”
아무리 수십 년간 청자를 빚어 온 이라고 해도 긴장을 풀 수가 없다. 만드는 이의 마음에 불순함이 끼어든다면, 한 과정이라도 느슨해지면 바로 불량이 나온단다. 어쩌면 이 ‘징한’ 예술이 작가를 매 순간 온 마음을 다해 살아가도록 이끌었겠다.
세상의 수많은 예술이 기술에 힘입어 빠르고 수월해진다. 온몸을 밀어붙이고 온 시간을 쏟아 내는 예술 작업은 점점 품을 덜 필요로 한다. 그러나 청자를 빚는 작업은 다르다. 여전히 거의 모든 작업이 사람 손을 거쳐 이루어진다. 한 점 제대로 빚자면 그 어떤 공정도 빠르고 수월하게 넘길 수가 없다. 하루에 두세 시간 자면서 버티기가 부지기수. 그러나 장인은 상상한 자태로 청자가 모습을 드러내는 마지막 순간에 그동안의 고단함이 완전히 잊힌다 말한다.
왜 강진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지 물으니, 두 작가는 강진의 얼을 강조한다. “예술에서는 공간의 혼도 중요해요. 우리 청자의 영광스러운 역사가 강진에 살아 숨 쉬고 있죠. 또한 강진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오래 머문 고장으로, 차를 각별히 여긴 다산의 영혼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 모든 혼이 청자에 담긴다는 게 중요합니다. 청자를 빚는 시간은 필연적으로 고독하지만, 옛 청자 장인도 일생 고독했겠지요. 그들의 열정을 떠올리면서 하루하루 청자를 빚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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