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무언가를 경험하기 전에는 가슴이 떨리기 마련이다. 철길 위를 달리는 기차 안, 자리에 앉은 아이도 마찬가지인지 다리를 달랑달랑 흔든다. 기차역으로 향할 때부터 지은 미소는 아예 얼굴에 자리를 잡았다. “출발할 때는 느렸는데, 지금은 엄청 빨라요!” 창밖을 가리키며 소곤거리더니 이내 빙글 웃는다. 기차를 타고 여행 가는 이 순간이 설레는 걸까. 반짝이는 눈에 비친 풍경이 빠르게 스친다. 아이와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KTX는 착실히 움직인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광명역에 도착했다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숲속 탐험, 도덕산공원
기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로 승강장이 붐빈다. 캐리어를 끄는 사람과 가족과 손 인사를 나누는 사람, 무전기로 상황을 바쁘게 전달하는 역무원 사이를 지나 거대한 광명역을 빠져나왔다. 목적지는 조금 더 먼 곳이다. 차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는 내내 아이는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기대감이 샘솟아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노래일 테다. 즐거운 생각이 머릿속을 채울 즈음, 짙푸른 나무로 우거진 도덕산이 가까워졌다.
도시 북쪽, 볼록 솟은 도덕산에는 아담한 규모의 근린공원이 있다. 계단을 올라 공원 입구에 서자 바닥분수와 인공 연못이 드러난다. 분수가 나올 시간이 아닌 공원은 조용하지만, 곧 고요를 깨고 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아이는 탐험가가 된 듯 낯선 곳에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러다가 어느새 쪼그려 앉아 기어가는 곤충들을 관찰한다. 덩달아 그 시선에 맞춰 공원을 자세히 살핀다. 나무 정자 위에 소복한 능소화가 바람에 살랑이고, 매미가 찌르르 우는 소리도 들려온다. 조용한 듯해도 곳곳에 생기가 담겼다. 도덕산이 건넨 환영 인사에 금세 더위를 잊고 앞으로 나아간다.
“쉿, 저기 새가 앉아서 깃털을 다듬어요.
목욕하는 걸까? 친구 만나러 가나?”
몸을 낮춘 아이는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작은 새의 몸짓 하나에도 궁금한 것이 가득이다.
산 위쪽으로 난 길을 따라간 뒤, 야외학습장을 지나 숲 사이에 난 계단을 하나씩 오른다. 중간마다 유아숲체험장, 야생화자연학습장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으나 우리 목표는 정상을 향해 뻗은 쪽이다. 정상까지 오를 생각을 하니 아득하다. 그래도 저 앞에 서서 얼른 오라고 손짓하는 아이의 모습에 힘을 낸다. 훌쩍 자란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워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 준다. 도덕산의 진짜 모습은 여기부터다. 해발 200미터 정도의 야트막한 산이라 운동 삼아 산책하는 사람도 더러 다닌다.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던 산새가 몇 걸음 위 계단에 보란 듯이 앉는다. “쉿, 저기 새가 앉아서 깃털을 다듬어요. 목욕하는 걸까? 친구 만나러 가나?” 몸을 낮춘 아이는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작은 새의 몸짓 하나에도 궁금한 것이 가득이다.
숨은 폭포 찾기
정상에 가까워진 것인지 나뭇잎 사이로 들이치는 햇빛이 강하다. 계단 끝에 나타난 것은 두 갈래 길. 어디로 가야 할까 아이와 상의를 하는데, 마침 지나가던 등산객이 오른쪽은 인공 연못으로 이어지고 왼쪽엔 출렁다리에 오르는 길이 있다고 알려 준다. 선택은 아이의 몫이다. 양쪽 길을 놓고 잠시 고민하더니 “이쪽이다!” 말하고는 오른쪽으로 뛰어간다. 달려가는 아이 등 뒤로 배추흰나비 몇 마리가 나풀거리며 따른다.
길 끝에 다다르니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소리가 제일 먼저 손님을 맞는다. 수련이 핀 연못과 연못으로 떨어지는 폭포, 그리고 위는 Y자형 출렁다리가 장식했다. 지난해 8월에 개통한 Y자형 출렁다리와 인공 폭포가 그려낸 그림이다. 높이 20미터에 설치한 다리는 세 갈래로 나뉘고, 그 길이를 모두 합하면 100미터에 달한다. 강철로 만들어 성인 640명이 동시에 통행해도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니, 나무 울타리에 바짝 붙어 연못과 폭포를 번갈아 보던 아이가 갑자기 출렁다리 위로 올라가야겠다고 선언한다. 다리가 얼마나 튼튼한가 정말로 실험하려는 건지 물어보려는데, 다시 벌써 저만큼. 배추흰나비를 대신해 잰걸음으로 아이를 쫓는다.
출렁다리까지 앞으로 한 걸음. 다리 밑에서 바라볼 때보다 길이가 더욱 길어진 듯한 기분은 착각일까. 이 순간은 아이도 긴장되는지 맞잡은 손에 힘을 준다. 느릿한 속도로 걷는 동안 슬쩍 옆을 보니 아이의 시선은 구멍이 송송 뚫린 바닥에 머문 채다. 세 다리가 이어지는 동그란 철판 위에 도착해서 말을 꺼냈다. “무섭지 않아? 아래를 보고 건너다니, 대단하다.” “연못 안에 예쁜 돌들이 있을 것 같아서요. 여기서 발견하기 쉬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상도 못 한 깜찍한 대답에 그저 웃음 지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멋진 생각이다. 예쁜 돌 대신 꽃은 어때? 저길 봐, 연못에 뜬 분홍색 수련이 여기서도 보인단다.” 발밑을 물끄러미 보던 아이가 수련을 발견하고는 ‘우아’ 하고 작게 탄성을 지른다. 어른과 아이의 눈높이가 같아진다. 둘만의 기억이 연못에 스르르 녹아든다.
이 계절의 열기는 한낮이 되면 더욱 강해진다. 잠시 더위를 피할 요량으로 시원한 곳을 찾는다. 다행히 광명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피서법이 하나 존재한다. 그 방법을 온몸으로 만끽하러 가학산 방향으로 달린다.
신비한 광명동굴 속으로
가학산 위쪽에 자리한 광산은 1912년 일제강점기에 문 열고 1972년 폐광될 때까지 광부들이 금, 은, 아연 등 각종 자원을 캐던 곳이다. 광산은 2012년 광명동굴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여행지로 거듭나 방문객을 부른다. 이제 동굴 안으로 천천히 들어간다. 동굴 입구에서부터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감싼다. 언제 더웠냐는 듯 입에서는 입김이 나오고,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닿는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 양옆에 맑은 지하수가 졸졸 흐른다. 무심코 동굴 벽면을 손으로 훑자 물기가 축축하다. 천장과 벽면에도 지하수가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걷는 동안에는 천장에서 종종 물방울이 떨어지니, 땅속 동굴에 들어왔음을 실감한다.
오래 걷지 않아 좁은 길이 탁 트이고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오색찬란하게 빛을 내는 조형물 덕에 꿈나라에 온 것 같다. 동굴은 빛 조형물을 설치해 밝게 빛나는 ‘웜홀광장’, 반짝이는 금으로 뒤덮인 콘셉트로 꾸민 ‘황금동굴’, 350명에 달하는 관객을 수용하는 공연장 ‘예술의전당’ 등 옛 동굴 모양을 최대한 보존해 다양한 공간과 볼거리를 만들었다. 처음 맞닥뜨리는 광경에 아이는 폴짝폴짝 뛰어오르기 바쁘다. 그중에서도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곳은 ‘동굴 아쿠아월드’다. 동굴에 흐르는 1급 암반수를 이용해 다양한 민물고기를 관찰하도록 했다. 아이는 맑은 물에서 헤엄치는 각종 물고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이뿐 아니라 동굴의 평균온도가 12~13도로 일정하다는 특징을 이용해 와인을 숙성하는 장소도 존재한다. 아이에게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어른에게는 달큼한 와인 한 잔까지 선물하니 동굴을 나오는 여행자의 얼굴에 행복감이 가득 찼다.
광명동굴의 즐거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동굴 밖 ‘라스코 전시관’에서 어린이를 위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광명동굴에서 직접 채굴한 광물을 관찰하고, 꼬마 원정대가 되어 포클레인 모형을 조종해 본다. 아이들의 마음을 빼앗는 체험은 ‘빛나는 보석 찾기’. 바닥에 구멍이 뚫린 패닝 접시에 모래를 잔뜩 부은 다음, 접시 손잡이를 잡고 물에 넣어 살살 흔들면 알갱이가 큰 보석은 표면에 남고, 모래는 물 아래로 가라앉는다. “이것 봐요! 진짜 보석을 찾았어요. 너무 예쁘다. 이거 집에 가져가도 돼요?” 손톱만 한 보석을 집어 빛에 이리저리 비춰 보더니 소중한 듯 손에 꼭 쥔다. 이곳에서 발견한 천연 보석은 체험을 마치고 가져가도 좋다. 보석만큼이나 반짝이는 추억이 마음 안에 몽글몽글 맺힌다.
기차로 시작한 여정을 다시 기차로 끝맺을 시간, 걷는 내내 재잘대던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자마자 꾸벅꾸벅 졸다 잠들었다. 하루 여행이 어땠는지 묻지는 못해도 동그란 얼굴에 띤 엷은 미소 덕에 짐작이 간다. 꿈에서도 즐거운 여행이 이어지기를. 아이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하루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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