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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듣기

2026년 10월 01일

  • EDITOR 김수아
  • PHOTOGRAPHER 김은주

심이다은 작가는 다른 존재로 변신하며 두 귀를 스치는 소리를 채집한다. 최근 선보인 <보편타당한 당신-심이다은>전에서는 서울 노원구를 배회하는 길고양이의 하루를 담았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노원구 일대의 환경음을 재해석한 실시간 사운드 설치 ‘보편타당한 당신’.

소리를 활용한 전시에는 언제나 호기심이 인다. 시각예술이 주를 이루는 전시장에서 청각적 요소를 소재로 한 시도는 눈에 띄기 마련이다. 작품의 메시지를 단번에 파악하기 어려워 오감을 동원해야 하지만, 그래서 더 탐구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유휴 공간에서 열리는 <보편타당한 당신-심이다은>전의 작가 인터뷰 영상을 집중해 봤던 것도 같은 이유다. 이 전시를 기획한 심이다은 작가는 필드 리코딩을 중심으로 사운드 및 조형 작업을 구현하는 창작자다. 독립 기획자 겸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하던 그는 제주 대형 미디어 테마파크 조성 사업 기획팀 근무를 계기로 작업 세계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야생동물이 사는 곳에서 공사가 시작되자 매일 보던 동물들이 하나둘 모습을 감췄고, 어느 날은 흔한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사라진 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무작정 소리를 찾아 나선 그는 야생동물과 멸종 위기 동식물의 발자취를 따라 현장에서 소리를 채집했고, 2023년부터 소리를 중심으로 한 생태 연구 설치 프로젝트 연작 <보편타당한 소리> <보편타당한 동물> <보편타당한 숲>을 선보였다.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은 직접 구조물을 작동시키며 그동안 쉽게 지나쳤을 다른 존재의 소리를 온몸으로 감각했다. ‘과연 소리는 보편적일까?’ ‘인간이 편안하다고 느끼는 소리를 다른 존재도 똑같이 느낄까?’ ‘그들에게 익숙한 소리가 우리에게는 어떻게 다가올까?’ 전시장에 울려 퍼지는 진동을 따라 작가가 건네는 질문이 관람객에게 전해졌다.

고양이가 가장 선명하게 인식하는 노란색, 연두색으로 천에 소리 기호를 새겼다.
작가의 소리 기록 방법을 따라 소리 기록지에 스티커를 붙이는 체험.

고양이 A 씨의 감각을 따라가다
<보편타당한 당신-심이다은>은 ‘보편타당한’ 시리즈의 네 번째 전시이자 다른 존재의 감각으로 도시의 소리를 듣는 참여형 사운드 전시다. 인간 중심 사회에서 소외되는 존재들에 주목해 온 심이다은 작가가 이번에는 길고양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길고양이는 도심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쉽게 지나치고 때론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길고양이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이더라도 그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다. 전시장을 방문한 사람들은 인간의 감각을 잠시 내려놓고 북서울미술관 일대를 배회하는 상상의 존재 ‘고양이 A 씨’가 되어 본다.
미술관 2층 유휴 공간의 라운지 3에 들어서면 나무로 된 커다란 구조물에 눈길이 간다. 고양이 A 씨의 시선으로 노원구 일대의 환경음을 재해석한 실시간 사운드 설치 ‘보편타당한 당신’이다. 마들상상놀이터, 중랑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등 미술관 인근에서 발생하는 환경음이 미술관 안으로 실시간 송출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관람객이 손잡이를 돌리면 나무 기어의 삐걱임과 천의 마찰음이 외부 환경음과 합성되며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낸다. 이 소리는 고양이가 들을 수 있는 주파수 대역으로 변환되어 흐른다. 천에 새긴 소리 기호는 고양이가 가장 선명하게 인식하는 노란색, 연두색으로 설정했다.
옆방 라운지 2에서는 잠시 길고양이의 시선을 빌린다. 전시장에 놓인 70여 개 서랍에 고양이 A 씨의 하루를 상상할 단서가 들어 있다. 낙엽, 이끼, 돌멩이 등 작가가 노원구 일대에서 채집한 자연물을 살펴보다가 고양이의 일기에서 발췌한 듯한 문장에 시선이 멈춘다. “비가 내린 다음 날이면 물가의 돌멩이들은 조금씩 다른 자리에 놓여 있다” “눈이 오면 익숙한 냄새들이 모두 사라진다” “바람은 도시의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 주는 전달자다” 같은 문장에서 날씨와 계절의 변화가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어렴풋이 짐작된다. 고양이 A 씨는 몸을 둥글게 말고 앉아 도심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하고, 아이와 어른이 술래잡기하는 걸 지켜보거나, 혓바닥으로 털을 고르면서 비릿하고 달큼한 꽃가루 맛을 느끼기도 한다. 고양이 눈에 비친 세상을 떠올리니 눈높이가 점점 땅에 가까워진다.

전시장에 놓인 70여 개 서랍에 고양이 A 씨의 하루를 상상할 단서가 들어 있다.
눈을 감았다 뜨거나 앉았다 일어나며 소리의 미묘한 차이를 비교한다.

오늘 당신을 스쳐 간 소리
심이다은 작가는 ‘닫힌 귀에 균열을 내는 사람’이다. 그에게 소리를 듣는 일은 인간 중심 사회 너머로 향하려는 생태적 실천이다. 도심 속 자연을 걸으며 소리를 발견하고 기록하는 워크숍도 연다. 미술관에 방문하기로 한 날, 그에게 중랑천 산책을 제안한 건 일상을 다르게 감각하고 싶어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귀를 열고 싶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묻기도 했다. 하천을 돌아다니다 눈을 감고 청각적 자극에 집중했다. 앉았다 일어나며 높이에 따른 소리의 미묘한 차이를 비교해 보기도 했다. 두 손을 양쪽 귀에 갖다 대자 소리가 한곳으로 모아졌다. 바람 소리는 베이스 연주 같고, 새소리는 캐스터네츠가 내는 효과음 같았다.
심이다은 작가는 지난 전시에 사용한 워크숍 책자를 건네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라고 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양한 질문이 말을 걸어왔다. 어젯밤 잠들기 전 가장 마지막에 들은 소리, 오늘 아침 눈을 떠서 가장 먼저 들은 소리, 약속 장소로 가면서 들은 소리···. 소리에 관한 여러 질문의 답변을 떠올리다 보면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하루 일과가 그려진다. ‘듣고 싶었는데 듣지 못한 소리는 무엇인가?’ 어떤 질문 앞에서는 생각이 더욱 깊어졌다.
오로지 듣기에 열중인 그에게 낯설게 듣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우리는 한 번 태어난 몸으로 평생을 살잖아요. 고집 아닌 고집도 생기고, 내 의견이 맞다는 생각이 강해지죠.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 낯선 방식으로 보고 들으면 다른 존재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게 돼요.” 우리는 어떤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또 얼마나 많은 소리를 놓쳤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