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아리랑열차를 타고 오일장의 맛과 정선아리랑 가락, 가리왕산의 기세를 차례로 만났다. 여행을 마치고도 아리랑 한 자락이 귓가를 맴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 주게.”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강원 정선의 험준한 지형을 두고 “무릇 나흘 동안 길을 걸었는데도 하늘과 해를 볼 수 없었다”라고 표현했다. 높은 산이 겹겹이 둘러싼 이곳을 사람들은 어떻게 오갔을까.
1950년대 무연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건설한 정선선은 1967년 증산역(현 민둥산역)과 정선역을 잇는 구간이 개통되며 본격적인 운행을 시작했다. 이후 나전·여량·구절리 방향으로 철길이 연장됐고, 1974년 정선선 전 구간이 완성됐다. 1980년대 후반 석탄 산업이 쇠퇴할 때까지 지역 경제를 뒷받침했던 철도는 이제 색다른 여행의 즐거움을 주는 관광 자원이 됐다. 정선의 자연과 아리랑을 테마로 한 관광 열차, 정선아리랑열차다. 2024년 철로 변에서 발생한 낙석 사고로 운행이 중단됐던 열차가 지난 5월부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기차에서 듣는 아리랑
정선 오일장이 열리는 날에 맞춰 오전 9시 제천역에서 정선아리랑열차에 올랐다. ‘바람숨결’ ‘은빛울림’ ‘산들산들’ ‘깊은사색’ 등 저마다 다른 분위기와 테마로 꾸민 객차에 테이블석, 지정석, 전망석 등 여러 유형의 좌석이 마련돼 있다. 그중 창밖 풍경을 마주 보는 전망석을 택했다. 정선의 산세를 한눈에 담을 수 있어 인기가 높은 자리다. 달리는 차 안에서 신나게 바람을 맞는 강아지가 되고 싶었건만, 안전상 이유로 창문은 굳게 닫혀 있다. 대신 천장 높이까지 이어진 큼직한 창이 아쉬움을 달랜다. 차창 밖으로 산과 계곡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정선아리랑열차는 소리 없이 미끄러지기보다 덜컹덜컹 꽤나 솔직하게 달린다. 철로의 이음매를 지날 때마다 객실이 가볍게 흔들린다. 고속 열차에 익숙한 도시인에게는 낯선 감각이지만, 이마저 기차 여행의 리듬으로 받아들이니 나쁘지 않다. 민둥산역을 지나자 풍경이 한층 깊어진다. 산악 지대를 가로지르는 철길 아래로 조양강이 까마득히 내려다보인다. 산과 산 사이를 저공비행하는 듯 아찔하다. 겹겹이 포개진 산줄기와 깊게 파인 골짜기가 이 지역의 기세를 실감케 한다.
창밖을 한참 바라보던 중 흥겨운 가락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차 안에서 공연이 열린 것이다. 정선아리랑열차의 또 다른 묘미인 ‘추억을 싣고, 아라리를 잇다’로 영월역부터 정선역 구간에서 약 1시간 20분간 이어진다. 지역 예술가들이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로 만담을 들려주고, 정선아리랑과 가곡을 불러 객실은 어느새 달리는 무대가 된다. 창밖으로 수려한 산세가 영화 장면처럼 이어지는 동안 귓가에 정겨운 노랫가락이 스며든다. 오전 11시, 마침내 정선역에 도착했다. 서울보다 계절이 한발 앞서 온 듯 가을빛이 짙다. 역 앞에는 2층짜리 ‘와와정선 투어버스’가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정선을 본격적으로 만날 차례다.

정선아리랑열차
정선아리랑열차는 제천, 영월, 예미, 민둥산, 별어곡, 선평, 정선, 나전, 아우라지를 잇는 관광 열차다. 주말(토·일)과 정선 오일장이 열리는 날 하루 한 차례 왕복 운행한다. 제천역에서 오전 9시 2분에 출발해 11시 정선역에 도착하며, 돌아오는 열차는 정선역에서 오후 5시 52분에 출발해 7시 49분 제천역에 닿는다. 열차는 기관차와 발전차, 객차 4량으로 구성되며 전체 좌석은 200석이다. 1호차 ‘바람숨결’과 4호차 ‘깊은사색’에는 지정 좌석 외에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하는 전망석(자유석)이 있다. 2호차 ‘은빛울림’에는 자전거 거치대와 4인 테이블석, 3호차 ‘산들산들’에는 장애인석을 마련했다. 승차권 정가는 8700원. 레츠코레일 홈페이지(korail.com/tour/main) 또는 코레일+앱을 통해 예약 가능하다.


산이 내준 든든한 한 끼
투어 버스를 타고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정선아리랑시장이다. 과거 떼꾼들은 아우라지에서 뗏목에 소나무를 싣고 한양으로 가서 팔았다. 그렇게 한몫 챙겨 돌아온 떼꾼들이 정선에 모이면서 주막이 들어서고 장이 섰다. 1966년 2월 17일 시작된 정선 오일장은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도 매달 끝자리가 2일과 7일인 날 어김없이 열린다. 장터에 들어서자 고소한 기름 냄새가 발길을 붙잡는다. 배추전이 지글지글 익고 메밀 전병이 노릇하게 부쳐지는 사이, 장 보러 나온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장날의 활기를 더한다.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은 이곳 사람들에게 밭농사와 산나물 채취는 중요한 생계 수단이었다. 곤드레와 황기, 감자와 옥수수가 밥상을 채웠고, 자연이 내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음식이 발달했다. 장터의 소박한 먹거리에는 척박한 환경을 슬기롭게 극복한 삶의 지혜와 넉넉한 인심이 담겨 있다.
그중 옥수숫가루로 만든 올챙이국수는 이름부터 재미있다. 올챙이를 닮은 면은 마카로니만 한 크기로, 질감이 미끈미끈해 숟가락으로 후루룩 떠먹어야 한다. 감자를 갈아 빚은 옹심이는 쫀득한 식감이 매력적이다. 강원도 산골에서 감자는 엄연히 한 끼를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 ‘총떡’이라 불리는 메밀 전병도 놓칠 수 없는 별미다. 메밀 반죽을 얇게 부쳐 빨갛게 양념한 무채를 넣고 돌돌 말아 만드는데, 구수한 메밀과 매콤한 속 재료가 어우러져 막걸리를 절로 부른다.

정선의 희로애락이 담긴 노래
배를 든든히 채운 후 정선아리랑센터로 향했다. 뮤지컬 <아리아라리>를 보기 위해서다. 관람료가 5000원인데 표를 끊자마자 같은 금액의 지역사랑상품권으로 돌려준다. 사실상 무료인 셈이다. 공연을 앞두고 투어 버스 가이드가 “생각보다 고퀄리티라 누구나 만족할 것”이라 귀띔했지만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리랑을 주제로 한 공연이니 익숙한 가락을 듣는 정도겠지. 하지만 막이 오르자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아리아라리>는 정선아리랑을 바탕으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에 맞춰 탄생한 작품이다. 2023년 호주 애들레이드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연극 및 뮤지컬 부문 주간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고, 해외 여러 무대에서 호평을 얻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정선의 떼꾼 신기목과 그의 딸 아리가 있다. 정선의 소나무를 뗏목에 싣고 한양으로 떠난 아버지가 재산을 잃고, 아리는 아버지를 찾아 먼 길을 나선다. 결말은 현장에서 확인해 보시길. 다만 정선의 산자락처럼 겹겹이 쌓인 희로애락이 1시간 15분 동안 밀도 있게 펼쳐진다는 점만은 밝혀 둔다. 아리랑에 이토록 다채로운 감정이 깃들어 있는지 부끄럽게도 처음 알았다. 공연을 보다 슬며시 눈물을 훔칠 정도였다. 별다른 기대 없이 들어선 공연장에서 듣게 된 낯선 노래 한 자락에 잠들어 있던 감정이 깨어났다. 정선을 찾는다면 이 공연만큼은 꼭 일정에 넣어 보길 권한다.

산 너머 산, 열세 겹의 풍경
정선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가리왕산 케이블카다. 정선과 평창에 걸쳐 솟은 가리왕산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 경기가 열렸던 곳이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설원을 질주했던 산을 케이블카를 타고 만난다. 케이블카는 탑승장인 숙암역에서 하차장인 가리왕산역까지 약 3.51킬로미터를 오간다. 편도 운행 시간은 20분이다.
케이블카가 천천히 고도를 높일수록 정선의 마을은 점점 작아진다. 산자락을 물들인 붉은 단풍은 수묵화의 먹물이 번지듯 능선을 따라 퍼져 간다. 캐빈 안에 비치된 블루투스 스피커를 휴대전화와 연결해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전망대는 해발 1381미터에 자리한다. 밖으로 나서자 뺨을 스치는 공기가 서늘하다. 덱을 따라 걸으며 사방으로 시선을 던진다. 눈앞에는 산 너머 산, 그 뒤로 또 다른 산이 이어진다. 하나, 둘, 셋⋯. 손가락으로 능선을 짚어 가며 헤아리다 보니 무려 열세 겹의 산이 어깨를 포갠 듯 펼쳐져 있다. 능선은 파도처럼 굽이치며 아득한 곳까지 뻗어 간다.

와와정선 투어버스
정선 여행을 더 알차고 편하게 즐기고 싶다면 와와정선 투어버스를 이용해 보자. 정선아리랑열차와 연계해 운행하는 시티 투어 버스로, 열차 관광객을 태우고 주요 관광지를 순환한 뒤 정선역으로 돌아온다. 주요 관광지는 정선아리랑시장, 정선아리랑센터, 아라리촌, 화암동굴, 가리왕산 케이블카 등이다. 이용 요금은 성인 기준 1만 원. 코스 확인과 사전 예약은 정선시티투어 공식 홈페이지(정선시티투어.com)에서 할 수 있으며 현장 발권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