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선의 허리이자 충북선의 기점인 조치원역. 세종전통시장을 중심으로 촘촘히 뻗어 있는 골목에서 흥미로운 공간들을 발견했다.


원도심의 새로운 미식 풍경
카페 섭골
조치원 원도심의 골목을 누비다 보면 뉴욕 소호 거리에서 마주칠 법한 힙한 감성의 공간이 발길을 멈춰 세운다. 간판에 적힌 “심플하고 건강한 로컬의 맛”이라는 레터링이 이곳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곳, 카페 섭골이다. 섭골은 영어로 ‘홀짝홀짝 마시다’라는 뜻의 ‘섭(sup)’과 포르투갈어로 ‘한입에 꿀꺽 삼키다’라는 뜻의 ‘골(gole)’을 합친 단어다. 카페 섭골의 한재윤 대표는 지역 식자재를 활용한 수프와 샌드위치를 선보인다. 그가 식음료 공간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떠올린 아이템은 속이 쓰릴 때 끓여 먹던 수프. 세종시 연동면에서 직거래한 양송이를 넣은 리치 양송이 수프, 콩을 사용하지 않고 고기 맛에 집중한 비프 칠리 콘 카르네 등을 메뉴로 구성했다. 여기에 수제 햄을 듬뿍 넣은 잠봉뵈르 샌드위치와 마늘·양파·레몬즙으로 매리네이트한 뒤 저온에서 천천히 익힌 수비드 치킨 샌드위치 등을 곁들이면 파인다이닝도 부럽지 않은 완벽한 한 끼가 완성된다.
주소 세종시 조치원읍 문화로 27
문의 0507-1366-7364


나에게 주는 여덟 가지 행복
책방에
일, 여행, 공간, 가드닝, 사람, 문화 예술, 음식, 선물. 이 여덟 가지 중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책방에에 방문할 이유가 충분하다. 책방에은 그림책 전문 서점으로, 그림책과 책방 문화를 좋아하는 이윤정 대표가 4년 전에 문을 열었다. 그는 소도시 생활에 갑갑함을 느끼던 중 직접 서점을 운영해 보기로 결심했다. 우드 톤에 블랙으로 포인트를 준 인테리어가 공간에 깊이를 더하는 곳, 책방에에서는 앞의 여덟 가지 키워드로 큐레이션한 책을 판매하는 것은 물론, 매달 지역 작가의 그림책 전시도 연다. 이 대표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설명도 놓치지 말 것. 작가에 대한 배경 지식부터 책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까지, 그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책 속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긴 테이블과 간단한 음료를 준비해 두어 잠시 자리를 잡고 앉아 시간을 보내기에도 그만이다. 올해는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주일에 3일만 운영한다.
주소 세종시 조치원읍 죽림로 32-3
문의 0507-1362-7889

오리로 전하는 덕의 미학
덕윤당
“오리고기는 남이 먹고 있는 것도 빼앗아 먹으라 했어요!” 덕(duck)과 덕(德)으로 든든한 한 끼를 제공하는 퓨전 일식당 덕윤당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문구다. 덕윤당 최홍석 대표는 과거 천안에서 카페를 운영하던 중 불규칙한 식습관으로 인해 담낭 절제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소화가 편한 음식을 찾다 오리고기의 매력에 빠진 것이 덕윤당으로 이어졌다. 마침 오리 농가가 많은 세종시는 그에게 기회의 땅이었고, 세종시 청년 창업 지원 사업 ‘로컬콘텐츠타운’ 선정이 사업의 동력이 됐다. 더욱이 조치원은 가금류 요리가 발달한 지역이자 ‘파닭’의 발상지가 아니던가.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운 특수 부위까지 쉽게 구할 수 있는 조치원은 최적의 입지였다. 최 대표는 오리고기의 잡내를 줄이기 위해 생강 대신 커피 물로 핏물을 제거했고, 덕분에 오리고기 특유의 고소한 맛이 극대화된 오리곰탕이 탄생했다. 덕윤당의 대표 메뉴는 오랜 시간 뭉근히 끓인 육수에 오리 차슈를 얹어 밥과 함께 내는 덕곰탕과 라면을 넣은 덕라면이다. 오리 한 마리당 딱 두 점만 나오는 특수 부위로 만든 쫄깃한 두점튀김, ‘겉바속촉’의 정석인 복오리교자 등 사이드 메뉴도 인기 있다.
주소 세종시 조치원읍 으뜸길 197
문의 0507-1358-5257


일제강점기 제지 공장의 재탄생
조치원 1927 아트센터
조치원역에서 도보 10분, 번잡한 시장통을 뒤로하고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예상치 못한 공간이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조치원 1927 아트센터가 그 주인공. 일제강점기인 1927년, 산일제사라는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공장이 최초로 들어섰고, 이후 편물 공장과 조치원여고 교사 등을 거쳐 2003년까지 한림제지 공장이었던 이곳은 2022년 조치원 1927 아트센터가 들어서면서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유휴 공간 재생 사업을 통해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 20여 년간 정적이 감돌던 폐건물의 거친 콘크리트 벽은 이제 예술을 품은 캔버스가 되어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낮에는 브런치를, 밤에는 맥주를 즐기는 카페 헤이다에서 시작된 발걸음은 자연스레 일본식 가옥을 개조한 학사동 갤러리로 이어진다. 건물 밖에는 100년의 역사를 증명하는 벽돌 굴뚝과 저유 탱크가 현대미술 작품과 조화를 이룬다. 덕분에 이곳을 오가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예술적 무대에 스며든다.
주소 세종시 조치원읍 새내4길 17
문의 044-862-1927


청과 거리 제2의 전성기
화양연화
조치원역 바로 옆 골목에는 ‘한글싱싱로’라 불리는 유서 깊은 청과 거리가 있다. 1905년 조치원역 개통 이후 지역 특산물인 복숭아와 배 등이 불티나게 팔려 나갔던 곳이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청과 상회 10여 곳만 남아 묵묵히 과거의 명맥을 잇고 있다. 고적한 기적 소리 너머로 까맣게 잊힌 옛 청과 거리의 추억이 되살아난 건 3년 전, 핸드 드립 커피 전문점 화양연화가 들어서면서다. 1972년에 지은 목조건물로 옛 가정집 구조를 고스란히 간직한 화양연화에는 이상숙 대표의 어머니가 물려준 화장대를 포함해 오래된 빈티지 가구와 그릇, 아기자기한 소품이 가득하다. 꽃꽂이에 일가견이 있는 이 대표가 매일 계절과 날씨에 어울리는 꽃으로 카페를 장식해 연중 향기로운 꽃향기가 나고,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을 뜻하는 ‘화양연화’란 이름처럼 젊은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져 활기가 넘친다. 화양연화에선 독서와 글쓰기 모임, 강연 등 다양한 행사도 열린다.
주소 세종시 조치원읍 으뜸길 131
문의 0507-1436-5315


조치원에 모란이 피기까지는
스틸마스프링
원도심의 매력은 미로 같은 골목과 높이가 낮고 모양이 제각각인 건물들에 있다. 규격화된 아파트 단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불규칙한 리듬감이 걷는 이의 시선을 지루할 틈 없이 만들기 때문이다. 조치원역 바로 앞에 위치한 스틸마스프링은 원도심 여행을 더욱 흥미롭게 해 주는 도예 공방. 새하얗게 단장한 외관이 골목을 환하게 빛내고 있다. 김영랑 시인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아직 나의 봄”이라는 구절에서 이름을 따온 이곳은 도예가 박지원 대표가 운영한다. 박 대표와 수강생들의 작품이 빼곡하게 늘어선 내부에는 소규모 갤러리와 클래스 공간이 자리한다. 예전 쌀 가게의 골조가 그대로 남아 있는 덕분에 갤러리와 작업실 사이를 오갈 때마다 시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전시는 주로 지역 작가나 시각 예술가 위주의 작품으로 진행하며, 연말에는 수강생들이 한 해 동안 정성껏 빚은 작품을 선보인다. 원데이부터 정규반까지 다양한 클래스를 통해 누구나 흙을 만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내 손으로 빚은 나만의 기념품을 만든다면 조치원 여행의 여운이 더욱 오래 남을 것이다.
주소 세종시 조치원읍 조치원2길 46
문의 0507-1315-50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