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부탄에서 붓다의 미소를 훔치다

2026년 06월 01일

  • WRITER 김삼(여행 칼럼니스트)
  • PHOTOGRAPHER 안홍범

첫 부탄 왕국 여행은 순례였다. 길은 마을의 중심인 사원을 따라 이어지고, 여행자는 저도 모르게 합장 인사를 하며 조금씩 순례자가 되어 간다. 그렇다고 심오한 표정을 지을 일은 아니다. 그저 마음을 내려놓고 히말라야 기슭의 고요를 응시하기만 하면 된다.

키추 라캉의 정원에 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키추 라캉은 7세기 티베트 황제 송첸 감포가 세운 108개의 사원 중 하나로, 부탄 불교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키추 라캉을 찾은 사람들이 저마다 소망을 염원하며 마니차를 돌리고 있다.

수줍은 땅, 묘한 설렘
히말라야 기슭에 숨은 듯 박힌 부탄의 관문, 비행기 이착륙이 가장 어렵다고 알려진 파로 공항을 나서면 젊은 여신의 형상을 한 불상이 여행자를 맞는다. 관능과 화사함을 감추지 않은 모습. 가이드의 안내로 찾아간 키추 라캉(Kyichu Lhakhang)의 앵두꽃과 복사꽃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새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흰색 건물 안은 다양한 색감의 부처 상, 마니차(Manicha), 램프로 가득하다. 어디서나 강렬한 색채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래서일까, 마을 사람들은 고요해 보이는데 기운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키추 라캉은 7세기 티베트 황제 송첸 감포가 세운 108개 사원 중 하나로 부탄 불교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역사적 장소에 나들이 온 주민들은 마당 벤치에 앉아 무심히 햇볕을 쬐거나 마니차를 돌리고, 불상에 절을 하거나 버터 램프에 불을 밝히며 저마다 소망을 빈다. 마니차는 회전식 법구로, 원통에 경전이나 주문(진언)이 적힌 종이가 들어 있다. 부탄 사람들은 마니차를 한 바퀴 돌리면 주문을 한 번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이 쌓인다고 여긴다.
공항에서 본 성벽 같은 건물인 파로 종(Paro Dzong)으로 향하는 길, 국립박물관에 들렀다. 국립박물관은 1649년 파로 요새를 바라보는 곳에 망루로 세웠다. 사방을 살필 수 있도록 원형의 탑 형태로 짓고, 내부 깊숙이 빛이 들도록 창을 많이 냈다. 5층 높이의 내부에는 3000점 이상의 유물이 5층 전체에 빼곡하다. 대다수가 불교 관련 유물이며 생활 도구도 제법 눈에 띈다. 그중 농기구와 대나무 바구니는 한국에서 보던 것과 매우 흡사해 아시아 문화권의 동질성이 확인된다. 박물관을 나와 파로 종으로 향했다. 종(Dzong)은 부탄 각 지역에 있는 요새이자 사원으로 부탄 특유의 건축양식을 보여 준다. 5층 높이의 목조건물이 바깥쪽을 에워싸고, 안에는 큰 건물이 자리한다.
광장에 들어서자 짙은 적색 장삼을 걸친 승려들이 크게 원을 그리며 춤추고 있다. 부탄 최대 축제인 파로 체추(Tshechu)에 참가하기 위해 한창 연습하는 중이다. 체추는 8세기 부탄에 불교를 전파한 구루 린포체(Rinpoche, 파드마삼바바)의 탄신일을 기념하는 종교 축제다. 부탄 전역에서 체추가 열리는데, 수도 팀푸(Thimphu)와 공항이 있는 파로의 축제가 가장 유명하다. 파로 체추는 매년 봄, 보통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에 5일간 열린다. 부탄 사람들은 축제에서 승려들의 춤을 보는 것만으로도 죄를 씻고 공덕을 쌓는다고 믿어 체추를 신성시한다.

산꼭대기에 자리한 납지 마을. 초입의 휘장들 사이로 구루 린포체의 기도처가 보인다.
부탄 왕국 5대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 국민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겔레푸와 히말라야 산골
부탄에서의 둘째 날, 아침 일찍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겔레푸(Gelephu)로 향했다. 비행시간은 30분. 부탄의 5대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의 환대를 받았다.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 추진 중인 겔레푸 마인드풀니스 시티(Gelephu Mindfulness City, 이하 GMC)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GMC는 부탄 남부 겔레푸 지역에 서울 면적의 약 1.6배 규모로 조성하는 특별 행정구역을 말한다. 2023년 12월 부탄 국왕이 직접 발표하며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GMC는 ‘마음 챙김’과 ‘인간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스마트 시티를 표방한다.
GMC의 성격을 규정하는 상징은 108 장춥 초르텐(Jangchub Chorten), 즉 깨달음의 탑이다. 부탄 국왕은 7세기 송첸 감포가 108개의 사원을 하루에 건립했다는 전설을 토대로 11킬로미터 구간의 트레일에 108개의 초르텐을 하루에 세우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일행은 국왕과 함께 해당 트레일을 두 시간 넘게 걸었고 점심 식사도 함께 했다. “GMC는 싱가포르와 같은 자유무역 구역이면서, 현대인이 힐링하고 휴식하며 영성을 돌보는 마인드풀니스 공간이기도 합니다. 부탄의 불교문화를 바탕으로 영성을 나누고 불토를 구현하는 것이지요.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 국민에게 돌아갈 혜택이 없기에 현재 부탄의 자본으로 공항을 짓는 등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얻는 수익은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나누어 줄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과 부탄 간 직항 노선이 개설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젊은이들이 많이 와서 마라톤을 하거나 히말라야를 가로지르는 스노맨 트레킹에 도전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납지 마을의 골목 풍경.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외딴곳에 자리한 납지는 부탄인들에게 매우 소중한 성지다.

구루 린포체가 축복을 내린 마을, 납지와 코르푸
부탄 국왕과의 깜짝 만남 다음 날, 본격적으로 히말라야 산골을 달리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부탄에서는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다. 마을을 벗어나면 이내 첩첩산중을 끼고 도는 산자락이 나타나고, 비포장 외길이 많아 자동차들이 콩콩거리며 달린다. 때론 흙더미가 쓸려 내려와 길을 막는 바람에 하염없이 발이 묶이기도 했다. 산길을 달리던 중 고사리, 버섯, 꿀, 과자, 음료수가 놓인 가판대를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해발 3000미터가 넘는 고개를 네댓 번 넘고서야 드디어 산꼭대기 마을인 납지(Nabji)에 도착했다. 부탄 왕국의 시조인 구루 린포체가 8세기에 들렀다가 축복을 내렸다는 마을, 아주 작지만 부탄인들이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성지다. 놀랍게도 우리 일행은 이 마을을 최초로 찾은 외국인이었다! 얼굴도 복장도 언어도 다른 이들을 보자 납지 주민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순박한 미소를 건넨다. 부탄의 문화유산으로 보호받는 사원에 들어서자 린포체가 남긴 불상 몇 점이 유리 상자 안에 보존되어 있다. 오래전 지역 주민들 사이의 평화를 이끈 화합의 상징이라고 한다. 따끈한 버터 차를 마시며 빛바랜 불상과 불화들을 천천히 응시한다. 먼 길을 달려 찾아간, 할머니 냄새 가득 밴 시골집에서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랄까. 오래된 마룻바닥이 더없이 정겹게 느껴진다.
납지 마을의 골목을 걸어 보기로 했다. 사람 냄새 물씬한 집을 지나고, 계곡 건너 가파른 경사면에 층층이 이어진 계단식 논이 보인다. 우리가 묵을 마을인 코르푸(Korphu)다. 해가 지고 어둑해질 즈음 길을 따라 마을에 도착해 납지 라캉(Nabji Lhakhang)으로 들어섰다. 구루 린포체가 축복을 내렸던 신성한 사찰이다. 입구를 지키는 커다란 마니차들을 지나 법당으로 들어서니 우뚝 솟은 돌기둥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안쪽에는 보물급 불상과 불화들이 묵직하고도 화려한 기운을 품은 채 방을 가득 메우고 있다. 붐탕(Bumthang) 지방의 두 왕이 8세기에 구루 린포체 앞에서 더 이상 싸우지 않기로 맹세하며 오른손을 올렸다는 돌기둥의 윗부분이 반질반질하다. 현생의 수많은 싸움꾼들이 손을 댄 흔적일 테다. 이제 문화유산 마을인 코르푸의 진짜 매력을 만날 시간이다. 마당에 지핀 모닥불 둘레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대여섯 명의 여성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한쪽에서는 전통주를 한 잔씩 따라 준다. 집에서 담근 술을 번갈아 내오는데 저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 어느 술이 제일 맛있는지 즉석에서 품평회가 열렸다. 상을 받은 여인이 부어 주는 술로 잔들이 넘쳐 흘렀고, 드높은 노랫소리는 어느새 춤과 함께 마을 가득 울려 퍼졌다. 갈수록 몸짓에 흥이 더해지고 일행은 코르푸 주민들 사이에 끼여 덩실덩실 마당을 돌았다.

파로 체추가 열리는 파로 종 입구. 사람들은 가장 좋은 옷으로 단장하고 체추를 보러 온다.
파로 종 위쪽에 위치한 원형의 망루 내부는 현재 국립박물관으로, 3000점이 넘는 유물이 5층 전체에 빼곡하다.

충만한 기운이 넘치는 쿠르제이 라캉과 잠베이 라캉
다음 날 아침, 일행은 부탄 중부 고원의 계곡 지대인 붐탕으로 향했다. 부탄의 중요 성지인 쿠르제이 라캉(Kurjey Lhakhang) 예불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쿠르제이는 ‘몸의 흔적’이란 뜻이다. 구루 린포체가 동굴에서 명상하며 악령을 제압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수행 중인 몸의 실루엣이 바위에 새겨졌다는데, 쿠르제이 라캉 중심벽 내부에는 지금도 그 흔적이 보존돼 있다. 반질반질한 마루에서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나는 법당에 들어서자 저절로 거룩한 자세가 되어 벽에 둘러앉았고, 두 줄로 자리 잡은 승려들의 독경이 시작되었다. 느리고 장중한 ‘라르고!’ 낭랑한 울림은 이내 합창이 되었다가 때론 빠르게, 때론 부드러운 물결이 되어 공간을 채웠다. 뇌를 깨우는 듯한 예불이 끝나자 승려들이 조용히 법당을 빠져나갔다. 뒤를 따르는 동자승의 바지 주머니에서 얼핏 콜라병이 보이고, 어른에게 받은 지폐를 꺼내 슬쩍 들여다보는 동자승도 눈에 띈다. 어린 스님의 천진한 얼굴을 보니 내 마음도 따라 웃는다. 붓다의 미소를 훔친 기분이다.
모처럼 충만한 기운을 받은 후 붐탕 부근에 있는 잠베이 라캉(Jambay Lhakhang)을 찾았다. 7세기에 마을을 휩쓴 불길한 존재를 감지한 황제 송첸 감포가 하루 만에 108개의 사원을 세워 제압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돌아가는 길에는 불타는 호수라는 뜻의 메바르 초(Mebar Tsho)에 들렀다. 위대한 성자 페마 링파(Pema Lingpa)가 등불을 들고 강물로 뛰어들었지만 몸이 젖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은 채 물 밖으로 나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좁은 물길이 세차게 흐르는 가운데 수많은 참배객이 고요한 호수를 찾았다. 하루에 중요한 성지를 세 곳이나 방문하다 보니 붓다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가끔 스님들 곁에서 주워들은, 뻔한 소리지만 이해가 되는 한 구절이 떠오른다. “비우면 된다.” 나아가 “비운다는 마음조차 없어야 한다”.
국내선 공항이 있는 붐탕에서는 스위스 게스트 하우스에서 이틀간 묵었다. 스위스 남자와 부탄 여자가 결혼해 운영하는 곳으로 어딘가 스위스다우면서도 부탄스러웠다. 따져 보면 두 나라 모두 큰 산에 폭 안겨 있는 건 같은데, 스위스는 물가가 세계 최고로 비싸고 부탄은 물가가 세계에서 가장 싸다는 점이 재미있다. 스위스는 열려 있고 부탄은 숨은 듯 자리한 것도 흥미롭다. 모두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나라인데, 스위스식 행복은 무엇이고 부탄식 행복은 무엇일까. “삶의 목적은 돈이 아니라 행복이 되어야 하며 그 바탕은 부모, 형제, 친구, 동료, 그리고 나라 간의 신뢰다”라고 한 국왕의 말이 떠올랐다. 붐탕에서 국내선을 타고 부탄의 수도 팀푸에 도착했다. 산마루의 금빛 불상이 지그시 내려다보며 히말라야를 넘어온 우리를 반기는 듯했다. 이리저리 다니며 12만 개의 불상을 만났고, 그 다양한 얼굴과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고개를 한참이나 뒤로 꺾어 높이가 52미터나 되는 붓다 도르덴마(Buddha Dordenma)도 찬찬히 훑어 보았다.

부탄인들이 순례를 하듯 찾는 파로 체추 기간에는 야외 장터가 열린다. 동자승들의 표정이 즐거워 보인다.
파로 종 2층 난간에서 내려다본 축제 풍경. 5층 높이의 목조건물을 화려한 색과 문양의 휘장으로 장식하고, 연희자들과 관중의 차림새도 그에 걸맞게 화려하다. 부탄을 여행하다 보면 자주 만나게 되는 강렬한 풍경이다.

진하디진한 사람들
다시 파로로 돌아와 닷새 동안 이어지는 체추 축제장으로 향했다. 화려한 의상에 기기묘묘한 탈을 쓴 놀이꾼들이 마당을 빙빙 돌며 춤을 추고, 손오공을 떠올리게 하는 광대 셋이 아기 인형과 이불보를 소품 삼아 이야기를 풀어 간다. 흥겨운 축제 마당과 장터 사람들이 뒤섞인 풍경에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에 빠져든다. 그리고 다음 날 피날레를 장식할 탁상 라캉(Taktsang Lhakhang)으로 향했다. 산행 채비를 단단히 했지만 해발 3150미터 산꼭대기에 지은 절에 오르는 건 결코 만만치 않다. 호랑이를 타고 날아와 수행했다는 구루 린포체의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내 마음이 쉬이 따르지는 못해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탁상 라캉에 들어서자 겉보기보다 실내가 넓고,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방이 미로처럼 여기저기 박혀 있다. 어쩌면 그리도 험한 고행과 깨달음의 이야기가 방마다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올라가니까, 심지어 아이들도 가이드의 어깨에 올라앉아 가니까 나도 간다는 심정으로 꾸역꾸역 발뒤꿈치에 힘을 주고 올라온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진다. 힘겹게 오른 뒤 내려오니 다섯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 모두 ‘해냈다’는 뿌듯한 표정이다. 이로써 부탄 여행이 마무리되었다.
삶이라는 장터로 다시 돌아왔다. 눈을 감으니 많은 장면이 스친다. 손가락으로 긴 염주를 굴리며 비행기를 기다리던 사람들, 산골 외딴길에서 과자와 음료수를 팔고선 QR코드 결제를 해 주던 투박한 손의 촌부, 국왕이 지나는 길에 태어난 지 21일 된 아기를 보여 주며 축복을 받고 눈물을 글썽이던 산골 부부, 화사한 옷차림으로 마니차를 돌리다 예쁘게 포즈를 취해 준 꼬마 아가씨, 마니차 앞에 자리를 잡고 느긋하게 불경을 읽던 아저씨, 장터에서 저희들끼리 손을 잡고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던 동자승들, 카페에서 블랙핑크 노래를 부르던 여자 가수…. 어쩐지 그들을 다시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눈빛이 한결같이 수줍고 따듯하고 맑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