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세계에서 사물이나 사상의 우열을 따지고 선후 관계를 짚는 모든 행위는 지극히 사소한 일일 것이다. 무수한 대립과 갈등 속에서 예술은 새로운 길을 내고 지우길 반복했으니, 그 모든 것이 역사의 유장한 물길이다. 이제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이라는 전시 제목을 되새긴다. 조각가 신미경에게 쉽게 마모되고 스러지는 비누의 성질은 역설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수백 년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듯한 그의 비누 조각은 언뜻 보아 연혁을 추적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전시 주체인 스페이스 씨의 소장품과 나란히 놓인 까닭에, 무엇이 유물이고 무엇이 작품인지 도통 구분할 수 없다. 시간의 경계가 흐려진 이곳에서 작가는 도리어 시간의 본질에 대해 묻고 있다.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전
스페이스 씨 개관 2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로, 현대와 고전의 경계를 허물고 동서양의 교차를 꾀하며 다양한 차원의 시간과 물질을 아우른다. 사물이 유물로 변해 가는 과정은 비누라는 일상 소재를 예술 작품으로 환원하는 신미경의 작업과 궤를 같이한다. 6월 10일까지. 문의 02-547-9177
비누, 신미경의 좌표
“1990년대만 해도 영국에선 ‘동양에서 온 작가’가 서양 고전을 깊이 이해하고 정교하게 작업할 수 있다는 걸 꽤 신기하게 바라봤죠.” 신미경은 흔들리는 정체성을 다독이며 유학길에 올랐던 당시를 회고했다. 한국에서 갈고닦았던 작가의 역량은 영국 주류 미술계에서 ‘의외성’으로 받아들여졌다. 그의 기술과 지식의 결과물은 원전으로 읽히기보단 낯선 나라에서 온 동양인의 기예로 여겨진 것이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영국 런던 슬레이드 스쿨 대학원 조소과에서 공부와 작업을 이어 가던 때, 마침 자신에 대해 발표해야 할 일이 생겼다. “당시 지도 교수님 말씀이, 네가 의심하는 걸 논하라고 하더군요. 처음 실마리를 잡은 순간이에요. 의심으로 무언가를 정의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 비로소 신미경은 자신의 좌표를 찍었다. 특정한 태도나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회의하는 것 그 자체가 예술가의 지평이라는 점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러곤 심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편견을 딛고 자신만의 주체성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비누를 선택했다. 손을 타고 쉽사리 녹아 없어지는 비누의 속성에서 다양한 함의를, 예술적 잠재력을 엿봤다. “어느 날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데 자그마한 분홍색 비누 덩어리를 보고 불그스름한 대리석이 떠올랐어요. 곧장 비누를 집에 가져와서 깎았고, 가능성을 봤어요. 대리석처럼 거대한 비누 조각을 모형화하는 시뮬레이션을 시작했죠.” 그날로 비누 제조업체에 편지를 썼다. 하양, 분홍, 초록, 노랑···. 개인이 구하기 힘든 형형색색의 큰 비누 덩어리 4개를 얻었고, 이를 갈아 가루로 만들었다. 학교 복도에 놓인 조각상을 본떠 비누로 빚었는데, 이것이 초기작 ‘번역(Translation)’ 연작의 출발점이다.
오래가진 않았다. 신미경은 한순간도 멈춰 있기를 거부했다. “단순히 깎아 내는 것을 넘어 다양한 작업 방법을 궁리해야 했죠.” 돌이나 나무를 활용해 형상을 만들어 내는 작업을 구시대의 유산으로 치부하던 시대, 똑같은 작업만 반복한다면 비누라는 소재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은 곧 잠잠해지리라 예감했다. “쉽진 않았어요. 비누를 틀에 붓고 굳히는 주물 작업에서 의도치 않은 결과물이 나오곤 했거든요. 비누에 글리세린이 첨가돼 있어 표면이 젖는 문제도 발생했죠. 다만, 미처 예측하지 못한 현상에서 힌트를 발견하는 짜릿한 순간도 있었어요. 작품 표면에 피막을 입혀 윤기를 내는 바니시 작업도 그렇게 시작한 거예요. 그간의 애로 사항과 실패 과정이 이 모든 작품에 녹아 있답니다.”
만들고 허물며 나아가다
신미경은 비누를 다루는 자신의 작업을 일종의 번역 행위라 자평한다. 서양미술사의 조각상이나 아시아 문화권의 도자기처럼, 일상적 삶과 거리가 먼 문화유산을 비누라는 친숙한 소재로 환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관심에서 멀어진 것을 환기하고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거죠. 고전은 어떻게 보면 고루하게 느껴지잖아요. 저조차도 왜 박물관에서 유물을 봐야 하는지 늘 의문이었어요.”
그의 말처럼 예술의 역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물과 현상을 다른 측면으로 환기하는 데 의의가 있다. 다만 그런 길을 걷는 동안 고통은 오랜 벗처럼 그의 옆자리를 파고들었다. 전시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비누 담는 거푸집이 터져 2톤 분량의 비눗물이 호수처럼 작업장을 잠식한 재앙 같은 일도 있었고, 쉽게 닳아 없어지는 비누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활용해야 할지 아니면 작품의 수명을 연장하며 새롭게 시간을 덧대야 할지 작품관에 관한 고민을 거듭하던 때도 있었다. 혹은 비누를 계속 주요 소재로 삼아도 될지 고뇌하며 잠 못 이룬 날도 많았다. 이런저런 고민으로 유리와 세라믹 등 몇 년간 다른 소재를 연구함으로써 얼마간 ‘비누 공백기’를 가지기도 했다.
“종국엔 벌어진 모든 일이 자양분이 되더군요. 좋든 싫든 파도처럼 닥쳐와 피할 수 없던 일련의 사건들이 내 정체성을 이루는 조각이 됐습니다. 갈팡질팡하던 생각의 파편과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 그 틈바구니에서 갈고닦은 기술이 나를 일궜달까요. 그렇게 타의로 만들어진 상태를 자의적으로 받아들이는 동안 작업이 한층 즐거워졌어요.” 그러고 보면 신미경은 마치 그가 다루는 비누와 꼭 닮았다. 공들여 축조한 뒤 구태여 스스로를 소진하는 모습이 그렇다.
잠시 동안 그는 또 다른 전시가 열릴 미국 필라델피아에 머문다. 비누 운송이 까다로워 현지에서 작업해야 한단다. 그러면서 6톤짜리 비누 덩어리 작업을 예고했다. “1996년 처음 비누로 작업하기로 결심하며 꿈꿨던 일을 이제야 착수하는 셈이죠. 오랜 염원을 실현할 날이 머지않았네요.” 그렇게 그는 또 다른 세계와 기꺼이 충돌한다.
“불안하고 힘들고 때론 허탈해요. 물론 이젠 알아요. 앞으로도 늘 험난할 거예요. 그렇다고 정체해선 안 돼요. 히트곡만 부르는 무난한 가수처럼 되긴 싫거든요. 익숙한 건 뒤로하고, 내가 몰랐던 새로운 일을 시도해 봐야죠. 작가에겐 늘 처음이 있어야 하니까요.”
신미경
1967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영국 런던 슬레이드 스쿨과 영국 왕립예술학교에서 수학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영국에 거주하며 비누를 이용해 유물 등 다양한 문화 생산물을 ‘번역’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전시를 열고 국제적 명성을 쌓았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시립미술관, 미국 휴스턴 미술관, 영국예술위원회, 영국 브리스톨 미술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 중이다. 비누를 비롯해 세라믹, 청동, 레진 등 다채로운 물성에 몰두해 작업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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