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진 건물에서 자고 일어나 다른 각진 건물로 가서 하루의 의무를 수행한다. 건물과 건물 사이는 효율을 최대화하려는 목적을 갖고 설계한 길이 잇는다. 그러다 어느 날, 익숙한 건물이나 길에서 중얼거린다. 음, 이게 전부는 아닐 거야. 숨을 쉰다고 다 제대로 쉬는 게 아니므로. 그렇게 여행은 호흡하는 수단이 된다. 키 큰 나무같이 긴 세월을 머금은 곳, 오랜 시간이 이야기를 눈같이 쌓아 놓은 곳, 푸근한 음식이 몸과 마음의 허기를 달래 주는 곳이 그리워 전남 나주를 찾았다. 읍성을 중심으로 조선 시대 객사인 금성관을 비롯해 목사내아, 나주향교 등이 잘 보존되어 정취가 그만이다. 정취의 핵심이 이어 가는 일, 곧 분위기를 깨지 않는 일이라면 나주의 정취는 가히 으뜸이다. 금성관과 읍성의 정취를 순한 건물들과 좁은 골목이 서로 도와 완성한다. 이 풍경에 또 하나의 점을 찍는 공간이 ‘39-17마중’이다.
+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나주역까지 2시간, 광주송정역까지 1시간 50분 정도 걸린다.
오로지 정성스러운 마음, 39-17마중
동학농민운동 당시 관군을 이끈 이가 이듬해 항일 의병을 일으켜 선두에 섰다가 처형된다. 아버지를 잃은 아들은 가문에서 관리하던 언덕 위 정자를 고쳐 세우고 선친을 기린다. 이름은 아버지 호 ‘난파’에서 딴 난파정. 정석진 선생의 아들에 이어 손자가 1939년 어머니를 위해 언덕 아래 평지에 집을 짓는다. 당시 전남 유일의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했을 만큼 신경 썼다. 한국·일본·서양 양식을 절묘하게 혼합한 독특한 집은 미관이나 기능 면에서 모두 빼어나다. 어찌나 좋은 자재를 썼는지, 천장의 조명등마저 지금껏 그대로다. 결국은 마음, 언제나 마음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이 아름다운 집을 만들었다.
고택을 둘러보는 내내 구석구석의 예쁘고 신기한 부분을 놓칠까 초조해졌으나, 남우진 대표는 모눈종이처럼 세세히 구획별로 설명해 주고 감탄을 소화할 시간을 주는 안내자였다. 2015년 우연히 나주에 와서 이 집을 보고는 푹 빠졌다고 했다. 오랫동안 사람이 거주하지 않았음에도 기품 있는 건물에서는 빛이 나는 느낌이었다고.
버려진 건물과 정원을 청소하고 단장해 2017년 게스트하우스 ‘목서원’을 열었다. 앞뜰의 금목서가 고택과 어우러진 풍경이 그냥 그림이다. 남우진·기애자 대표는 이 일대 1만 2500제곱미터(3800평) 면적을 아우르는 건물 일곱 개 동과 정원을 차근차근 가꾸어 나갔다. 나주도, 공간도 진심으로 좋았다. 공연, 전시를 열고 투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오래된 동네에 새로운 활기가 돌아 뿌듯했다. 쌀 창고는 카페가 되어 손님을 맞는다. 친환경 나주배를 이용한 음료와 다과 한 상을 즐기며 담장 너머 나주향교의 건물과 고목을 감상한다. 따끈한 배생강차가 향기롭다. 배를 손으로 일일이 썰고 다져 낸 차는 나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만들어 준 것 같다. 이런 풍경과 맛이라니, 지난 1년 내내 긴장하고 다닌 몸이 사르르 풀린다.
+ 나주배쌀빵
‘남도맛기행’이라는 주제에 맞춰 8권역에서 남도의 맛을 담은 굿즈를 출시했다. 배 하면 떠오르는 도시 나주의 굿즈는 배즙과 쌀로 만든 건강한 빵이다.
문의 061-335-0021(레인보우팜(주)농업회사법인)
광주는 빛이다. 민주주의가 빛이기에 광주는 빛이다. 말할 자유, 이웃과 함께할 자유, 먼 데 있는 이에게 전화로 안부를 물을 자유, 여행할 자유도 없던 어둠의 시절에 광주가 빛을 지켰다. 군을 움직일 명령권을 가진 이가 도시를 짓밟았으나 결코 빛을 꺼뜨리지 못했다. 전일빌딩245는 그 빛의 현장이다. 아프고 자랑스러운 역사 속으로 발을 내딛는다.
이 도시가 빛이라는 증거, 전일빌딩245
1968년 전일빌딩은 지역을 대표하는 언론사 전남일보 사옥으로 건축했다. 길 하나 건너면 전남도청. 그만큼 광주의 심장부였다. 7층으로 시작해 세 차례 증축을 거친 1980년에는 10층 대형 건물이 되었고 내부에 들어선 신문사, 방송사, 도서관, 미술관, 학원과 상업 시설 덕분에 유동 인구도 엄청났다. 광주민주화운동과 언론 통폐합, 도청 이전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건물은 한때 철거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자유가 도래한 시대엔 토론을 했다. 건물 내외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정밀 조사해 탄흔 245개를 발견했다. 건물을 보존할 이유가 명확해졌다. 5·18의 목격자나 다름없는 건물을 역사를 기념하는 공간으로 만들자고 결정했다. 본래 지번인 245번지와 일치하는 탄흔 숫자를 건물 이름에 박았다. 이후 조사에서 탄흔이 추가로 나왔지만 처음 지은 의미를 새겨 ‘전일빌딩245’라고 부른다.
건물은 어제를 배우고 간접 체험하게 한다. 어둠에 맞선 빛의 시간에 더해, 전일빌딩과 광주의 역사와 오늘을 보여 주려 다양한 공간과 시설을 마련했다. 1층 로비엔 전일빌딩 모형과 간략한 역사, 이이남 작가의 미디어 아트 작품이 눈길을 끈다. 작품 앞에 놓은 의자는 이전 전일빌딩 계단 핸드레일을 재활용한 것이다. 남도관광센터가 자리 잡은 2층에서는 광주와 남도의 여행지를 소개하고 재치 넘치는 굿즈도 판매한다. 전남일보 편집국 자리였던 3층은 5·18과 언론을 주제로 한 전시 공간을 조성했고, 8층에는 커다란 굴뚝이 이색적인 야외 정원과 실내 카페가 쉼을 선사한다. 탁 트인 옥상정원 전망도 빼놓을 수 없다.
하이라이트는 9층과 10층의 19800518메모리얼홀이다. 다른 날과 똑같이 24시간인 하루가, 평범하게 흘렀을 열흘이 어떻게 역사가 되는지 그 현장으로 초대한다. 당장 사무용 가구만 들여놓으면 그대로 일상의 업무 공간으로 보일 곳인데 바닥과 천장, 기둥에 탄흔이 선명하다. 탄흔의 높이와 각도가 헬리콥터 사격의 증거다. 헬기 사격을 주제로 한 영상, 관련자의 증언으로 5·18을 생생하게 경험한다. 무겁고 뜨거워진다. 불문학자 황현산 선생의 글이 떠오른다. “마음이 무거워져야 할 때 그 무거운 마음을 나누어 짊어지는 것도 우리의 의무다.” 5·18을 잊지 않겠다, 더 알아야겠다 하는 이 마음은 의무다. 오후 5시 18분, 건물 앞 5·18민주광장에서 매일 울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돌아가는 길을 배웅한다.
+ 오월쿠키
5·18 정신을 기억하고 나누기 위해 100퍼센트 우리 밀을 사용해 고소한 쿠키를 구웠다. 문의 070-4267-7725(가치키움사회적협동조합) *광주의 오월쿠키와 나주의 나주배쌀빵을 묶은 ‘달콤주주’ 패키지도 출시했다.
‘남도맛기행’ 담양 추천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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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세쿼이아랜드
약 8.5킬로미터 거리에 메타세쿼이아가 나란히 자란 길은 2002년 아름다운 거리 숲 대상, 2006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최우수상을 받으며 전국에 이름이 높아졌다. 꼭 기관이 공인한 상이 아니라도 울창한 나무가 길게 이어지는 꿈같은 풍경을 보노라면 ‘여행자를 가장 행복하게 해 주는 길’상을 기꺼이 주고 싶어진다. 곳곳에 조각 작품을 설치하고 담양에코센터, 개구리생태공원, 어린이프로방스 등 다양한 시설을 준비해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이국적으로 꾸민 메타프로방스가 바로 옆이라 함께 방문하기 좋다.
문의 061-380-3149 -
소쇄원
입구로 향하는 대나무 숲부터 마음을 빼앗는다. 소쇄원은 1530년대 소쇄옹 양산보 선생이 조성한 원림이다.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희생되는 과정을 보고 열일곱 나이에 낙향해 평생 이곳을 가꾸었다. 숲 사이 계류와 바위 지형을 살려 아담한 정자를 올리고, 근처의 물을 끌어다 자그마한 못도 두 개 팠다. 볕과 그늘이,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루는 원림은 선비의 가치관과 이상을 그대로 담았다. 물 흐르는 소리, 댓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청량하니 귀를 씻는다. 몇 시간을 머물러도 그 시간이 짧게 느껴질 공간이다.
문의 061-381-0115
+ 대잎술
담양의 한 사찰에서 스님이 빚기 시작해 1000년간 전해 온 전통주 추성주를 양대수 명인이 계승, 발전시켜 대잎술로 내놨다. 약재와 대나무 향이 은은하게 감돈다. 문의 061-383-3011(추성고을)
‘남도맛기행’ 목포 추천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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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근대역사관
1897년 개항한 목포는 작은 어촌에서 대도시로 빠르게 바뀌었다. 일제는 목포를 물자 수탈 기지로 삼았고, 지금도 그 흔적이 유달산 아래 구시가지에 역력하다. 이때 건축물 가운데 일본영사관을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단장했다. 침략의 아픈 역사는 물론 끈질기게 저항한 역사도 꼼꼼하게 정리해 시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붉은 벽돌 외관이 인상적인 이곳에서 드라마 <호텔 델루나> 등 여러 작품을 촬영했다. 바깥의 방공호는 총길이 80미터가 넘는 거대한 굴이다. 강제 동원된 조선인의 흔적에 가슴이 아리다.
문의 061-242-0340 -
목포해상케이블카
3.23킬로미터에 걸쳐 왕복 40여 분 동안 하늘에서 목포의 도심과 산, 바다를 감상한다. 북항과 유달산, 고하도 세 군데에 정거장을 마련했는데, 각각 내려서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 북항스테이션을 출발하면 유달산 바위 봉우리가 성큼성큼 다가서고, 한편에는 도심과 다도해의 바다가 밀어닥친다. 유달산스테이션에서는 정상까지 약 500미터 거리라 걸어서 30여 분 만에 닿는다. 고하도는 명량대첩 승리 후 이순신 장군이 전력을 재정비하며 호흡을 고른 섬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과 전망대 등을 따라 둘레길을 조성했다.
문의 061-244-2600
+ 수제 쥐포와 목포는 항구다 아몬드 김스낵
목포 앞바다에서 잡아 말린 쥐포, 청정 남도 바다의 김으로 만든 스낵은 훌륭한 간식이자 안줏거리다. 문의 061-984-4804(오렌지바다), 061-984-8721((주)엠엠푸드) *담양 대잎술과 목포의 쥐포, 아몬드 김스낵을 묶은 ‘담술목주’ 패키지도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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