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올가을 새롭게 만나는 울주

2026년 09월 01일

  • writer 신송희·우지경
  • photographer 김은주
  • 제작 지원 울주군청

울주의 세 가지 풍경

자연과 영화, 레저를 한 번에 누리는
제11회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영화를 중심으로 사람과 자연, 문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곳. 가을빛 무르익는 9월에 영남알프스를 배경으로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열린다.

UMFF 야외 상영관에서는 영남알프스의 능선을 배경으로 영화를 감상한다. © umff
영화 상영 후에는 감독과 토크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지난해에는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가 자신이 연출한 영화 <스틸 얼라이브> 상영 후 관객과 대화를 나눴다.

산악·자연·인간을 주제로 한 영화와 공연, 레저를 한자리에서 즐기는 국내 유일의 산악 영화제,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이하 UMFF)가 올해도 다시 찾아왔다. 슬로건은 ‘함께 오르자, 영화의 山’. 9월 18일부터 22일까지 5일간 울산 울주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 일원에서 열린다. 올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상영 장소다. 이전 영화제에서는 여러 곳으로 분산됐던 상영 장소가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 일원으로 압축됐다. 차박 극장, 텐트 극장, 숲속 극장 등 자연 속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곳도 늘었다.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덱에 앉아 영화를 보거나, 야영장에 누워 눈앞의 탁 트인 능선을 배경으로 스크린을 마주하는 일은 일반 극장에서는 경험하지 못해 더욱 특별하다. 게다가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을 상영하니 감흥은 더욱 깊어진다.
상영작은 35개국에서 출품한 114편으로 극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 폭넓은 장르를 아우른다. 처음 UMFF를 찾았다면 올해의 키워드인 ‘도전’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개·폐막작부터 살펴보자. 개막작 <K2: 그림자를 따라서>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봉우리 중 하나인 K2를 무산소 등반하는 뱅자맹 베드린의 여정을 담았다. 극한의 자연환경에 맞서는 한 인간의 도전과 자연의 압도적 풍광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폐막작 <여전히 항해 중>은 아흔을 앞둔 노인이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향하는 이야기다. 나이와 상관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주인공이 ‘도전에는 때가 없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세계의 산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올해의 산’ 섹션도 놓치지 말자. 매년 주요 산맥을 품은 한 국가를 선정해 그 나라의 영화와 문화, 역사, 생활상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올해는 슬로베니아의 율리안 알프스가 주인공이다. 슬로베니아판 <기생충>으로 불리며 유수의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가족 치료>, 슬로베니아 영화 120주년 기념 복원작 <키케츠>와 <안녕, 키케츠>를 국내 최초로 공개한다.
스크린에서 보던 산악인의 아찔한 도전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도 UMFF의 묘미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영화 <협곡의 슬랙라이너>와 연계해 진행하는 ‘아슬아슬 슬랙라인’이다. 슬랙라인은 두 개의 고정된 지점 사이를 줄로 팽팽하게 연결해 그 위를 걷는 익스트림 스포츠다. 영화에는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네르비온 협곡 사이, 900미터가 넘는 하이라인 위를 걷는 장면이 담긴다. 프로그램에서는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자 선수인 다니엘 카스칼레스가 직접 슬랙라인을 가르쳐 준다. 영화제에서 슬랙라인이라니! 다른 어떤 영화제에서도 경험하지 못할 이색 체험이니 절대 놓칠 수 없다.
개막작 에서 K2를 무산소 등반하는 뱅자맹 베드린처럼 한계를 뛰어넘는 영화 속 주인공을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극한의 순간을 견디는 인간의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걸까? 국내 산악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 토크 프로그램에서 그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최근 해발 6220미터의 히말라야 사트 피크 세계 첫 등정에 성공한 안치영 대장이 자신의 산행 도전기를 들려준다. 아시아인 최초로 남극대륙을 걸어서 횡단한 김영미 대장은 자신이 연출한 영화 <남극에서 온 편지> 상영 후 관객과 만나 극한의 환경에서 마주한 순간과 영화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를 전한다.
해가 진 뒤에도 영화제의 열기는 계속된다. 관람객들이 서로의 소장품을 사고파는 야간 플리마켓 ‘움프 보물창고’를 구경하고, 천체망원경으로 영남알프스의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싱잉볼 치유 명상’으로 몸과 마음을 천천히 이완한 후 자연과 연결되는 ‘밤빛 요가’로 하루를 느긋하게 마무리해도 좋다. UMFF는 규모가 큰 축제인 만큼 미리 프로그램 북을 살펴보고 관심 있는 상영작과 프로그램을 골라 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영화를 보고 체험을 즐기며 공연을 감상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제11회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기간 9월 18일~22일
장소 울산 울주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 일원
문의 052-248-6451

2026 울주 언양 한우불고기축제
올가을 울주 여행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맛있는 축제가 열린다. 언양 지방의 대표 향토 음식인 언양 불고기는 질 좋은 숯과 한우가 만나 탄생했다. 잘게 다진 쇠고기에 갖은양념을 한 후 석쇠에 올려 직화로 구워 내는데, 은은한 참숯 향과 풍부한 육즙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울주 언양 한우불고기축제는 최고급 한우를 부담 없는 가격에 마음껏 맛볼 흔치 않은 기회다. 축제장에 거대한 한우 불고기 구이 공간이 마련되어 현장에서 구매한 언양 불고기를 숯불구이 테이블에서 바로 구워 먹을 수 있다.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한우로 든든히 배를 채워 보자.
기간 10월 2일~5일
장소 울산 울주 언양공영주차장 일원
문의 052-204-1622

오르고, 감상하고, 경험하라! 문화가 되는 산악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 암벽장에서 클라이밍을 즐기는 사람들.
웅장한 암봉에 둘러싸인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

산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완등 기념 메달을 받고 영화 한 편 보기. 매년 9월 UMFF가 열리는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는 간월산에서 신불산으로 이어지는 산기슭에 자리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산악문화관, 영상체험관, 완등인증센터, 국제클라이밍장 등 총 6개 동의 문화·체험 시설이 방문객을 반긴다. 그중 완등인증센터는 해발 1000미터 이상의 영남알프스 7봉(가지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천황산, 고헌산, 운문산)을 제패한 메달 헌터들의 성지로 통하는 곳이다. 영남알프스 7봉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영남알프스 완등인증’ 앱에 등록하면 순은 기념 메달을 제공한다. 완등인증센터 옆에서는 벽천폭포가 청량한 물줄기를 내뿜고, 몇 걸음만 더 옮기면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 암벽장인 국제클라이밍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색색의 볼더링 홀드를 잡고 중력을 거슬러 암벽을 오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팔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 듯하다.
산행과 클라이밍으로 땀이 흠뻑 나도록 움직였다면 이제 알프스시네마의 푹신한 의자에 기대 스크린 속 이야기에 빠져들 차례다. 단돈 3000원에 즐기는 영화라니! 자연의 웅장함과 인간의 도전 정신, 아웃도어 스포츠, 동식물의 생태 등을 다룬 국내외 산악·자연·모험 영화를 두루 감상할 수 있다. 영화관 밖으로 나서면 UMFF의 주무대이자 야외 상영관인 움프 시네마(UMFF Cinema)가 펼쳐진다. 영남알프스 능선을 배경으로 선선한 산바람을 맞으며 산악 영화를 감상하는 일은 영화제 기간에만 누릴 수 있는 낭만이다.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에서 간월재로 걸음을 옮기면 황금빛 물결을 이루는 억새가 두 눈 가득 담긴다. 올가을 산악 문화의 매력을 영화와 산행, 클라이밍이 어우러지는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에서 만나 보자.
주소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알프스온천5길 103-8

고대 한반도인의 창의적 걸작
울주 반구천의 암각화

선사시대부터 신라 시대까지 약 6000년에 걸쳐 한반도인이 남긴 기록, 울주 반구천의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지 1년이 됐다. 바위에 새겨진 그림과 문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옛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선사시대부터 신라 시대에 이르는 기록이 빼곡히 적힌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 안홍범
태화강의 구불구불한 지류 하천인 반구천 절벽에서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만난다. 신라 시대 왕족과 화랑, 승려가 이곳을 다녀간 기념으로 남긴 명문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다. © 울주군

2025년 7월 12일, 반구천의 암각화가 마침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아우르는 단일 유산이다. 울산 태화강의 본류인 대곡천(옛 반구천)을 따라 약 3킬로미터 이어지는 절벽에 자리한다.
반구천의 암각화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70년 12월 24일이다.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속 연구원 문명대는 원효대사가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반고사를 찾아 나섰다가 반구천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많은 기호와 한자가 새겨진 기이한 바위를 마주했다. 오늘날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로 불리는 유적이다. 이듬해인 1971년 12월 25일 주민들의 제보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까지 발견됐다.
두 암각화에는 여러 시대에 걸쳐 새겨진 그림과 문자가 남아 있다. 높이 약 4.5미터, 너비 8미터의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서는 고래, 거북, 물새, 상어, 멧돼지 등 20여 종의 바다·육지 동물 그림 300여 점이 확인된다. 그중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고래 그림이다. 귀신고래, 범고래, 혹등고래, 향유고래 등 일곱 종류의 고래가 50마리 넘게 등장한다. 심지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작살을 던져 고래를 잡고, 육지로 끌어 올려 해체하는 모습까지 포경의 전 과정이 섬세하게 묘사됐다. 문자가 없던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어떤 도구를 사용했으며, 어떻게 협동하며 살았는지를 보여 주는 귀중한 시각 자료다. 무려 6000년 전 울산 앞바다에 이토록 다양한 고래가 살았고, 선사인들이 고래잡이를 했다는 사실도 이 그림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장면이 포경 기술과 지식을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한 교육적 의미를 지녔을 것으로 추정한다.
또 다른 유적지인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에는 켜켜이 쌓인 다른 시대의 흔적이 보인다. 높이 약 2.7미터, 너비 9.8미터의 바위 면에 바다·육지 동물, 기하학적 문양을 비롯한 그림과 문자 625점이 남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시대에 따라 바위 면의 서로 다른 영역에 그림과 문자를 새겼다는 것이다. 왼쪽 상단에는 사슴과 물고기 등 신석기시대의 그림이 자리하고, 중앙 상단에는 동심원, 마름모, 물결무늬 같은 청동기시대의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문양이 넓게 분포한다. 하단에는 돛단배와 행렬도, 말과 용 등 신라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새겨져 있다. 신라 시대에 새긴 명문도 총 127점에 이른다. 한 글자로 된 짧은 문자부터 10행이 넘는 장문까지 형식도 다양하다. 특히 신라 법흥왕 일가가 남긴 명문은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525년 법흥왕의 동생인 사부지갈문왕과 누이는 이곳을 찾아 ‘서석곡(書石谷)’이라 이름 짓고 ‘원명(原銘)’이라 새겼다. 14년 후인 539년에는 사부지갈문왕의 아내 지몰시혜비와 아들(훗날의 진흥왕)이 다시 이곳을 찾아 바위 면에 ‘추명(追銘)’이라 남겼다. ‘원명’은 처음 새긴 기록, ‘추명’은 뒤이어 덧붙인 기록이라는 뜻이다. 이 밖에도 귀족과 승려, 화랑이 이곳을 찾아 바위 면에 자신의 흔적을 아로새겼다.
선사시대부터 신라 시대까지 이어진 고대의 기록이 오늘날까지 온전히 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자연의 도움이 컸다. 중심 바위 면 윗부분이 25도가량 앞으로 기울어 있어 비바람을 막아 주는 지붕 역할을 한 것이다. 바위에 새겨진 그림과 문자를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수천 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주소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산234-1(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울산암각화박물관
2008년에 문을 연 국내 유일의 암각화 전문 박물관.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까지 불과 2킬로미터 떨어져 있어 두 암각화를 둘러보기 전에 먼저 이곳에 들러 사전 지식을 얻는다. 무엇보다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실물 크기로 재현한 모형이 있어 바위 면에 새겨진 그림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살펴보기 좋다. 배와 그물, 동물 뼈 등의 유물을 통해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고래를 어떻게 사냥했는지 상상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주소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 반구대안길 254

엄흥도의 푸른 절개가 깃든
원강서원

죽음을 무릅쓰고 단종의 마지막 길을 지킨 엄흥도. 그의 곧은 절개를 기리는 원강서원에는 수백 년의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충의의 흔적이 남아 있다. 왕명으로 세운 비석부터 백범 김구의 친필 현판까지, 서원 곳곳에 남은 유산을 통해 엄흥도의 삶과 그가 지킨 가치를 되새겨 본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는 입춘방이 붙은 충의문 안으로 들어서면 단정한 서원 마당이 펼쳐진다.

위선피화 오소감심(爲善被禍 吾所甘心). “선한 일을 하다 화를 입는 것은 달게 받겠다.” 1700만 관객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주목받은 엄흥도가 남긴 말이다. 조선 세조 대에 영월 호장이었던 엄흥도는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하라’라는 엄명을 받았다. 그럼에도 밤을 틈타 차가운 동강에 버려진 어린 임금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장릉에 안장했다. 목숨을 걸고 주군의 마지막 길을 지켜 준 대가는 혹독했다. 엄흥도는 가족과 함께 영월을 떠나 성과 이름을 숨긴 채 살아야 했다. 충남 공주와 경북 청송, 경주를 거쳐 다다른 종착지는 울산이었다.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는 원강서원이 울주군에 있는 이유다.
조선 후기 숙종 대에 이르러 단종이 복위되면서 엄흥도의 충심도 마침내 재평가를 받았다. 숙종 때의 좌장부터 고종 때의 판서에 이르기까지 엄흥도의 관직 추증이 점진적으로 이뤄졌다. 고종은 그에게 ‘충의공(忠毅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원강서원을 건립한 이는 울산에 정착한 후손들과 지역 유림이었다. 1799년(정조 23년)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사당인 원강사를 세웠고, 1817년(순조 17년)에는 지역 유림의 청원으로 원강사가 원강서원으로 승격됐다. 1871년(고종 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으나 1904년 복원됐다. 그리고 1994년 온산국가산업단지 조성 과정에서 지금의 상동면 둔기리로 옮겨졌다.
수백 년 세월이 흐른 지금 <왕과 사는 남자>의 감동을 가슴에 품은 여행자들이 원강서원을 찾는다. 정문인 충의문으로 들어서기 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비각이다. 비각 안엔 엄흥도의 행적과 서원의 내력이 적힌 두 기의 비석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1820년(순조 20년) 왕명에 따라 강화도 돌에 글을 새겨 배로 운송해 세운 것이다. 비석 윗부분에 ‘조선 충신’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충의문 안으로 들어서면 단정한 서원 마당이 펼쳐진다. 그 중심에는 ‘물과 같이 맑고 곧게 살아간다’라는 뜻을 담은 강당 여수당이 서 있다. 양옆으로는 유생들이 머물던 기숙사인 영수재와 형모재가 대칭을 이루며 자리한다. 여수당에 가까이 다가서면 또 하나의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여재당(如在堂)’. 돌아가신 조상과 선현을 마치 앞에 계신 것처럼 정성을 다해 섬기라는 뜻으로 현판 글씨는 백범 김구의 친필이다. 목숨을 걸고 도리를 다한 엄흥도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백범 김구. 서로 다른 시대를 산 두 사람의 기개가 작은 현판 위에 마주한다.
여수당 뒤편, 원강서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는 상절당이 자리한다. 충의공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그의 절개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엄흥도의 후손들은 지금도 이곳에서 매년 춘추 제례를 올리며 권력의 횡포 앞에서도 끝까지 사람의 도리와 의리를 지킨 충의공의 정신을 이어 가고 있다. 상절당 앞에 서자 바람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 사이로 “선한 일을 하다 화를 입는 것은 달게 받겠다”라고 말하는 엄흥도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주소 울산시 울주군 삼동면 대밭길 37

엄흥도의 위패를 모신 상절당을 중심으로 강당인 여수당, 유생들의 기숙사였던 영수재와 형모재가 정연하게 배치돼 있다. 서원 뒤편 야산에는 영월 엄씨 후손들의 묘가 자리한다.
오랜 세월 원강서원을 지켜 온 엄주환 울산향교 전 전교장.

울산향교 전 전교장 엄주환
충의공 엄흥도의 후손으로 원강서원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하는 엄주환 전 전교장을 만났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흥행 이후 원강서원을 찾는 사람이 많이 늘었나요? 정말 많아졌습니다. 평소에는 문을 닫아 두었는데 영화 개봉 후 울산 시민들이 문을 열어 달라고 요청하더라고요. 관심에 보답하고자 주 6일 문을 열었더니 평일에는 수십 명, 주말에는 전국 각지에서 100명 이상 찾아오고 있습니다.
엄흥도의 후손으로서 자부심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문중이 대를 이어 원강서원을 지켜 온 보람을 느낍니다. <왕과 사는 남자>에서 엄흥도 역을 맡은 유해진 배우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덕분에 온 국민이 엄흥도의 충절을 알고 공감하게 됐으니까요.
원강서원을 찾는 여행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원강서원은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는 곳인 동시에 유생들이 학문을 연마하던 서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세대가 더 많이 찾아왔으면 합니다. 권력의 횡포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지킨 엄흥도의 정신을 원강서원에서 배워 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