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숲이라 했다. 살아 있기에 누구나 어디가 아프다. 이름 붙은 병이든, 명확한 병명은 없지만 몸과 마음의 불편함이나 어그러짐이든. 의무의 연속인 도시의 일상에서 하루하루 닳아 가는 사람에게 숲이 어떤 진단을 내리고 처방을 해 줄까? 강화 바다의 유혹을 뒤로하고 이번엔 숲으로 든다. 신령하기로 으뜸이라는 마니산 치유의숲이다.
신령하고도 편안한 마니산 치유의숲
빽빽이 솟은 나무, 바닥의 흙. 치유의숲 입구에 선 순간, 자동차를 타고 몇 분 전 밟은 인공의 도시가 지워진다. 벌써 치유되기 시작한 기분이다. 마니산 치유의숲은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해발 472.1미터 마니산 아래쪽에 산책하기 좋게 조성했다. 1킬로미터 거리라, 오늘 운동 좀 하겠다고 큰마음 먹고 나서지 않아도 괜찮다. 자연이 주인이자 의사인 숲을 찾은 손님으로서 겸손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는 정도가 준비라 할까. 숲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 제대로 숲을 누려 볼 참이다.
“나무는 물과 햇볕으로 살아가는 존재지요. 여기에 꼭 필요한 게 뭘까요? 바로 바람이에요.” 초입에서 나무가 내준 그늘에 서서 조윤희 숲해설사의 설명을 듣는다. 안내에 따라 눈을 감으니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이 생생해진다. 아롱지는 햇살, 땅 아래 흐르는 물, 그 물을 향해 흙을 헤치고 뻗어 나가는 나무의 뿌리. 숲과 사람에게 오늘 치 바람이 불어온다. 바다를 건너온 바람, 나무 사이를 누빈 바람이 섞여 폐에 스민다. 물과 햇볕과 바람보다 소중한 것은 없구나.
드디어 치유의숲에 들어선다. 첫 장면부터 키 큰 소나무가 시야를 꽉 채운다. 보통 거대한 무언가를 맞닥뜨릴 때 사람은 자연스럽게 위축될 텐데 나무만은 예외라는 사실이 신기하다. 보호받는 느낌, 나무에 다가가면 오히려 나무가 안아 주는 느낌. 사람 키의 열 배쯤 되는 커다란 나무는 바람이 건드리는 대로 그늘 모양을 바꾸며 곁을 지킨다.
먼저 눈길을 끈 소나무 말고도 숲에는 여러 종류 나무와 풀, 곤충과 동물이 공존한다. 숲해설사와 함께하니 걸음걸음마다 볼거리다. 그냥 산책만 해서는 몰라서 지나쳤을 사연이 쏟아진다. “향기는 식물의 방어 수단이거든요. 사람에게 이롭다는 피톤치드도 마찬가지예요. 자기를 공격하는 곤충 같은 대상에 대응하는 거지요.” 해설사가 산초나무 잎을 떼어 볼에 붙여 주자 상큼한 향이 퍼진다. 벌레가 기피하는 향이라고 한다. 음, 이렇게 향기로운데? 역시 내가 좋다고 다른 이도 좋아하라는 법은 없다. 이파리를 붙인 채 서로 쳐다보고 웃는 사람 사이를 호랑나비, 산제비나비가 팔랑팔랑 날아서 지나간다.
작은 개울가 쉼터에서는 잠시 쪼그리고 앉아 흙 체험을 했다. 나무별로 그 아래 흙 냄새도 차이가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흙을 손에 움켜쥐고 냄새를 맡는 체험은 그 자체로 치유다. 지구를 이루는 흙을 만진 다음에는 지구의 또 다른 요소인 물에 손을 담가 씻는다. 졸졸 흐르는 물에 나무 지팡이를 대어 소리도 들어 본다. 기억은 없지만 무의식엔 남았을지 모를, 태아 시절 엄마 배 속의 소리가 이랬을 듯싶다. 마음이 평화로워져 얼굴에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불과 1킬로미터 숲길이 품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느라 프로그램을 체험하는 1시간 30분이 짧게만 느껴진다. 그냥 걸어서는 20분이면 충분할 거리. 세상은 빠른 게 재미있다 하지만, 숲에서는 속도를 늦출수록 흥미진진하다. 느리고도 짜릿한 즐거움에 가슴이 뛴다. 손톱만 한 산초나무 잎은 여전히 향긋하다.
숲의 처방을 따라 치유의숲을 걸은 뒤 한겨레 얼 체험관에 들른다.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러 왔다는 단군의 따스한 기원 설화를 흥미진진하게 만나는 곳이다.
시원을 찾으며 놀기, 한겨레 얼 체험공원
마니산 치유의숲을 한 바퀴 돌고 원점에 오면 한겨레 얼 체험공원이 기다린다. 정상 부근에 단군이 제를 올렸다는 참성단이 있는 신령한 마니산을 남녀노소 누리게 하는 곳이다. 이름도 거룩한 단군놀이터는 놀러 나온 아이들로 웃음이 한창이다. 나라를 연 조상이라 하여 근엄하기만 했으랴. 누구나 어린 시절을 지나왔고, 단군 할아버지도 이 아이들을 보면서 흐뭇해하시겠다. 참성단도 원형 그대로 재현해 산 정상을 오르지 않아도 그 위엄을 ‘예습’한다.
한겨레 얼 체험관은 한민족의 시원과 강화의 이야기를 담은 전시관이다. 로비에는 전국체전 역대 성화봉을 나란히 놓았다. 지금도 체전 때 마니산 참성단에서 자연 채화해 성화를 붙이는데, 이름에 빛을 지닌 섬 강화와 잘 어울린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제천 의례를 소개하는 제1전시실에 이어 제2전시실은 모니터 속 단군 할아버지를 인터뷰하거나 웹툰 형식으로 신화와 전설을 감상하는 등 인터랙티브 시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누군가와 싸워 이긴 영웅담이 아닌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러 왔다는 기원 설화가 새삼 따스하다. 제3전시실은 강화의 역사와 풍경을 환상적인 미디어아트로 상영한다. 평면의 옛 지도에 산이 솟으며 입체 지도로 변화하고, 항쟁의 역사와 오늘날 강화의 풍경이 교차한다. 화면에 빨려 들어갈 듯 감상하고 나오는 길, 소사나무 한 그루가 배웅한다. 실제 참성단에는 돌 틈을 비집고 소사나무 한 그루가 자란다. 거기서 어떻게 싹을 틔우고 자리 잡았는지 인간은 감탄할 뿐이다. 터를 탓하지 않고 묵묵히 제자리에 서서 주변을 빛내 주는 생이 아름답다.
숲이 사람을 치유하는 시간
짧은 구간이지만 치유의숲은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진다. 오르막일 땐 올라가고, 내리막일 땐 내려간다. 그 안 온갖 동식물의 모습과 그들의 흔적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듣는다. 깊이 호흡해 향기를 맡고 물과 흙을 만진다. 이게 숲이 내린 처방이다. 사람이 걷는 동안 치유의숲은 사람을 진단하고 치료하고 있었나 보다. 어느새 몸과 마음이 싱그러워졌다. 물, 햇볕, 바람이 완벽한 날의 나무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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