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yle

프란체스카의 답십리 시간 여행

2026년 06월 01일

  • writer 박진명(헤이! 트래블 기자)
  • PHOTOGRAPHER 장은주

일상으로 깊숙이 스며든 레트로 열풍 속에 답십리 고미술 상가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독일 출신의 프란체스카와 답십리 골목을 걸으며 오래된 미래를 마주했다.

사물의 시간을 불러오는 마법, 예명당

서울 답십리가 고미술의 성지가 된 건 1980년대, 청계천 주변에서 장사하던 상인들이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한 이곳으로 터전을 옮기면서였다. 이후 5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답십리에는 2·3·5·6 네 개 동에 140여 개의 상점이 들어서 있다. 메인 상가는 2동으로, 세련된 감성으로 골동의 우아함을 어필하는 고복희 엔틱숍, 박제된 유물로서의 골동이 아닌 생활 속 쓰임을 제안하는 오브 등이 자리한다. 이렇듯 답십리 고미술 상가에 새로운 바람이 불면서 1세대 숍의 풍경도 사뭇 달라졌다. 예명당이 대표적이다. “1년 전부터 손님들에게 차를 내주기 시작했어요. 젊은이들이 물건을 만지고 사용하며 색다른 경험을 해 보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죠.” 답십리에서 25년 업력을 쌓은 정영섭 대표가 고려 시대 찻잔에 담긴 말차를 건네자 숍에 있던 조선 시대 가죽신을 신고 갓을 쓴 프란체스카가 조심스레 받아 든다. “독일에서는 오래된 물건을 쓰는 걸 당연시해요. 저희 가족도 증조부가 쓰시던 가구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이곳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아요.” 세월이 깃든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프란체스카가 예명당 분위기와 잘 어울려 보인다.
주소 서울시 동대문구 고미술로 21(2동 164호)

답십리 속 오래된 미래, 호박포크아트갤러리

“어, 이건 할머니 댁에서 자주 봤던 패브릭이에요!” 프란체스카가 반가운 얼굴로 호박포크아트갤러리에 들어선다. 패브릭뿐 아니라 그릇과 액자 등 시선이 닿는 곳마다 환한 미소가 뒤따른다. “맞아요! 독일에서 온 물건들입니다. 현재 아트 디렉터 소니아를 중심으로 네 명의 작가가 수집하거나 작업한 것들을 전시·판매하고 있어요.” 2세대 숍 중 하나인 호박포크아트갤러리는 빈티지 의류 숍 수박빈티지의 김정열 대표가 운영하는 곳이다. 골동품을 현대적으로 바라본 시선이 독특하다. 포스트모던 작가 제프 쿤스의 작품 옆에 100년의 세월이 지난 농기구를 걸어 두고, 미드센추리 스타일 수납장 위에 가야 시대 토기를 올려놓는 식이다. 분기별로 특정 작가나 브랜드와 협업해 전시를 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천년의 시간을 넘어 동서양의 오브제가 한자리에 어우러진 풍경이 고혹적인 미감을 뿜어낸다. 호박포크아트갤러리에 푹 빠진 프란체스카는 공간을 장식한 작품들을 진지한 시선으로 훑으며 탐색한다.
주소 서울시 동대문구 고미술로 21(2동 118호)

경쾌한 스페셜티의 세계, 커피그라운즈

답십리 고미술 상가의 번잡한 대로변, 오래된 건물 사이에서 고즈넉한 분위기의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을 찾았다. 스페셜티 커피의 도시, 베를린에서 온 프란체스카도 반한 이곳은 커피그라운즈. 로스터리 브랜드 하루코빈스에서 운영하는 커피그라운즈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듯한 묘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문을 지키는 돌사자상부터 창 너머로 이어지는 야외 테이블까지 자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라테를 한 모금 마신 프란체스카가 “어머, 왜 크림치즈 맛이 나죠?”라며 안지혜 대표를 바라본다. “원두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로스팅을 가볍고 섬세하게 해요. 그래서 입안의 커피가 깔끔하고 뒷맛이 상큼하죠.” 설명을 들은 프란체스카가 더 신중한 표정으로 커피를 음미한다. “네덜란드 친구 야닉을 이 동네에 꼭 데려오고 싶어요. 한국에 10년 넘게 살고 있는데 한국 문화와 역사에 호기심이 많거든요.” 답십리 탐험의 즐거움을 혼자만 누릴 순 없다는 표정. 프란체스카의 다음번 시간 여행에는 분명 야닉이 곁에 있을 듯하다.
주소 서울시 동대문구 답십리로48길 57

프란체스카 부이다크
독일 베를린에서 나고 자랐으며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2020년 한국에 정착한 뒤 뮤지컬 의상 팀에서 일하며 성우로도 활동하는 등 늘 예술을 가까이했다. 현재는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며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한다. 한국 이름은 가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