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온라인 게시판과 SNS를 달군 질문이 하나 있다. “1월 2일 정상 출근하나요?” 현실 부정이거나 대체공휴일을 혼동했거나 직장인의 애환이 느껴지기는 매한가지다. 일단 확인하고 넘어가자. 대체공휴일은 공휴일이 주말일 때 그다음 오는 첫 번째 평일을 공휴일로 정하는 제도로, 2023년 1월 현재 적용 대상은 설·추석 연휴와 어린이날,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3·1절, 부처님오신날과 성탄절뿐이다. 새해 첫날인 1월 1일은 법정공휴일이지만 대체공휴일 적용 대상은 아니다. 따라서 1월 2일에 쉴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날 아침 출근길은 유독 추웠던 것 같다.
쉬는 날만 기다리는 직장인에게 달력의 ‘빨간 날’을 헤아리는 것만큼 절박한 일이 또 있을까. 대한민국의 법정공휴일은 매주 일요일과 앞서 열거한 대체공휴일을 적용하는 날, 새해 첫날, 현충일, 임기 만료에 의한 선거의 선거일, 그 외 정부에서 수시로 지정하는 임시공휴일이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지역의 역사적 사건 발생일을 지방공휴일로 정하기도 한다. 제주도에서는 4·3 희생자 추념일을, 전북 정읍에서는 5·11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을, 광주에서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지방공휴일로 삼는다. 이날 해당 지역 관공서는 모두 쉬고 학교나 사기업은 휴무를 권고받는다니, 지역민이라면 잠시 일을 멈춘 채 역사를 되새겨야 마땅하다.
헌정 사상 처음 공휴일을 제정한 1949년 이래, 공휴일 관련 규정은 총 열여덟 차례 개정을 거쳐 지금 모습을 갖췄다. 굵직한 개정 사례 몇 가지만 추리면 다음과 같다. 1950년에 UN 창립일인 10월 24일을 국제연합일로, 1956년엔 6월 6일을 현충일로 추가 지정한 이유에는 전쟁이란 슬픈 공통점이 있다. 1990년에는 한글날을, 2005년에는 제헌절을 공휴일에서 삭제한다. 이로써 제헌절은 국경일이되 쉬지 않는 유일한 날이 되었고, 한글날의 공휴일 지위는 2012년에야 복권된다. 사흘을 내리 쉬던 새해 첫날 연휴는 1989년에 이틀로 줄었으며, 음력 1월 1일만 휴일로 치던 설날은 그제야 사흘간 연휴로 늘어난다. 1895년 을미개혁 때 폐지했으나 암암리에 모두가 쇠던 음력 설날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결과다. 1998년에 이르면 새해 첫날 휴일은 하루로 축소된다.
2023년은 설·추석 연휴 기간과 부처님오신날이 모두 토요일과 겹치는 해로, 가뭄 속 단비 같은 대체공휴일이 우리의 빠듯한 휴식을 수호한다. 대체 휴무 제도가 한국사에 등장한 시점은 1959년이다. 안타깝게도 ‘공휴일 중복제’의 존속은 짧았고,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1989년 ‘익일 휴무제’로 부활했지만 산업계 반발로 번번이 폐지됐다. 대체공휴일이 안착한 건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제3조’를 신설한 2013년 8월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설·추석 연휴와 어린이날이 일요일과 겹치는 날만 대체공휴일로 적용했기에, 2015년 8월 14일 금요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 것은 전 국민이 열광할 만한 사건이었다. 통상 임시공휴일은 1949년 7월 5일 백범 김구 선생 장례식, 1969년 7월 21일 아폴로 11호 달 착륙 기념일, 1988년 9월 17일 서울올림픽 개막일, 2002년 7월 1일 월드컵 성공 개최 기념일처럼 모두가 기꺼이 울고 웃을 수 있는 날에만 발효해 왔기 때문이다. 그후 2017년 10월 2일 월요일, 2020년 8월 17일 월요일까지 두 차례 임시공휴일을 거치며 대체 휴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고, 2021년과 2022년에는 대체공휴일을 확대 운영하겠다는 발표가 이어졌다.
아아, 휴식의 당위를 갖춘 날을 더 발굴할 순 없을까?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관료들은 음력 1일은 물론이고 7일, 15일, 23일과 24절기마다 쉬었다고 한다. 명절 연휴도 지금보다 훨씬 넉넉했다. 설날에 7일, 정월대보름과 단오에는 각각 3일이 휴가로 주어졌다. 심지어 일식과 월식에도 휴식을 취했다. 최근 발표된 OECD 조사 결과 2021년 기준 한국인의 연간 노동시간은 1915시간이다. 38개 회원국 중 당당히 5위를 차지한 K-노동자에게 더 많은 K-휴식이 필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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