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여행에서 시작된 바느질이 몸과 마음을 수선하며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됐다. 힘을 빼고 느긋하게 자기만의 언어로 실을 꿰어 옷을 짓고 수를 놓는다. 바느질로 세상을 연결하고 사람들을 위로하는 ‘죽음의 바느질 클럽’의 복태와 한군을 만났다.


여행은 세상과 나의 접촉면을 넓혀 가는 과정이다. 떠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낯선 것을 발견하고, 알던 것도 새로운 프리즘으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개인의 우주는 넓고 깊어지기에 우리는 여행을 소비가 아닌 경험으로 분류한다. 포크 밴드 ‘선과영’ 멤버이자 부부인 복태와 한군은 2016년 태국 치앙마이로 여행을 떠났다. 대단한 기대나 거룩한 사명이 있었던 건 아니다. 추운 한국을 피해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하고 따뜻한 여름의 나라에서 겨울을 보낼 요량이었다. 그곳에서 복태가 ‘액’을 발견했다. 포대기로 아이를 업고 묘기에 가까운 바느질을 하는 아저씨. 한눈에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예상대로 액은 신기한 사람이었다. 태국과 미얀마 국경 지대 난민촌에서 태국어를 가르치며 목숨 걸고 국경을 넘은 이들과 연대했다. 중국의 메콩강 유역 댐 건설을 반대하며 비영리 환경 단체에서 활동했고, 거대 기업에 맞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음을 인지한 후에는 소수민족을 지키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 그때부터 그의 바느질 인생이 시작됐다. 복태가 액의 바느질에 반한 이유는 아마도 포크 음악과 통했기 때문일 거다.
세상을 잇고 사람을 연결하는 바느질
삼고초려 끝에 액은 복태의 바느질 스승이 되었다. 다시는 치앙마이에 오지 않을 것처럼 복태가 분 단위로 짜 놓은 스케줄에 맞춰 관광하느라 지친 한군과 아이들에게 액은 선물 같았다. 복태가 바느질하는 동안 자유 시간이 생긴 것이다. 복태는 언제 어디서든 바느질을 했다. 그때그때 할 수 있는 만큼 하다가 멈추고 다시 이어 갔다. 아이러니하게 바느질이 복태에겐 완벽에 집착하던 일상에서 벗어나 삶을 유연하게 대하는 전환점이 됐다.
바느질 전도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알음알음 사람을 모아 2018년 가을 첫 바느질 워크숍을 열었다. 이름 없는 바느질 워크숍은 오전 11시에 시작해 밤 10시가 넘도록 계속됐다. 끝나면 모두 녹초가 됐다. 누군가 말했다. 이거 완전 ‘죽음의 바느질 클럽(죽바클)’이잖아! 그렇게 워크숍 이름이 지어졌다. 그때까지 바느질에 합류하지 않던 한군은 2019년 액의 재킷 자수를 보고 반해 바느질 세계에 발을 들였다.
바느질로 다양한 사람과 연결됐다. 환경을 생각하며 낡은 옷을 고쳐 입으려는 이, 자급자족의 삶을 추구하며 스스로 옷을 지어 입고자 하는 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이 등등. 요즘 복태는 재단하지 않아 자투리 천이 남지 않는 옷을 짓고, 한군은 바늘이 들어가는 모든 것을 수선하고 자수를 놓아 장식하는 일을 한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수선하며 바느질로 사람들을 잇고 있다.

자급자족의 삶을 꿈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복태 막연하게 남자를 만나면 시골에서 살겠다고 생각했어요. 농사짓고 옷도 지어 입고, 전기가 끊겨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습득하고 싶었죠. 도시에서 자란 저와 달리 시골에서 자란 한군은 농사를 지을 줄 알았어요. 꿈을 실행하기로 하고 시골로 내려가 빈집에서 살았죠. 전기는 언제 끊길지 몰랐고, 수도는 저수지에서 끌어와야 했으며, 화장실도 없는 집이었어요. 불편했지만 만족했고, 이런 삶도 괜찮다고 생각할 즈음 아이가 생겨 도시로 돌아왔어요.
복태가 바느질에 빠진 이유가 ‘멈추는 법을 몰라서’라고 생각했어요.
복태 저는 효율성과 실용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10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살고, 계획이 어긋나면 분노하는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어요. 그러다 육아라는 복병을 만났죠. 아이들은 제 마음대로 되지 않아요. 시간 맞춰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이가 화장실이 급하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인데도 화가 나곤 했어요. 가계도 꾸려야 했기에 들어오는 일을 모두 했고요. 당시 저는 숨이 턱끝까지 찰 정도였고, 인내심도 바닥이었죠.
그런 상황에서 액을 만난 거군요. ‘죽도록 열심히’ 바느질을 했다면서요.
한군 액이 계속 물었대요. 왜 그리 열심히 해? 왜 빨리 완성해야 하는데? 노 하드 앤드 테이크 릴랙스! 복태 저도 궁금했어요. 나는 왜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열심히 바느질을 하는지. 질문은 ‘나는 왜 열심히 살까?’ ‘그래서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지금 행복한가?’로 이어졌어요. 그러다 아무리 서둘러도 옷을 만드는 데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과 서두르면 빨리 옷을 만들 순 있지만 좋은 옷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깊이 인정하게 된 거죠.
비공식 국가대표 바느질 전도사가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복태 생산적인 걸 좋아하는데, 아이를 키우면 제약이 많잖아요. 책을 읽거나 집안일을 하다가 아이가 저를 찾으면 멈춰야 하고요. 흐름이 끊기는 걸 못 견뎌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바느질은 언제든 멈췄다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게 매우 자연스러워요. 아이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하면서 틈틈이 할 수 있으니, 시간을 효율적으로 쓴다는 점에서도 제 성향과 잘 맞았죠. 무엇보다 바느질을 하다 보면 일종의 결계 안에 혼자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그게 위로가 되고 쉼이 되더라고요. 좋아하는 음악에 집중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바느질로 어느 정도 해소됐던 것 같아요. 한군 저는 바느질하는 복태가 좋았어요. 바늘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운 사람인데, 바느질을 하면 고요하게 잦아들더라고요. 그리고 옷이나 소품을 만들어 가져오니까 “이렇게 의식주 중 하나를 자급자족하고자 했던 소망을 이루는구나” 하고 좋아했죠.
이쯤 되면 액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데요.
복태 대안적인 삶의 가치를 고민하는 사람이에요. 환경운동가이자 활동가인데, 그가 바느질을 배운 이유도 소수민족을 돕기 위한 방편이었어요. 민족의 전통을 수호함으로써 민족을 지키는 거죠. 그가 툭툭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이 단단한 제 세계에 균열을 만들었어요.
한군은 한참 뒤인 2019년부터 바느질을 시작했다고요.
한군 뒤늦게 스승님이 입고 있는 재킷 자수를 보고 반했어요. 그런데 그 재킷을 팔기로 했다는 거예요. 볼 때마다 자수가 늘어나는, 저에겐 교과서 같은 옷인데. 보통 물건을 팔기로 하면 중고 상품이라도 세탁해서 포장해 두는데, 스승님은 계속 입고 다녔어요. 판매할 옷을 왜 입고 다니느냐고 물으니 “나의 역사가 쌓이는 중”이라고 답하더라고요. 땀 냄새도, 음식 먹다 흘린 자국도 다 자기 히스토리라면서요.
생각은 철학자이고 행동은 힙합이네요.
한군 액의 일상은 펑크예요. 보통 수선은 원래와 비슷하게 복원하거나 망가진 부위를 최대한 가리는데, 액은 완전히 튀는 원단과 바느질 기법을 써요. 의도를 물으면 “내가 했어. 완전 멋있지?” 하고 되물어요. 옷도 늘 작게 짓고요. 그러면서 다 주인이 나타날 거래요.
복태는 액의 철학자 같은 생각에, 한군은 펑크에 가까운 액의 바느질 태도에 반한 거였네요.
복태 한예종에서 연극학을 전공한 저는 습득해 온 예술의 정의가 있어요. 예술은 순수해야 하고, 쓸모없어야 해요. 그 쓸모없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철학적 의미를 찾아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일이 예술이죠. 그런데 바느질은 쓸모 그 자체예요. 그래서 바느질은 기술이라 여겼어요. 생각해 보면 이렇게 산업화된 사회에서 내 손으로 옷을 짓는 일보다 쓸모없는 일이 없어요. 나는 지금 예술을 하고 있는 게 맞아! 사서 고생하는 숭고한 예술!
워크숍을 오픈하자마자 매진되는 ‘죽음의 바느질 클럽(죽바클)’의 인기 비결은 뭘까요?
복태 패턴이나 도안이 없어요. 옷을 짓거나 수리하고, 자수 놓는 기법을 알려 주면 각자 하고 싶은 걸 해요. 전통 의복은 만드는 과정이 복잡해요. 바느질을 잘못하면 뜯어야 하고, 전통을 지켜야 하기에 위계질서도 엄격하죠. 인기의 비결은 우리가 그 문턱을 낮췄기 때문일 거예요. 수업 2회 차면 옷 하나가 뚝딱 완성돼요.
비닐봉지를 바느질로 멋들어지게 만든 한군의 작품을 봤어요. ‘이게 현대미술이지’ 하고 감탄했어요.
한군 2024년 ‘치앙마이 크래프트’ 때 처음 선보인 작업이에요. 전통적인 섬유공예 문법을 배우기 위해 바느질을 시작한 게 아니었어요. 음악을 매개로 하고 싶은 말을 전달했다면, 바느질을 매개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고민했어요. 전통을 따르기보다 지속적으로 경계를 허물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었고요. 섬유가 아니더라도 바늘만 들어가면 모든 것을 수선했어요. 외장 하드에 옷을 만들어 입히기도 했죠. 더 이상 시도할 게 없다고 생각했을 때 복태가 “비닐봉지에 해 보는 건 어때?” 하고 제안했어요. 치앙마이에 머물 때였는데, 비닐봉지 소비량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비닐의 물성이 상징하는 것을 바느질로 엮다 보니 스토리가 더 풍부해졌어요.


메시지까지 완벽하네요.
한군 수리·수선을 통해 다시 쓰는 자원 순환, 쓰레기 배출을 줄이는 제로 웨이스트 등 손바느질이 지속 가능한 사회의 키워드로 회자되기도 하는데, 모두 부수적인 효과예요. 각자의 미감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자기를 발현하는 것, 그로 인해 사람들이 일상에서 조금 더 행복해지는 것이 중요해요. 이것이 치앙마이 바느질의 핵심이에요.
음악과 바느질은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해요.
한군 전선을 연결해 소리를 만드는 ‘모듈러 신스’라는 악기가 있어요. 바느질이 실과 바늘이 원단과 만나 형태와 질감, 색감을 만들어 낸다면, 모듈러 신스는 전선의 연결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고 소리의 조합에 따라 리듬이 바뀌어요. 그 지점에 이르자 ‘나는 지금 소리를 바느질해 리듬을 엮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개념으로 전자음악 앨범을 만들 생각이에요. 최근에는 구리 선으로 바느질을 하면서 전기가 통하는 원단을 찾고 있어요. 구리로 바느질한 원단을 악기와 연결하고 터치하면 저의 생체 전류가 바느질 원단을 거쳐 악기에서 소리와 리듬이 되어 나오는 거죠. 음악과 바느질의 경계가 없는 영역까지 도달하는 것이 목표예요.
두 사람의 삶을 보듬은 음악과 바느질 사이에 보완적인 관계가 있나요?
한군 음악은 나의 감각과 시간, 돈, 에너지 등 모든 것을 갈아 넣어 만들어요. 그런데 죽바클은 치앙마이 정신을 강조하잖아요. 쉬엄쉬엄, 천천히. 놀랍게도 선과영의 첫 번째 앨범 <밤과낮>은 치앙마이 정신으로 만들었어요. 완벽한 지점은 없다, 애초에 완벽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자, 미련이 남더라도 이것이 오늘의 최선이니 그냥 하자!
그렇게 만든 앨범이 2023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수상했잖아요.
복태 시상식 후보에 누가 올랐는지 봤는데, 우리 앨범이 최우수 포크 음반과 최우수 포크 노래 후보에 올라 있는 거예요. 올해의 음반상 후보를 발표했을 때는 뉴진스 옆에 있더라고요. 프로듀서 단편선도 “너희 왜 거기 있냐”고 농담할 정도였어요. 한군 힘을 줘도 안 되던 일이 힘을 빼니 이뤄지다니! 주야장천 부르짖던 치앙마이 정신이 세상에 적용된다는 걸 확인한 거죠. 선과영의 13년 음악 이야기와 치앙마이 정신이 만나 이뤄낸 결과예요.
세 아이의 부모이기도 해요.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게 있나요?
한군 어른이 돼도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걸 실천으로 보여 주고 싶어요.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아이들에게 시시콜콜 얘기해 주죠.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고, 무엇 때문에 웃었다고. 행복을 나누고 아픔을 위로하는 거예요.
결국 행복에 관한 얘기군요.
복태 행복한 삶이 최고는 아니지만, 오늘 하루는 기뻤으면 좋겠어요. 틀려도 괜찮고 느려도 괜찮다는 치앙마이 정신은 결국 나만의 기준으로 인생을 살자는 의미예요. 타인이 배제된 내가 아니라 우리의 개념이 더 강하고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복태 10월 8일부터 25일까지 전북 전주 갤러리 소안에서 전시를 해요. 한군이 만든 바늘집이랑 제가 카렌족의 직물로 만든 옷과 가방을 선보이는 자리예요. 전주에 오면 꼭 들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