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달라진 지역 축제의 문법

2026년 11월 01일

  • writer 손신욱(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

축제가 달라졌다. 뻔한 지역의 고유 자원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고 기꺼이 지불할 가치가 있는 경험으로 바뀌었다. 전시하는 방식이 변한 거다.

축제를 보러 가기 위해 기차표를 예매해 본 적 있는가. 기차를 타고 낯선 역에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축제장에 도착해 그 지역만의 음식을 먹고,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공유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축제 말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 따르면 2026년 기준 전국에서 열린 지역 축제는 1266개, 축제장 방문은 1억 3000만 회에 이른다. 숫자만 보면 이미 대한민국은 ‘축제의 나라’다. 그러나 숫자에 기록되지 않은 진실이 있다. 사람은 많이 모였지만, 모두가 ‘손님’은 아니었다. 우연히 행사장 앞을 지나간 사람과 시간과 돈을 써서 축제를 보러 온 사람은 같은 ‘1’로 집계되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지역의 자원을 경험으로 바꾸다
대한민국 축제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유명 가수를 초대하고 특산물을 늘어놓는 방식에서 벗어나 반드시 그 지역이어야 하는 축제가 등장하고 있다. 경북 김천김밥축제가 대표적이다. ‘김천’이라는 지명이 ‘김밥천국’을 떠올린다는 엉뚱한 발상에서 출발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그 부분을 실제 방문 경험으로 연결했다는 점이다. 사전 예약과 회차 운영, 대기 관리 시스템 등을 도입하고 축제장과 도시를 잇는 동선을 계획하는 등 방문객의 하루를 완벽하게 설계했다. 김천의 성공은 아이디어 자체보다 지역 콘텐츠 IP(Intellectual Property)를 방문객이 즐길 수 있는 경험으로 바꾼 힘에 있다. 충남 홍성은 지역 축산물인 한우와 한돈을 ‘바비큐 파티’라는 경험으로 바꿨고, 전북 임실은 수십 년간 이어 온 치즈 산업을 축제로 확장했다. 경기 시흥갯골축제는 옛 염전 터와 습지 등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을 축제의 정체성으로 만들었다. 강원 화천의 산천어와 강릉의 커피, 경기 가평 자라섬의 재즈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축제도 다르지 않다. 세계 최대의 맥주 축제인 독일 뮌헨 옥토버페스트는 바이에른주의 전통에 지역 맥주를 더했고, 세계 최대의 민간 주도 축제인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는 축제에 초청받지 못한 단체들이 축제장 언저리(프린지)에서 벌인 공연에서 출발했다. 없는 것을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문화와 장소, 사람을 특별하게 경험하는 방식이다. 이 축제들의 성공 요인이 단지 좋은 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어느 지역이든 특산물, 산과 강, 역사와 이야기가 있다. 차이는 방문객이 콘텐츠를 직접 취하고, 사진을 찍어 공유하며, 다른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경험으로 지역 자원을 번역했느냐에 있다. 좋은 축제는 자원을 전시하지 않는다. 경험으로 바꾼다. 그래야 축제가 며칠 열리고 사라지는 이벤트가 아닌, 지명과 결합한 IP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갑자기 축제가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하루아침에 지역이 창의적으로 변한 건 아니다. 사람들의 여행 방식이 달라졌다. 목적지를 정하고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찾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하고 싶은 경험이 목적지를 결정한다. 소셜 미디어도 축제의 성격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 재미있는 장면 하나가 쇼트폼을 타고 퍼지면 다음 날 대기 줄이 생긴다. 반대로 주차난, 긴 대기 줄, 바가지요금, 지저분한 화장실 등 부정적 측면도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축제의 주도권이 ‘여는 사람’에서 ‘오는 사람’으로 이동하고 있다. ‘힙’은 주최자가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방문객이 발견하고 인증하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축제 예산이 얼마인지 모른다.

베끼기와 번역은 다르다
축제가 성공하면 아류가 등장한다. 축제 기획자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해 무작정 베끼는 행위다. 김천김밥축제에서 배워야 할 것은 김밥이 아니라 김천이 지역을 바라본 방식이다. 베끼기와 번역은 다르다. 축제 콘텐츠 밖의 경험도 잘 설계해야 한다. 기차역에서 축제장까지 가는 길,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음식값, 화장실 위생 상태, 숙소 비용과 질,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까지가 축제 경험이다. 아무리 즐거운 축제라도 주차장에 두 시간 넘게 갇혀 있으면 공연이 아닌 주차장에서 보낸 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축제를 성장시킬 주체도 중요하다. 부스를 빌려 며칠 참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상인과 청년, 기업, 기획자가 함께 축제를 기획하고 다음 해를 준비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축제는 해마다 열리지만 브랜드는 몇 년에 걸쳐 천천히 구축된다. 재원도 마찬가지다. 모든 축제를 유료화할 필요는 없지만,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쓰고 싶은 체험과 상품은 있어야 한다. 지금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특산품,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기꺼이 경험하고 싶은 체험이 많을수록 축제가 지역 경제성장과 연결된다. 궁극적으로 지역을 살리려면 축제가 ‘행사’에서 ‘산업’으로 성장해야 한다.
정부는 1996년 문화관광축제 제도를 도입한 이후 30년 동안 우수한 축제를 발굴하고 육성했다. 이제는 단순히 관람객 수를 세기보다 왜 축제에 왔고, 얼마나 머물렀으며, 무엇을 먹고 사고 경험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100만 명이 잠시 스쳐 간 축제보다 10만 명이 하루 더 머문 축제가 지역에 더 큰 가치를 남길 수 있다. 물론 외지인 숫자만 늘리는 것이 답은 아니다. 그 지역 사람이 가족이나 친구를 데리고 이웃과 어우러지는 자리에 가고 싶게 만드는 것, 그것이 오래가는 축제 관광의 힘이다.

힙이 식은 뒤 무엇이 남을까
‘로컬 힙’이라는 말은 지금의 변화를 잘 보여 준다. 하지만 영원히 힙한 것은 없다. 처음에는 신기한 것이 분위기를 고조시키지만, 반복해 노출되면 금세 익숙해진다. ‘어떻게 힙해질 것인가’가 아니라 ‘힙이 식은 뒤 무엇이 남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오랫동안 사랑받는 축제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 지역에서만 가능한 이야기, 축적된 브랜드, 그것을 만드는 사람과 조직, 또 오고 싶게 만드는 사람들의 기억이다. 지역 축제의 다음 경쟁은 더 큰 무대를 만들거나 더 유명한 가수를 초대하는 데 있지 않을 것이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당신이라면 전국의 1266개 축제 가운데 어떤 축제를 보러 가기 위해 기꺼이 KTX 티켓을 예매하겠는가.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지역이 점점 늘어나는 것, 그것이 ‘로컬 힙’ 이후 한국 축제가 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