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백 년 동안의 고독

2025년 09월 25일

  • Writer 이미혜(미술 칼럼니스트, 독립 기획자)
  • PHOTOGRAPHER 서송이

백 년의 고독한 운명을 타고난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는 9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숱한 걸작을 남겼다. 영원히 기억될 이 만인의 예술가에게 예술은 ‘고독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뉴욕 자택에서 루이즈 부르주아(2003). 사진: 낸다 랜프랭코
© The Easton Foundation / Licensed by SACK, Korea

용인8경으로 꼽히는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일원의 가실벚꽃길은 가을이면 단풍이 절경을 이룬다. 향수산에서 쏟아져 내린 물줄기가 운동장만 한 호수를 이룬 이곳의 또 다른 명물은 수변 공원 한편에 둥지를 튼, 알을 품은 청동 거미 조각 ‘엄마’(1999)다. 9미터 높이로 몸을 크게 부풀린 거미의 다리는 8개의 앙상한 나무 같기도 하다. 지금 이곳에서는 바로 이 거미의 작가로 알려진 루이즈 부르주아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부르주아는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하나지만, 한국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는 건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이후 25년 만이다. 파란 눈의 선교사가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을 찾았던 1911년, 그해 성탄절에 파리에서 태어난 부르주아는 강산이 일곱 번 바뀔 때까지 현역 작가로 활동했다. 그리고 2010년 5월 31일, 98세의 나이로 뉴욕에서 생을 마감했다. 애플이 첫 아이패드를 출시하고 한 달이 지난 후였다. 그가 살아온 긴 세월만큼이나 작품 수도 방대하다. <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은 1940년대 초기 회화와 ‘인물’ 연작, 1990년대에 시작된 ‘밀실’ 연작, 말년의 패브릭 작업과 대형 설치 작품에 이르기까지 작가 인생의 전 여정을 따라간다. 고요한 한국의 가을 풍경과 교차되는 부르주아의 잔혹하고 우아한 집념의 세계. 사방이 아름다운 핏빛으로 물든다.

두 개의 알루미늄 나선이 서로를 중심으로 삼고 회전하며 하나로 융합되어 가는 작품 ‘커플’(2003).

거미줄처럼 얽힌 관계의 초상
“예술가는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는다. 그는 순진하지 않으면서도 속박을 넘어서거나 떨쳐 낼 수 없는 아이로 남아 있다. 무의식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수도 없다. 그것은 비극적 운명이다.” – 루이즈 부르주아
부르주아는 종종 스스로를 ‘도망친 소녀(runway girl)’에 비유하곤 했다. 1938년에 그린 동명의 회화에서 긴 머리 소녀는 작은 가방을 들고 바다를 건넌다. 프랑스에서 만난 미국인 미술 평론가와 결혼하며 뉴욕으로 이주한 부르주아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평생을 과거로부터 도망치듯 살았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작가로서 그에게 중요한 건 언제나 내일, 그리고 어제와 내일의 균형이었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뿌리는 영원한 현재진행형의 과거로 늘 그를 따라다녔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와 편집증적 욕망, 성에 대한 양가적 감정, 격렬한 분노를 창작의 자양분으로 삼아 초현실적 작품으로 승화시킨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신의 가족사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그의 부모는 파리에서 태피스트리(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실내장식용 직물) 복원 작업실을 운영했다. 유복한 가정이었으나 외도를 일삼던 아버지에게 그는 심리적으로 학대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격렬한 반감은 아버지를 잡아먹는 상상을 시각화한 ‘아버지의 파괴’(1974~2017) 같은 작품으로 이어진다.
한편 보호자이자 친구였던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나 깊은 그리움을 남겼다. 부르주아에게 거미는 그런 어머니를 상징한다. 실과 직물에 둘러싸인 공방에서 자식들을 돌보던 가엾고 강인한 존재. 바느질하듯 자신의 찢어진 상처를 깁고 덧대는 그에게 예술은 심리적 복원의 한 형태다. 거미 모티브는 1940년대 목탄 드로잉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대형 조각상의 모습이 등장한 건 1990년대 이후다. 1982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첫 회고전이 열리기 전까지 부르주아는 거의 무명에 가까웠다. 당시는 마초의 시대였고, 미술 시장은 여성 작가의 작품에 관심이 없었다. 파리 소르본 대학교에서 수학과 기하학을 전공하고, 에콜 데 보자르와 몽마르트르 화가들의 작업실에서 미술 수업을 받은 그는 결혼 후에도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이어 가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1973년 남편과 사별한 후에는 아예 집 거실과 다이닝 룸을 작업실로 바꾸고 작품 활동에 골몰했다. 그런 그가 작가로서 전성기를 맞이한 건 70대에 이르러서다. 부르주아가 여성 작가 최초로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1999년, 그의 나이는 81세였다.

가족 관계 속 친밀함과 거리감을 탐구한 ‘붉은 방(부모)’(1994). 관람자는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문틈으로 안을 엿보게 되어 있다.
중앙의 청동 조각 작품 ‘가슴과 칼날’(1991). 가까이 가서 보면 잔혹한 인형극 무대가 연출되는 붉은색 홀로그램 작품들은 ‘무제’(1998~2014).

기억과 무의식의 낮과 밤
<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은 삼성문화재단 소장품 13점을 포함해 회화, 설치, 조각 등 11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엄마’만큼이나 눈에 익은 작품도 꽤 눈에 띈다. 불국사 백운교와 같은 아치형 돌계단으로 만든 호암미술관 입구 잔디 마당에 자리한 ‘아이 벤치 III’(1996~1997)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옥상정원에 있던 눈 모양의 화강석 벤치다. 미술관 중앙 홀에는 각자의 소용돌이 속에 갇힌 채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이 공중에 매달려 있다. 나선형 알루미늄 조각 ‘커플’(2003)은 작가의 작업에서 중요한 주제인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감정의 충돌을 예고한다.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전시는 크게 질서와 의식을 상징하는 낮의 세계, 감정과 무의식을 상징하는 밤의 세계로 구분된다. 밝은 공간인 1층은 ‘도망친 소녀’의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을 선형적 서사로 풀어낸다. 실타래, 바늘, 천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과 붉은 과슈를 칠한 ‘꽃’ 연작은 태피스트리 기술자였던 그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작품은 집과 하나가 된 여성을 그린 ‘집-여자’(1946~1947), 그리고 거대한 새장 같은 설치 작업 ‘밀실(검은 날들)’(2006)이다. 불평등한 시대에 여성으로 태어나 누군가의 딸, 아내, 엄마라는 역할을 부여받은 예술가에게 집은 피난처이자 덫이고 안식처이자 감옥이었을 것이다.
번쩍이는 대형 거미 조각 ‘웅크린 거미’(2003)로 시작되는 2층은 보다 어둡고 파괴적이다. 거미 뒤로는 1978년 뉴욕 해밀턴 갤러리에서 진행한 퍼포먼스 ‘연회/신체 부위들의 패션쇼’의 흑백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어딘가 망가지거나 사지가 절단된 봉제 인형이 여기저기 박제되어 있는 이 공간에서는 홀로그램으로 재현한 핏빛 극장과 슬픈 지옥도가 펼쳐진다. 앞서 언급한 식육의 저녁 식탁 ‘아버지의 파괴’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이 검붉은 무대 맞은편에는 ‘붉은 방(부모)’(1994)가 놓여 있다. 나무 문짝들로 둘러싸인 이 방은 아이가 부모의 침실을 엿보듯 문틈과 방 안의 거울을 통해서만 내부를 볼 수 있는 구조다. 방 중앙의 붉은 침대 위에는 실로폰과 장난감, 쿠션 같은 평범한 물건들이 놓여 있는데 어쩐지 평화로운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이 불온하고 불길한 밤의 세계 끝에는 다시 환한 풍경이 나타난다. 전시의 마지막 장에서 만나게 되는 건 서로 뒤엉켜 마침내 하나가 된 은빛 소용돌이다.

태피스트리 복원 일을 하던 엄마에 대한 작가의 감정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엄마’(2003).
부르주아의 어록을 발췌한 제니 홀저(Jenny Holzer)의 프로젝션 작업과 공중에 매달린 ‘히스테리의 아치’(1993).

찰나와 영원의, 덧없고 영원한
이번 전시는 루이즈 부르주아의 아시아 순회 전시의 일환으로 뉴욕 이스턴 재단과 협력해 기획했다. 개최 장소마다 전시 내용과 구성이 다르다. 호주 시드니에서는 ‘낮이 밤을 침범했나, 밤이 낮을 침범했나’, 일본 도쿄에서는 ‘나는 지옥에 갔다 왔다, 멋진 일이었다’로 제목도 달라졌다. 한국 전시명은 ‘덧없고 영원한’이다. 모두 작가가 생전에 쓴 글에서 차용했다. 오랜 시간 우울증 치료를 받았던 부르주아는 수백 편의 정신분석에 관한 기록과 일기를 남겼다. 시적인 비유로 가득한 그 글귀들이 전시장 곳곳에 유령처럼 출몰한다. ‘언어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개념 미술가 제니 홀저의 협업 작품도 이번 전시에 포함된다. 두 작가는 이전에 몇 차례 전시를 함께 한 적이 있다. 거리의 표지판, 티셔츠, 프로젝션 등을 통해 공공의 언어를 탐구하고 전복해 온 홀저는 광범위한 글쓰기 관점에서 부르주아의 텍스트를 발췌해 공간에 투사한다. 때로는 버림받을까 두려운 아이의 투정 같고, 때로는 감성적인 속삭임 같고, 대개는 무시무시한 고통의 절규처럼 들리는 이 문구들에서 관객은 작가가 일생 동안 싸웠던 내면의 공포와 불안을 엿볼 수 있다.
“예술은 고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만약 당신 안에 그것이 있다면 예술가가 되어 고독을 표현하라.” 어쩌면 부르주아는 고독을 물리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독을 누리기 위해 작업을 지속했는지 모른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의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백 년의 고독한 운명을 타고난 부르주아는 기나긴 고독 속에서 숱한 걸작을 남겼다. 방대하고 다양한 이 작품들은 형태만 다를 뿐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다. 그에게 예술은 생존과 치유의 도구였다. 인생에서 한 번쯤 어떤 대상을 열렬히 사랑하고 증오해 본 사람이라면 아마 그의 감정을 이해할 것이다. 영원한 과거로부터 영원한 미래까지 반복되는 덧없는 열정. 이번 전시는 내년 1월 4일까지 계속된다. 물들어 가는 가을, 부르주아의 붉은 정원에서 당신의 내면세계를 탐험하라.

예술가의 디저트
호암미술관에 새로운 카페가 문을 열었다. <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 전시 개막과 함께 운영을 시작한 ‘호암 카페’는 이번 전시를 기념해 거미 모양을 새긴 ‘마망’ 케이크를 선보인다. 맛은 바닐라 헤이즐넛 무스와 초콜릿 테킬라 무스 두 가지. 호암 로고로 라테 아트를 꾸민 음료와 공작새의 날개를 형상화한 시그너 처 구움 과자 ‘모나카 플로랑틴’도 판매한다. 꽃나물 육전 비빕밥, 한우 떡갈비 같은 식사 메뉴도 있다. 낙우송 숲길 아래 동굴처럼 이어진 감각적인 공간 또한 그냥 지나치기엔 아쉽다. 공간 설계는 2023년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한 김남건축이 맡았다. 자연과 전통, 현대 예술 작품이 어우러진 정원 ‘희원’과 함께 산책길에 꼭 들러 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