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한라산둘레길은 머무르기만 해도 신선놀음하는 기분이 든다.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야생화, 오름, 희귀 조류 등 발견의 기쁨을 누릴 때다.


숲길 탐방객들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인 한라산둘레길은 해발 600~800미터의 한라산을 둘러싼 숲길이다. 1구간 천아숲길부터 9구간 숫모르편백숲길까지 총 9개 구간으로 약 80킬로미터에 달한다. 이 중 하이라이트는 가장 긴 코스의 5구간 수악길. 돈내코탐방로에서 이승악 입구까지 이어지는 구간으로 울창한 활엽수림과 시원한 계곡을 품은 고요한 숲길이다.
수악길 초입에 들어서면 푸른 이끼로 뒤덮인 현무암과 나무가 이루는 독특한 절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물오름, 보리오름, 이승이오름 등 다종다양한 오름과 한라산의 활발했던 화산활동을 엿볼 수 있는 산정화구호는 신비를 더한다. 멸종 위기 야생 조류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팔색조는 매년 6~8월에 번식을 위해 수악계곡 주변으로 날아들어 8월은 희귀 새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수악길은 역사·문화적으로도 의미 있는 장소다. 일제강점기의 잔재인 지하갱도진지와 제주인의 생활 문화상을 보여 주는 숯가마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생생한 역사를 대변한다. 길이 끝나는 지점엔 부지런히 걸은 자의 허기를 채울 든든한 밥상이 기다린다. 향긋하고 쌉싸름한 향이 나는 제주산 햇고사리와 이를 활용한 향토 음식인 제주 고사리 육개장은 제주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다. 이 외에도 7구간 사려니숲길, 8구간 절물조릿대길 등 8월에 걷는 한라산둘레길은 평상시에 보기 어려운 오름과 생명체를 만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좀비비추(Hosta minor)
한국 중부 이남에 분포하며, 산지의 숲속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뿌리 주변에서 넓은 난형의 잎이 모여 나는 것이 특징으로, 7~8월 무렵 연한 자주색 또는 드물게 흰색 꽃이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