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을 만드는 공간과 사람, 일곱 가지 이야기
양양의 해변


세련된 펍과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인구해변
이국적인 바닷가의 낮과 밤
일찍이 동해안의 여름휴가지로 자리 잡은 만큼 양양에는 이름 높은 해변이 제법 많다. 천년 고찰 낙산사가 자리한 낙산해변과 일출 명소로 유명한 하조대가 전통의 강호라면, 비교적 남쪽에 위치한 죽도해변과 인구해변은 서핑 문화와 함께 떠오른 신흥 강자다. 그중 인구해변은 양양이 서퍼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201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주목받았다. 수심이 얕고 파도가 센 편이라 서핑을 즐기기 적합한 데다, 아담한 백사장 곳곳의 야자수와 조명, 선베드 등이 이국적 풍경을 연출한다. 해변 끝자락을 따라서 일명 ‘양리단길’이라 불리는 거리가 죽도해변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골목마다 들어선 남국풍의 레스토랑이며 카페, 펍, 서핑 숍과 게스트하우스가 이색적인 정취를 자아내는데, 낙후되었던 거리와 건물들이 재생 사업을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거듭난 것이다. 코로나19 시기 이후 방문객이 크게 늘어 오버투어리즘 관련 문제가 불거지긴 했지만, 인구해변과 양리단길이 오늘날 양양의 인기를 견인하는 대표 명소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들어 안팎으로 자성의 목소리도 높고, 비치코밍 같은 환경 정화 캠페인도 활발하다. 실제로 극성수기를 피해 해변을 찾으면, 여유롭게 바다를 만끽하며 시간을 보내는 가족 단위 여행객이 눈에 많이 띈다. 서핑 강습이나 해수욕 후 바로 옆 인구항에서 낚싯배에 오르거나 양양 제6경인 죽도정을 끼고 둘레길 산책을 즐기는 것도 좋다.
주소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인구항길 12
양양의 독립 서점


라 마르 아트앤북스
책과 문화로 사람을 모으는
속초와 맞닿은 양양 최북단, 물치항을 끼고 있는 호젓한 바닷가 마을에 작지만 감도 높은 문화 공간이 숨어 있다. 스페인어로 바다를 다정하게 부르는 ‘라 마르(la mar)’란 이름처럼, 구석구석 바다색의 청량함을 담아낸 이곳은 심예슬 대표가 양양의 새로운 지역 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문을 연 독립 서점이다. ‘좀 더 다양한 연령대의 현지인들이 삶 속에서 문화 예술을 누리면 좋겠다’는 것이 올해로 양양살이 6년 차에 접어든 그의 바람. 단순히 책과 소품을 파는 서점 겸 아트 숍이 아니라 ‘문화로 사람을 모으는’ 커뮤니티 공간을 지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표의 취향에 따라 여러 장르의 책을 계절별로 큐레이션해 선보이는데, 주제보다는 표지에 대한 개인적 감상을 기준으로 도서를 분류하고 진열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뜨개 가방, 엽서, 작은 도예품과 액세서리 등 판매하는 소품 역시 자신이 직접 만들거나 지역 작가들이 제작한 핸드메이드 제품만을 고집한다. 라 마르 아트앤북스가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는 ‘연결’과 ‘즐거움’. 특히 지역의 독거 청년들이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살지 고민하는데, 책을 매개로 한 소개팅인 ‘북개팅’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최근에는 강원문화재단의 디딤돌 문화예술학교 사업에 선정되어 초등학생 대상의 수업도 기획하고 있다. 지역민의 삶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양양이 여행자들에게 다정한 문화 예술 도시로 기억되도록 하기 위해 라 마르 아트앤북스는 이제 막 북쪽 끝자락에 책이라는 작은 씨앗을 심었다.
주소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물치1길 14
interview

심예슬 라 마르 아트앤북스 대표
실크스크린 공방으로 시작한 ‘라 마르’가 올해 독립 서점으로 다시 태어난 계기가 있나요? 공방을 운영하던 2023년에 글쓰기 모임인 헤밍웨이 클럽을 만들었어요. 돈이 목적이라기보다 함께 글을 쓰고 공유할 사람들이 모이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단발성으로 끝날 줄 알았던 모임이 계속 유지되면서 아카이빙한 글로 책도 엮고, 전시도 했어요. 그때 생각했죠. ‘공간을 옮겨서 서점 겸 공방을 열면 어떨까?’ 다독가는 아니지만 책을 좋아하는 데다 올해 목표가 독립 출판이기도 했고요. 특히 지역민을 위한 콘텐츠와 프로젝트 기획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양양에 살며 어느 순간부터 ‘현지인이 쉴 수 있는 공간은 대체 어디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내가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죠. 일단 현지인이 살기 좋은 곳이어야 외부인도 자연스레 유입된다고 믿거든요. 가장 우선적인 목표는 ‘현지인이 살기 좋은 양양’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끊임없이 ‘연결’을 외치는 거고요. 앞으로 라 마르 아트앤북스는 어떤 여정을 이어 갈까요? 장기적으로는 라 마르 아트앤북스가 위치한 이 골목을 문화 예술의 거리로 만드는 게 목표예요. 양양에 해변이 정말 많은데 물치해변만 유독 개성이 없는 것 같거든요. 물치리를 ‘책 있는 해변’으로 브랜딩해 보고 싶어요.
양양의 업사이클링


양양새활용센터
버려진 것들의 새로운 가치
모든 성장에는 명암이 존재하듯 방문객이 급증한 땅에는 자연히 쓰레기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먹고 마시는 것, 사고 쓰는 것, 우리의 즐거운 여행은 언제나 아름다운 추억과 더불어 쓰레기를 남긴다. 지난 몇 년간 양양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환경에 관심을 갖고 비치코밍과 업사이클링 등 각종 활동에 앞장서 온 이유다. 2023년에 문을 연 양양새활용센터는 매일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쓰레기 중에서도 유리 공병, 특히 국내에서 재활용하기 힘든 수입 맥주와 와인, 양주 공병에 집중한다. 업사이클링을 통해 버려진 수입 주류 공병에 새로운 가치를 입히는 한편, 이를 체험 프로그램으로 개발해 환경 교육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체험 소재인 허브 보틀과 풍경 만들기는 물론 조명, 접시, 모빌, 명함꽂이, 향초꽂이, 반지와 귀걸이 등 판매하는 업사이클링 제품도 다양하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지역에서 발생한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주도적으로 운영한다는 점, 병을 세척하거나 체험에 필요한 작업은 자활 센터와 연계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앞으로는 환경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내부적인 자격 요건을 갖추고, 파쇄한 유리가 태초의 모래로 돌아가도록 건축자재 등에 대량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할 예정이다. ‘양양이 핫한 도시보다는 친환경 도시로 유명해지기를 꿈꾼다’는 사람들, 그 작은 걸음걸음이 버려진 것들에 닿아 재활용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주소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인구항길 5-12
양양의 맛


메밀라운지
이 땅의 자연을 담다
피자집과 수제 버거집 간판으로 넘실대는 인구해변 뒤편에 고즈넉한 강원도의 정취가 깃들어 있다. 계절 따라 꽃과 허브, 메밀이 자라는 드넓은 초지와 그 한가운데에 소박하게 둥지를 튼 삼각 지붕의 건물. 해안가의 휘황한 분위기를 등지고 돌연 풍경화처럼 시선을 사로잡는 이곳은 브런치 카페, 메밀라운지다. 5년 전 서핑을 즐기러 왔다가 그대로 이곳에 정착한 정선아 대표는 양양을 비롯한 강원도 고유의 자연에 깊은 매력을 느꼈다. 이때 주목한 것이 산간 지방의 강인한 생명력이 담긴 메밀이다. 그는 평창에서 수확한 메밀을 양양의 방앗간에서 빻은 뒤, 서울의 유명 이탈리아 레스토랑 출신인 손동현 셰프와 함께 개발한 각종 메뉴에 활용한다. 시그너처 커피 3종인 메밀 크림 라테, 메밀 콘파냐, 메밀 비체린은 모두 빻은 지 4일이 안 된 메밀가루로 크림을 만들어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강원도산 알감자와 메밀가루로 쫀득한 식감을 살린 뒤 텃밭에서 직접 키운 바질의 향긋함을 더한 메밀라운지 뇨키를 곁들이면 든든한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현재 정 대표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지역과의 상생.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메뉴 개발에 꾸준히 공을 들이는 것도, 주변 상인들과 함께 인구리 상인회를 조직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 온 것도 모두 ‘가게 하나만 잘되는 건 의미가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가 꿈꾸는 건강한 지역 음식과 문화, ‘혼자보다는 함께’의 가치가 여행자들의 오감을 더욱 풍성하게 채워 준다.
주소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인구중앙길 46-38
양양의 커뮤니티


양양청년협동조합
지역 문제를 우리 손으로
척박한 주거 기반과 육아 환경, 생활 인프라 및 일자리 부족은 오늘날 소멸 위기 지역이 겪는 공통적인 문제다. 많은 도시 청년들이 아름다운 꿈을 찾아 귀촌했다가 끝내 도시로 돌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서울에서 광고 마케팅 일을 하다 2015년 고향인 양양으로 회귀한 양양청년협동조합 김석기 이사장 역시 비슷한 문제에 맞닥뜨렸다. 단, 그가 내린 결론은 ‘우리 지역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하자’는 것. 그는 목수와 콘텐츠 크리에이터, 일러스트레이터, 요리사 등 비슷한 시기에 양양에 정착한 청년 5명과 함께 협동조합을 결성했고, 각자의 전문 역량을 모아 지역의 다양한 문제에 직접 뛰어들기 시작했다. 정부 정책 사업에 참여해 지역 청년들에게 필요한 일자리 형태를 제안하고, 바닷가에서 폐서프보드를 수거해 가구와 기념품, 인테리어 소품, 벤치 등을 제작하는 ‘서프사이클링’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한편 브랜딩과 디자인 사업을 통한 지역 브랜드의 발굴 및 개발 역시 양양청년협동조합의 중요한 과제다. 지역 청년들의 안정적인 정착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선 결국 지역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2년 전 양양의 음식 문화에서 중요한 향신료인 제피를 활용해 시즈닝 제품을 개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연대와 고유성을 담은 지역 브랜드의 힘, 그리고 그 가치를 믿는 청년들의 만남은 지금 양양을 조금씩 더 살기 좋은 땅으로 가꿔 가고 있다.
주소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관아길 4-26
interview

김석기 양양청년협동조합 이사장
양양청년협동조합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된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서프사이클링 프로젝트겠죠. 처음엔 봉사활동 개념으로 시작했는데,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기관과 단체, 기업의 지원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거든요. 업사이클링 상품을 만들다 보니 자연스레 제조 장비와 기술이 늘며 디자인 상품군이 넓어졌고, 서비스 분야로 확장하며 체험이나 교육, 컨설팅 프로그램도 진행하게 됐죠. 지역 브랜딩에 대한 고민도 깊어 보여요. 지역 브랜드의 정체성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다른 지역의 성공 사례를 따라 하기보다는 양양의 바이브를 브랜드로 풀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직접 느낀 양양의 바이브란? ‘레이지(lazy)함’이 아닐까요. 자기 삶에 집중하는 사람, 예술과 IT 등의 분야에서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 되는 게 양양의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현재 준비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세요. 지금껏 저희가 진행한 폐서프보드 업사이클링의 최종 목표는 서프보드 내부에 들어가는 스티로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거든요. 그 일환으로 최근 압축 강화 종이를 활용해 친환경 서프보드를 제작하기 시작했어요. 두 가지 시제품을 개발 중인데, 이걸 완성해 글로벌 시장에 선보이는 게 주요 계획 중 하나예요.
양양의 서핑 문화 공간


코게러지
서퍼에 의한, 서퍼를 위한
오늘날 양양을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이미 초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이 지역의 한여름 생활 인구가 주민 수의 28배를 웃도는 이유, 황량하던 옛 군사작전 지역을 2030세대의 여행 성지로 이끈 일등 공신, 바로 서핑이다. 양양의 주요 해변마다 무수한 서핑업체가 몰려 있는데 숍이나 강습소뿐 아니라 카페와 펍, 갤러리, 스테이 등을 결합한 복합 공간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그중 기사문해변의 이정표이자 랜드마크로 꼽히는 곳이 코게러지다. 거대한 차고지 콘셉트로 꾸민 건물 외관부터 빈티지 소품과 식물이 어우러진 카페, 클래식한 서핑용품과 의류를 엄선해 소개하는 편집숍까지, 곳곳에 파도를 타듯 자유로운 감성이 흘러넘친다. 양양 여행자들 사이에선 커피와 피자 맛집으로도 명성이 자자하지만, 무엇보다 서퍼들을 설레게 하는 건 전문성 높은 서핑 브랜드의 제품군. 특히 전설적인 서프보드 빌더 빙 코플랜드가 창립한 빙 서프보드(Bing Surfboards)의 다양한 아이템은 이곳이 얼마나 서핑에 진심인지 보여 준다. 코게러지의 또 다른 자랑은 2022년에 추가로 오픈한 호텔과 루프톱 수영장이다. 건물 2층에 두 가지 타입의 객실 11개가 자리하는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인테리어와 원목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가 눈길을 끈다. 서핑 후 루프톱 선베드에 누워 맥주 한잔과 함께 즐기는 여름 바닷가의 정취 역시 누적된 액티비티의 피로를 씻어 내기에 충분하다. 수영장은 투숙객 전용으로 여름·가을 시즌에만 운영한다.
주소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동해대로 1269-7
양양의 워케이션


웨이브웍스 양양
진정한 워라밸을 꿈꾼다면
고개만 들면 수려한 해변과 숲이 펼쳐진다. 거리엔 국적을 넘나드는 식당이며 카페가 즐비하고, 여행자가 모이는 동네마다 볼거리, 체험거리가 다양하다. 무엇보다 업무가 끝나면 언제든 뛰어들 수 있는 바다가 눈앞에 있다. ‘업무+휴가’가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떠오른 지난 몇 년 사이, 숱한 스타트업과 디지털 노매드가 양양을 주목한 이유다. 죽도해변에 위치한 웨이브웍스 양양은 양양군이 하나부터 열까지 워케이션을 위해 기획하고 설계한 곳이다. 2023년 여름부터 시범 운영을 시작했는데, 고요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기계적 소음을 최대한 덜어 내고 전면을 통유리로 마감해 동해 바다의 빛을 고스란히 담은 것이 특징이다. 잠깐 동안 휴식하기에 적당한 벤치와 ‘파도’ ‘버섯’ ‘기후 위기’ 등 지역성 강한 키워드로 추천 도서를 분류한 북 코너 역시 눈길을 끈다. 올해부터 위탁 운영을 맡은 전성진 대표는 ‘방문객들에게 이 지역의 건강한 문화를 알리고 싶다’고 강조한다. “일할 때는 확실히 일하고 놀 때는 확실히 놀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일과 쉼 사이의 밸런스를 맞추도록 돕는 역할이 중요하죠.” 현재 그가 요가와 명상, 매트 필라테스 등 웰니스 프로그램에 집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도 관련 워크숍을 추가하거나 지역 생산자, 공예가들과 함께 클래스를 기획하는 등 워라밸을 위한 로컬 체험 프로그램을 꾸준히 늘릴 계획이다. 일과 삶에 새로운 영감을 주는 다른 노매드와의 만남은 이 여정의 숨은 보너스다.
주소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인구중앙길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