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행운을 삽니다, 러키슈머

2026년 06월 01일

  • writer 김용섭(트렌드 분석가,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

불안과 위기감이 커진 시대, 사람들은 이제 돈으로 행운을 사기 시작했다.

행운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운칠기삼’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실력으로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자나 무엇이든 돈으로 해결 가능한 부자라면 행운에 크게 연연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극소수다. 대부분은 취업과 이직, 연애와 결혼, 부동산 청약과 주식 투자 같은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운을 기대한다. 이제 사람들은 행운을 보다 적극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했다. 신조어도 등장했다. 러키슈머(luckysumer). 영어로 행운을 뜻하는 ‘러키(lucky)’와 소비자를 의미하는 ‘컨슈머(consumer)’를 합친 말로, 행운을 얻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소비자를 뜻한다.

러키슈머는 세계적 흐름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에머전 리서치(Emergen Research)에 따르면 글로벌 점성술 시장은 2024년 128억 달러에서 2034년 228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점성술 시장 역시 약 1조 4000억 원대로 추산된다. 여기에 유튜브 타로 채널과 SNS 운세 콘텐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기반 점술 상담 같은 비공식 소비까지 포함하면 실제 시장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점성술이 웰니스 문화의 일부로 소비된다. 단순한 오락을 넘어 요가와 명상, 마인드풀니스처럼 정신적 웰빙을 위한 도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부 정신 건강 상담에서는 점성술을 내담자의 성향을 이해하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거나, 피트니스 업계에서는 달의 위상에 맞춘 운동법이나 식단 루틴을 제안한다. 글로벌 뷰티 편집숍 세포라(Sephora)도 별자리와 점성술의 네 가지 원소에서 영감을 얻은 립 제품을 선보인 바 있다. 일본은 1970년대부터 혈액형 성격론을 MBTI처럼 소비했고, 신사와 절에서 제비뽑기로 운세를 점치는 ‘오미쿠지’ 문화도 100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1970년대까지 풍수와 점술을 미신으로 규정해 금지했다가 1980년대 경제 개혁·개방 이후 전통문화의 가치가 재조명되며 풍수를 하나의 학문으로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2030세대가 좋은 기운을 얻겠다며 베이징과 상하이의 유명 사찰 앞에 줄을 서고, 점성술 결과를 소셜 미디어 플랫폼 웨이보에 공유하는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인도에서는 IT 산업 성장이 점성술 열풍을 이끌었다. 2000년대부터 영어권 온라인 점성술 서비스의 상당수를 인도 IT 인력이 구축하면서 관심이 함께 높아진 것이다. 아스트로토크(Astrotalk) 같은 연 매출 1조 원이 넘는 인도 점성술 앱도 여럿 존재하고, 24시간 실시간 점성술사 상담과 화상 통화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인도 구글플레이에서는 헬스케어 앱보다 점성술 앱의 다운로드 순위가 더 높을 정도다.

적은 비용으로 얻는 즉각적인 위안
점성술 시장이 성장하는 배경에는 불확실한 시대가 자리한다. 세상살이가 점점 팍팍해지고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월급만으로 자산을 축적하기 어렵다는 인식 속에서 주식과 코인 투자로 빠르게 부를 늘리려는 2030세대도 많아졌다. 여기에 전쟁과 기후 위기, AI 기술 발전이 가져올 예측 불가능성까지 더해지며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욱 커지고 있다. 방향을 잡기 어려운 시대일수록 사람들이 별자리와 사주, 타로처럼 보이지 않는 가능성과 행운에 기대고 싶어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점성술 시장 소비자의 약 3분의 2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대부분이 감정적 위안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적은 비용으로도 즉각적인 심리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러키슈머가 빠르게 확산하는 이유다. 요즘 온라인 운세 플랫폼에서는 990원만 내면 간단한 사주풀이를 볼 수 있다. 과자 한 봉지보다 저렴한 값이다. 과거에는 용하다는 점집을 직접 찾아다녔다면, 이제는 스마트폰 앱만 열면 언제 어디서든 오늘의 운세를 확인 가능하다. 네이버 전문가 유료 상담 서비스 엑스퍼트(eXpert)에서도 운세·사주와 타로 분야가 꾸준히 인기 카테고리로 꼽힌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시간을 들여 서로를 알아 가기보다 MBTI나 별자리, 사주를 통해 궁합부터 확인하려는 경우가 많아졌다. 적어도 ‘나’와 ‘내가 만나는 사람’의 관계만큼은 명확하게 설명되길 바라는 심리가 반영된 결과다. 외로움과 공허함이 커진 영향도 있다. 2024년 종교를 가진 사람의 비율은 역대 최저 수준에 가깝다. 종교가 예전만큼 위안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전문가 상담은 비용이나 심리적 부담 때문에 접근이 쉽지 않다. 인간관계에 피로함을 느끼는 사람이 늘면서 혼밥과 혼술 문화도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기댈 곳이 필요하다. 그 빈자리를 점성술과 운세, 행운 굿즈가 메우고 있다. 무엇보다 앱은 즉각적으로 답을 준다. 빠르고 확실한 위안을 얻는 데 이보다 쉬운 방법은 없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행운을 소비하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액막이 명태 키링과 부적 파우치, 행운 팔찌 같은 굿즈 소비가 활발해졌고, 인테리어 업계에서는 풍수지리를 반영한 ‘운테리어’가 유행한다. 관악산의 호림사나 강남의 봉은사처럼 운이 좋아진다고 알려진 장소를 찾아가 인증 사진을 남기는 사람도 늘고 있다. 과거 MBTI를 자기소개처럼 활용했다면, 이제는 ‘목(木) 기운이 강하고 토(土) 기운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자신의 사주를 설명하기도 한다. 오행에 맞춰 취미나 라이프스타일까지 바꾸는 사례도 적지 않다. 기성세대가 구시대 문화처럼 여겼던 사주가 Z세대에게는 새로운 놀이이자 자기표현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행운을 부른다
러키슈머는 기업 입장에서 매력적인 소비자다. 같은 제품이라도 ‘행운’이라는 이미지를 덧입히면 더 잘 팔린다. 불안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작은 가능성에도 기대를 걸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다만 운세 소비가 삶의 중심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어디까지나 재미와 자기 위안 수준에서 즐기는 것이 좋다. 취업 운을 높여 준다는 굿즈를 산다고 해서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 MBTI나 궁합이 잘 맞더라도 서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관계가 오래가기 어렵다. 결국 행운은 소비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순간, 뜻밖의 방식으로 찾아온다. 중요한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다. 야구 선수 오타니 쇼헤이는 행운을 끌어오기 위해 쓰레기를 줍고 작은 선행을 실천한다고 한다. 장원영의 ‘러키비키’ 역시 긍정적인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유행어다. 어쩌면 행운은 거창한 부적보다 스스로를 믿는 마음과 긍정적인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용섭은 ‘Trend Insight & Business Creativity’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자 트렌드 분석가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과 정부 기관에서 3000회 이상 강연과 워크숍을 진행했고, 트렌드 전문 유튜브 채널 <김용섭 INSIGHT>를 운영한다. 저서로 <라이프 트렌드 2026: 인간증명 + 경험사치> <머니 트렌드 2026>(공저) <프로페셔널 스튜던트> <언컨택트> 외 다수가 있다.