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곶에 해가 뜨면 잠들어 있던 울주의 시간이 깨어난다. 쉼 없이 몰아치는 바다와 선사인의 암각화, 거대한 공룡 발자국까지. 울산 울주가 들려주는 아득한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바다가 특별해지는 순간
해맞이 명소 간절곶부터 화려한 빛으로 물든 명선도와
사색하기 좋은 송정공원까지 울주의 바다를 누렸다.

절실한 마음을 담아, 간절곶
끝이라는 아쉬움과 시작이라는 설렘이 뒤섞여 몸도 마음도 분주해지는 12월. 부지런히 지나온 한 해를 갈무리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울산 울주.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간절곶을 품은 곳이다. 12월처럼 끝과 시작을 아우르는 울주에서 어지러운 마음을 차분하게 다잡아 보기로 한다.
웅장하게 둘러싼 산을 뒤로하고 바닷가에 이르자 유순한 잔디 구릉이 펼쳐진다. 짙푸른 동해와 맞닿은 지점에는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에 아침이 온다”라고 새겨진 돌탑이 자리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해맞이 명소, 간절곶이다. 강원도 강릉의 정동진보다 5분, 경북 포항의 호미곶보다 1분 정도 먼저 해가 뜬다. 덕분에 매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이면 전국에서 모여든 해맞이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듬해 1월 1일까지 ‘간절곶 해맞이 축제’가 열려 가요제, 콘서트, 드론 쇼 등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6시, 일출을 보기 위해 간절곶 끝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부터 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30여 분은 꼼짝없이 어둠과 추위를 견뎌야 한다. 그 지난한 여정에 밤바다를 울리는 뱃고동 소리, 거친 숨을 몰아쉬는 파도 소리, 차가운 바람에 몸을 떠는 나뭇가지 소리가 동행한다. 옷깃을 파고드는 추위에 새벽잠도 물러난 지 오래. 온 세상을 따뜻하게 품어 줄 해가 절실해질 무렵,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에서 선명한 불빛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이때부터 시간은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른 것처럼 순식간에 흘러간다. 캄캄했던 세상이 전구를 켠 듯 환해지고, 하늘에는 주홍빛이 무서운 속도로 번진다. 거침없이 솟아오르는 해는 시린 새벽 공기마저 온화하게 바꿔 놓는다. 마침내 새날이 문을 열었다. 가슴에 품은 간절한 소망이 당장이라도 이뤄질 것 같은 예감과 함께. 간절곶(艮絶串). 한자를 풀이하면 긴 대나무 장대처럼 생긴 지형이지만, 어쩐지 ‘간절’이라는 단어의 울림이 먼저 마음을 파고든다.
어둠이 완전히 걷히자 간절곶을 둘러싼 해맞이공원이 제 얼굴을 드러낸다. 먼저 바다를 향해 우뚝 선 거대한 우체통이 강렬한 존재감을 뽐낸다. 사진 명소로 꼽히는 소망우체통은 너비 약 2.4미터, 높이 5미터에 달한다. 그 앞에 서면 아무리 몸집이 큰 사람도 개미처럼 작아 보인다. 우체통은 단순한 모형물이 아니다. 안에 들어가 소망 엽서를 작성하면 전국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발송된다. 우체통 뒤편에는 1920년대에 세운 간절곶등대가 푸른 동해와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펼쳐낸다. 풍차를 향해 시선을 돌리면 드넓은 언덕 위 상상공간(정크 아트) 전시장의 알록달록한 조형물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톱니바퀴, 자전거 체인 등 의외의 물건으로 제작한 것이 특징. 숨은그림찾기 하듯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쓰임을 다한 폐기물을 재활용한 작품으로, 정크 아트의 화려한 변신술이 경이롭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솔라봇. 18미터 높이로 세계에서 가장 큰 정크 아트 작품이다. 폐자동차와 폐오토바이를 활용했으며 태양광 에너지 충전 방식으로 제작해 야간에도 빛을 발한다.


주민들의 해안산책로, 송정공원
간절곶에서 차로 2분 거리, 울주 바다를 현지인의 시선으로 감상하고 싶어 송정공원을 찾았다. 주변이 소나무로 둘러싸여 밖에선 내부가 보이지 않는 곳, 그래서 더 비밀스럽게 느껴진다. 소나무 군락을 통과하자 비로소 시야가 트이며 너른 잔디밭과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마치 다른 세상으로 건너온 듯 아늑하고 평화로운 풍경. 곳곳에 자리한 벤치에는 강아지와 산책 나온 동네 주민, 어린 손녀의 손을 꼭 잡은 할머니, 홀로 음악을 듣는 청년이 여유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언덕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니 바다를 향해 설치한 액자 조형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푸른 동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기 좋은 포토 스폿이다. 사진의 주인공처럼 액자 가운데에 서자 눈앞에 새하얀 파도가 넘실거린다. 근처에는 바다 바로 앞까지 이어진 나무 덱이 설치돼 있다. 바다를 옆에 두고 산책을 즐길 수 있는 해안 산책로다. 세찬 파도가 끊임없이 몰아치는 간절곶과 달리 걷는 내내 잔잔한 바다가 동행한다. 송정공원은 잘 알려지지 않은 만큼 찾는 이가 적어 조용히 사색하기 좋다.

간절곶 해맞이 축제
간절곶 해맞이 축제는 매년 12월 31일 전야 행사로 시작한다. ‘간절곶, 한반도의 첫 아침을 열다’를 주제로 콘서트와 드론 라이트 쇼, 불꽃 쇼 등 다채로운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다음 날인 1월 1일에는 새해 첫 일출에 맞춰 해맞이 공연과 신년 인사, 해맞이 카운트다운, 새해 떡국 나눔 등의 행사가 진행된다. 이 밖에도 울주 농특산품·관광·마을기업 등의 울주군 홍보관을 비롯해 나눔 부스, 캘리그래피·타로·소망 트리·추억의 오락실 등의 체험 부스, 푸드 트럭이 마련된다.



겨울 바다를 품은 오션 뷰 카페
겨울 바다는 좋지만 옷깃을 파고드는 추위는 피하고 싶다면 해변에 자리한 카페를 찾아가자. 울주 앞바다에는 생동감 넘치는 파도와 황홀한 일출을 통창 너머로 감상할 수 있는 오션 뷰 카페가 여럿이다.
그중 나사 해변을 앞마당으로 둔 호피폴라는 최고의 일출 명소로 꼽힌다. 전면에 통창을 내 어느 테이블에 앉아도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다. 새벽녘부터 일출을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24시간 운영한다. 호피폴라는 울주 해변에 카페가 드물던 2018년 5월에 문을 열었다. 해맞이 명소인 간절곶과 가깝고 주변 자연경관이 아름다우며, 커피와 베이커리 맛도 뛰어나 자연스레 손님이 모여들었다. 입소문을 탈수록 대기 손님이 많아지자 넓은 공간으로 자리를 옮겨 다양한 좌석을 마련했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지금의 호피폴라다. 독특한 카페 이름은 아이슬란드 가수 시규어 로스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 ‘물웅덩이에 뛰어들다’라는 뜻처럼 바다를 최대한 가깝게 누릴 수 있도록 설계에 각별히 신경 썼다. 먼저 건물과 바다 사이 울타리를 없애고 그 자리에 테라스 좌석을 마련했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층 야외 공간에는 가장자리에 펜스를 설치하는 대신 물이 흐르는 사각 구조물을 두어 장애물 없이 바다를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전망과 안전을 함께 챙긴 것이다.
호피폴라가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제주를 콘셉트로 했다는 점이다. 카페를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휴양지로 가꾸고 싶었던 강동주 대표는 울주를 ‘울산의 제주’로 해석했다. 1층 야외 테라스 한편에 잎이 무성한 야자수를 심고 돌하르방을 두어 제주의 풍경을 연출한 것. 청명한 바다를 배경으로 야자수 그늘 아래 앉아 있노라면 정말 제주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매장에서는 24시간 내내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방문객을 유혹한다. 인기 메뉴는 ‘댕유자’. 기다랗고 부드러운 빵 안에 상큼한 유자 크림이 가득 들었다. 제주에 온 듯한 기분을 한껏 느끼려면 ‘한라망고 에이드’를 추천한다. 생망고를 갈아 넣어 만든 음료로 달콤함과 청량함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울주에서 방문해야 할 또 하나의 오션 뷰 카페는 ‘시네마 뷰’를 품은 그릿비. 아이맥스 영화관 스크린처럼 거대한 유리창이 있고, 테이블을 계단식으로 배치해 시야에 걸리는 것 없이 탁 트인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신암리 해안가에 자리한 그릿비는 도로 옆에 난 작은 언덕을 올라야 그 모습이 드러나는데, 거대한 회색 상자를 쌓아 올린 듯한 외관부터 범상치 않다. 건물 뒷면은 창문 하나 없이 매끈해 어떤 곳인지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전면에서 보면 너른 테라스 좌석과 시원한 유리창이 여유로운 휴양지를 연상시킨다. 2022년 울산광역시 건축상을 수상한 건물로 인테리어도 특별하다. 안으로 들어서면 높은 층고와 탁 트인 뷰가 먼저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매장 한가운데에는 갓 구운 빵이 진열돼 있어 달달하고 고소한 향이 발걸음을 붙든다. 그중 얇은 층이 겹겹이 쌓인 밀푀유 식빵과 달콤한 크림을 올린 그릿비슈페너, 패션프루트로 식감에 재미를 더한 유자후르츠베리를 주문해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에는 그릿비의 하이라이트인 오픈 시네마 좌석이 있다. 이름대로 스크린처럼 커다란 유리창에 역동적인 울주의 앞바다가 펼쳐지고, 단차를 둔 테이블이 빼곡하게 놓여 있다. ‘I열 14번’쯤 되는 명당에 앉으니 당장이라도 파도가 덮쳐 올 듯하다. 카페를 나설 때쯤에는 잘 만든 4D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기분이 든다.


명선도, 그 환상의 세계로
마치 물 위를 달리듯 바다 쪽으로 바짝 붙은 해안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불쑥 고개를 내민 간절곶등대가 나타나고 곧 너른 백사장이 펼쳐진다. 울산 제일의 해변, 진하해수욕장이다. 이곳은 기세가 남다른 울산의 파도를 살짝 비껴 앉아 평온한 바다를 품고 있다. 겨울바람을 타고 몸집을 부풀리며 달려오던 파도도 이곳에 닿으면 스르르 긴장을 풀어 놓는다. 백사장 뒤편으로는 소나무 숲이 둘러싸고 있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잔잔하고 포근한 풍경 덕분일까. 진하해수욕장은 드라마 <이번 생도 잘 부탁해>에서 아픔을 극복하고 행복을 찾아가는 ‘지음’이 ‘초원’과 나란히 걷는 장면에 등장하기도 했다.
진하해수욕장의 백미는 바다 위에 덩그러니 떠 있는 섬, 명선도. 면적 6744제곱미터, 둘레 330미터의 아담한 무인도다. ‘울 명(鳴)’에 ‘매미 선(蟬)’ 자로, 여름에 매미가 많이 운다고 하여 붙은 이름인데, 겨울에 만난 명선도는 한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이 작고 평범한 섬이 어쩌다 울주 대표 관광 명소가 됐는지 궁금하다면 밤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하늘과 바다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명선도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한다. 섬 전체를 무대로 미디어 아트가 펼쳐지고 화려한 조명이 형형색색 불을 밝히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파도가 철썩이는 바위에 푸른 보석이 깔리는가 하면, 가파른 절벽에 오색찬란한 폭포가 쏟아지고, 숲길 중간중간에선 영롱한 자태의 동물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하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황홀한 풍경에 ‘아바타섬’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어린아이는 물론 어른도 “사슴이다!” “거북이다!”를 외치며 테마파크 같은 섬에 빠져든다. 명선도는 지난여름부터 ‘태양을 품은 섬, 명선도’를 주제로 기존 콘텐츠를 리뉴얼하고 신규 콘텐츠를 더해 더욱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세상의 모든 빛이 태양을 품은 명선도로 모인다’는 스토리를 바탕으로 잠든 태양, 태양의 박동, 붉은 물결, 해파랑 쇼 등을 추가해 총 18개 공간을 구성했다. 게다가 환상의 섬에 가는 길도 쉬워졌다. 본래 물때에 맞춰 바닷길이 열릴 때만 들어갈 수 있었는데, 부교를 설치해 언제든 드나들 수 있게 됐다.
인류의 발자취를 따라
거대한 공룡 발자국에서 시작한 울산 울주 탐험은 선사 시대와 조선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른다.
자연과 도심을 넘나들며 시간 여행을 떠났다.

세상에 드러난 바위의 비밀
2025년 7월 12일, 울산 울주 깊숙이 숨겨져 있던 바위가 전 세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47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반구천의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최종 등재된 것이다. ‘약 6000년에 걸쳐 이어진 암각화의 전통을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라는 평가를 받으며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구불구불한 물길을 따라 이어진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까지 약 3킬로미터 구간을 아우른다.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는 1970년 12월 24일 한 연구원이 발견하면서 세상에 그 존재가 알려졌다. 당시 스물아홉 살로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속이었던 그는 원효대사가 살았던 ‘반계계곡의 높은 곳’이라는 뜻의 반고사(磻高寺)를 쫓다 반구천에 이르렀다. ‘반계’는 반구천의 옛 이름이다. 천전리 일대에 도착했을 때 그를 맞이한 건 사찰 터가 아닌, 수많은 기호와 한자가 새겨진 거대한 암벽이었다. 이듬해 주민들의 제보로 2킬로미터가량 떨어진 반구대 암각화까지 찾아내면서 이 땅의 유구한 시간이 새겨진 거대한 책이 활짝 펼쳐졌다. 반구천으로 향하는 길은 태화강이 안내한다.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태화강의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곡천에 닿는다. 울산암각화박물관에서 출발해 걸어서 약 15분 후, 잔잔한 대곡천을 사이에 두고 높이 약 4.5미터, 너비 8미터의 반구대가 그 신묘한 모습을 드러낸다.
반구대에서 기억해야 할 동물은 단연 고래다. 한반도 사람과 고래의 인연은 약 6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위에 새겨진 300여 점의 그림 중 50점 이상이 고래 그림이다. 새끼를 등에 업은 귀신고래부터 무리 지어 헤엄치는 북방긴수염고래,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혹등고래 등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배를 타고 작살로 고래를 잡는 모습과 사냥한 고래를 나누는 모습도 묘사돼 있다. 고래가 삶의 중요한 자원이었던 신석기 시대의 생활상이 그대로 담겨 있다.
대곡천을 따라 약 2킬로미터 이동하면 반구대 암각화와는 또 다른 그림이 그려진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가 등장한다. 높이 약 2.7미터, 너비 9.8미터 바위에 기하학무늬와 기마 인물, 동물 등 620여 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선사 시대부터 신라 시대에 이르는 기록도 빼곡하다. 특히 신라 법흥왕 일가가 남긴 명문은 사료적 가치가 높다. 어떻게 선사인의 그림이 수천 년의 시간을 견뎌 지금까지 남을 수 있었을까. “바위 윗면이 앞쪽으로 25도 기울어져 있어 비바람을 막아 줬기에 그림이 보존될 수 있었어요.” 울산암각화박물관 고명숙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대곡천을 건너니 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이번엔 공룡 발자국이다. 웅장한 암벽 아래, 평평한 바위가 길게 늘어선 천전리 일대에서는 둥그스름한 발자국이 걷는 내내 함께한다. “공룡 발자국을 보면 방향이나 간격만으로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요. 천적에 쫓기는 긴박한 발자국이 있는가 하면, 살금살금 도망가는 발자국도 있죠. 천전리의 공룡은 걸음이 느긋한 것으로 보아 날씨가 좋은 날 온 가족이 소풍을 즐긴 것 같아요.” 집채만 한 것부터 사람 손바닥만 한 것까지 크고 작은 발자국을 차근차근 되짚어 본다. 따스한 햇볕 아래 물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공룡 가족이 눈앞에 그려져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신비로운 전설을 품은 선바위
백운산에서 발원한 태화강은 치술령의 대곡천과 만나 범서에 이른다. 유독 물빛이 푸른 이곳에는 백룡이 살았다는 백룡담과 우뚝 솟은 선바위가 자리한다. 물줄기를 따라 이어진 도로를 달리다 웅장한 선바위에 반해 잠시 차를 멈춰 세웠다. ‘선돌’이라고도 부르는 이 바위는 높이 33.2미터, 둘레는 46.3미터에 달한다. 크기도 크기지만 이 부근의 지질이나 암층과는 전혀 다른 암질이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선바위의 독특한 풍경을 보고 감탄사를 터뜨린 건 옛 선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예부터 명승지였던 선바위에는 향인들이 찾아와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며 자연을 즐겼다. 바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험한 기운에 날이 가물 때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리기도 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니 백룡담의 청량한 물과 바위 뒤편의 고즈넉한 선암사가 대비를 이뤄 더욱 신비롭다. 어디서 툭 떨어지기라도 한 걸까. 바위의 연원을 되짚어 백악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상분지 대구층에 해당하는 퇴적암 지층이 깎이면서 계곡 면에 절벽을 이뤘다. 이후 침식으로 인해 약해진 암석 일부가 떨어져 나온 것. 하나의 돌기둥이 덩그러니 남아 있는 하식애는 드문 경우라 더욱 경이롭다.


돌담 아래 흐르는 시간, 울주 언양읍성
바다와 강에서의 긴 탐험을 마치고 시내로 들어섰다. 매끈하게 뻗은 도로와 네모반듯한 건물이 즐비한 도심에 닿으니 마치 수천 년 전으로의 시간 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다.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선사인들의 흔적이 전생처럼 마음에 남았다. 아쉬운 마음에 울주의 마지막 여행지는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한 울주 언양읍성으로 정했다.
언양 불고기 거리를 벗어나 비교적 한산한 뒷길로 들어서자 너른 평지와 함께 한눈에 봐도 오랜 세월을 품은 성곽이 이어진다. 도시 한복판에 떡하니 자리한 읍성이 신기하면서도 반갑다. 울주 언양읍성은 산을 둘러싼 대부분의 성곽과 달리 평지에 직사각형으로 지어 독특한 풍경을 이룬다. 불규칙하게 배열된 흙빛의 돌 위로 가지런히 쌓인 회색 돌까지, 두 시대가 나란히 겹쳐 있는 점도 특별하다. 읍성이 자리한 언양읍 동부리는 본래 경주, 울산, 밀양, 양산과 통하는 지방 행정 및 군사 중심지였다. 1390년 토성으로 축조한 뒤 1500년 현감 이담룡이 석성으로 고쳐 쌓으며 규모를 확장했다. 이때 사대문과 12개의 치성, 해자를 조성하면서 성의 외연도 갖추게 됐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당시 성 둘레는 약 1500미터, 높이는 6.3미터에 이르렀다. 성안에는 각종 관아를 비롯해 동헌과 객사가 촘촘히 들어서 있었다. 이후 임진왜란, 정유재란 등의 전쟁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 손실되었다가 1991년에 시작된 복원 작업을 통해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북문에서 시작해 읍성을 가로지르는 길은 영화루에서 끝난다. 영화루는 남문 위에 지은 누각으로 2013년에 복원했다. 과거 군사들이 오르내리던 돌계단을 밟고 영화루에 오르니 멀리 언양 불고기 거리가 내려다보인다. 화려하고 번잡하게 느껴졌던 도심이 놀랍게도 한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보름달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저녁 무렵, 삼삼오오 저녁을 먹으러 나온 이들의 웃음소리가 텅 빈 성안에 울려 퍼진다. 영화루에서 마을을 굽어보던 옛사람의 마음도 이랬을까. 기쁨, 희망, 행복 같은 벅찬 단어들이 차곡차곡, 성곽을 이룬 돌처럼 마음에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