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집을 닮은 나선형 구조, 장르와 감각을 넘나드는 공간. 경기도서관은 기존 공공 도서관의 틀을 깨뜨린다. 걷고 보고 체험하며 색다르게 느낀 독서 풍경을 포착했다.
여느 때처럼 별 의미 없이 인스타그램을 스크롤하던 중이었다. 손가락을 멈추게 한 건, 신상 공간을 소개하는 한 장의 피드. 실내의 나선형 구조가 달팽이 집을 닮아 ‘달팽이 도서관’이라고 불리는 경기도서관이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신분당선 광교중앙역 4번 출구를 나서자마자 UFO가 지상에 내려앉은 듯한 흰 건물이 시야를 압도한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정형화된 도서관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던진 풍경이 펼쳐진다. AI 스튜디오, 전시 홀, 보드게임방, 기후환경공방 등 걸음을 옮길 때마다 휙휙 바뀌는 분위기. 원하는 책을 찾아 헤매기보다 천천히 걷다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는 곳. 어르신과 어린이, 장애인 등 누구나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열린 공간.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롭다. 그중에서도 유독 에디터의 발길을 붙든 장면을 기록했다.

곡면에 붙어 있는 초록색 물체가 궁금해 가까이 들여다보니 살아 있는 이끼였다. 이 작은 생명체의 이름은 스칸디아모스. 공기 정화와 습도 조절, 소음 저감을 위해 설치했단다. 몽글몽글한 질감이 천에 실 다발을 촘촘히 심어 넣는 터프팅 작품 같아 잠시 손끝이 근질거린다.

여기, 조금 특별한 북 큐레이터가 있다. 기분에 맞는 책을 추천해 주는 AI다. 그 앞에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자 AI가 눈빛 너머의 숨은 감정을 읽어 낸다. 결과는 기쁨 89, 슬픔 1, 분노 2, 공포 3. 추천 목록을 훑다가 유독 시선을 끄는 책 하나를 발견했다. 그림책 <호호호호박>. 호박이 호호호호 웃고 있는 표지를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1층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북극곰 한 마리가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람과 동물, 도깨비를 주제로 목조각 작업을 하는 용형준 작가의 ‘북극곰 조각 시리즈’. 폐팔레트가 기후 위기를 경고하는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위기에 처한 생명체를 구하기 위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바로 뒤편 큐레이션 서가에서 그 질문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3층 Ι 지혜의 공간
책을 즐기는 다양한 방식을 제안하는 곳이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산책하듯 서가를 누비는 경기책길, 비문학 장르 전반을 다루는 인문라운지, 클래식과 함께 예술을 즐기는 아트북 라운지, 화면을 터치하며 읽는 실감형 디지털 북, 그리고 책을 소리로 만나는 오디오 북까지, 오감을 동원해 책을 경험한다.

3층부터 4층까지 나선형 계단을 따라 이어지는 길 이름은 경기책길. 서가로 둘러싸인 이 길을 산책하듯 천천히 오르다 보면, 발밑에 이끼를 형상화한 바닥재가 깔려 있어 숲속을 걷는 기분이 든다. 발걸음을 멈추고 시선이 닿는 책 하나를 집어 들어 마음 가는 자리에 앉아 읽는다. 자연광이 가득 스며드는 통창 덕분에 공간은 늘 환하고 따뜻하다.

잔잔한 클래식에 이끌려 아트북 라운지에 닿았다. 지그재그로 이어진 설치물 사이에 제법 묵직한 아트북들이 펼쳐져 있다. 책이 놓인 방향이 제각각인 건 사람들이 손 닿는 대로 자유롭게 펼쳐 본 흔적일 테다. 알록달록한 그림과 기발한 타이포그래피를 보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묘하게 환기된다.

나선형 계단 옆에 완만하게 경사진 길이 나 있다. 휠체어 사용자도, 엄마 손을 잡고 오르는 아이도 편안하게 이 길을 오간다. 누구나 쉽게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설계자의 배려가 느껴진다.

어두운 공간 속 유독 밝은 빛이 새어 나오는 곳에서 마법 같은 책을 발견한다. 고흐의 그림이 담긴 <친애하는 테오에게>를 중앙 받침대에 올려놓는 순간, 커다란 책 속에서 고흐가 눈을 깜빡인다. 페이지를 넘기면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가 원문으로 나오고, 터치 한 번에 한글 번역문이 이어진다. 그리고 곧바로 편지에 언급한 작품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 펼쳐진다. 작품 속 빛이 투영된 물그림자가 진짜처럼 어른거린다.

곳곳에 놓인 밀크박스는 조립형 구조라 쓰임이 자유롭다. 집 모양 서가가 되기도 하고, 푹신한 방석을 올리면 의자나 발 받침대가 만들어지며, 2~3개를 높이 쌓아 단단한 판을 얹으면 책상으로 변모한다.
4층 Ι 지속 가능의 공간
기후·환경을 콘셉트로 한 곳. 기후·환경 도서를 큐레이션한 서가, 페트병 뚜껑과 공병을 모아 둔 재료실, 행동으로 지구를 지키는 기후환경공방과 기후행동 1.5도가 자리한다. 기후행동 1.5도에서는 버려진 책으로 달항아리를, 수세미로 크리스마스 리스를 만드는 등 흥미로운 업사이클링 활동을 진행한다.

3층부터 4층까지 이어지는 인문라운지. ‘시간의 나무, 이야기의 동굴’이라고도 불린다. 천장은 나무의 나이테를 형상화한 듯하고, 양옆으로 길게 뻗은 서가는 나뭇가지 같다. 비어 있는 서가는 다가올 이야기를 조용히 기다리는 중이다.

경기도서관은 의자마저 범상치 않다. 공공 도서관에서 흔히 보이는 의자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김하늘 작가의 ‘스택 앤 스택 체어 & 테이블’이 대표적이다. 폐자재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는 업사이클링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겹겹이 칠한 페인트 자국처럼 보이지만 놀랍게도 일회용 마스크로 만든 의자다.

살면서 이끼를 이렇게 가까이 들여다본 적이 있던가. 이끼연구소는 그 흔치 않은 경험이 가능한 공간이다. 나무껍질 사이로 번진 이끼를 돋보기 너머로 따라가다 보면 미세한 솜털 하나하나가 숨 쉬듯 흔들린다. 이끼와 한 뼘 가까워진 코끝에는 은근한 풀 내음이 감돈다.

문이 없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왔다는 감각은 분명하다. ‘이야기의 동굴’이라는 이름처럼 안쪽은 아늑하고 고요하다. 소리는 차분히 가라앉고, 생각은 천천히 떠오른다. 그저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영감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높낮이가 다른 세 조각이 모여 하나의 의자가 완성된다. 손끝에 닿는 질감은 올록볼록하고, 묵직한 암석을 닮았다. 폐서적을 압축해 만든 김하늘 작가의 작품이다. 오래 앉기에는 다소 불편해 가장 높은 조각 위에 외투를 슬쩍 걸쳐 두었다. 잠시 후 근처에 있던 학생이 가장 낮은 조각을 끌어다 그 위에 학습지를 펼친다. 아, 책상으로도 쓸 수 있군!
경기도서관, 이런 곳이에요
경기도 수원시에 자리한 경기도서관은 지난해 10월 25일 문을 연 공공 도서관으로, 12월 31일까지 시범 운영하다 올해 1월 정식 개관했다. ‘두루마리를 보관하는 항아리’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비블리오테케(bibliothêkê)에서 착안해, 도서관을 지식을 담고 나누는 그릇으로 구현했다. 층간 구분이 없는 나선형 구조로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모든 공간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책과 문화, 사람을 잇는 복합 문화 공간 역할을 한다. 현재 디지털 자료를 포함해 장서 34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앞으로 최대 90만 점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누구나 회원 가입만으로 1회 최대 3권의 책을 2주간 대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