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나고 싶을 때 갈 데가 있다는 건 행복이다. 의무와 의무 사이를 성실하게 왕복하고, 성장할수록 이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지만 왕복과 전진이 삶의 전부일 수는 없다. 숨은 어디서 쉬라고? 춘천은 무작정 떠나도 좋은 곳이다. 경춘선 기차에서 북한강이 내다보이는 바깥 풍경부터 여행이었으며, 어느 역에 내리든 물길이 마음을 다독였다. 일평생 다시는 못 올 여행지처럼 머리 쥐어짜서 계획을 세우고 효율적인 동선으로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여행과 휴식이 고픈 날 춘천행 기차에 훌쩍 오르면 그뿐이니까. 춘천에서 숨을 고르는 동안 일상 속 크고 작은 일에 뜨거워진 머리는 제 온도를 찾아가고, 조금 거창하게는 내일을 낙관하게도 되었다. 청춘에게, 청춘을 지나온 누구나에게 춘천은 축복 같은 도시다. 한 계절이 매듭짓고 청춘을 닮은 계절이 다가오는 즈음, 춘천 가는 기차를 탔다.
오늘도 여전히 추억, 강촌레일파크
1939년 이름만으로 아련함을 선사하는 철도 노선 경춘선이 운행하기 시작했다. 도청 소재지라 교통 요지로서 철도가 필요했고, 일제강점기에 강원도 자원을 실어 나른다는 목적도 있었다. 해방 이후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대학생 인구가 늘어나면서 경춘선은 청춘과 낭만의 대명사로 자리 잡는다. 여가를 보내려, 단체 활동을 하러 사람들은 춘천에 모여들었다. 기타 치고 노래하고 웃는 시간이 춘천의 강물과 함께 넘실댔다. 막간의 즐거움은 청춘을 마음껏 청춘이게 했다. 방황과 우울함마저 그곳은 낭만으로 물들였다. 청춘, 추억이라는 은행의 본점. 북한강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경춘선은 그 은행으로 가는 공식 통로였다.
2010년 12월 경춘선이 복선 전철화해 옛 경춘선은 정말 추억이 된다. 전철과 ITX-청춘이 새로운 철길로 다니고, 71년간 이용한 철길은 거기 덩그러니 놓였다. 한국에 수많은 열차 노선이 있다지만 경춘선의 의미는 달랐다. 이대로 보낼 수 없는 단 하나의 기찻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염원이 이루어져 다행히 이곳은 강촌레일파크로 모두에게 돌아왔다.
고르게 사랑받은 만큼 강촌레일파크의 권역은 넓다. 과거 신남역이라 부르다 2004년 개명한 김유정역, MT 성지 강촌역, 여러 영화와 드라마 배경으로 등장한 경강역과 북한강철교를 아우른다. 문학을 테마로 대형 책 조형물 벽을 설치하는 등 아기자기하게 꾸민 김유정역에서는 강촌역까지 레일바이크와 낭만열차를 체험하고, 경강역은 북한강철교까지 레일바이크를 타고 왕복하는 코스를 마련했다.
+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용산역에서 ITX-청춘을 타고 춘천역까지 1시간 20여 분이 걸린다. 수도권전철 경춘선도 다닌다.
+ 춘천 알뜰하게 즐기기
강촌레일파크, 국립 춘천숲체원, 삼악산 호수케이블카, 애니메이션 박물관과 토이로봇관, 엘리시안 강촌, 강아지숲, 남이섬 등 춘천의 주요 여행지 일곱 곳 가운데 두 곳 이상을 연속 방문하면 할인 혜택을 받는다. 예를 들어 강촌레일파크 레일바이크 탑승권을 가지고 삼악산 호수케이블카를 이용할 때 주중에는 20퍼센트, 주말에는 10퍼센트 요금을 할인해 준다. 자세한 내용은 춘천 문화관광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문의 tour.chuncheon.go.kr
북한강과 나란히, 경강역 레일바이크
이번엔 경강역 레일바이크를 선택했다. 1997년 개봉해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차지한 <편지>를 비롯해 드라마 <천국의 계단> <닥터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등을 촬영한 경강역은 영상 속처럼 어여쁘다. 내가 감독이 된다 해도 사랑 이야기는 여기서 찍고 싶다. 붉은 벽돌과 청록 지붕, 역 건물 곁의 키 큰 나무, 매표소 앞 낡은 민트색 의자, 승강장으로 드나드는 하늘색 문, 세월의 녹이 슨 장치가 어우러져 가장 예쁜 장면을 연출한다. 바깥 벽면의 옛 우체국 로고 선명한 붉은 우체통도 반갑다.
휴게실에는 사람들이 색종이에 남긴 메모가 빼곡하다. 누가 누구와 사랑한다는, 우리 결혼한다는, 기다릴 테니 군대 잘 다녀오라는 메시지가 벽면을 덮었다. <편지> 또한 세상에 둘밖에 없는 듯한 사랑을 보여 주는 영화라, 사랑한 한순간을 담은 벽은 역에 잘 어울리는 인테리어다. 어제를 잘 보존한 역이 여행자의 어제를 끄집어낸다. 잊고 지내던 추억의 한 페이지가 떠오른다. 역을 보고, 방문했을 사람들을 상상하고, 내 예전 어느 날을 되새기고. 아, 역시 경춘선이고 춘천이다.
드디어 레일바이크에 오른다. 기차 타고 지나간 철길을 두 발로 페달 밟아서 간다. 벚나무와 느티나무 터널이 머리 위를 스치고, 건널목에서는 직원이 안전하게 건너도록 도와준다. 이내 북한강이 다가선다.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모른다지만, 이 기찻길을 레일바이크로 누릴 줄이야. 웃음이 새어 나온다. 북한강철교에 이르러서는 말을 잃었다. 강을 가로지르는 철교를 둘러싼 산수풍경이 절경이다. 과거에도 아름답다고 넋 놓았을 것인데, 오늘도 새삼 아름답다. 강원도와 경기도 경계인 철교는 이편이 강원도, 저편이 경기도다. 회차 지점인 철교에서 잠시 내려 다리 위를 걷고 사진을 찍는다. 기차를 운행한 시절엔 결코 못 했을 경험이 소중하다. 바로 앞 손님, 충남 당진에서 여행 왔다는 한 살짜리 강아지 마루와 보호자도 춘천 공기와 풍경을 머금으며 산책을 즐긴다.
돌아가는 길은 오는 길보다 짧게 느껴진다. 철교행 레일바이크에서 오르막 구간이 경강역행에서는 고스란히 내리막이라 페달을 밟지 않아도 바이크가 쌩쌩 나아간다. 기차 탈 땐 여기에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 레일바이크 덕분에 이 기찻길을 친밀하게 알아 간다. 춘천의 강바람, 산바람이 스며든다. 몸과 마음에 정체된 무거운 것이 씻겨 나가고 파릇파릇한 기운이 차오른다. 신나는 한 시간이 지났다. 웃음으로 꽉 채운 시간이다.
● 옛 경춘선 철길을 레일바이크로 달리는 강촌레일파크는 김유정역과 경강역에서 이용할 수 있다. 지난해 5월에는 한국 최초로 반려동물과 함께 즐기는 펫바이크를 출시했다. 펫바이크를 타는 경강역 옆에 반려견 전용 운동장도 마련해 놓았다. 문의 033-245-1000
포근하고도 짜릿한 소양강스카이워크
푸른 기운을 안고 소양강스카이워크로 향했다. 소양강이 의암호와 만나는 지점에 물 위로 174미터 뻗은 스카이워크는 투명 유리 바닥을 설치한 구간이 156미터에 이른다. 멀리서는 잔잔한 물결이 발밑 7.5미터 아래에서 찰랑대니 오싹하다. 스카이워크 끝까지 간신히 밟아 도착하자 ‘자연의 생명’이라는 제목의 물고기상이 가깝다. 맑은 물에서만 산다는 쏘가리는 스카이워크 주변 또 하나 동상인 ‘소양강 처녀’와 더불어 춘천의 상징이다. 쏘가리상을 받친 지주는 일제강점기에 수탈 용도로 건설한 화천댐 자재를 나른 삭도, 즉 케이블카의 지주다. 육로 대신 물길을 이용해 운반 거리를 단축했다 한다. 이토록 서정적 풍경을 두고 어찌 그리 나쁜 마음을 품었을까. 사람과 자연을 괴롭힌 탐욕이 패배하고 물러난 지금, 세월에 풍화한 흔적만 강물에 발 담그고 서서 옛이야기를 전한다.
물 한가운데에서 춘천을 바라본다. 모양이 제각각인 산이 층층이 도시를 두르고 어르는 듯하다. 춘천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가 이것인가 했다. 인간의 자잘한 과오와 실수 정도는 너끈히 덮고 안아 줄 만큼 풍부한 산과 물. 무릇 사람이라면 결국 이 넘실거리는 산과 물에 흠뻑 젖어 뭉클해진다. 고마워하게 된다. 사랑하게 된다.
● 174미터 길이의 소양강스카이워크는 156미터 구간 바닥을 투명 유리로 처리해 짜릿한 시간을 선사한다. 입장료 2000원은 같은 금액 춘천사랑상품권으로 돌려주는데, 기념품 가게 ‘설레임, 춘천’을 비롯한 인근 상점과 전통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다. 문의 033-240-1695
고도에 따라 바뀌는 풍경에 감탄이 나온다. 산이 꽃잎처럼 도시를 겹겹이 감싸고,
그 산 사이사이 너른 호수엔 섬이 떠 있다. 순간순간이 아름답다.
햇살에서 봄을 본다. 어린 시절도, 지난겨울도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지났다고 말만 하기엔 계절이 아깝다.
이 봄마저 엊그제가 되기 전에 춘천 가는 기차를 탈 일이다.
눈부신 산수화 속으로, 삼악산 호수케이블카
춘천을 수평의 시선으로 감상한 뒤, 수직의 시선으로 감상하는 삼악산 호수케이블카를 찾았다. 의암호 수변 삼천동과 해발 655미터 삼악산을 연결하는 3.61킬로미터 길이의 한국 최장 케이블카가 지난해 10월 개장했다. 밑이 투명한 크리스탈 캐빈과 일반 캐빈 중 크리스탈 캐빈을 골라 앉으니 금세 둥실 떠오른다. 고도에 따라,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춘천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산이 꽃잎처럼 도시를 한 겹 한 겹 정성스레 감싸고, 그 산 사이사이 너른 호수엔 붕어섬·상중도·하중도가 떠 있다. 그 곁에 사람이 건물 짓고 길을 내어 일상을 영위한다. 순간순간이 아름다워 캐빈을 멈추고 싶다가도 다음 순간이 궁금해 눈을 360도로 돌린다.
물가를 출발해 해발 450여 미터 지점으로 이동하는 케이블카답게 상승 각도가 가파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어디는 꽁꽁 얼었고 어디는 푸른 물이다. 산 그림자 진 데는 아직 겨울이나 봄의 기세를 막진 못해 마지막 그늘까지 곧 봄이 닥치겠다. 2킬로미터 거리의 호수 구간을 지나고 나머지는 산 구간이다. 경사 급한 산에서 다양한 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사는 모습이 기특하다. 물은 자연스레 제 길을 알고 골을 찾아 모여 흐른다. 이 작은 물길이 내려가 춘천을 물의 도시로 만든다. 상부 승강장 전망대 근처에는 정상에 접근하는 생태탐방로가 올봄 문을 연다. 케이블카 아래 펼쳐진 그 산, 경강역에서 바라다본 그 산을 내 두 발로 직접 만난다.
● 3.61킬로미터 길이의 한국 최장 삼악산 호수케이블카는 의암호 수변과 삼악산을 잇는다. 캐빈은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탈 캐빈과 일반 캐빈으로 나뉘며, 4월 중에는 야간에도 운행할 예정이다. 문의 033-250-5403
춘천만의 ‘봄스러움’으로 봄을 시작하다
다시 봄날, 춘천을 다시 본다. 벗어나고 싶은 언제든, 어떤 심정으로 오든 받아 준 고마운 도시. 어제의 모습 간직한 춘천도, 달라진 춘천도 있다. 봄은 매번 새봄이듯 춘천 또한 언제나 그리운 춘천이면서 새로운 춘천이다. 레일바이크와 케이블카를 타고, 잘 단장한 걷기 길과 자전거 길을 누비고, 카누에 올라 물길을 탐방하다 커피를 한잔하는 동안 춘천만의 ‘봄스러움’이 가슴에 흘러들어 온다. 어린 시절도, 청춘도, 지난겨울도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지났다고 말만 하기엔 계절이 아깝다. 일단 춘천 가는 기차에 오르는 것으로 봄을 시작할 일이다. 이 봄마저 엊그제가 되기 전에.
춘천의 핫한 카페거리
소양강댐 카페거리
아름다운 소양강댐 경치를 끼고 자연스럽게 카페거리가 생겨났다. 닭갈비·막국수 맛집도 여러 곳이라 식사와 후식을 한자리에서 즐긴다. 모든 카페에서 소양강이 가까워, 커피를 손에 들고 강변을 산책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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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림고개 카페거리
육림극장이 있던 육림고개에 청년 상인이 하나둘 모여 형성한 ‘핫플’이다. 자신만의 감각을 담은 카페와 다양한 메뉴의 맛집이 여행자를 기다린다. 영화를 테마로 단장한 포토 존도 인기. 명동닭갈비골목, 춘천중앙시장과 인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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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산 카페거리
구봉산 중턱의 카페거리는 어느 카페를 선택하더라도 탁 트인 풍경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카페마다 마운틴 뷰, 리버 뷰 등 전망이 조금씩 달라 방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생 사진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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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 카페거리
물의 도시 춘천이 자랑하는 풍경 중 하나가 의암호다. 정성스럽게 내린 커피가 춘천의 아름다운 정경과 어우러져 최고의 맛을 낸다. 커피 마시러 춘천까지 갈 이유, 충분하다.
#근처여행지 #애니메이션박물관 #토이로봇관 #의암호물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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