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를 뿌리고, 기르고, 수확한 것을 먹는다. 짧은 문장에 담았어도 현대사회에서 행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상점이나 인터넷에서 손쉽게 재료를 구할 수 있지만 정하완 셰프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바로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이다. 땅에 심고, 정성껏 기른 다음 수확한 것을 요리해 상에 올린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자식을 일컫는 단어인 기가스. 땅의 자식인 정하완 셰프의 요리도 땅에서 출발한다.
# 옛날 방식 그대로 팜 투 테이블이 생소한 개념은 아닙니다. 옛날 우리 조상은 논과 밭에서 직접 기른 작물을 요리해서 먹었잖아요. 물론 지금도 그런 분이 많고요. 이 방식을 시작한 이유는 단 하나, 맛입니다. 씨앗일 때부터 관리해서 요리사가 상상하는 맛에 가장 가깝게 기르는 거예요. 또 필요한 작물을 원하는 만큼만 취하지요. 많이 얻는 게 목적이 아니기에 무리하거나 욕심내어 기르지 않아요. 단지 알맞은 순간을 기다릴 뿐이에요. 이렇게 요리하면 다른 레스토랑과는 차별된, 저만 낼 수 있는 맛이 탄생한답니다. 가게 문을 닫고 쉬는 날 경기도 군포 외곽에 위치한 ‘와니농장’으로 갑니다. 여기서 자란 채소들이 손님상에 올라가지요. 3월은 작물을 기를 시기가 아니라 주로 채집을 해요. 대여섯 시간 돌아다니면 작은 소쿠리 10개 정도 분량이 나옵니다. 무엇을 얻을지는 저도 몰라요. 자연은 예측할 수 없으니 직접 가 보아야 합니다. 채집을 마친 후에는 씨앗을 뿌리고 심어요.
# 태어날 때부터 배우는 요리 요리는 태어날 때부터 배운다고 생각해요. 어릴 적 부모님이 해 주신 음식에서 시작하지요. 밥에서는 무슨 맛이 나는지, 식감은 어떤지, 단맛·짠맛·매운맛이 어떤 맛인지를 배워요. 또 누군가 요리하는 것을 보면 주방 일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잖아요. 학교나 유명 레스토랑에 가서 요리를 배우기도 하지만 사람이 처음 배우는 요리는 어릴 때 먹었던 음식이에요. 저는 시골에서 자라 밭에서 바로 딴 재료를 쓴 음식을 많이 먹었어요. 그래서 직접 키운 것으로 만든 음식이 가장 맛있게 느껴집니다.
# 타인을 설득하는 과정 요리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어요. 지금 돌아보면 요리사의 성공한 면만 보고 이 세계에 뛰어들었네요. 요리사라는 직업 자체가 멋있다고 느꼈거든요. 당연히 현장은 달랐어요. 주방의 세계는 늘 험하고 엄했습니다. 힘들 때도 많았는데, 그냥 무작정 했어요. 저는 꾸준함의 힘을 알거든요. 모든 직업은 타인을 설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음식을 맛보는 손님에게 구성은 이렇고, 재료는 무얼 썼고, 그래서 이렇게 맛이 뛰어나다고 안내하는 거예요. 그렇게 20년 넘도록 저와 꾸준함의 힘을 믿으며 요리를 해 왔네요. 제 방식을 손님에게 맛으로 설명한다고 되뇌면서요.
# 맛이 주는 행복 사람은 맛에서 즐거움을 느껴야 해요. 단순하게 말해서 먹는 것으로 기쁨과 행복을 얻었으면 한다는 거죠. 저희 레스토랑은 손님에게 자연의 음식, 집의 음식을 내어 주려 합니다. 혀의 감각으로 자연의 맛을 느끼도록 유도하고, 설득하지요. 현대인은 자연의 맛을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지중해 요리를 택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에요. 해산물과 주변에서 나는 채소를 조화롭게 어우르죠. 지중해 요리가 좋아서라기보다 요리 형식이 재료 본연의 맛을 잘 드러내기에 그 틀을 선택한 거랍니다. 저는 그 틀을 이용해 자연의 맛을 맛있게 끌어내는 역할을 하고요. 그것도 엄청 맛있게요.
#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 지금까지 이룬 모든 성과는 제게 동기부여가 된 상장이에요. 그렇지만 아직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더 노력하고, 꾸준히 해야죠. 오랫동안 사랑받는 식당을 운영하고 싶어요. 요리사는 손님에게 좋은 걸 드리고 싶은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해요. 그 마음과 자신을 믿는 것. 팜 투 테이블을 실천해 ‘예쁜’ 맛을 내는 것이 기준점이자 목표입니다.
서해 관자, 오소 이라티와 우엉 세미프레도
농장에서 키우거나 채집한 허브를 산양유 치즈인 페타 치즈와 섞어 허브 퓌레를 만듭니다. 그 위에 튀긴 서해 가리비 관자를 올려요. 모차렐라 크림, 캐비아, 소금에 절인 훈연 돼지비계를 곁들인 뒤 냉이, 마저럼, 민트 같은 생허브를 얹지요. 그렇게 요리한 ‘서해 관자’는 다양한 허브 향이 느껴져서 매력적이에요. ‘오소 이라티와 우엉 세미프레도’는 계절감을 반영한 디저트 메뉴예요. 고체와 액체 중간 형태인 이탈리아 아이스크림 세미프레도와 달콤하게 조린 우엉, 계피에 절인 곶감, 그리고 산양유로 만든 치즈인 오소 이라티를 조합했어요. 디저트지만 많이 달지 않아 식사를 마무리하기에 좋습니다.
정하완 셰프가 사랑하는 미식 공간
조은희 주방장님과 박성배 조리장님이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의 온지음 레스토랑은 조선 시대 궁중 요리에서 영향을 받은 옛 반가 음식을 내놓는 곳인데, 한국의 제철 식재료를 이용해 한식 코스 메뉴를 선보여요. 음식으로 표현한 계절이 늘 감탄스럽습니다. 서울 중구의 더플라자 호텔 내 신창호 셰프님이 운영하는 한식당 주옥은 팜 투 테이블을 지향합니다. 농장에서 키운 허브, 경남 진주의 텃밭에서 재배한 들깨로 짠 들기름을 사용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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