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MADE IN CHEONGDO

2025년 07월 24일

  • WRITER 류현경(여행 칼럼리스트)
  • photographer 전재호
  • 제작 지원 청도군청

청도를 만드는 공간과 사람, 일곱 가지 이야기

청도의 레트로

2023년 재개관한 유천극장.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된 신거역.

유천문화마을·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

과거와 현재가 만나다
시간을 깊이 머금은 공간은 언제나 여행자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오래된 거리, 낡은 건물 곳곳에 저마다의 시대가 쌓여 있어 천천히 걷다 보면 그곳을 거쳐 간 삶의 흔적이 함께 밟힌다. 단순히 지역의 옛 모습을 재현한 테마 공원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가 보존된 레트로 여행지의 매력이란 그런 것일 터. ‘청도의 레트로’를 논할 때 유천문화마을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때 물류와 교통 중심지로 번영을 누린 이 마을은 과거의 영광을 매끈하게 복원해 관광 상품처럼 전시하지 않는다. 지금도 대부분의 건물에 사람이 거주하고, 수십 년 된 상점이 여전히 손님을 맞는다. 특히 영신정미소나 유천극장처럼 반세기를 이어 온 가게들은 하나하나 멋스러운 빈티지 공간이기도 하지만, 지역민의 삶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문화유산으로도 가치가 크다. 유천문화마을이 청도의 근대와 현대를 오가는 통로라면, 신도마을이 간직한 유산은 이 지역을 가꾸고 키워 낸 공동체 정신이다. 물론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로서 자긍심도 높지만, 그 효시가 된 지역 보수 작업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한 주민들의 자발적 행동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현재 신도마을에는 이를 기념하는 거대한 공원이 조성돼 있다. 작은 전시관으로 꾸민 신거역과 신도정미소를 중심으로 교복사, 이발소, 목욕탕 등 옛 가게가 복고 감성을 짙게 뿜어 낸다. 새마을운동 관련 자료를 총망라한 기념관과 각종 체험 학습장, 재현 공간 등이 어우러진 새마을테마파크도 함께 둘러보기 좋다.
주소 유천문화마을 경북 청도군 청도읍 유천길 83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 경북 청도군 청도읍 새마을1길 34

청도의 지속 가능성

다양한 제품군이 정갈하게 진열된 가게 내부. 친환경 생활용품 외에도 천연 소재를 활용한 수공예품과 공정 무역 제품, 대표가 직접 만든 소품 등을 선보인다.
빈 용기를 가져오거나 재활용 용기를 대여해 각종 세제류를 원하는 양만큼 구매할 수 있다.

홍시생활

나와 지구를 위한 한 걸음
모든 친환경 실천의 시작점이 꼭 ‘건강한 지구’일 필요는 없다. 때론 ‘건강한 나’를 위해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지속 가능한 지구 생활을 만들어 주기도 하니까. 실제로 ‘사람을 살리는 친환경’은 청도 유일의 제로 웨이스트 숍을 운영하는 김은성 대표의 철학이기도 하다. 일찍이 천연 소재와 자연 친화적 제품에 관심이 많던 그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편집숍 형태로 한데 모아 두고 싶다’는 마음으로 2023년 홍시생활을 시작했다. 고객이 빈 용기를 가져오면 각종 세제와 구연산, 베이킹 소다, 과탄산 소다 등을 필요한 용량만큼 소분해 구매할 수 있는 곳이다. 비누와 샴푸 바, 수세미, 치약, 칫솔 같은 생활용품은 물론 라탄 가방, 키링, 접시, 연필 등 문구류와 소품, 액세서리도 취급한다. 제품을 선정하는 기준은 천연 소재와 수공예품 그리고 공정 무역이다. “저개발 국가 여성들이 천연 소재를 가지고 전통 방식으로 만든 수공예품을 공정 무역 형태로 들여오는 거죠. 사람도 살리고 지구에 해도 없고요.” 김 대표의 철학은 대한민국환경대상 자원순환 부문에서 6년 연속 대상을 받을 정도로 환경에 진심인 청도라는 지역사회와 만나 시너지를 냈다. 다양한 체험 클래스와 더불어 환경 모임 ‘다시, 초록’을 운영하며 플로깅 행사, 퍼머컬처 교육 등 폭넓은 지역 기반 프로그램도 선보인다. 무엇보다 건강한 삶의 가치를 믿는 그는 8년 전 새로운 터전으로 삼은 청도에서 자연을 소진하지 않고 남겨 두자는 ‘까치밥 홍시’의 의미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주소 경북 청도군 화양읍 도주관로 152

청도의 와인

터널 안이 사계절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덕분에 여름엔 피서지로, 겨울엔 피한지로 제격이다.

와인터널

감와인이 익어 가는 시간
청도에 반나절만 머물러도 아주 선명하게 각인되는 존재가 있다. 크고 작은 농가는 물론 읍내 도로변이든 주택가 골목길이든 어디서나 고개만 돌리면 눈에 들어오는 감나무다. 실제로 청도의 대표 특산물이자 전국 감 생산량의 약 20퍼센트를 차지하는 청도반시는 다른 어떤 지역에서는 만나 볼 수 없는 ‘씨 없는 감’이다. 씨가 없어 육질이 유연하고 당도가 높으며 과즙이 풍부한 것이 강점인데, 청도반시로 감와인을 빚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옛 경부선 철도 구간에 들어선 와인터널은 감와인을 저장 및 숙성하는 창고이자 직접 시음하고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다. 청도군과 청도감와인 주식회사는 방치된 폐철길 터널을 정비해 2006년에 운영을 시작했는데, 현재는 전체 1킬로미터 중 400미터 구간을 네 가지 테마로 꾸며 방문객을 맞고 있다. 연중 15도 내외의 온도와 60~70퍼센트의 습도를 유지하는 터널 내부가 와인 숙성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한편, 여름에는 더위를, 겨울에는 추위를 피할 수 있어 이색 여행지로도 손꼽힌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감그린은 가장 대중적인 ‘레귤러’를 비롯해 ‘스페셜’ ‘아트와인’ ‘아이스와인’ 등 네 종류로, 제품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타닌이 풍부하며 단맛과 신맛이 깔끔하게 어우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과일 주스와 에이드 등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무알코올 음료는 물론 와인에 곁들이기 좋은 간단한 안주 메뉴도 선보인다.
주소 경북 청도군 화양읍 송금길 100

청도의 맛

감잎공방·코지테임

자연이 가꾼 건강한 식탁
청도의 대표 특산물인 감은 나무의 특성상 키울 때 비교적 손이 덜 간다. 다만 농약이나 비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자연 농법을 고수한다면 열매를 온전히 지켜 내기 어렵다. 퍼머컬처 농장인 ‘지구 한 모퉁이’가 지난 7월 브런치 카페를 오픈하며 감나무 열매가 아닌 잎에 주목한 이유다. 무농약 재배 감잎을 말리지 않고 갈아서 베이글과 스콘에 활용하는데, 감잎 특유의 은은한 향이 맷돌에 제분한 통밀의 고소한 맛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무엇보다 ‘땅과 식탁 사이의 정직한 연결’을 추구하는 감잎공방의 여정에는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연의 순환 방식을 받아들이는 퍼머컬처의 정신이 담겨 있다. 이번에 선보인 메뉴를 시작으로 감잎을 활용한 파스타, 솥밥 등의 요리도 꾸준히 개발할 계획이다. 감잎공방이 감나무를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먹거리를 제안한다면, 2022년에 창업한 코지테임은 좀 더 다양한 지역 식재료를 발굴해 각종 소스와 쿠킹 클래스로 선보였다. ‘더 많은 사람이 건강한 맛에 길들여지도록 돕고 싶다’는 것이 강민구 대표의 바람이다. “건강한 음식은 맛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더라고요. 그런 분들도 직접 만들고 맛보면 인식이 바뀔 거란 믿음으로 쿠킹 클래스 ‘길들임 식탁’을 시작했죠. 원칙은 저염, 저당 그리고 지역의 제철 식재료입니다.” 현재 코지테임은 10월 재오픈을 목표로 공간을 옮겨 새로운 챕터를 준비 중이다. 쌈장, 고추장 등 발효 과정을 통해 감칠맛을 살린 기존의 저염·저당 제품 외에 감과 복숭아 같은 특산물을 활용한 소스를 추가로 내놓을 예정이다.
주소 감잎공방 경북 청도군 화양읍 북문길 1 코지테임 경북 청도군 화양읍 도주관로 200(10월 오픈 예정)

청도의 액티비티

곡선, 오르막, 360도 회전, 수평 구간 등 다양한 코스를 갖춘 짚롤러코스터.
화랑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청도신화랑풍류마을.
청도의 대표적인 테마파크 관광지로 꼽히는 청도레일바이크.
국내 최대 규모의 스카이트레일. 미니 집라인과 번지점프 등 스릴 만점 코스로 가득하다.

청도신화랑풍류마을·청도레일바이크

스릴과 힐링 사이
청도 동쪽을 감싸고 있는 운문산은 수려한 경관으로 이름 높지만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무려 1500년을 이어 온 불교문화의 보고이자 유서 깊은 화랑정신의 발상지인 것. 신라 진평왕 시절 두 화랑이 원광법사를 찾아가 세속오계의 가르침을 받은 장소가 청도 운문사 인근의 사찰이다. 2018년 운문산 자락에 문을 연 청도신화랑풍류마을은 세속오계의 화랑정신을 담은 복합 문화 공간이다. 산과 호수가 만나는 드넓은 초지 위로 다양한 레포츠 시설이 자리하는데, 단순한 액티비티를 넘어 화랑도와 풍류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수련 공간이라는 점이 더욱 인상 깊다. 화랑수련장을 찾아 가볍게 체력을 단련할 수도 있고, 국궁장에서 전통 활쏘기에 도전하거나 VR 체험 존에서 승마, 검술, 궁술을 게임 형식으로 즐길 수도 있다. 액티비티 마니아들이 손꼽는 화랑 체험의 백미는 화랑촌 너머에 자리한 스카이트레일과 짚롤러코스터. 각각 2023년과 2024년에 추가한 익스트림 시설인데, 특히 118개 코스로 이뤄진 4층 높이의 스카이트레일은 ‘보기보다 훨씬’ 짜릿하고 스릴 넘친다는 후기가 쏟아진다. 좀 더 여유롭게 풍경을 감상하고 물소리, 바람 소리도 들어 가며 액티비티를 즐기고 싶다면 유호리와 신도리의 옛 철길을 따라 조성한 청도레일바이크를 권한다. 2~4인승 바이크를 타고 산과 들을 가로지르는 왕복 5킬로미터의 라이딩 코스는 혼자보다 여럿일 때 더 잊지 못할 여정을 만들어 준다.
주소 청도신화랑풍류마을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화랑길 1 청도레일바이크 경북 청도군 청도읍 하지길 46-51

청도의 마을 커뮤니티

지역민의 삶이 담긴 벽화를 구경하며 타박타박 산책하기 좋은 다로리 마을.
다로리 마을 공동체의 거점인 카페 다로리. 1층은 로컬 카페로, 2층은 커뮤니티 공간으로 운영한다.

카페 다로리

변화의 시작은 공동체로부터
오늘날 숱한 농촌 지역의 공통적 난제는 소멸 위기일 것이다. 인구 감소와 인프라 부족 현상은 늘 견고하게 맞물려 있고, 어떤 해법이든 지역 안쪽까지 고르게 영향을 미치기란 쉽지 않다. 인구가 적을수록, 중심부에서 멀어질수록 촘촘한 마을 커뮤니티가 필요한 이유다. 청도 화양읍에 자리한 다로리 마을과 카페 다로리는 그런 의미에서 유독 눈에 띈다. 11년 전 대학 선후배 가족들과 함께 다로리에 정착한 서삼열 대표는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며 점차 마을 안팎의 여러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비어 있던 옛 보건진료소 건물을 리모델링해 2022년 카페 다로리를 오픈하고, 이를 거점으로 사회적 기업을 꾸려 마을 공동체 중심의 다양한 사업을 이어 나갔다. 카페 다로리의 비전은 크게 두 가지다. 지속적인 마을 단위의 공모 사업을 통해 균형 잡힌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것, 그리고 학령기 인구 유입을 유도해 학교를 지속시키고 마을의 쇠락을 막는 것. 카페 2층 커뮤니티 공간에서 시작해 군 단위 프로젝트로 확장된 방과 후 돌봄 프로그램이 대표적 결과물이다. 올해부터는 빈집 10채를 모아 ‘다로리 마을 호텔’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8채는 장·단기 스테이 및 게스트하우스로, 2채는 영화관과 서점으로 구성했는데, ‘경험의 가치를 누리는 곳’이란 콘셉트에 걸맞게 주민들과 함께하는 마을 경험 클래스도 준비 중이다. “다로리는 모든 세대가 거주하는 마을이거든요. 각 세대별로 필요한 교육과 돌봄이 전부 마을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주소 경북 청도군 화양읍 다로길 58

청도의 보물

연꽃이 하나둘 피어나는 유등연지의 아침. 사방에 그윽한 향이 감돈다.
청도의 과거와 현재를 만날 수 있는 청도읍성. 고즈넉한 정취 덕분에 사진 명소로도 손꼽힌다.
자연과 한몸처럼 어우러진 운문사. 특히 입구부터 시작되는 솔바람길은 솔숲의 청량함을 만끽할 수 있는 산책 코스다.

청도읍성·운문사·유등연지

산책을 부르는 풍경
청도 구석구석을 돌며 활기찬 로컬 문화를 체험했다면, 이제는 자연과 역사가 빚어 낸 풍경을 따라가며 느긋한 산책을 즐길 차례다. 첫 번째 목적지는 시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삶의 자취를 감상할 수 있는 청도읍성. 성곽을 기준으로 안쪽에 주민 생활 공간과 도주관, 동헌 등 행정 시설이 있고, 성 밖에는 향교, 석빙고, 형옥 등이 자리한다. 성곽은 고려 시대부터 축성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물오른 꽃과 수목이 오래된 돌담길과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정취를 자아낸다. 운문산 북쪽 기슭에 터를 잡은 천년 고찰 운문사도 산책 애호가의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다. 솔바람길의 아름드리 노송 군락과 맞닿아 있는 고즈넉한 사찰 풍경이 사계절 다른 빛깔로 여행자의 오감을 사로잡는다. 신라 시대 화랑정신의 발원지이자 <삼국유사>의 출발지인 만큼 역사적 깊이도 남다른 데다 최근 운문사가 소장한 목판 4건이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되었다. 만약 여름철에 청도를 찾는다면 포기하기 힘든 또 하나의 산책 코스는 유등연지다. 연으로 뒤덮인 약 6만 8000제곱미터 규모의 저수지로, 조선 시대에 무오사화를 피해 은거 중이던 모헌 이육이 연을 심고 군자정을 세워 지금의 모습을 이루었다고 한다. 6월 중순부터 연꽃이 피기 시작해 7~8월경 절경을 이루는데, 특히 이른 아침에 가면 가장 싱그러운 연꽃의 향연을 마주할 수 있다. 둘레길을 천천히 거닐다 정자에 누워 만끽하는 선선한 바람과 그윽한 연꽃 향은 여름 산책의 고단함을 씻어 내기에도 충분하다.
주소 청도읍성 경북 청도군 화양읍 동상리 48-1 운문사 경북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길 264 유등연지 경북 청도군 화양읍 연지로 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