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싸한 가을바람, 향기로운 국화 내음 따라 걸음을 뗀다. 가을빛이 짙게 물든 전남 함평의 자연에 몸을 내맡길 때다.
1. 호남가 따라 한 걸음
함평 천지길



판소리 연구가 신재효가 정리하고 명창 임방울이 가창한 단가 ‘호남가’는 전라도 50여 곳의 지명을 하나하나 불러 세우며 애향심을 자극한다. 이 노래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이름이 바로 함평이다. “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랴 허고/ 제주 어선 빌려 타고 해남으로 건네갈 제···” 다 함(咸)에 평평할 평(平) 자를 쓰는 함평을 경유해 모두가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을 전한 셈이다. 함평읍 수산봉 둘레길과 생태 습지, 화양근린공원, 함평엑스포공원을 에워싼 6킬로미터 길이의 함평 천지길은 ‘호남가’의 이상을 구현한 듯 너그러운 풍광을 자아낸다. 삼나무 숲으로 이어진 산책로 덱을 따라 걷거나, 황톳길 ‘맨발로’를 거닐며 흙의 온기를 느끼는 동안 어수선한 마음은 고요해지고 맑은 기운이 온몸에 차오른다. 발바닥이 기분 좋을 만큼 데워졌다면 함평엑스포공원으로 들어설 차례다. 봄에는 ‘함평나비대축제’, 가을엔 ‘대한민국 국향대전’이 열리는 공원에는 지역 예술의 구심점인 함평군립미술관, 함평 읍내의 옛 풍경을 재현한 추억전시관 등 볼거리가 여럿인데 그중에서도 나비곤충생태관과 황금박쥐특별전시관이 가장 많은 발길이 모이는 곳이다. 함평의 자연을 상징하는 산호랑나비 세밀화, 순금 황금박쥐 조형물을 감상하며 이 고장과 한 발짝 더 가까워진다.
주소 전남 함평군 함평읍 일원
문의 061-320-2230(함평엑스포공원)
이렇게 여행하세요
대한민국 국향대전

여린 봄꽃과 매혹적인 여름꽃의 시절을 지나 청순한 가을꽃을 만나러 갈 때다. 10월에 만개해 절정을 이루는 국화는 예부터 선비의 기상과 절개를 뜻하는 사군자 중 하나로, 고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꽃이라 여겨졌다. 함평에서는 2004년부터 국화를 주인공으로 한 대한민국 국향대전을 열어 가을날의 정취를 더하는데, 지난 1월에는 제13회 대한민국 축제콘텐츠대상에서 축제관광·생태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올해 행사는 ‘마법의 국향랜드’라는 몽환적인 주제로 한층 풍성한 콘텐츠를 선보인다. 신비로운 동화 속 장면처럼 만발한 국화로 꾸민 회전목마, 마법의 성, 대관람차가 여행자들을 기다린다.
기간 10월 24일~11월 9일
장소 전남 함평엑스포공원 일원
문의 061-320-2238
함평 마스코트 친구들

생물 다양성을 간직한 땅, 함평의 청정한 자연환경을 대표하는 두 친구를 소개한다. 함평 관광 마스코트 ‘황박이’는 세계적 멸종 위기종 황금박쥐로, 활짝 편 날개와 동그란 눈이 사랑스럽다. 두 뺨이 발그레하게 물든 나비 ‘뽐비’는 에듀테인먼트파크인 ‘나빛파크’를 상징하는 캐릭터다. 함평엑스포공원 팝업 스토어에서 황박이와 뽐비를 활용한 디자인 상품을 만날 수 있다.
함평겨울빛축제

대한민국 국향대전이 끝난 뒤에도 축제의 환상적인 장면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 축제장을 장식한 대형 조형물과 함평엑스포공원의 야간 경관 조명을 활용해 겨울밤을 수놓을 함평겨울빛축제가 11월 말부터 막을 올린다. 밤공기에 묻어나는 그윽한 국화 향기와 영롱하게 빛나는 색색의 조명이 공감각적 감흥을 끌어내는데, 이이남 작가의 미디어 아트 전시가 축제장의 예술적 구심점을 이루며 축제의 위상을 한껏 드높인다. 함평 지역 농특산물과 맛깔스러운 먹거리를 판매하는 부스, 크리스마스트리 만들기와 산타복 입기 등 체험 존 코너, 겨울날의 시린 공기를 뭉근하게 데워 줄 낭만적인 버스킹 공연이 멋과 흥을 더한다.
기간 11월 28일~2026년 1월 11일
장소 전남 함평엑스포공원 일원
문의 061-320-2238
함평자동차극장

하루가 다르게 밤이 길어지는 즈음, 함평자동차극장에서 깊어 가는 계절의 정취를 만끽한다. 황금박쥐관과 나비관, 두 상영관에서 일몰 이후 하루 두 차례 최신 개봉 영화를 상영한다. 자동차 170여 대를 수용할 수 있는 극장 한편에는 무궤도 열차형 관람실, 가족영화관 등 별도의 공간을 마련했다. 덕분에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이곳에서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주소 전남 함평군 함평읍 함장로 1162
문의 061-320-2225
2. 명절맞이 전통 체험
매동포레스트 & 주포한옥마을


시절인연만큼 의연하고 아름다운 것이 시절음식이다. 명절이나 절기에 맞춰 제철 농작물로 만드는 음식을 이르는 시절음식은 우주의 운행과 땅의 질서를 되새기게 한다. 대동면 매동길 언덕바지에 자리한 작은 미식 공간, 매동포레스트의 윤경 대표는 광주광역시 무형유산 이애섭 남도의례음식장에게 전통 음식을 사사해 시절음식의 즐거움을 많은 이와 나누고 있다. 한가위가 든 10월, 윤 대표는 송편과 바람떡 빚기를 권한다. “볶은 깨에 설탕, 소금, 꿀을 섞어 만든 달콤한 소를 넣어 송편을 빚을 거예요. 자, 반죽을 복주머니라 생각하고 소를 한가득 채우세요.” 치자, 강황, 아로니아 등 자연에서 온 알록달록한 색이 반죽에 고스란히 들어 있어 빚어 놓은 송편이 마치 꽃 같다. 다 익힌 반죽을 틀에 찍어 내는 바람떡 절편 공예 체험도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데, 함평을 상징하는 나비 모양 떡이 당장이라도 포르르 날아오를 듯하다. 이제 정성껏 만든 떡을 손에 들고 바다로 떠날 차례. 주포항의 넉넉한 바다를 마주하는 주포한옥마을은 30여 동의 전통 한옥 스테이가 들어선 숙박 지구로 핑크뮬리와 억새가 한창인 가을에 가장 눈부신 풍광을 자랑한다. 까만 밤, 대청에 몸을 누인 채 은은한 파도 소리와 풀벌레 울음에 귀 기울일 시간이다.
주소 전남 함평군 대동면 매동길 204-9(매동포레스트), 함평읍 주포한옥길 3(주포한옥마을)
문의 061-323-2326(매동포레스트)
3. 숲이 에워싼 휴식처
함평천지 몽베르 & 시목




금목서와 은목서가 피어나 암향을 뿜어내는 계절이다. 학교면 죽정리의 정원 카페 함평천지 몽베르에 가면 대숲에 고인 가을꽃의 그윽한 향기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300여 년간 가문의 집터로 보존해 온 땅에 손수 나무를 심고 꽃과 풀을 길러 함평의 첫 민간정원으로 가꾼 지용구 대표는 이곳이 전남 담양 소쇄원처럼 수백 년 영속할 정원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수형이 유려한 수백 살 소나무와 악귀를 쫓는 영험한 팽나무, 선비 정신을 구현한 매화나무와 참나무를 감상하는 동안 정원주의 고매한 뜻과 바지런한 손길이 느껴져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손불면 산남리의 폐교를 개조한 문화 공간이자 카페인 시목도 남다른 아름다움이 깃든 장소다. 천연 염색 공예가로 변신한 가수이자 디자이너 은희는 20여 년 전 함평군의 초청으로 이곳에 정착해 교사 두 동을 잇는 이국적인 건물을 짓고, 다채로운 문화 활동을 펼쳐 왔다. 이제는 2대 김키미와 이준협 대표가 시목을 자신들의 색깔로 물들여 가는 중이다. 대지의 색깔과 질감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벽체, 오래된 목재와 천 자락 같은 자연의 재료로 장식한 인테리어는 명상적 분위기를 완성한다. 감미로운 차와 커피, 디저트가 세월의 흔적이 어른거리는 공간을 더 깊이 음미하도록 이끈다.
주소 전남 함평군 학교면 둔기길 59-26(함평천지 몽베르), 전남 함평군 손불면 남교길 11(시목)
문의 061-322-6223(함평천지 몽베르), 0507-1464-1635(시목)
4. 무르익는 계절, 저무는 바다
서해랑길35코스 함평 구간


함평군 북서쪽 해안은 전남 무안군과 영광군에 둘러싸여 좁고 긴 만을 이룬다. 이름하여 함평만. 서해랑길35코스는 추상회화 같은 연흔이 새겨진 함평만 갯벌을 끼고서 느린 파도처럼 걸어 나가는 길이다. 함평읍 석성리에서 출발해 이웃 지역인 전남 영광 향화도까지 다다르는 눈부신 여정. 마침 염생식물인 칠면초가 붉은빛에서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계절이므로 해 저무는 시간에 맞추어 가면 바다와 하늘이 동시에 불타는 듯한 장관을 마주할 수 있다. 시작점은 돌머리해수욕장. 바다 방향으로 이어진 채도 높은 무지개다리가 걷는 이의 마음을 독려한다. 억새가 아름다운 주포항을 지나면 함평해수찜마을에 이르는데, 장작불로 달군 유황석을 해수에 담가 증기를 유발하는 전통 방식으로 유명하다. 200여 년간 성업해 온 터줏대감 ‘함평주포해수약찜’에서 몸과 마음을 뭉근하게 눅인 뒤엔 안악해변으로 간다. 낙지 중 낙지라 손꼽히는 손불 뻘낙지가 이 주변에서 잡히니 인근 식당에서 그 탱탱하고 쫄깃쫄깃한 맛을 즐겨 보아야 한다. 해가 다 기울 무렵 함평항으로 이동해 낙조를 마주한다. 하늘과 땅, 갯벌과 물길이 달군 숯불처럼 붉어지는 순간이다. 멀리 어른거리는 칠산대교의 실루엣은 장엄한 해넘이의 풍광을 더욱 선명히 각인시킨다.
주소 전남 함평군 함평읍, 손불면 일원
문의 www.durunubi.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