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함께할 순 없지만/ 너를 볼 수 있는 곳에서/ 세상으로부터 널 지킬 거야.” 절절한 미성으로 마음을 고하는 노래, ‘세상엔 없는 사랑’을 기억하는가. 1998년, 가요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한국 최초의 사이버 가수 ‘아담’은 당시 신선한 충격 그 이상이었다. 가상 인간인 그가 사랑하는 이의 곁에 머물기 위해 사이버 세계를 떠나 현실로 온 콘셉트가 특이한 데다 노래 실력도 준수했기 때문이다. 그의 1집 음반은 20만 장 판매를 달성하는 등 기염을 토한다. 이후 ‘류시아’ ‘사이다’ 등 사이버 가수가 잇따라 데뷔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시대를 앞선 콘셉트와 부진한 기술 탓이었을까. 아담은 여러 루머에 휩싸이다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진다.
사이버 세상을 향한 관심의 불씨는 2020년대 들어 다시 몸집을 키운다. 현실과 같이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 가상 세계 ‘메타버스’가 보다 친근하게 다가오면서부터다. 나만의 캐릭터를 조작해 테마별 가상 공간에서 전 세계 사람들과 교류하는 증강현실 아바타 플랫폼 ‘제페토’가 화제를 모으기 시작한다. 여기에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가 자동차, 은행 등 각종 광고에 출연하며 미디어에 얼굴을 알린다. 20년 사이에 현실과 가상 세계의 벽을 허물 정도로 기술이 발전한 것이다.
아담 이후 사이버 가수에 도전하는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캐릭터를 활용한 그룹 ‘K/DA‘, 아이돌 그룹 ‘에스파’의 가상 버전 ‘ae-에스파’, 버추얼 아이돌 ‘이터니티’ 등이 발자취를 남겼다. 버추얼 휴먼·유튜버들은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제작한 캐릭터를 내세워 사람들과 소통한다. 물론 캐릭터 뒤에 사람은 존재하지만, 그들은 인터넷을 소통 창구 삼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팬들과 친근하고 진솔하게 교감한다. 주목할 만한 그룹은 2021년에 데뷔한 버추얼 걸 그룹 ‘이세계아이돌’이다. 인터넷 방송인 우왁굳의 콘텐츠 사이버 아이돌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그룹으로, 지난 8월 공개한 3집 <키딩>이 국내 음원 차트 6위, 빌보드 한국 차트 3위를 차지해 대성공을 거둔다. 2023년 3월 데뷔한 버추얼 보이 그룹 ‘플레이브’도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라이브 방송으로 팬과 소통하는 등 두 그룹은 실제 아이돌 못지않게 활발히 활동 중이다.
가상 콘텐츠가 사람들에게 점점 친숙해지자 음악·광고계를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가 도입한 한국 최초 버추얼 공무원 ‘새로미’, 실사형 라이브 버추얼 휴먼 ‘나수아’ 등 이제 메타버스는 현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지난 9월에는 인천 송도에서 한국 최초로 메타버스를 연계한 오프라인 뮤직 페스티벌 ‘이세계 페스티벌’이 열렸다. 어색하기만 했던 가상 세계는 VR, AR 등 기술의 발전으로 이미 현실에 스며들었다. 바야흐로 가상과 현실이 하나가 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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