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지루할 틈 없는 충주

2026년 05월 01일

  • WRITER 박진명(헤이! 트래블 기자)
  • PHOTOGRAPHER 김태구
  • ILLUSTRATOR 조성흠

로컬 작가들의 플랫폼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지트, 숨어들고 싶은 선술집과 60여 년 전 염소탕집을 개조한 라이프스타일 매장까지. 충북 충주에서 지루할 틈 없는 하루를 보냈다.

초록이와 순돌이가 사는 집
잔풀

소도시 여행의 묘미는 형태가 제각각인 건물들이 만들어 낸 리듬감 있는 풍경을 보는 것이다. 충주천을 따라 골목을 거닐다 보면 따스한 질감의 붉은 벽돌과 우아한 곡선형 창문이 눈길을 사로잡는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입구부터 싱그러운 식물의 생명력으로 가득한 이곳은 카페이자 플랜트 숍, 잔풀이다. 박수빈 대표는 남편 근무지인 충주로 이주해 지난해 여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잔풀이 들어서기 전의 모습은 검은 시트지로 사방이 막힌 어둡고 답답한 PC방이었다. 박 대표는 가장 먼저 시트지를 걷어 내고 모든 창을 투명하게 개방했다. 본래 식물 가게로 기획했던 공간이 카페를 겸하게 된 이유는 사람 사이의 온기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입구 쪽에 손님들이 한데 어우러지기 좋은 커다란 공용 테이블을 두고, 혼자만의 시간에 집중하고 싶은 사람을 위해 벽 쪽에도 테이블을 배치했다. “큰 테이블에 앉으면 모르는 이에게도 자리를 내주잖아요. 그 모습이 다정하고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잔풀의 대표 메뉴는 배롱나무 티 에이드와 훈연 유자 향 홍차 냉침 밀크티. 식물 가게답게 찻잎을 이용한 스페셜 음료를 낸다. 공간을 가득 메운 식물과 건강한 음료, 여기에 강아지 순돌이의 깜찍한 애교까지, 잔풀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주소 충북 충주시 봉방2길 21
문의 043-857-0885

여행을 추억하는 미식 탐험
꼬보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 부근엔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선술집이 있다. 이탈리아어로 ‘동굴’을 뜻하는 꼬보(Covo)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아늑한 분위기에 취해 홈파티에 초대받은 기분이 든다. 손님을 황홀한 미식의 세계로 초대하는 이곳에선 밥과 술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직장 생활을 접고 충주에 정착한 박영주 대표가 여행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일본식 이탈리아 요리를 선보인다. 대표 메뉴 ‘치킨 난반’은 일본 여행에서 인상 깊었던 닭 요리를 재현했고, ‘철판 나폴리탄 스파게티’는 넷플릭스 드라마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원래는 고향인 괴산군에서 반줏집을 하고 싶었어요. 사장이 되고 싶어 요리를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자꾸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꼬보 단골들이 첫손에 꼽는 메뉴는 ‘라구 가지 덮밥’. 계절의 변화를 파스타 면 위에 오롯이 담아내는 제철 파스타도 인기다. 프랑스 해산물 스튜인 부야베스에서 착안한 ‘토마토 해산물 나베’는 얼큰한 맛으로 한식 애호가의 입맛도 충족시킨다.
주소 충북 충주시 대가미13길 28
문의 0507-1426-7441

관아골의 정취를 담은
고티맨숀

1969년부터 관아골을 지켜 온 염소탕집 자리에 6개의 라이프스타일 매장이 들어섰다. 화덕 피자 전문점 ‘예반화덕’, 이탤리언 다이닝 레스토랑 ‘핀치오살레’, 김치짜글이 전문점 ‘짜글옥’, 독립 서점 ‘책방, 궤’, 무인 문구점 ‘우디 로그’, 향 브랜드 스튜디오 ‘쁘레땅’이다. 지역 관리 회사 보탬플러스가 오래된 건물을 매입해 리모델링한 고티맨숀은 이곳 운영자들의 새로운 터전이자 지역 커뮤니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박진영 보탬플러스 대표는 관아골에 더 많은 창업가와 창작자가 들어와 정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티맨숀을 기획했다. 그는 인근 상가보다 임대료를 낮게 책정한 대신 몇 가지 조건을 달았다. 입점 업체는 매달 열리는 담장마켓에 참여하고, 시민 대상으로 창업 클래스를 운영하는 등 지역사회와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생의 계약’은 마을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뜻을 함께한 이웃들이 팔을 걷어붙인 덕분에 관아골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음향부터 디자인, 건축, 영상까지 외부 인력을 활용하지 않고 모두 마을 안에서 해결한다. 고티맨숀 한편에는 이곳의 전신인 염소탕집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관아골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염소탕집 아들이 전해 준 자료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기록물 앞에 서면 역사를 보존하며 오늘날의 가치를 더하는 것이 도시 재생의 본질임을 깨닫게 된다.
주소 충북 충주시 관아5길 2
문의 0507-1492-2443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지트
빈칸

충주에는 청년 창업가와 창작자를 위한 공간이 곳곳에 자리한다. 로컬 종합 상가 ‘복작’도 그중 하나. 여인숙을 개조한 건물에 공유 오피스, 사진 스튜디오, 책방 등 다양한 공간이 들어섰다. 그중 가장 시선을 끄는 곳은 독립 서점 빈칸이다. 우혜빈 대표는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닌,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는 글책방으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이 공간을 꾸렸다. ‘표지에 매료되어 산 책을 마음껏 자랑하는 모임’이나 ‘일상에서 길어 올린 좋아하는 문장을 나누는 모임’에 이러한 취지가 담겼다. 소설책과 시집으로 채운 서가에서는 우 대표의 취향이 드러난다. 특히 ‘사랑, 글, 말’이라는 키워드로 큐레이션한 섹션은 독자에게 예기치 못한 영감을 선사한다. 작가와의 북토크나 북페어를 열기도 하는데, 지난해에 개최한 북토크에는 옆 동네 괴산군 출신의 예소연 소설가를 초대해 큰 호응을 얻었다. 올 상반기에는 동네 매거진도 발행할 계획이다. 오랜 세월 관아골을 지켜 온 어르신부터 이제 막 마을에 둥지를 튼 청년 창업가까지, 매거진에 실릴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빈칸을 방문해 보자.
주소 충북 충주시 성서1길 12-1
문의 0507-1380-7963

지역 상생을 위한 유쾌한 작당 모의
세상상회

8년 전의 관아골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지금의 풍경은 기적에 가깝다. 당시 이곳은 빈집들이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쇠락한 동네였다. 충청감영과 충주시문화회관, 충주예총회관 등이 자리해 한때는 충주를 대표하는 역사·문화·예술의 중심지였지만,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활력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멈춰 버린 동네가 새롭게 태어난 건 2018년. 1945년에 지은 일본식 가옥과 1970년대 한옥을 고쳐 만든 세상상회가 들어서면서부터다. 지역 활성화 컨설턴트이기도 한 이상창 대표가 충주에 내려와 동료 청년 창업가들과 함께 시끌벅적한 작당 모의를 한 것이다. 고소한 스콘과 구움 과자, 생과일 케이크는 물론 생강·딸기 등 충주의 제철 식자재를 활용한 음료가 큰 인기를 얻는 디저트 카페지만, 세상상회의 정체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로컬 작가들의 창작물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플랫폼이자, 때로는 그들의 작업장 역할도 한다. 세상상회 앞 골목은 담장마켓, 충주북페어 같은 다채로운 로컬 문화 콘텐츠를 선보이는 무대이자 소통의 장이다. “저는 단 한 번도 스스로를 그저 카페 주인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이상창 대표의 한마디가 세상상회가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보여 준다.
주소 충북 충주시 관아5길 4-1
문의 0507-1313-3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