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권력의 부질없음을 말하는 칼로막베스

2026년 04월 01일

  • WRITER 배선애(연극평론가)

연극 <칼로막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재창작한 작품으로, 권력에 대한 비뚤어진 욕망과 파멸이 중심 내용이다. 극악한 폭력으로 이어지는 권력의 잔인함을 칼에서 총으로 바뀌는 연극적 상황으로 은유했다.

올해로 창단 20주년을 맞은 극단 마방진은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쉴 새 없이 무대에 올리면서 연극계에서 입지를 공고히 다졌다. 극단의 성인식을 자축하는 계획이 흥미로운데, 2010년에 초연한 무협 액션극 <칼로막베스>가 그 시작을 알린다. 이 작품은 16년 전 고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동시대성을 획득했고, 연극의 놀이적 성격을 극대화해 호평을 받았다. 단 3일간의 공연으로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까지 수상해 당시 연극계를 놀라게 했다. 극단 마방진은 한층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창단 20주년 기념 첫 작품으로 극단의 대표 레퍼토리인 <칼로막베스>를 선택했다.

칼에서 총으로:
점점 더 난폭해지는 권력

연극 <칼로막베스>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를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마지막에 창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권력을 탐한 대가로 파국에 이르는 맥베스의 여정을 따라간다. 전장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세 마녀의 세 가지 예언을 들은 장군 맥베스는 그 예언이 하나하나 실현되는 것에 놀라면서 자신이 왕이 된다는 마지막 예언을 두고 혼란에 빠진다. 왕의 자리는 그냥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닌 데다 덩컨 왕은 그의 아들 맬컴을 후계자로 정했기 때문이다. 맥베스에게 예언을 전해 들은 맥베스 부인은 그들의 집에 머물게 된 왕을 시해하고 예언대로 왕이 되라며 남편을 자극한다. 주저하던 맥베스는 결국 왕을 죽이고 그 죄를 맬컴에게 뒤집어씌워 스스로 왕위에 오른다.
원하던 권력을 손에 넣었지만 맥베스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존재가 되고 만다. 반역의 싹을 없애기 위해 자신과 함께 예언을 들은 오랜 친구 뱅쿼를 죽이고, 충신인 맥더프의 가족마저 몰살한다. 부당하게 얻은 권력이기에 자신처럼 누군가 왕좌를 노리는 건 아닐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안에 떤다. 조금이라도 혐의가 있는 사람이라면 본인이 직접 처단하기도 한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죽인 사람들의 영혼을 보는 맥베스는 잠들지 못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잃어버린다. 남편보다 더 강인한 면모를 보였던 맥베스 부인도 살인이 일어난 밤의 환영에 시달려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생을 마감한다. 궁지에 몰린 맥베스는 다시 만난 마녀들에게 도무지 실현될 것 같지 않은 예언을 듣고 안심하지만, 그것이 모두 이루어지면서 죽음을 맞는다. 셰익스피어는 짧은 장면들을 이어 붙여 맥베스의 몰락을 속도감 있게 그려 내면서 권력의 논리에 담긴 폭력성과 권력을 좇는 삶의 허무함을 이야기한다.
극단 마방진의 <칼로막베스>는 원작의 의도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시공간에 특별한 설정을 부여한다. 시간적 배경은 먼 미래, 공간적 배경은 흉악범으로만 채워진 수용소 ‘세렝게티 베이’로 정했다. 80미터 장벽 안에서 대를 이어 생존하는 존재들은 그 속에서 권력관계를 만들고 영토를 구분해 세력을 유지한다. 이들의 무기는 칼. 말장난처럼 느껴지는 제목 ‘칼로막베스’는 방해되는 이라면 모조리 칼로 막 베고 다니는 인물을 표현한 것이다. 막베스는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얻었고, 이에 대항하는 맥더프와 맬컴이 칼을 휘두르며 권력을 되찾는다. 원작대로라면 여기서 끝나야 하지만 각색을 맡은 고선웅 연출가는 반전을 시도했다.
국가의 교정 장소인 세렝게티 베이의 관리자는 수용자 수를 줄이면 남은 사람들이 더 풍족하게 살 거라는 명분을 내세워 총을 지급한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막베스가 죽이려다 실패한 플리언스(뱅쿼의 아들)가 총을 난사하는 ‘막쏴스’가 되어 등장인물을 모두 몰살한 것이다. 이렇듯 공연은 다소 과격하고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하며 막을 내린다. 극악무도한 독재자가 사라졌다고 안심하는 사이, 새로운 권력자가 더 강력한 무기를 들고 등장해 왕위를 강탈한 것이다. 이는 권력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대목이다. 막베스의 칼이 플리언스의 총으로 바뀌는 결말이 황당하면서도 공포스러운 것은 우리가 사는 현실 사회 또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무협 액션극: 배우들의 열정과
에너지가 가득한 무대

무대라는 제한된 공간을 활용해야 하는 연극의 특성상 구현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있다. 가령 많은 인원이 필요한 대규모 전쟁 장면은 인물들이 설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보통 등장인물이 전쟁 상황을 보고하는 형식으로 대체한다. 물속을 주요 공간으로 설정한 작품도 실제로 무대에 가득 물을 채울 수 없으니 조명이나 무대장치를 이용해 관객이 상상력을 발휘하게 한다. <칼로막베스>가 표방한 무협 액션극도 무대에 구현하기 어려운 장르 중 하나다. 역동적인 액션을 펼칠 만큼 넓은 공간이 필요한 데다 오랜 시간 강도 높은 연습으로 배우들이 합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칼을 쓰는 무협 장르를 연극에선 좀처럼 보기 어렵다.
극단 마방진이 20주년 기념 공연의 첫 작품으로 <칼로막베스>를 선택한 이유를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단원들은 고강도 신체 훈련에 열의를 다했고, 무대에선 에너지 넘치는 액션의 합을 보여 줬다. 팀워크에 대한 극단의 자부심이 공연 전반에서 엿보인다. 막베스 역의 김호산 배우는 각종 무술을 섭렵한 유단자로, 탄탄한 몸과 짧게 깎은 머리가 인물의 강인함을 드러낸다. 초연 당시에는 폭발적인 에너지가 돋보였다면, 16년 후 그가 연기하는 막베스는 호흡을 유연하게 조절하는 감각이 한층 섬세해졌다. 덕분에 권력을 향해 질주하는 막베스의 무모한 성격은 물론, 권력을 손에 쥐고도 불안에 휩싸인 심리 상태까지도 완벽하게 표현해 낸다.
완성도 높은 무협 액션극 <칼로막베스>는 극단 마방진의 신구 배우들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빠르게 뱉는 대사, 느닷없는 제스처 등 고선웅 대표 특유의 연출법을 체화한 단원들은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강한 에너지를 분출한다. 국립창극단의 대표 소리꾼이었던 김준수는 막베스 부인 역을 맡아 연극에 처음 도전했다. 막베스를 자극하는 강인한 면모와 죄책감에 시달리는 섬세한 감정을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공연 중간에 소리꾼의 창법으로 대사를 구사해 색다른 즐거움도 선사한다.
<칼로막베스>는 관객의 몰입감을 최대로 끌어내는 삼면 개방형 무대, 위태로움과 불안을 표현하기 위해 얼기설기 세운 철 구조물, 하드록 분위기의 강렬한 음악 등 <맥베스>를 각색한 기존 작품과는 전혀 다른 연출 기법을 택했다. 사뭇 진지한 장면에 유머를 넣어 연극을 하나의 놀이처럼 여기도록 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현시점에서 특별한 모범 사례가 되리라 예상한다.
극단 마방진은 이 작품을 시작으로 <리어왕외전> <홍도>를 4월까지 연달아 공연한다. 성년식을 야무지게 기념하고 극단의 넘치는 열정을 보여 주는 화려한 라인업이다. 듬직한 청년이 된 극단 마방진은 20년 동안 그래 왔듯 뜨겁고 믿음직하게, 열정적으로 활동을 이어 갈 것이다. 오랜 시간 지켜본 관객으로서 이 뜨거운 극단의 앞날을 응원한다.

<칼로막베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극단 마방진의 고선웅 대표가 각색하고 연출해 무협 액션극으로 선보인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권력의 폭력성을 다룬 원작의 주제 의식을 관객이 공감할 수 있도록 근미래의 교화 시설 ‘세렝게티 베이’를 배경으로 설정했다. 초연에서 막베스를 연기한 김호산 배우가 다시 막베스를 맡고, 막베스 부인 역으로는 소리꾼 김준수와 원경식 배우가 출연한다. 4월 4일과 5일 부산문화회관에서, 4월 10일과 11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에서 순회 공연을 이어 간다. 4월 18일엔 강북문화예술회관에서 서울 앙코르 공연을 한다.
기간 2월 27일~3월 15일
장소 서울 국립극장 하늘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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