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 한복판, 잠들어 있던 조선의 뒷골목이 깨어났다. 옛 집터와 공동 우물부터 금속활자와 자격루 주전까지, 인사도시유적전시관을 거닐며 옛 도시의 얼굴을 만났다.

서울 인사동의 한 오피스 빌딩 지하 1층. 계단을 내려서자 도심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울퉁불퉁한 흙바닥 위에 크고 작은 석재들이 놓여 있어 마치 유적 발굴 현장에 들어선 듯하다. 이곳의 정체는 인사도시유적전시관. 2020~2021년 도시정비사업 중 발굴된 조선 시대 유적을 복원 및 전시해 500년 전 사람들의 삶터를 살펴볼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유리 바닥 아래쪽에 자리한 공동 우물이 눈길을 끈다. 동선이 골목길처럼 이어지며 16세기 집터와 배수로, 옛길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명문 자기와 청화백자 같은 생활 유물부터 금속활자, 천문시계 일성정시의 등 532점의 출토 유물도 한자리에서 만난다. 땅속에 묻힌 흔적을 살피며 걷다 보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500년 전 인사동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인사도시유적전시관, 이런 곳이에요
2020년부터 2021년까지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 추진 과정에서 조선 전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7개 문화층에서 건물지와 공동 우물, 배수로, 금속 유물 등이 발견됐다. 이 가운데 유적이 비교적 본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16세기 문화층을 중심으로 발굴 현장을 보존했다. 그리고 유적이 발견된 자리에 인사도시유적전시관을 조성했다. 관람 덱은 틈이 있는 철제 구조물로 마감해 마치 유적 위를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만의 금속활자 만들기 같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관람료는 무료. 전시 해설은 서울특별시 공공서비스예약(yeyak.seoul.go.kr)에서 사전 예약할 수 있으며, 오전 11시와 오후 2시·4시 하루 세 차례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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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뒷골목과 옛길에서 보는 인사동 유적
전시관에는 총 여섯 개의 집터가 자리한다. ‘모퉁이 작은 집’ ‘피맛길로 출입하는 집’ ‘마당 넓은 초가집’ ‘금속활자가 발견된 집’ 등 각 집의 특징을 이름에 담았다. 건물지 곳곳에 설치된 키오스크를 통해 발굴 당시 모습과 3D 복원 영상을 비교해 보며 당시 골목 풍경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 명문 자기와 동제 촛대, 청화백자 등 주거지에서 출토된 생활 유물도 함께 전시해 당시 생활사를 짐작한다.

인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자기. 바닥에 ‘의금부’ ‘평시서’ 같은 관사명과 ‘어여분’ ‘즘생이 ’ ‘말금이’ 등 이름이 적혀 있다. 궁궐이나 관청에서 수많은 그릇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그릇의 소유자를 새겨 넣은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 후 100여 년이 지난 시기에 백성도 한글을 사용했음을 보여 준다.

‘피맛길로 출입하는 집’. 본체와 배수로 옆 부속 건물과 마당, 동쪽 담장 경계 등이 남아 있으며, 아궁이와 탄화한 마루, 고막이 석렬도 확인된다. 피맛길은 말을 타고 지나는 고관대작을 피하기 위해 만든 길로, 작은 가게들이 운집한 상업 도로였다. 집 출입구가 배수로와 인접해 있는데, 그 위에 나무판을 놓아 피맛길로 건너다녔을 것으로 추정된다.

종로 뒷골목 주거 지역 앞에 길이 약 110미터에 이르는 배수로가 놓여 있다. 1421년(세종 3년) 지대가 낮은 종로 일대의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설치한 뒤 수차례 개보수를 거치며 20세기 초까지 사용했다. 배수로의 물길은 종로1가 그랑서울 부근부터 안국동천을 거쳐 청계천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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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과학 문화
인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금속활자와 조선 전기의 주요 과학 유물을 만나는 공간이다. 세종 대에 제작한 초추갑인자와 세조 대의 을해자·을유자, 15세기에만 사용한 동국정운식 한글 활자를 비롯해 출토된 금속활자 1700여 점 가운데 441점을 전시했다. ‘미디어 월’에서 금속활자를 확대해 활자의 형태와 서체의 특징을 비교해 본다. 1437년 세종의 명으로 단 4대만 제작한 일성정시의와 <세종실록>에서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자동 물시계 자격루의 부품 ‘주전’도 실물과 함께 실제 크기로 복원해 놓았다. 두 유물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영상도 상영한다.

금속활자 스탬프 체험 존에서는 활자를 직접 찍어 볼 수 있다. 전시장 한쪽에 마련된 투입구 끝까지 기다란 종이를 밀어 넣고 큐브 모양 도장을 꾹 누르면 7종의 금속활자가 순서대로 찍힌다. 이영보래(ㅭ)와 반치음(ㅿ)은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따른 한글 금속활자다. 획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따라 그려 보고, ‘’ ‘’ 같은 글자를 보이는 대로 소리 내어 읽어 본다. 익숙한 한글이 낯설게 느껴진다.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1700여 점의 금속활자 중 일부는 불에 녹아 서로 엉겨 붙은 상태였다. 형태를 살펴보면 활자를 만들 때 붙은 것이 아니라, 완성된 뒤 화재로 일부가 녹아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금속이 귀하던 조선 시대에는 화재로 못 쓰게 된 금속품을 모아 땅에 묻어 둔 뒤 다시 녹여 무기로 재활용하기도 했다.

자격루의 핵심 장치인 주전의 동판과 구슬방출기. 도기 항아리에서 토막 난 상태로 출토됐다. 각 부품은 본체나 주전 동판에 작은 못으로 고정돼 정교하게 맞물리며 움직인다. 이러한 구조는 구슬이 한 번에 하나씩 정해진 간격으로 떨어지며 시간을 알리도록 고안됐다. 부품 하나하나의 정밀한 구조를 들여다보면 당시 기술이 얼마나 우수했는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