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MADE IN SUNCHANG

2025년 11월 01일

  • EDITOR 김수아
  • photographer 장은주

순창을 만드는 공간과 사람, 일곱 가지 이야기

순창의 체험

계절마다 모습을 바꾸는 뜨레팜의 치유 정원.

뜨레팜

위로를 나누는 치유 정원
대학 병원 간호사를 그만두고 자녀들도 성인이 되고 나니 문현순 대표에게는 새로운 길이 필요했다. 자연에서 해답을 찾기로 결심하고 순창으로 귀촌한 문현순·장용일 부부. 원래 정원을 가꿔 자급자족하는 삶을 계획했다가 농업기술센터에서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며 치유 정원 운영을 준비했다. 뜨레마을협동조합 법인을 설립하고, 장 대표는 치유농업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하며 사람들을 꽃의 세계로 안내할 채비를 마쳤다. 사계절 모습을 달리하는 이곳의 핵심 자원은 단연 꽃. 치유 정원, 실내 교육장, 체험 카페 및 휴식 공간, 원예 체험장, 열대식물원 모두 꽃을 중심으로 구성한 공간이다. 초화류 200여 종, 목본류 100여 종을 식재한 정원은 봄에는 튤립, 알리움, 백합, 산수유 등이 자태를 뽐내고, 가을에는 핑크뮬리를 비롯해 천일홍, 국화, 아스타, 백묘국 등이 주인공 자리를 건네받는다. 수확한 꽃을 다듬고 덖어 꽃차를 마시는 시간은 참여자들이 작은 성취감을 얻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한다. 꽃 비빔밥, 꽃 샐러드, 허브 음료를 만드는 푸드 테라피나 계절별 원예 활동 또한 심신이 지친 사람들에게 활기를 불어넣고 자기 효능감을 높인다. ‘꽃님과 첫 만남’ ‘희망 키우기’ ‘수확의 즐거움’ ‘꽃이 다시 피네’ 등 치유 정원 프로그램 이름도 다정하다. 꽃은 한풀 꺾였더라도 햇볕을 쬐어 주고 물을 충분히 주면 꼭 다시 핀다는 부부의 위로와 응원이 담겨 있다.
주소 전북 순창군 쌍치면 금성내동길 49-39
문의 0507-1318-0546

순창의 맛

연잎밥 정식에는 제조법을 특허받은 연잎밥과 제철 식재료로 만든 반찬이 나온다.

미소식당

정성을 담은 보약 한 상
15년째 순창 땅을 지키는 미소식당에서 판매하는 메뉴는 단 두 가지, 제철 식재료로 만든 반찬이 상을 가득 채우는 연잎밥 정식과 전남 영광에서 엄선한 굴비를 연잎에 싸서 찐 연잎보리굴비다. 연잎밥 정식에 나오는 연잎밥은 작약, 당귀 등 9가지 한방 약재를 달인 물로 지은 밥이며, 약리성을 인정받아 제조법에 대해 특허를 받았다. 김은희 대표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던 중 한 스님을 통해 연의 효능에 관심을 가졌고, 연잎을 활용해 만들 수 있는 요리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에게 진통제는 필수였지만 알레르기 때문에 복용하기 어려웠던 터에 연잎 요리는 아픈 몸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 부작용 없는 영양제였다. 레시피를 공부하고 메뉴 개발에 힘쓰면서 건강도 점차 회복했다. 음식에 힘이 있다는 말을 신뢰하게 된 이유다. 그는 시간이 흐르면 몸에 쌓인 성분이 효력을 발휘한다는 믿음으로 반찬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특히 자극적인 간식에 노출되기 쉬운 아이들에게 건강한 맛을 경험하게 하고 싶다고. “한번 먹어 본 맛은 나중에 몸이 기억하고 찾거든요.” 걸쭉하고 고소한 흑임자 깨죽, 연잎을 갈아서 부친 바삭한 전, 연잎으로 감싸 50시간가량 구운 달걀, 자연산 버섯으로 만든 버섯 탕수와 무침 등 친숙한 재료에서 느껴지는 깊은 맛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뜨끈한 누룽지로 식사를 마무리한 뒤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지고, 가게명이 머릿속에 또 한 번 떠오른다.
주소 전북 순창군 순창읍 장류로 290
문의 063-653-7597

interview

미소식당 김은희 대표

스님의 제안으로 시작해 연잎을 활용한 요리를 10년 넘게 이어 오고 계신다고요. 터닝 포인트가 필요하던 시기에 연을 공부해 보라는 스님의 말씀이 뇌리에 강하게 박혔어요. 연 부각이나 연잎 미숫가루처럼 연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가 많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죠. 오래 지속하려면 메뉴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해 두 가지 메뉴만 남긴 거예요. 찰기가 느껴지는 연잎밥은 물론이고 반찬이 다 맛있습니다. 손님들도 나물이 어쩌면 이렇게 맛있냐고 물으세요. 그럴 때마다 기분이 참 좋죠. 요즘은 한식보다 양식을 찾는 추세인데, 저라도 한식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하게 돼요. 택배 판매를 시작했다고요. 한국이 정의 나라라서 그런지 미소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밥을 먹으면서도 선물할 이를 생각하더라고요.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도록 전국 택배 판매를 시작했어요. 따뜻한 밥 한 끼 챙겨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순창 연잎밥’을 검색해 보세요.

순창의 디저트

당고를 얹은 라테와 항아리 고추장 티라미수는 화양연화의 시그너처 메뉴다.
여행하며 마시기 좋은 말차 라테 ‘제주의 푸른밤’과 딸기 라테 ‘일편딸심’. 말린 과일로 장식한 쌀 과자도 가벼운 간식으로 그만이다.

화양연화

고택에서 맛보는 달콤한 순간
고택을 리모델링한 건물, 마루 위에 놓인 상, 차곡차곡 쌓인 방석, 곳곳에 자리한 선풍기 등 여러 요소가 시골집에 내려온 듯 아늑하고 정겨운 분위기를 선사한다. 상 위의 작은 항아리에 든 붉은빛을 띠는 디저트 이름은 항아리 고추장 티라미수. 조철 대표는 순창의 특색을 살린 디저트를 만들고자 인기 메뉴인 티라미수에 카카오 가루 대신 비트 가루를 뿌려 고추장을 표현했다. 장류 특화 지역이니만큼 밤 티라미수도 항아리에 담아 시각적 즐거움을 더한다. 순창에서 생산한 팥과 국내산 쌀로 만든 딸기 모찌를 비롯해 딸기 파르페, 딸기 크루아상, 딸기 우유 등을 함께 내는 딸기 오마카세 한 상은 마니아층에게 반응이 좋고, 당고를 얹은 라테는 이 카페의 시그너처 메뉴로 말차·망고·딸기·오곡 등 선택지가 많다. 이 외에도 관광 명소인 채계산 출렁다리를 형상화한 빙수를 선보이는 등 지역색을 더한 디저트 개발을 이어 가고 있다. 별채 건물에는 좌식 대신 테이블을 마련해 취향에 맞게 공간을 이용하도록 했다. ‘당신의 전성기는 지금 이 순간’이라는 뜻을 담아 카페명을 화양연화라고 지었다는 조 대표의 말처럼, 카페에 머무르는 동안만이라도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건 어떨까.
주소 전북 순창군 순창읍 경천로 91
문의 0507-1300-7134

순창의 테마파크

순창발효테마파크

효모의 역사와 발효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전시하는 효모관.
발효소스토굴에선 고추장을 비롯한 각국의 소스를 소개한다.

오감으로 배우는 발효
순창을 대표하는 키워드인 고추장과 발효 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2021년 순창발효테마파크가 문을 열었다. 누구나 발효의 개념을 쉽고 재밌게 경험할 수 있도록 체험과 놀이를 결합한 전시관이 차례로 들어섰다. 홍메관은 발효 음식의 특성을 미디어 아트로 선보이고, 효모관은 인류와 함께 진화한 효모의 역사와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발효 이야기에 집중했다. 팡이관은 1층에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도록 트램펄린과 볼 풀장 등을 갖췄고, 2층은 미생물과 함께 사는 세상을 안내하는 기획 전시관으로 꾸몄다. 발효소스토굴은 각국의 소스를 한데 모아 소개할 뿐 아니라, 연평균 15도를 유지해 고추장, 된장, 간장 등을 장기 숙성하는 장 저장고 역할을 한다. 순창발효테마파크에서는 유동적으로 주말 체험 교실도 운영한다. 청국장 가루를 활용해 쿠키 굽기, 순창에서 나는 흥국쌀로 케이크 만들기 등 색다른 즐거움을 제공한다. 지난해 말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전통문화의 가치를 친근하게 전하기 위해 더욱 골몰하고 있다. 올해 2회를 맞는 순창 코리아 떡볶이 페스타도 순창의 대표 특산물이자 한국의 3대 장류인 고추장을 더욱 친숙하게 느끼도록 하고자 마련한 축제다.
주소 전북 순창군 순창읍 장류로 55
문의 063-652-6511

interview

윤진역 순창발효관광재단 관광마케팅팀 차장

지난해 굿즈 숍을 개관했다고요. 순창발효테마파크에는 10종의 캐릭터가 있어요. 그중 순창 왕국의 국왕인 고추장을 표현한 장추왕, 장독대를 모티브로 한 독대, 장추왕을 돕는 기사인 메주를 나타낸 떨메가 주력 캐릭터예요. 지비츠, 볼펜 같은 부담 없는 가격대의 제품이 반응이 좋고, 캐릭터를 형상화한 인형이나 여행 다닐 때 유용한 레디 백도 인기가 많아요. 공간이 큰 편인 데다 볼거리가 다양합니다. 꼭 들러야 할 곳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간장, 된장, 고추장을 발효하고 숙성하는 발효소스토굴을 추천합니다. 전 세계 음식 문화와 역사를 훑는 홍메관, 미생물 전시와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을 함께 마련한 팡이관도 잊지 마세요. 순창발효테마파크를 어떤 공간으로 발전시키고 싶나요? 순창 관광의 마중물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발효의 개념을 설명하고, 순창이 왜 발효에 적합한 곳인지를 알려 지역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거죠. 먼저 11월에 순창 코리아 떡볶이 페스타에 많은 분들이 찾아와 알찬 미식 여행을 경험하면 좋겠어요.

순창의 산책길

양지천

황화코스모스가 가득 핀 양지천 풍경. 곳곳에 정자와 벤치를 마련해 쉬어 가기 좋다.

황금빛으로 물든 산책로
차가운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하루를 시작하거나 한 끼 든든히 먹고 산책할 곳이 필요할 때, 또는 해 질 무렵 노을에 붉게 물든 구름을 감상하기 위해 여행자는 산책로를 찾는다. 특히 가을은 낯선 여행지에서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기에 최적의 계절이라, 바람을 만끽하러 나온 사람들을 곳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계절마다 각기 다른 색으로 물드는 양지천은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이 필요한 사람에게 괜찮은 선택지일 테다. 한동안 방치되었던 양지천은 경천·양지천 수변 종합개발사업으로 볼거리가 풍성한 꽃길로 변화하고 있다. 봄에는 벚꽃을 비롯해 꽃잔디, 수선화, 튤립이 하천 주변을 가득 메우고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황화코스모스와 버들마편초가 산책자를 반긴다. 황화코스모스가 흐드러진 길 사이를 거닐면 황금 길을 지나는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진다. 양지천이 순창의 새로운 산책 명소로 떠오르면서 올해 ‘사계절 양지천에 반하다’를 주제로 사진 공모전이 처음 열렸고, 참두릅을 테마로 한 먹거리와 체험, 공연이 어우러진 제1회 순창 참두릅 여행 축제도 하천 일대에서 개최했다. 아름다운 꽃이 가득한 곳에는 사람이 모여드는 법이다.
주소 전북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 964-47

순창의 역사

일제가 쌀을 수탈하기 위해 만든 향가터널. 터널 곳곳에 조형물과 설치미술을 배치해 분위기를 전환시킨다.
향가다리 또한 노동력 착취의 흔적으로 이제는 섬진강 자전거 길의 일부가 됐다.

향가터널·향가다리

섬진강을 품은 자전거 길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은 쌀을 대량으로 수탈하고자 전국 곳곳에 철로를 설치하고 항구도시를 점령했다. 순창의 향가마을에도 당시 일제가 만행을 저질렀는데 향가터널과 향가다리가 바로 그 흔적이다. 일제는 전북 남원과 광주를 잇는 철로를 놓기 위해 순창 주민들을 강제 동원해 옥출산을 뚫어 384미터 길이의 터널을 만들었고, 여덟 개의 교각을 세웠다. 광복 후 철로 건설은 중단되었고, 마을을 잇는 통행로로 이용하던 향가터널은 2013년 섬진강 자전거 길 조성 사업을 통해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터널 입구에 서 있는 험상궂은 표정의 일본 순사 조형물과 터널 위 자전거 바퀴 모형이 대조를 이루며 80년 세월의 간극을 보여 준다. 터널 끝자락에서 만나는 새 모형은 ‘새들의 향연’이란 작품으로, 애환이 서린 향가터널에 새들이 하나둘 모여 희망을 안고 여정을 시작하는 모습을 담았다. 발걸음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터널을 지나면 나타나는 향가다리는 전북 임실부터 전남 광양까지 이어지는 섬진강 자전거 길의 일부다.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섬진강 물소리를 배경음 삼아 떠나는 자전거 여정은 이맘때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향가다리 일대에는 예부터 시인 묵객이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뱃놀이를 즐기던 곳으로 알려진 향가유원지가 자리하니, 잠시 숨을 돌리고 가을 정취에 빠져도 좋다.
주소 전북 순창군 풍산면 향가로 583-43(향가유원지)

순창의 문화 공간

구남마을을 산책하는 동안 박남재 화백의 초상화를 비롯해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탄생한 각종 미술품을 만난다.
섬진강미술관에서 10월 15일까지 진행한 <2025 서예, 전북의 산하를 날다> 순창전.
순창에서 태어났거나 지역에서 활동하는 서예가들의 서체와 기법이 담긴 작품을 선보였다.

옥천골미술관·섬진강미술관

모두가 예술을 향유하는 공간
옥천골미술관과 섬진강미술관은 지역 예술인과 여행자 모두에게 사랑받는 순창의 대표 문화 공간이다. 옥천골미술관은 쓰임을 다한 양곡 창고를 리모델링해 2016년에 개관했다. 지역민과 소통하며 함께 만들어 나가는 미술관을 지향하는 이곳에선 11월 4일부터 17일까지 군민들이 직접 만든 예술 작품으로 전시회를 개최한다. 서예, 사군자, 도자공예 등 각각의 예술 세계를 진솔하게 표현한 작품이 전시장을 채운다. 섬진강미술관은 섬진강 상류 지역의 강변 마을을 문화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건립했다. 2016년에 별관을 열고 2022년에 신관을 개관했다. 11월 19일부터 12월 31일까지 순창에 귀촌해 작품 활동을 이어 가는 이주영 작가의 초대전이 신관에서 열린다. 올해 무등미술대전 서양화 부문 대상을 수상한 이주영 작가는 순창을 포함한 여러 지역의 자연을 화폭에 담아내고 빛의 변화에 따른 풍경의 미묘한 차이를 보여 줄 예정이다. 섬진강미술관이 자리한 구남마을에는 ‘섬진강 달 따러 가요’ ‘채계산을 바라보는 양사형’ 등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탄생한 미술품이 곳곳에 설치돼 하나씩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마을 초입부터 동네 어르신의 캐리커처를 그린 나무판을 세워 두었고, 순창으로 귀향해 작고하기 전까지 섬진강미술관 별관에서 작업에 몰두한 박남재 화백의 초상화가 그려진 건물도 눈에 띈다. 마을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지역 예술인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추진한 공공 미술 프로젝트는 여행자가 마을을 구경하는 재미를 더해 준다.
주소 전북 순창군 순창읍 남계로 81(옥천골미술관), 적성면 평남길 122(섬진강미술관)
문의 063-650-1638(옥천골미술관), 063-650-1640(섬진강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