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이토록 충만한 풍경, 충남 II

2025년 02월 07일

  • EDITOR 강은주
  • pHOTOGRAPHER 전재호

서쪽 바다의 너그럽고 온화한 품에 몸을 맡겼다. 충남 서해안권 여섯 도시가 안긴 충일한 기쁨을 여기 펼친다.

③ 보령 & 태안 & 서산 섬 여행

점과 점을 잇다

섬 너머 섬을 찾아 드라이브 여행을 떠난다. 보령 원산도에서
태안 안면도를 지나 서산 간월도까지 다다른다.

보령해저터널 너머,
원산도 한 바퀴

새로운 도로, 다리, 터널의 개통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지리 감각에 기분 좋은 혼란을 가져온다. 2019년 보령 원산도와 태안 안면도 영목항을 잇는 원산안면대교 준공, 2021년 보령 대천항에서 원산도까지 닿는 길이 6927미터 보령해저터널 준공은 국도 77호선 보령~태안 구간의 완전한 개통을 의미했다. 이는 무려 90분 거리를 단 10분으로 단축한 마술적 사건이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닿을 수 있었던 원산도 선촌항은 순식간에 낚시꾼들의 참새 방앗간이 됐고, 원산안면대교를 마주한 초전항 주변엔 전망 좋은 카페와 식당이 속속 생겨났다. 그래도 섬은 여전히 섬다운 풍광을 숨겨 둔 채다. 최고봉인 오로봉에 올라 이웃 섬 고대도·삽시도·장고도·효자도와 무수한 섬들을 굽어볼 때면 가슴이 열리고 눈이 환해진다.

원산안면대교 건너,
안면도 해변 트레일

태안 안면도는 빼어난 해변의 각축장이다. 파도와 바람이 만든 기기묘묘한 해안 지형이 거대한 대지 미술을 완성했다. 이름은 또 얼마나 고운지. 샛별, 밧개, 두여, 바람아래···. 자연물을 가리키는 어휘로 이루어진 데다 어감 또한 사랑스럽다. 장삼포와 황포항 사이에 펼쳐진 운여해변도 예쁜 지명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구름 운, 돌이름 여.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며 자아내는 포말이 구름 같다는 뜻에서 생겨난 이름이다. 해변 남쪽, 소나무를 죽 심어 놓은 방파제가 이곳만의 고유한 풍광을 이룬다. 꽃지해변은 어떤가. 해당화가 지천으로 피어나 꽃지라는 이름을 얻은 이 해변엔 다정한 연인처럼 마주 선 할매바위, 할배바위가 있다. 밀물 때 헤어졌다가 썰물 때 한 몸처럼 이어지는 한 쌍의 바위. 발그레한 뺨처럼 물드는 노을빛이 낭만을 증폭한다.

서산방조제 따라,
간월도 해맞이

낙조는 서해안의 특산물이지만 일출도 그 못지않게 황홀하다. 이른 아침, 태안 당암포구와 서산 창리포구를 연결하는 서산방조제를 건너 간월도에 다다른 이유다. 자그마한 돌섬에 올라선 절집 간월암까지 들어가려면 바다가 가장 높이 차오르는 만조 시간을 피해야 하는데, 이런 수고로움이 이곳을 한층 신비롭게 한다. 간월암은 조선 초기 무학대사가 창건하고 1941년 만공 스님이 중건한 절로, 1980년대 천수만 간척 사업 이전에는 배를 타야만 닿을 수 있었다. 간월도와 간월암의 옛 이름은 사바세계 저편 깨달음의 정토를 의미하는 불교 용어 피안에서 온 ‘피안도’ ‘피안사’다. 세상과 단절된 듯 홀연한 간월암의 모습은 과연 피안의 아름다움이다. 해가 떠오르자 짙은 해무가 물러가고, 수백 마리 물새 떼가 하늘을 가로지르기 시작한다. 또 한 번 새 아침이 밝아 온다.

④ 서해 미식회

차오르는 서해안의 맛

비옥한 땅과 풍요로운 바다를 거느린 충남. 이 계절에 건져 올린 건강한 감칠맛을 소개한다.

한산소곡주와 한산소곡화주
백제 유민이 왕실의 비법으로 빚어 마셨던 한산소곡주는 1500년 역사를 간직한 서천의 명주다. 부드러운 보디감과 은은한 단맛 때문에 꿀꺽꿀꺽 마셔도 취하는 줄 모른다. 오늘날 한산면에는 70여 개 양조장이 저마다 다른 맛과 개성을 지닌 한산소곡주를 생산하는데, 소곡주 갤러리를 운영하며 다양한 시음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삼화양조장’의 존재감이 우뚝하다. 한산소곡주와 이를 증류한 한산소곡화주를 서천 특산물과 함께 맛볼 수 있다.
주소 서천군 한산면 갈숲길 21(삼화양조장)
문의 041-951-1894

겨울 굴 맛
잘고 부드러운 서해 굴은 겨울 바다의 맛을 응축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이미 16세기부터 보령 천북 굴의 명성은 전국에 자자했고, 서산 간월도에서 유래한 어리굴젓은 한양에 바쳤던 진상품으로 이름 높았다. 간월암 인근에 자리한 부석면 ‘큰마을영양굴밥’은 해수로 세척하고 손질한 굴과 은행·잣·대추 등을 듬뿍 넣어 지은 굴밥, 바삭바삭하면서도 부드러운 굴전, 적당히 짭조름한 어리굴젓과 예닐곱 가지 밑반찬을 한 상 차림으로 선보인다.
주소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1길 65(큰마을영양굴밥)
문의 041-662-2706

간재미무침과
바지락칼국수

서해안 일대에서 ‘갱개미’라 부르는 간재미는 보령 9미 중 하나로 꼽힐 만큼 빼어난 풍미를 자랑한다. 혀에 착 감기는 차진 간재미는 씹을수록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인데, 오이와 양파 등 채소와 갖은양념을 섞어 무침으로 즐기기 좋다. 보령 원산도 초전항에 자리한 ‘바다내음식당’에 가면 먹음직스러운 간재미무침은 물론, 각종 해산물을 투하해 시원하게 맛을 낸 바지락칼국수를 즐길 수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고깃배가 늘어선 풍경이 맛과 정취를 더한다.
주소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5길 89-19(바다내음식당)
문의 041-936-6137

꽃게탕과 게국지
속이 꽉 찬 태안 꽃게는 찜으로, 장으로, 탕으로 즐긴다. 최근엔 칼국수나 라면에 넣어 먹기도 하지만 재료가 하도 싱싱하니 어쩐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게국지는 태안과 서산 일대에서 탄생한 향토 음식인데, 무·배추·고추 등 김장을 하고 남은 채소에 게장 국물을 넣어 숙성하는 것이 정석이다.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를 걷다가 몸을 녹이기 좋은 ‘어촌집’에서 꽃게탕을, 서산의 ‘진국집’에서 내주는 진짜배기 게국지 백반을 먹으며 녹진한 게 맛을 제대로 느껴 본다.
주소 태안군 원북면 신두로 727(어촌집), 서산시 관아문길 19-10(진국집)
문의 041-672-3392(어촌집), 041-665-7091(진국집)

⑤ 충남 방문의 해

계절의 낭만을 찾아서, 충남

보령에서 나고 자란 충남 사람, 김태흠 충남도지사가 겨울 충남에서 놓치면 안 될 즐거움을 귀띔해 주었다.
충남 방문의 해, 바로 지금이 충남으로 떠날 기회다.

온화한 풍광을 지닌 충남은 겨울이면 유독 생각나는 지역입니다. 2월에 가면 더 좋은 충남 여행지, 어디일까요?
이 계절, 충남의 아름다움으로 가장 먼저 꼽고 싶은 것은 1200킬로미터가량 펼쳐진 리아스식 해안입니다. 조수 간만의 차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풍경이 특히 아름다운데, 만조 때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서산 간월암의 풍경은 언제 봐도 신비롭습니다. 예산 예당호 출렁다리는 잔잔한 겨울 호수의 정취를 한눈에 감상하게 해 줍니다. 소중한 이와 손을 맞잡고 다리를 거닐며 짜릿한 순간을 즐겨 보세요. 겨울 축제를 열어 눈썰매장과 얼음 분수를 운영하는 청양 알프스마을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순백의 설경을 감상하면서 이 계절의 감각을 오래 음미하시길 바랍니다.

보령의 오섬 아일랜드(고대도, 삽시도, 장고도, 원산도, 효자도)를 비롯해 서해안 지역을 기반으로 다양한 여행 문화 콘텐츠를 구상하고 계신데, 충남 바다의 자랑거리를 소개해 주세요.
충남 서해안 권역은 독특한 풍광과 황홀한 낙조, 신비로운 자연환경, 그리고 이색적인 즐길 거리로 여행자의 발길을 끌어 왔습니다. 오섬 아일랜드는 해양 스포츠와 액티비티 허브로 진화를 꾀하고 있어요. 2027년에는 ‘섬 비엔날레’를 개최해 예술적 감수성도 더할 계획이지요. 물안개가 드리운 신비의 섬 보령 외연도, 해돋이와 해넘이가 모두 아름다운 서천 마량포구 등 서해안이 지닌 매력적인 자원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개발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충남은 독특한 환경과 생태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충남의 자연을 보다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가 궁금합니다.
올해 개관 12주년을 맞은 서천국립생태원의 모토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입니다. 계절마다 다양한 테마별로 동식물을 만날 수 있도록 한, 충남의 대표적 생태 콘텐츠이지요.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장항스카이워크도 함께 들르면 좋습니다. 높이 15미터 전망대의 덱을 걸으면 싱그러운 솔숲과 환한 갯벌 풍경이 한눈에 담기거든요. 참, 이즈음 태안 천수만에 가 보셨나요? 주변 농지의 곡식을 먹으러 찾아오는 철새 떼의 군무가 황홀할 만큼 아름답습니다.

최근 서해선 복선 전철 서화성역~홍성역 구간이 개통해 충남으로 가는 길이 더 편리해졌습니다. 기차 여행자를 위한 코스를 제안해 주세요.
서해선 개통과 ITX-마음 운행으로 충남이 더 가까워졌지요. 기차역 근방에 자리한 아산 외암민속마을은 돌담을 따라 들어선 고택들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마냥 걷다 보면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이 들어요. 유럽 소도시의 정취가 물씬한 아산지중해마을도 함께 둘러보면 좋습니다. 여정의 마지막은 예산 덕산온천에서 장식해야 합니다. 신라 시대부터 명맥을 이어 온 명소로, 따끈한 물에 몸을 녹이며 여독을 풀기에 제격입니다. 곧 할인 혜택과 패키지 프로그램을 보강한 철도 여행 코스를 선보일 계획이니 기대해 주세요.

최근에는 축제를 즐기러 각 지역을 찾는 여행자가 부쩍 늘어났습니다. 올 상반기, 어떤 축제를 준비하고 계신가요?
일상에 즐거움과 활기를 불어넣을 각양각색의 축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공주 석장리 구석기 축제’는 고대 인류의 생활을 체험하는 특별한 기회를 마련합니다. 즐길 거리, 체험 활동을 풍성하게 마련해 어린이 동반 여행자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제철 딸기를 수확해 맛보고 딸기로 만든 여러 가지 먹거리를 즐기는 ‘논산딸기축제’도 충남을 대표하는 행사이지요. 꽃밭이 형형색색으로 화려해지는 때, ‘태안 세계튤립꽃박람회’가 열립니다. 계절과 자연의 색깔이 선명한 충남의 축제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충남은 바다와 산, 비옥한 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계절 충남에서 꼭 맛봐야 할 특산물을 추천해 주세요.
충남 여행의 특별한 즐거움은 먹거리에 있습니다. 겨울 간식으로 널리 사랑받아 온 예산 사과는 달콤하고 아삭한 과육을 자랑합니다. 논산 딸기의 풍부한 과즙과 새콤달콤한 풍미는 이 계절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고요. 서천의 별미는 한산 모시 칼국수와 모시 떡인데, 고유의 향이 독특하고 매력적입니다. 천안을 넘어 전국적 인기를 누리는 병천 순대는 매콤한 양념장과 어우러져 감칠맛을 냅니다. 제 고향 보령을 찾는다면 신선한 해산물은 물론 고소하고 향긋한 대천 김을 꼭 맛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미식 경험이 한층 풍부해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