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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시간의 바다, 삼척 I

2025년 02월 21일

  • EDITOR 김수진
  • pHOTOGRAPHER 안홍범
  • 제작 지원 삼척시청

초곡 용굴촛대바위를 보며 까마득한 과거를 상상하고, 이사부독도기념관에서 우리 땅의 생명력을 마주했다. 걸으며 만난 풍경은 모두 강원도 삼척의 시간이었다.

삼척을 걷다

삼척 바다를 품은 세 개의 길을 찾았다. 발길 닿는 곳마다 생경한 풍경이 펼쳐지고,
역사 속 이야기가 들려왔다.

바다를 껴안은 풍경,
덕봉산 해안생태탐방로

봄이 발밑까지 왔지만 삼척의 바람은 여전히 매섭다. 푸르다 못해 시린 바다는 기암괴석을 만나 산산이 부서지기를 반복한다. 총 4킬로미터에 이르는 백사장이 펼쳐진 맹방해수욕장과 고즈넉한 덕산해수욕장 중간의 둥그스름한 산이 목적지다. 1968년 무장 공비 침투 사건 이후 일반인 출입이 금지되었다 53년 만인 2021년에 개방한 덕봉산은 원래 섬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덕산도(德山島)’라 표기했는데, 지금은 덕산해변인 육계사주(육지로부터 돌출 성장해 가까운 섬과 연결된 사주)에 의해 육계도(陸繫島)가 됐다. 이름도 자연스럽게 덕산도에서 덕봉산으로 바뀌었다.
54미터의 나지막한 덕봉산 해안생태탐방로는 삼척 바다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이다. 나무 덱 아래로 일렁이는 파도를 보니 꼭 커다란 배를 탄 것 같다. 산 둘레를 따라 구불구불한 해안 길을 말없이 걷는다. 이럴 때 자연은 기꺼이 친구가 되어 준다.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걷는 시간이 편안하다. 정상을 향한 가파른 계단도 가뿐한 마음으로 오른다. 우거진 대나무 숲 끝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멀리 울릉도도 보인다. 전망대에서 내려올 땐 눈앞에 보이는 푸른 동해가 끝없이 펼쳐진 융단 같다. 외나무 다리 끝에는 강과 바다가 하나로 합쳐지는 미읍천이 반짝인다.


© 삼척시청

시간이 깎아 낸 조각품,
초곡 용굴촛대바위길

초곡 용굴촛대바위길은 나무 덱과 출렁다리로 이루어진 총 길이 660미터의 해안 길이다. 절벽에 선반처럼 매단 잔도를 지나야 하기에 다른 탐방로보다 손에 진땀을 쥐게 한다. 촛대바위를 형상화한 높은 철문을 지나면 날카로운 앞발을 들어 올린 용의 모습을 담은 포토 존이 나타난다. 구렁이가 용으로 승천했다는 초곡 용굴 설화 속 용이리라. 불을 뿜어내는 용의 실루엣 사이로 뻥 뚫린 푸른 바다가 눈부시다. 걷다가 시선을 조금만 돌려도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파도가 나무 덱을 지탱하는 기둥에 부딪힌다. 기암절벽을 둘러 선 전망대, 거대한 바위 위에 놓인 출렁다리 주탑은 바라만 봐도 아찔하다. 바닥 일부가 투명한 11미터 높이의 출렁다리는 발이 닿기 전부터 목덜미를 오싹하게 만든다. 다시 잔도를 걷고 낙석을 막아 줄 철 구조물을 지나자 촛대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주위를 둘러싼 거북바위, 사자바위, 피라미드바위 등 각양각색의 기암괴석 사이로 흐르는 물 소리가 마치 음악을 듣는 듯하다. 삼척의 초곡 용굴촛대바위와 동해의 추암촛대바위는 이름에 똑같이 ‘촛대’가 들어가지만 끝부분이 다르게 생겼다. 추암촛대바위는 뾰족하고, 용굴촛대바위는 뭉뚝한데, 그 모습이 꼭 불을 붙이기 전 초처럼 보인다. 용굴촛대바위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르면 두 손 모아 소원을 빌고 싶을 것 같다.


바다에서 만난 삼척의 역사,
이사부길

삼척 시내와 가까운 곳에도 걷기 좋은 길이 있다. 삼척해수욕장과 삼척항을 잇는 약 4.7킬로미터 길이의 이사부길이다. 이사부(異斯夫)는 신라 지증왕 때 우산국(于山國, 현재 울릉도와 독도)을 복속시킨 인물로 지금의 삼척인 실직주의 군주를 지낸 신라 장군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당시 우산국은 동해 먼바다에 동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신라에 귀복하지 않았으며, 우산국 사람들의 성정이 사나워 힘으로 복종시키기 어려웠다고 한다. 꾀를 낸 이사부 장군은 나무로 만든 사자를 배에 가득 싣고 우산국으로 가 항복하지 않으면 맹수를 풀어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겁을 먹은 우산국 사람들이 항복했고, 512년 마침내 신라 영토로 흡수되었다. 이때 우산국을 정벌하기 위해 출항한 곳이 현재 삼척의 오십천 하류로 추정된다. A, B, C 세 구간으로 나뉜 이사부길은 모두 걸어도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 걷는 재미가 있다. 이사부광장에서 소망의 탑 방향으로 조금만 걷다 보면 사자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사자의 모습은 바위 오른쪽에서 더 잘 보인다. 이사부 장군이 승리를 거둔 후 타고 온 배에 실려 있던 사자 한 마리가 이사부길 해변에 내려 삼척을 지키는 바위가 됐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함께 사진을 찍으면 행운이 온다는 두꺼비바위는 낚시하기 좋은 포인트. 볼록 튀어나온 돌이 두꺼비를 꼭 닮았다. 새천년을 맞아 건립한 소망의 탑, 비치조각공원을 지나 조금 더 걷다 보면 어느새 길 끝에 다다른다.

삼척을 느끼다

삼척의 시간을 세심히 모아 펼쳐 놓은 곳.
박물관과 기념관, 그리고 문화 공간을 찾았다.

실감 영상으로 만나는 독도,
이사부독도기념관

이사부 장군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지난해 9월 개관한 이사부독도기념관으로 가야 한다. 이사부길 종착지인 삼척항 인근에 있는 이사부독도기념관은 웰컴센터, 이사부관, 독도체험관, 라이브러리카페 네 개 동으로 이루어졌다. 이 중 이사부관에서는 이사부 장군의 우산국 복속 과정을 담은 8분 분량의 실감 영상을 상영한다. 영상관 밖에는 독도의 생태를 미디어 아트로 시각화한 미디어 큐브가 전시되어 영상을 기다리는 사이 둘러보기 좋다. 독도체험관에서는 신비로운 독도의 생태계를 초대형 파노라마 스크린에 펼쳐 내는 미디어 아트 ‘독도 판타지아’를 상영한다. 화면을 크게 가로지르는 새의 시선으로 독도의 이곳저곳을 비추다 바닷속으로 들어가 독도의 다양한 해양 생물을 보여 준다. 발아래로 물고기가 지나가고, 옆으로는 강치가 헤엄친다. 독도 바닷속에 실제로 들어간 듯한 기분이다. 상영관 옆으로 인터랙티브 체험 공간 ‘독도 스케치북’이 보인다. 태블릿 컴퓨터를 이용해 강치, 도화새우 등 독도의 생물을 채색하면 벽면의 대형 화면에 그림이 나타난다. 라이브러리카페를 비롯해 기념관 곳곳에는 충분히 사색하고 쉴 공간을 마련했다. 이사부독도기념관 입장료 일부는 삼척사랑상품권으로 환급된다.

이사부독도기념관
이사부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전시관. 실감 영상과 미디어 아트 등을 통해 이사부 장군의 우산국 복속 과정과 독도의 생태를 체험할 수 있다.
주소 강원도 삼척시 새천년도로 28
문의 033-575-1040


폐광 지역에 새 숨을 불어넣은
도계유리나라, 도계나무나라

한때 강원도 석탄 생산량의 3분의 1을 책임지던 삼척시 도계읍. 도계 탄광 개발 붐은 전국의 청년을 삼척으로 불러 모았고 이 도시를 윤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1989년 정부의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 시행 첫해 만에 도계의 12개 탄광 중 10개가 폐광했다. 인구 감소는 당연한 수순. 석탄 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검은 가루를 날리며 석탄을 실어 나르던 철도도 사라졌다. 올 6월 대한석탄공사 산하 도계광업소마저 문을 닫으면 민영 광업소 한 곳만 남게 된다. 위기감을 느낀 삼척시는 폐광 지역 활성화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석탄 채굴 과정에서 나온 폐석을 분석한 결과 유리의 주원료인 규사가 75퍼센트 이상 함유됐다는 것을 알게 된 삼척시는 버려지는 자원을 재활용하는 유리공예에 주목했다. 오랜 논의 끝에 2018년 도계유리나라가 문을 열었다. 삼척 시내에서 자동차로 약 40분, 태백시 경계에 있는 도계유리나라는 유리 조형 테마파크를 표방한다. 유리 역사관과 국내외 작가의 작품을 전시한 유리 갤러리, 보석방과 거울방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체험관과 블로잉 시연장에서는 소정의 체험비를 내고 직접 유리공예품을 만들 수 있다. 18년 경력의 윤경원 유리공예가의 지도를 받으며 단단한 유리 덩어리가 마시멜로처럼 늘어나는 과정을 경험한다. 가위로 자르고 집게로 집으면 나뭇잎 모양이 뚝딱 만들어진다. 초보자도 작업 과정을 잘 따라 하기만 하면 30분 만에 목걸이 펜던트나 키링을 쉽게 완성한다. 도계유리나라 바로 옆에는 같은 해에 문을 연 도계나무나라가 있다. 지붕 위에 걸터앉은 피노키오가 마스코트. 실내에 들어서면 먼저 진한 나무 향에 숨을 깊이 들이쉬게 된다. 나무 도서관과 나무 놀이터에 더해 나무의 역사와 속성, 삼척의 전통 가옥 형태인 너와집 등을 소개하는 나무 이용 전시실도 있다. 필통, 책꽂이, 우체통 등을 직접 만들어 보는 목공예 체험 교실도 운영한다.

도계유리나라, 도계나무나라
도계의 유리 예술과 산업을 한눈에 살펴보는 도계유리나라와 나무를 주제로 다양한 체험을 즐기는 도계나무나라는 서로 가까이 위치해 함께 관람하기 좋다.
주소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강원남부로 893-36,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강원남부로 893-46
문의 033-570-4208, 033-570-4201


경이로운 보물 창고,
강원종합박물관

2004년 개관한 강원종합박물관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박물관의 야외 종유석 공간을 찍은 SNS 인플루언서들의 다양한 사진과 영상이 입소문을 타면서 삼척에서 꼭 가 봐야 할 여행지로 떠올랐다. 강원종합박물관은 삼척 시내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신기면에 연면적 약 1만 6870제곱미터 규모로 조성되었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역시 야외 종유석 군락 전시관이다. 동굴에서 보던 종유석을 야외에서 만나니 전혀 새로운 느낌. 황톳빛과 붉은빛을 띤 종유석 군락은 신비로운 느낌을 풍긴다. 종유석이 벽을 이루는 긴 통로 사이로 폭포도 보인다. 이곳이 바로 최고의 사진 촬영 명당이다. 길게 이어진 종유석 광장을 구경하다 보면 관람로가 실내 전시관으로 이어진다. “시공을 초월한 세계의 수많은 문물이 자리한다”라는 안내 문구처럼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2만여 점의 유물이 본관 3층 건물과 별관에 빼곡하다. 거대한 울리매머드와 동굴곰 등의 대형 화석과 눈꽃수정, 방해석, 철운석 등 특색 있는 광물도 시선을 끈다.

강원종합박물관
강원도를 비롯해 전 세계 역사, 문화, 자연을 아우르는 종합 박물관이다.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유물과 예술품 2만여 점을 본관과 별관, 야외 전시 공간 등 총 12개 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주소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강원남부로 3016
문의 033-541-1523


관동팔경 제1경,
죽서루

죽서루는 2023년 12월 지방 관영 누각으로는 최초로 국보로 지정된 삼척의 보물이다. 관동팔경 제1경이자 자연주의 건축의 백미로 손꼽힌다. 죽서루의 최초 건립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고려 시대 문인 김극기가 죽서루에 올라 지은 시가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12세기경으로 추측한다. 자연 암반과 자연 초석 위에 자리한 죽서루가 가장 아름다운 때는 해 질 녘이다. 죽서루 뒤쪽 오십천 방향에서 붉게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분위기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죽서루 왼쪽으로는 용문을 드나들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용문바위가 자리한다. 죽서교를 건너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죽서루를 감상하기 좋은 정자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