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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블랙의 미학 <BLACK & BLACK>

2025년 09월 25일

  • 제작 지원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프랑스의 시인이자 서예가 프랑수아 청이 말했듯, 블랙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생명과 빛을 머금은 여백의 공간이다. 전은 동서양이 검정이라는 공통 언어로 예술적 교감을 이루어 낸다.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 ‘무제’, 1990, 105×75cm, 종이에 석판화, 리움 소장

동서양 블랙의 미학적 차이와 조응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4주년을 기념하는 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동아시아 수묵 남종화와 1950년대 서구 블랙 회화를 현대미술의 시각에서 교차 조망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동양 수묵에서 먹빛은 무수한 농담을 통해 기(氣)의 흐름과 생명력을 드러내고, 여백은 결핍이 아니라 형상이 호흡하는 자리로 기능한다. 이러한 사상은 서구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의 제스처적 블랙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동양의 수묵화가 전통적으로 여백과 비움을 통해 미를 탐구하는 반면, 서구의 현대미술은 블랙의 물질성과 평면성을 활용해 새로운 추상적 언어를 개척했다. 같은 블랙을 사용하지만 문화적·철학적 배경의 차이 속에서 서로 다른 예술적 함의가 드러난다. 결국 블랙은 동서양 모두에서 부재가 아닌 생성의 원천이며, 비움과 충만, 빛과 어둠의 상보성, 생명과 우주의 질서를 담는 매개로 기능한다.

자오우키(Ze0Wouk), ‘1966년 2월 26일’, 1966, 캔버스에 유화물감, 130×162cm, 프랑스 국립현대미술센터 소장, FNAC 28957, Centre National des Arts Plastiques Collection

세계적 거장과 남도 화맥의 만남
전시는 조선 시대 공재 윤두서에서 시작해 남도 수묵의 전통을 잇는 소치 허련, 의재 허백련, 남농 허건을 거쳐 세계 현대미술사의 거장들과 연결된다. 특히 서구 블랙 회화의 중심에 있는 피에르 술라주와 앵포르멜의 대가 한스 아르퉁, 그리고 추상표현주의의 장 드고텍스와 로버트 마더웰, 중국 출신의 자오우키 등을 소개한다. 동시에 한국 현대미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이끈 이우환, 이응노, 이강소의 작업을 비중 있게 전시한다. 이들은 동양의 서체적 전통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독창적 조형 언어를 구축해 블랙을 통해 세계 미술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아울러 동양 서체의 영향을 받은 김호득, 황인기 외에 남도의 수묵 정신을 계승한 최종섭, 송필용, 박종갑, 정광희, 설박, 박정선 등 한국 현대 수묵의 대표 작가들이 함께 참여한다. 전시는 이처럼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회화와 서예적 정신이 교차하는 장을 열며, 블랙의 다층적 의미를 한자리에서 경험하게 한다. 〈BLACK & BLACK〉은 단순한 색채 전시가 아니라, 검정이라는 공통 언어가 어떻게 시대와 공간을 넘어 예술적 교감을 이루어 내는지를 증명하는 장이 될 것이다.

<BLACK & BLACK>전
기간 12월 14일까지
장소 전남 광양 전남도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