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카페 메뉴에 말차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뷰티와 패션업계에도 말차 그린 아이템이 인기다. 왜 이토록 말차에 열광하는 걸까.

올해 유통가에서 가장 눈에 띄는 키워드는 단연 ‘말차’다. 최근 몇 년 사이 카페마다 말차를 활용한 메뉴가 출시되고, 말차 맛 과자가 편의점 진열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헤일리 비버와 두아 리파, 제니 등 글로벌 셀럽들이 SNS를 통해 말차 라테를 마시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대중의 관심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글로벌 시장을 조사하는 더 비즈니스 리서치 컴퍼니에 따르면 글로벌 말차 시장이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24년 38억 4000만 달러였던 규모가 2025년 42억 4000만 달러로 증가해 연평균 성장률 10.4퍼센트를 기록했다. 이런 추세라면 2029년엔 약 64억 달러, 한화로 약 8조 94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건강과 감성 사이
일부 마니아층의 취향이던 말차가 어떻게 전 세계인을 사로잡았을까. 이러한 유행의 흐름을 단순히 맛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이 시대의 소비 방식과 감각을 이해해야만 지금 말차가 떠오르는 이유가 선명해진다.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요소는 인스타그래머블한 매력이다. 경제 도서 <요즘 소비 트렌드 2025>에서 짚어 낸 ‘인스타그래머블’은 인스타그램(instagram)과 할 수 있다는 뜻의 단어 에이블(-able)의 합성어로, ‘인스타그램에 공유할 만한’이란 의미다. 인증 샷을 찍고 공유하며 나만의 취향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대에게 말차의 선명한 초록빛 비주얼과 부드러운 거품은 매력적인 존재다. 실제 동영상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틱톡에서 ‘matcha’ 해시태그는 20억 회를 넘겼으며, 인스타그램의 말차 관련 게시물은 1000만 개를 향하고 있다.
말차 열풍은 건강하면서도 즐거운 소비를 추구하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트렌드와도 연관이 있다. 헬시 플레저는 즐겁고 지속 가능한 건강관리를 추구하는 소비 방식. 말차의 카페인 함량은 약 70밀리그램으로 커피보다 적지만 각성 효과가 오래 지속되어 커피의 건강한 대안이 된다. 항산화 성분인 EGCG가 일반 녹차보다 10배 이상 풍부하며,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L-테아닌이 함유돼 집중력과 기억력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이에 더해 디토 소비(ditto+소비)가 말차 유행 확산에 불을 지폈다. 디토 소비란 자신이 좋아하는 셀럽이 소비하는 제품이나 브랜드를 따라서 소비하는 성향을 말한다. 셀럽들이 말차를 마시는 모습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레 ‘힙한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이러한 흐름에 브랜드들도 빠르게 대응했다. 스타벅스, 투썸플레이스, 공차 등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유기농 말차를 활용한 음료를 앞다퉈 선보여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고, 제과업계는 홈런볼 말차딸기, 초코파이 말차 쇼콜라, 몽쉘 말차 & 딸기 등 신제품을 연달아 출시하며 그 흐름에 합류했다. 최근에는 말차 맛 막걸리 ‘더기와 말차막’, 초코에몽의 신작 ‘말차에몽’, 제주 말차를 사용한 ‘말차하이볼’ 등 편의점에서도 다양한 말차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지난 8~9월 아이스크림·디저트·스낵 등 말차 관련 상품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배 증가했고, GS25는 8월 한 달간 약 50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CU도 같은 기간 관련 매출이 129.8퍼센트 상승했다.
말차의 무한 변신
말차의 확산세만 살펴봐도 단순한 유행과는 결이 다르다. 말차의 초록색은 식음료계를 넘어 패션과 뷰티,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말차 룩’ ‘말차 메이크업’에 이어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취향이 분명하고 정제된 삶을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뜻하는 신조어 ‘말차 코어(matcha-core)’까지 등장했다. 말차색 옷과 화장품, 주방용품까지 말차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분야를 찾기 힘들다.
패션 영역에서 말차의 영향력이 가장 뚜렷하다. ‘말차 그린’이라 불리는 차분한 분위기의 녹색이 자연과 미니멀리즘, 슬로 패션을 상징하면서 지속 가능한 감성을 추구하는 브랜드들의 컬렉션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이자벨 마랑은 녹색 컬러 제품을 전년 대비 세 배 이상 확대했으며, 이탈리아 프리미엄 슈즈 브랜드 프리미아타도 빈티지한 녹색 톤의 슈즈를 새롭게 선보였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 따르면 지난여름 말차 관련 검색량이 전년 대비 1035퍼센트 증가했다. 뷰티 분야에서는 컬러를 넘어 천연 유래 성분으로 주목받고 있다. 카테킨과 L-테아닌이 풍부한 말차는 피부 노화 방지, 진정·항염 효과가 있어 클렌징 폼, 마스크 팩, 보디 워시 등의 주원료로 활용한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마차 메디테이션’, 르 라보의 ‘떼마차 26’, 라운드어라운드의 ‘더 퍼퓸 캔들 말차’ 등 말차 특유의 쌉싸름한 향을 담아낸 향수도 인기다.
말차는 지속 가능한 재료로서의 상징성도 지닌다. 말차의 찻잎은 전통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하며, 자연을 해치지 않는 ‘클린 푸드’로 인식된다. 찻잎을 뜨거운 물에 우려낸 뒤 찌꺼기는 버리는 녹차와 달리 말차는 잎 전체를 갈아 마시기 때문에 버리는 부분이 거의 없어 친환경 음료로 평가받고 있다.
말차는 SNS 물결을 타고 인스타그래머블, 헬시 플레저, 디토 소비 등 새로운 소비 성향과 맞물려 트렌드의 중심이 되었다. 하나의 식재료가 패션·뷰티, 라이프스타일까지 경계를 넘나들며 이례적인 확장성을 보이는 건 일시적 현상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아름답고 건강하며 지속 가능한 가치를 지닌 아이템이라면 무엇이든 제2, 제3의 말차 코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말차 열풍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의 예고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