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대전역에서 빵지순례를 떠나다

2026년 10월 01일

  • WRITER 김진(여행 칼럼니스트)
  • PHOTOGRAPHER 장은주

과학 도시, 연구 도시, 교통의 중심지…. 대전을 설명하던 딱딱한 수식어 사이로 흥미로운 단어가 붙었다. 바로 ‘빵의 도시’. 빵티칸 순례 버스에 올라타 빵집을 찾아다니며 대전의 골목을 누볐다.

빵지순례(빵과 성지순례를 합친 말)를 이야기할 때 성심당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진행한 ‘대한민국 명소 발굴 100×100 프로젝트’에서 ‘전국 방방곡곡 빵지순례’ 부문 득표 1위를 차지한 곳도 성심당이다. 그럼 대전 여행은 성심당에 들러 빵을 사는 것으로 끝일까. 대전역에 내려 ‘빵티칸 순례’ 버스에 올라타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대전 빵티칸 순례의 안성우 가이드. 빵집이라면 뭐든 꿰고 있어 ‘빵저씨’로 통한다.

친절한 빵 투어, 대전 빵티칸 순례
대전 빵티칸 순례를 설계하고 진행하는 사람은 안성우 가이드다. ‘빵저씨’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는 20여 년간 여행업계에서 일한 여행 기획자다. 아이디어의 출발점은 일본의 우동 택시였다. 시코쿠 섬의 가가와현에는 우동 전문가인 택시 기사가 손님을 태우고 유명 우동 가게를 순례하는 관광 서비스가 있다. 대전에서는 무엇을 먹으러 다니면 좋을까 고민하던 안성우 가이드는 빵을 떠올렸다.
그는 대전 빵집 100여 곳을 발품 들여 찾아다녔다. 대표 메뉴를 맛보고 영업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인기 메뉴의 품절 시간까지 살폈다. 이동 거리와 주차 여부, 대기 시간도 계산해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짰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빵 택시’다. 연예인들이 잇따라 빵 택시를 체험하는 모습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알려졌고, 순식간에 입소문을 타며 찾는 사람이 늘자 택시 한 대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결국 올해 5월부터 빵 택시는 대형 버스를 이용한 빵티칸 순례로 확장됐다.
버스에 올라타면 일반 여행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버스 천장과 바닥에 온통 빵 그림이 가득하고, 커다란 식빵 인형도 자리한다. 참가자에게는 포크, 나이프, 잼, 물, 심지어 활명수까지(!) 담긴 대형 쇼핑백과 보랭 백을 나눠 준다. 잘 먹고, 잘 담고, 잘 소화하라는 뜻이다. 오늘은 빵집 일곱 곳을 들르고, 중간에 ‘빵 해장’ 코스가 예정돼 있다. 해장이 필요할 정도로 빵을 먹는다고? 이때까진 예상하지 못했다. 해장 떡볶이가 신의 한 수였음을.

정동문화사의 대표 메뉴는 12종의 다양한 맛을 선보이는 피낭시에다.
콜드버터베이크샵의 시그너처인 크랙소금빵.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하다.

개성 강한 대전의 빵집들
첫 번째 순례지는 구움과자 맛집 ‘정동문화사’다. 이곳에서는 달걀흰자와 아몬드 가루로 피낭시에를, 달걀노른자로 에그 타르트를 만든다. 시그너처는 단연 피낭시에. 무려 12종의 피낭시에를 선보이는데, 꼭 하나를 맛봐야 한다면 기본에 충실한 클래식 피낭시에를 추천한다. 한 입 베어 물면 버터와 아몬드 향이 조화를 이룬다. 시청역 부근의 ‘콜드버터베이크샵’에서는 16종의 소금빵을 만난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것이 특징. 빵 안쪽에 버터를 넉넉히 채워 넣어 고소한 풍미가 짙게 번진다. 담백한 크랙소금빵부터 달콤한 연유소금빵, 짭조름한 명란소금빵, 알싸한 후추소금빵까지, 한 가지 빵으로 다양한 맛의 변주를 보여 준다.
‘하레하레’는 성심당 다음으로 규모가 큰 빵집으로 대전 지역에만 매장이 일곱 개다. 대표 메뉴는 쌀하레치즈. 쌀로 만든 치즈 카스텔라로, 마치 구름을 맛보는 듯 폭신한 식감 뒤로 치즈의 풍미가 진하게 번진다. 글루텐을 분해하는 유산균이 들어 있어 소화 부담을 줄인 것도 장점. 편백나무 틀에 중탕으로 굽는 방식은 하레하레만의 제조법이다. 대량생산이 어려운 데다 구워 내는 즉시 품절될 정도로 인기가 많아 일찍 방문하는 게 좋다. 다음 행선지인 ‘미미제과점’에 들어서면 요즘 사람들이 어떤 맛에 열광하는지 한눈에 알게 된다.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재빠르게 반영한 빵을 판매하기 때문이다. 현재 인기 메뉴는 망고요거트 왁뿌소금빵. 생망고를 통째로 넣은 소금빵 안에 요거트 크림을 올린 뒤 화이트 초콜릿으로 코팅했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초콜릿 코팅이 바삭하게 깨지고, 뒤이어 망고와 요거트 크림의 산뜻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네 곳의 빵집을 차례로 돌고 나면 슬슬 매콤한 맛이 그리워진다. 빵티칸 순례에는 ‘빵 해장 떡볶이’라는 재미있는 코스가 중간에 끼어 있다. 달고 고소한 빵 사이를 헤매다 만난 칼칼한 떡볶이가 어찌나 반갑던지. 단 몇 숟갈 만에 속이 개운해진다. 잠깐의 빵 해장으로 입맛을 환기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다시 빵집으로 향할 힘이 솟아난다.

빵 투어를 하기 위해 대전행 기차를 타는 사람이 많다.

다시 달콤한 빵의 세계로
다섯 번째 순례지는 이름부터 파이를 내세운 ‘파이가든’이다. 이곳은 유럽의 맛을 대전의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다. 추천 메뉴는 크렘소쿠니, 먹물 말차, 크루아상. 특히 먹물 말차는 바삭하게 구운 먹물 페이스트리 겉면을 포크로 톡 깨뜨리는 순간부터 눈과 귀가 즐겁다. 파삭하게 부서지는 페이스트리 사이로 진한 말차 필링이 벨벳처럼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바삭함과 부드러움이 입안에서 대비를 이루는 사이 쌉싸래한 맛과 달콤한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다음 목적지는 2022년과 2024년 대전빵축제 ‘빵 어워즈’에서 1위를 차지한 ‘몽심’이다. 2019년 한남대학교 창업존의 학생 창업 기업으로 시작한 몽심은 학생과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더니 어느덧 대전을 대표하는 빵집으로 성장했다. 스콘, 마들렌, 피낭시에 등 구움과자가 대표 메뉴다. 길쭉한 바 형태의 피낭시에는 버터의 풍미를 살려 진한 캐러멜 향이 나고, 겉은 바삭하면서 속은 쫀득한 식감이 특징이다. 대학생이 창업한 빵집답게 인테리어와 선물용 박스에도 재치 있고 귀여운 감성이 녹아 있다.
마지막 순례지는 대전 빵지순례의 상징과도 같은 ‘성심당’이다. 튀김소보로와 판타롱부추빵이 대표 메뉴지만 빵저씨가 강력하게 추천한 메뉴는 따로 있다. 바로 김치찹쌀주먹밥. 매콤하고 짭조름한 김치볶음밥을 둥글게 뭉쳐 빵가루를 입힌 뒤 노릇하게 튀겨 낸 메뉴로, 한번 먹으면 계속 생각날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 여기에 빵저씨가 한 가지 팁을 더 보탠다. 여러 라면을 곁들여 먹어 본 끝에 찾아낸 최고의 짝꿍은 바로 참깨라면이라고.

빈손으로 왔다가 두 손 가득 빵을 들고 돌아가는 것이 빵티칸 순례자들의 운명이다.

여행의 이유가 빵이어도 괜찮아
3시간 동안 최면에 걸린 것처럼 빵집 일곱 곳을 돌고 나니 두 손에는 어느새 커다란 쇼핑백이 한가득 들려 있다. 빵티칸 순례의 끝은 수료식이다. “귀하는 대한민국 빵 성지 대전 빵티칸 순례에 참가해 배불리 맛있게 먹으며 훌륭히 마쳤음을 인증합니다.” 진지하게 읽어 보는데 피식 웃음이 난다. 오늘 내가 한 일이라곤 버스를 타고 빵집에 가서 빵을 사고 먹기만 한 것뿐인데 순례 완주 인증까지 받으니 큰일을 해낸 것처럼 뿌듯하다. 여행을 하는 데 꼭 거창한 이유가 필요할까. 좋아하는 빵을 핑계 삼아 기차에 올라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때로는 이런 여행이 우리를 조금 더 달콤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르니.

대전 빵티칸 순례
대형 버스를 타고 대전의 유명 빵집을 찾아가는 가이드 투어다. 오전 투어는 9시, 오후 투어는 1시에 대전역 1번 출구 앞 호국철도광장(동광장)에서 출발한다. 소요 시간은 약 3시간. 빵집 대기 상황에 따라 종료 시간이 늦어질 수 있으니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표는 여유 있는 시간으로 예매하는 것이 좋다. 참가비는 성인 기준 주중 4만 원, 주말 4만 5000원. 영춘모찌, 파티세리 소신, 로로네 베이커리, 파이가든, 플래닛 에그타르트, 정동문화사, 콜드버터베이크샵, 미미제과점, 하레하레, 몽심, 성심당 중 일곱 곳을 방문하며, 당일 재고와 영업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